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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칼럼) 원희룡의 '전세 삭제' 무리수

  • 입력 2023-05-23 13:55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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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3일 국토교통부 홈페이지의 간판 그림

사진: 23일 국토교통부 홈페이지의 간판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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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최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전세제도는 수명을 다했다"며 전세제도 논란에 불을 지폈다.

빌라왕 사태 등 전세사기가 사회문제로 비화되자 급기야 전세 제도 자체의 존폐 문제까지 거론한 것이다.

원 장관은 지난 16일 취임 1주년을 맞이해 "전세제도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수명이 다한 게 아닌가 보고 있다"고 말했다.

장관은 "전세사기 피해대책을 수습하고 나면 갭투자나 보증금을 일단 다른 데 쓰고 다음 임차인에게 돌려받는 제도 자체에 손을 댈 생각"고 전했다.

■ 전세, 오래된 한국의 독특한 시스템

남미 등 일부 지역에서 한국의 전세와 비슷한 제도가 있다고 하나, 국가 단위 규모에서 보면 전세는 사실상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제도다.

볼리비아의 안띠끄레띠꼬(Anticretico)는 세입자도 집주인처럼 재산세를 내야하기 때문에 한국보다 임차인이 불리하다. 집주인이 전세금을 반환하지 못하면 소유권은 세입자에게 이전된다. 이 제도는 다만 전체 볼리비아 주거형태의 3% 남짓이어서 한국의 전세 만큼 대중적이지 않다.

우리의 전세는 수십년, 아니 100년 이상된 제도다. 심지어 어떤 이는 고려시대에 있었던 '전당(典當)'이 전세의 기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지금과 비슷한 전세제도는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부산, 인천 등에서 시작됐다. 당시 부산, 인천 등에서 무역거래가 늘어나고 집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일부 집주인들이 세입자들에게 돈을 빌리기 시작했다.

세입자는 돈을 빌려준 뒤 집세를 내지 않고 살았다.

전세는 한국의 독특한 '사금융'이다. 자금 융통 흐름을 볼 때 세입자가 채권자가 되며, 집주인은 채무자다. 하지만 채권의 안전성 등이 문제가 되면서 '채권자이면서도 약자'인 세입자를 위한 각종 제도적 보완이 이뤄져 왔다.

지난 1981년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생겼다. 당시 최소임대기간은 1년을 했고 1989년엔 2년으로 늘렸다.

하지만 인위적인 제도 변화는 각종 불상사를 낳기도 한다. 최소임대기간이 2년으로 늘어난 이듬해인 1990년에 언론에 보도된 자살자만 20명에 육박할 정도로 사회 문제가 됐다.

전세 최소 임대기간을 2년으로 늘리면서 집주인 입장에선 보증금을 올려받는 게 중요해질 수 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상당수의 가난한, 그리고 제도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사람들은 목숨을 버려야 했다.

제도 변화 과정에선 문제점을 흡수할 수 있는 버퍼(임대주택 등)를 만들어 놓는 게 중요했지만, 당시 정부도 그러지를 못했다.

지금도 전세제도는 2년이 '기본'이다.

■ 얼마전 있었던 전세제도의 큰 변혁

전세제도는 얼마전 또 다른 큰 '변혁'을 맞았다.

2020년 7월 31일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가 도입됐기 때문이다.

'옵션'을 감안해 실질만기(임대기간)을 4년으로 늘리는 큰 모험을 한 것이다. 세입자는 2년 계약기간이 끝나면 추가로 2년의 계약 연장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임대료 상승폭은 직전 계약 임대료의 5% 안에서 결정하게 했다.

이 제도는 경제학의 수급 논리를 좀 아는 사람들의 우려대로 2020년 전셋값 폭등, 이에 더욱 자극받은 매맷값 폭등으로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 '2차 집값 폭등기'인 2020~2021년엔 임대3법과 관련한 예상, 그리고 시행이 집값 급등에 불을 질렀다.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세제도가 크게 바뀌면서 전세는 2중, 3중 가격을 만들었졌다. 신규 계약 물량, 계약 연장 물량, 임대사업자 물량 등에 따라 가격이 제각각이었다.

전세가격 자체가 안 그래도 선수위 채권 여부 등에 따라 다양했지만, 여기에 제도까지 복잡해지자 가격을 종잡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제도 변화 후 계약갱신권 행사는 신규 임차주택 부족으로 연결됐다. 물건은 비슷한데 전셋값은 수억씩 차이가 나는, 납득하기 힘든 스프레드가 만들어졌다.

당시 정부는 '기존 임차인'의 거주 안정을 자화자찬했지만 이는 눈가리고 아웅하는 행태였다. 신규 임차인들은 불과 몇년전엔 매매로 살 수 있었던 집을 피눈물을 머금고 '전세'로 구해 살아야 했다.

이 제도의 대책없는 실행은 지난해부터 큰 사회 문제가 된 전세 사기와 전세 사고의 밑바탕이 됐다. 제도 도입 2년 전후 시점 부동산값이 흔들린다면 이미 사고는 날 수 밖에 없는 상태였다.

■ 전세가 전근대적 유물이라고?...내집 마련 징검다리였다는 게 진실에 가까워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제도는 나쁘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전세가 없어지는 게 정상이라고 본다. 다른 나라에 전세제도가 없으니 이를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심지어 좀 공부했다는 사람 중엔 한국이 19세기에 생긴 케케묵은 제도를 아직도 유지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필자를 포함해 월세, 전세 살이를 해 본 많은 사람들이 전세에 대해 느끼는 감각은 많이 다르다. 전세는 시대에 덜 떨어진 제도도 아니며, 한국 특유의 장점을 발휘했던 제도다.

전세는 내집 마련을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필자처럼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사람들은 월세를 살다가, 목돈을 모아 전세를 구해 살다가, 이후 빚을 얹어 집을 사곤 했다.

전세는 월세와 경쟁한다. 많은 사람들은 또 월세로 나가는 비용이 아까워 전세를 살기도 했다.

물론 전세와 월세간 이자율을 따져보면 어떤 게 더 이득인지 파악할 수 있다. 목돈을 전세에 묵히든, 월세를 살면서 투자를 하든 이건 개인의 판단 문제다.

최근엔 이자율이 급등하면서 전세금 관련 대출 비용 때문에 월세를 택하는 사람들이 늘기도 했다. 전세가격이 하락하는 상황에서도 월셋값이 올랐던 이유다.

잘못 설계된 임대3법, 미국 연준의 4차례에 걸친 자이언트 스텝 등 금리 급등, 이 과정에서 나타난 전세가격 하락으로 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런 혼란스런 상황에서 일부는 사기를 칠 목적으로 세입자들의 미래를 담보잡기도 했다.

■ 전세, 월세 경쟁하는 시스템이 서민에겐 유리

필자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은 전세를 없애고 월세 시스템으로 임대차 시장을 바꾸면 세입자의 주거비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물론 전세 제도의 문제도 간과할 수는 없다.

금리 급등 등으로 집값, 전셋값이 동반 하락하는 상황에서 집값이 전세보증금보다 더 내려가 '깡통' 상황이 발생하면 보증금을 돌려받기 어려워진다.

또 수백채 빌라를 산 뒤 보증금을 의도적으로 떼먹은 사기꾼들을 워낙 부각시키다 보니, 전세는 '나쁜 것'이라는 이미지도 어느 때보다 커진 상황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지난해엔 매매, 전세, 월세 중 월세가 가장 많이 눈에 띄기도 했다.

하지만 오랜기간 한국의 주거비가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이유는 전세제도 때문이었다.

부처 장관, 일부 정치권 등에서 전세를 적대시하고 있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서민계급에 속했던 적이 있었다면 쉽게 제도 폐지를 운운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벌써 정부의 전세에 대한 공격이 시작됐다.

원희룡 장관은 전세의 '수명'을 거론하고 있다. 또 이미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 가입과 관련한 허들을 높여 놓은 상태다.

■ 보증금을 에스크로에 맡긴다? 주거비용 증가 요인

원 장관은 전세 위험성과 관련해 '에스크로 계좌' 아이디어도 내놓았다. 전세 보증금을 금융사에 맡겨 쉽게 손대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일부 임대인들이 보증금으로 갭투자를 포함해 다른 투자를 하다가 돈을 제 때에 돌려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나 산하 연구단체 쪽은 신탁기관에 맡기면 임차인이 보증금을 떼일 위험이 현저히 줄어들고 임대인과 임차인간 기울어진 운동장이 바로 선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러면 임대인이 마음씨가 좋아 '돈 여기 있소'하고 잘도 내놓을까. 당연히 임대사업의 메리트는 떨어진다. 임대 물량이 줄어들면 임대료가 올라 서민들은 다시 피해를 볼 것이다.

에스크로 계좌에 묶인 돈을 쓰지도 못하지만, 신탁회사에 맡기는 데도 돈이 든다. 은행들이 수수료를 챙기고 각종 보험같은 것을 가입시키면 결국 임차인, 임대인 모두 추가적인 비용을 치러야 한다.

2020년 임대3법이 최근 각종 전세사고의 토양이 됐다.

정책 실패에 따른 집값과 전셋값 폭등, 이후 금리의 급격한 인상 등에 따른 가격 급락은 많은 피해자를 양산해냈다.

그러자 이젠 전세사기, 역전세 등을 들먹이면서 전세를 없애버리자고 하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국토 장관이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으니 아주 걱정스럽다.

그들에겐 이런 '실험'이 해볼 만한 '정책'이지만, 선량한 임대인·임차인 모두 또 다시 설익은 정책의 재단(齋壇)에 희생양으로 올려져선 안 된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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