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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칼럼) 짐 불라드

  • 입력 2023-07-17 14:58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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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 총재를 지낸 인물들

사진: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 총재를 지낸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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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제임스 불라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 총재는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불라드는 특히 2016년 한국은행 국제컨퍼런스에 참석해 연설을 하기도 했다.

당시 브렉시트 여파도 관심사였던 상황에서 불라드는 세계경제와 관련해 '별 영향 없다'는 결론을 내려주기도 했다.

불라드는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에서 한국 언론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하면서 미국이 금리를 올리지만 한국경제에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며 한국은행은 하던 일을 잘 하면 될 것이라고 했다.

불라드는 201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꽤 젊은 총재라는 느낌을 줬던 인물이었다.

불라드는 40대에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 총재를 맡은 뒤 60세를 약간 넘긴 시점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는 30년 넘게 일을 한 중앙은행 업계를 떠나 경영대학원 학장을 맡기로 했다.

■ 불라드, 촉이 좋았던 연준맨

불라드는 촉이 좋은 이코노미스트였다.

15년간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 총재로 근무한 불라드는 경기 사이클 냄새를 잘 맡았다.

그러다보니 그는 한 때는 비둘기파의 대표 주자, 한 때는 매파의 대표 주자가 됐다.

최근엔 모두가 아는 것처럼 그는 연준의 대표적인 매파였다.

대체로 그가 제시하는 방향 대로 연준이 움직였다.

연준 내 다른 사람들이 금리 인상에 주저할 때 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했으며, 베이비 스텝을 생각할 때 '큰 보폭'을 주문했다.

사람들이 '이만하면 된 것 아닌가'라고 회의(懷疑)할 때 그는 '좀더 가보자'고 했다.

최근 미국의 통화정책은 대체로 그가 제시한 방향 대로 갔다. 즉 통화정책은 금융시장이나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매파적이었다.

그러나 '좀 더 가보자'면서 여전히 통화정책 매파 집단의 분위기를 다잡았던 불라드는 돌연 사임을 발표했다.

■ 불라드, 중앙은행과 헤어질 결심한 뒤엔 '묵언'

촉이 좋았던 이코노미스트는 원칙을 잘 지켰다.

자신의 주장을 거리낌없이 내놓곤 했지만, 오해를 받을 일에 대해선 거리를 뒀다.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은 지난 13일 "제임스 불라드 총재는 8월 14일부로 총재직을 사임하고 15일부터 퍼듀대학교 경영대학원장으로 취임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불라드 총재는 최근까지 FOMC에서의 통화정책 관련한 역할 및 다른 임무에서 거리를 두고 있었고 공식적인 발언을 자제했다"고 소개했다.

최근 파월 연준 의장이 '2번 이상 인상' 가능성을 거론했으나 6월 CPI, PPI 등 물가는 예상보다 더 둔화됐다.

그가 나와 한 마디 보태줄 만한 여건이 조성됐지만 말을 아꼈던 데엔 이런 개인적인 사연이 있었던 것이다.

■ 불라드, 사람들이 헷갈릴 때마다 '방향 제시'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 총재는 사람들이 헷갈릴만한 상황에서 방향 제시를 하곤 했다.

주변 분위기에 휩쓸리기 보다 이코노미스트로서 자신의 판단에 의해 먼저 방향을 거론하곤 했다.

올해 3월 미국 SVB 사태가 발생한 뒤 많은 사람들이 우왕좌왕할 때 불라드는 '25bp씩 3번 더 올리자'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당시 그는 최종 기준금리 전망치를 5.625%로 제시하면서 금융안정과 물가안정 이슈가 충돌하고 있지만 중앙은행은 이 문제를 별도 대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현재 연준 점도표는 3월 은행사태 이후 사람들이 고심할 때 불라드가 제시한 수준에 맞춰져 있다.

최근 수년간 불라드의 발언들은 상당히 과감하게 들렸다. 하지만 그가 제시한 방향 대로 흘렀다.

작년 11월 연준이 무려 '4번 연속' 75bp 인상을 단행한 뒤 불라드는 미니멈 기준금리 '5~5.25%'를 제시했다.

당시 그는 40여년래 가장 높은 수준인 인플레를 낮추기 위한 '충분히 제약적인 수준의 기준금리'를 5~7% 사이로 제시했다. 최상단 7%는 테일러 준칙을 활용해 가장 보수적으로 잡은 값이었다.

이제 그가 제시한 레인지 내에서 금리 인상 룸은 얼마 남지 않은 분위기다.

■ 그만두는 불라드, 그가 제시한 방향들이 '연준의 길'이었다

미국이 2022년 3월부터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지만, 불라드는 2021년부터 금융시장이나 연준 내부의 웬만한 사람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금리인상을 주장했다.

불라드는 2021년 6월 FOMC 때부터 금리 인상을 준비해야한다고 했다. 2021년 6월 FOMC 당시 2022년 중 금리 인상이 가능할 것으로 보는 시각은 거의 없었다.

당시 연준 점도표는 2023년 정도에 2차례 가량 인상이 가능할 것으로 봤다.

특히 불라드가 21년 금리 인상 준비를 주장할 때 닐 카시카리 미네아폴리스 연은 총재는 "물가 압력은 일시적이고 완전고용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만큼 2023년까지는 금리를 인상하지 말아야 한다"고 맞서기도 했다.

또 당시만 하더라도 불라드의 금리인상 필요성 주장에 대해 연준 내·외부에서 그 관점의 현실성을 문제 삼곤 했다. 불라드의 주장을 현실성 떨어지는 '예언' 정도로 보는 시각이 강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후 연준 수장 파월은 몇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친 뒤 결국 불라드가 제시하는 경로를 따라왔다.

카시카리를 포함해 사람들은 점점 불라드의 주장에 중독되기 시작했으며, 작년 3월부터 1년 남짓한 기간에 기준금리는 결국 500bp나 인상됐다.

불라드는 최근 수년간 가장 매파적인 인물로 각인돼 있지만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그가 비둘기파의 대표주자였다는 점을 알게 된다.

연준은 2020년 코로나 사태 발발 전인 2019년부터 금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 때 불라드는 연준 내에서 가장 강력한 비둘기파였다.

연준이 2019년 7월, 9월, 10월 3차례에 걸쳐 금리를 25bp씩 내릴 때 불라드는 50bp 인하로 효과를 배가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연준 금리정책과 관련해 가장 큰 인사이트를 줬던 인물이 이젠 중앙은행 업계를 떠나기로 했다.

금융시장 일각에선 '매파 대표선수의 퇴진'을 기쁘게 바라보면서, 이젠 매들의 어깨에서 힘이 좀 빠질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쪽에선 투자행위 등과 관련해 큰 방향이나 흐름을 짚어주던 '휴먼 인디케이터'의 사임 소식을 아쉬워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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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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