Updated : 2024-04-29 (월)

(장태민 칼럼) 잼버리와 세금도둑

  • 입력 2023-08-14 15:50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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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말 많고 탈 많았던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연맹 잼버리 대회가 지난주 막을 내렸다.

이번 대회의 가장 큰 수확(?)은 많은 국민들이 세금을 허투루 쓰는 공무원들의 행태를 알게됐다는 점이다.

잼버리 행사가 시작되기 직전까지도 '준비를 하지 않은' 간 큰 행정이 요즘같은 시대에도 가능하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윤석열 정부 출범 뒤 공동위원장을 맡은 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성공을 자신했지만,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준비도 제대로 안 된 잼버리를 홍보했다.

여가부는 조직위가 출범한 2020년부터 준비에 참여해왔다. 공동 조직위원장인 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예산 집행 승인을 맡고 있기 때문에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전북도지사 김관영 '집행위원장'은 돈을 받아서 시설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

새만금 잼버리가 끝났지만 잼버리 센터는 아직 '공사중'인 블랙 코메디는 현재도 상영중이다. 이미 대회가 끝났지만 공정률이 40%에 미치지 못해 2024년에 완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잼버리엔 참가한 10대 청소년들은 나무도 찾기 힘든 땡볕 아래서, 그것도 물기도 빠지지 않은 땅 위에 텐트를 쳐야 했다.

시작부터 온열환자, 화상환자, 벌레물림 환자가 속출해 '대회를 접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였다.

가장 많은 스카우트 대원을 보낸 영국, 미국 단원들이 초기부터 '준비가 안 돼 있는' 대회장을 이탈해 버렸고 결국 부랴부랴 중앙정부, 기업 등이 나서서 사태를 수습해야 했다.

정부는 결국 새만금 잼버리를 사실상 '대한민국 잼버리'로 바꿔야 했고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대회 피날레를 장식하는 컨틴전시 플랜을 가동했다.

K팝 전사들이 실추된 국가 위상을 살리기 위해 나서야 했다.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빛나는 뉴진스를 비롯해 걸 그룹, 보이 밴드들이 대거 투입돼 한국 구하기에 동원(?)됐다.

기승전 '케이팝'이라는 비난도 쏟아졌지만 그 정도로 이번 사태는 절박했다.

그리고 이제 손익계산을 따질 시점이 왔다. 예상대로 현 정부는 전 정부 탓, 전 정부는 현 정부 탓을 하면서 책임 회피에만 급급하다.

잼버리는 끝이 났지만 잼버리 정산 후폭풍은 남아 있다. 이제 장부를 맞춰볼 때가 왔다.

마침 이런 상황에서 미국 학부모 쪽에선 손배소를 준비 중이라는 소식까지 들린다. 문제 해결 능력이 없는 한국 정치권의 현실을 보고 있노라면 차라리 그 쪽 법원에서 현정부, 전정부, 지자체 등의 잘잘못을 가려주길 기다리는 게 나을지도 모를 일이다.

■ 1991년 사업비와 2023년 사업비...돈 씀씀이 이상

기재부 차관을 지낸 송언석 의원이 국회 독서관에서 확인해 제시한 자료에 의하면 지난 1991년 강원도 고성에서 열렸던 잼버리 대회에 들어간 직간접 사업비 등 총사업비는 188억원이었다.

직접사업비가 162억원 들었고 간접사업비(SOC 예산)는 26.2억원이 쓰였다.

총사업비와 직접사업비를 지금의 가치로 환산하면 513억원, 442억원 수준이다.

새만금 잼버리의 직접사업비는 1,171억원이었다. 현재가치를 감안해도 1991년에 쓴 돈의 배를 훌쩍 넘는 지출이 이뤄진 것이다.

직접사업비를 조금 더 쪼개 보면 돈을 쓴 행태가 이상하다는 점을 알게 된다.

91년 대회 때는 직접사업비 절반인 81억원이 야영장 조성에 쓰였다. 하지만 새만금에선 직접사업비의 1/3 수준인 395억원만 야영장 조성에 사용돼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이번 대회 각국 청소년들이 모기 때문에 비명을 질렀지만, 방역비용도 제대로 책정하지 못한 주먹구구였던 것으로 보인다.

고성 잼버리는 당시 현재가치로 11억원 남짓(당시 4.14억원)이 방역비용으로 쓰였지만 이번엔 5억원에 그쳤다. 공무원들은 엄청난 세금을 받아서 기본적인 방역 비용 조차 가늠하지 못했던 것이다.

■ 행사 비용 이상하다...천문학적 간접비 주장도 제기

송 의원은 새만금 잼버리와 관련해 믿기 힘든 주장을 펼쳤다.

잼버리를 핑계로 간접 사업비가 어마어마하게 책정됐다는 주장이었다.

고성 잼버리는 예산 중 SOC에 들어간 간접 사업비가 26.2억원 수준(잼버리장 진입도로 포장비 19.5억원, 해양 활동장 정비 6.7억원)이었지만, 새만금 잼버리를 핑계로 엄청난 간접비가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송 의원이 정리한 내용을 보면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받은 새만금 국제공항(8,077억원 )을 비롯해 아직 건설 중인 새만금-전주 간 고속도로 (1조 9,200억원), 잼버리 참가자의 편의를 높인다는 명목으로 건설된 내부동서도로·내부남북도로(7,886억원), 새만금 신항만(3조2,000 억원) 등 11조원에 육박하는 SOC 예산이 투입된 것으로 나온다.

송 의원은 "91년 고성 잼버리는 새만금 잼버리의 200분의 1도 안 되는 예산으로도 성공했다"면서 "전라북도와 지역 정치권, 문재인 정권이 잼버리를 지역 SOC 예산 확보를 위한 도구로 악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 이상한 잼버리 관련 계약들

국회 행안위 소속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전날(13일) 전북도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잼버리 관련 계약 현황자료를 보면 이상한 점들이 드러난다.

우선 전북도는 2016년 3월부터 올해 7월까지 공사 15건, 용역 47건, 물품 194건 등 총 256건의 계약을 잼버리 준비 명목으로 체결했다.

이 가운데 공사 준공이나 용역 완료 목표일을 잼버리 개막식 이후로 잡은 건수는 공사 3건, 용역 10건, 물품 2건 등 15건이었다.

용역과 물품 완비 시점이 행사일자와 겹치는 것도 고개가 갸웃거려지지만, 기반시설 공사 준공 시점을 개막 이후로 잡은 것은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2차 잼버리 기반시설 설치공사는 준공일자가 폐막 4개월 후인 12월로 잡혀 있었다. 이런 식이라면 잼버리를 핑계로 '다른 용도의 시설공사'를 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권 의원은 기반시설 공사 시작 시점, 참여 업체 모두 문제가 많다고 꼬집었다.

그는 "‘잼버리 기반시설 설치공사’는 상수도 26km, 하수도 31km, 임시하수처리시설 3개소, 주차장 3개소, 그늘시설 3.7km를 설치하는 필수적인 기본사업이었으나 2021년 12월에서야 계약이 이뤄졌다. 대회를 1년 8개월 앞둔 시점이자 2017년 8월 개최가 확정된 지 4년 4개월 만에 입찰을 냈던 것"이라고 했다.

그나마 전북 소재 기업만 참여 가능한 지역 제한 경쟁으로 긴급 공고를 낸 까닭에 토목공사 도급순위가 전국 964위인 부안군 소재 건설사가 사업권을 따냈다고도 했다.

권 의원은 "이 업체는 40억7500만원짜리 ‘1차 잼버리 기반시설 설치공사’(2021년 12월~올해 3월)까지 맡았지만 기반공사가 늦어지는 바람에 전 세계 각국 대원들은 입영 기간동안 물 부족을 겪어야 했고 비가 오면 배수가 잘 되지 않는 문제에 시달렸다"고 했다.

■ 야당, '현정부 책임론' 부각

당초 새마금 잼버리는 '잼버리 그 자체'가 아닌 '지역 발전'이라는 더 큰 목표에 중점을 두고 진행된 프로젝트였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사실을 강조했다.

문 전 대통령은 "새만금을 세계에 홍보해 경제적 개발을 촉진함과 아울러 낙후된 지역경제를 성장시킬 절호의 기회라고 여겨 대회 유치에 총력을 기울였던 전북도민들의 기대는 허사가 되고 불명예만 안게 됐다"면서 "대회 유치 당시의 대통령으로서 사과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고 했다.

그는 "새만금 잼버리 대회로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 국격을 잃었고 긍지를 잃었다. 부끄러움은 국민의 몫이 됐다. 사람의 준비가 부족하니 하늘도 돕지 않았다"고 적었다.

전직 대통령은 자신의 재임 기간 중엔 착실히 준비를 했지만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아 이런 비극이 초래됐다고 보는 것이다.

야당은 문 전 대통령의 이런 인식과 보조를 맞추면서 연일 '현 정부의 잘못'을 주장하는 논평을 내고 있다.

민주당 권칠승 대변인은 이날도 "정부·여당이 책임을 전 정부와 전북도에 전가하고 나섰다.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대회 파행으로 드러난 윤석열 정부의 총체적 난맥을 가리기 위한 막장 인질극"이라며 "윤석열 정부는 대규모 국제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며 국가적 위상을 드높여왔던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에 오점을 남겼다"고 했다.

그는 "국민 60%가 잼버리 대회 파행 책임을 윤석열 정부에 묻고 있다"면서 "문재인 전 대통령은 국민과 전 세계 스카우트 대원들에게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전했는데, 현 정부와 여당은 남 탓만 하고 있으니 염치는 어디다 팔아치운 것이냐"고 했다.

같은 당 강선우 대변인은 12일 "윤석열 정부가 잼버리 대회 참사 수습에 기울였던 정성의 백분의 일만큼이라도 이태원 참사에 써달라"고 적기도 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잼버리 조기 파행 책임을 전북도에 돌리는 것은 뻔뻔한 물타기라는 입장도 유지했다.

민주당은 또 정부가 잼버리 초기부터 대회 파행을 만회하기 위해 K팝 스타를 동원하겠다고 하자 'K팝 돌려막기로 사태의 본질을 가린다'고 비난하기 일쑤였다.

야당은 "잼버리 '실패'를 계기로 현 정부가 나라망신만 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 여당, '전정부와 전북도 책임론' 부각

여가부를 중심으로 한 정부는 잼버리 준비 상황을 제대로 챙기지 않았다. 이에 따라 비판은 당연히 받아야 하고 책임도 져야 한다.

현정부의 책임도 명백하나 전 정부나 전북도 역시 이번 사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잼버리 준비와 관련한 집행 책임을 지자체에 맡겼지만 각종 의혹과 무능도 만연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14일 "총체적 무능과 지역 이권 카르텔이 새만금 잼버리의 초기 파행 원인"이라며 "민주당 전북도당 간부가 대표로 있는 영세업체에 잼버리 관련 일감을 몰아줬다"고 주장했다.

여당은 또 "영세업체에 수의계약을 통해 일감을 몰아줬다. 지역 업체 선정 업무 대부분을 전북 공무원이 주관했으니 잼버리 대회 초기 파행의 원인은 전라북도라는 것이 확실해지고 있다"면서 "민주당 출신 지자체장이 재임 중인 지방정부와 그들이 양산한 이권 카르텔로 인해 잼버리 대회 초기에 어려움이 가중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어려운 조건에서도 중앙정부와 국민, 여러 기업들이 합심해 파국으로 치달을 뻔한 대회를 만회하고 성공적으로 이끌었다고 '자평'했다.

여당은 이날 문 전 대통령의 정부 비판에 대해 "실패한 정권의 수장이 국격 훼손을 운운하며 현 정부를 공격하는 해괴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이권 카르텔 형성의 주범은 민주당이며 문 전 대통령과 전 정권도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했다.

■ 손익계산 제대로 따져야 할 텐데...

잼버리는 끝났다.

이제 잼버리 관련 예산이 제대로 쓰였는지 철저히 따져야 할 시간이 왔다.

이 과정에서 정치권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결사 항전을 할 것이 뻔해 답답하다.

하지만 중앙정부, 지자체 등 가릴 것 없이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

잼버리 대회 직접 예산의 큰 부분을 조직위 운영에 썼다.

또 중앙, 지방 공무원이 국민 세금을 받아서 간 출장 횟수만 100회가 넘을 정도로 이들은 잼버리 성공을 위해 '해외 사례' 연구에 열심이었다.

이런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막상 대회 당일 뚜껑을 열어보니 대회를 치를 수 없을 정도로 대회 준비가 허술했다.

대체 해외에 가서 뭘 보고 왔길래 이 지경으로 대회를 치러도 된다고 생각했을까. 태풍이 없었더라도 대회를 제대로 치르기 어려웠다.

각종 국제대회를 치르면서 역량이 향상됐던 대한민국은 '어떤 국제대회든 평균 이상은 한다'는 평가를 받던 나라였다.

하지만 대회 파행을 자초하더니 엄청난 국민 혈세를 낭비하고 말았다.

잼버리로 국가 위상을 높이고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며, 더 나아가 부산 엑스포 유치까지 승리 분위기를 가져오겠다던 정부는 상황이 이렇게 될지 몰랐을 것이다.

현 정부는 잼버리 시작 전 전혀 실태 파악을 하지 못하는 에러를 범했다. 지자체는 준비도 안 해놓고 손님을 맡겠다는 호기를 부렸다.

이 사태는 인재이며, 거대한 예산 낭비의 사례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사건의 자초지종을 따져서 세금을 허루투 쓴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공무원들은 자신들의 임무태만이나 비리가 엄청난 예산낭비와 국력손실로 귀결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아울러 돈을 지정된 용도와 다르게 사용했다면 이는 횡령죄에 해당할 수 있다. 책임 소재를 철저히 따지고 위법 행위를 한 자들을 엄벌하는 일은 다시는 이런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한 기본적인 조치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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