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4-03-29 (금)

(장태민 칼럼) 은행 착하게 만들기 프로젝트와 이상한 정책공조

  • 입력 2023-03-28 14:15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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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금감원과 신한은행의 '상생금융 간담회' 기념 사진

24일 금감원과 신한은행의 '상생금융 간담회' 기념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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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한국은행은 작년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쉬지 않고 기준금리를 인상한 뒤 2월 들어 금리를 동결했다.

3월엔 한은의 기준금리 결정이 없지만 때 마침 미국에서 지역은행 사태가 터져 한은이 금리를 올리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그런데 '정부는' 2023년 들어 금리를 내리고 있었다.

한은 금통위는 더 '올릴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으나, 정부 쪽에선 '고금리 애로'를 고려해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내리도록 지시했다.

■ 상생금융

지난 해 가을 레고랜드 사태 등으로 금리들이 이상 급등한 뒤 연초 되돌림된 것은 자연스럽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한은이 연초까지 정책금리를 올린 상황에서 정부까지 나서 예금, 대출금리를 낮추는 데 개입했다.

주변에선 이런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특히 정부는 올해 들어 은행들의 '과도한 이자 장사'를 비판하면서 '고통 분담'을 요구했다.

그 과정에서 요즘 화두가 된 철학이 '상생금융'이다.

대통령의 복심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받기도 하는 이복현 금감원장이 이런 일을 진두지휘하면서 사람들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기도 했다.

■ 금감원장의 착한 마음씨와 은행 지도편달 하기

이복현 금감원장은 그간 고금리와 고물가가 지속되면서 서민경제에 주름이 깊어 가자 매우 안타깝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금감원장은 작년에 은행들이 이자 장사로 역대 가장 큰 이익을 낸 만큼 성의를 보이라고 다그쳤다.

금감원장을 필두로 정부 관계자들은 은행이 '공공성'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했다.

한은이 금리를 지속적으로 올려 대출자들이 위기에 몰리는데, 은행만 최대 이익을 누리는 건 '상생의 정신'과 맞지 않다고 했다.

특히 정부는 은행원들에 대한 '비은행원 국민들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활용했다.

은행 등 금융사들이 성과급을 챙기는 모습을 비판하면서 '비금융권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얻기도 했다.

아울러 정부와 금감원은 은행의 손쉬운 이자이익은 '과점적 지위'에서 비롯된 것임을 꼬집기도 했다.

고금리로 '일반' 국민의 생활을 어려워지지만, 은행들은 제한적 경쟁구도에 따른 과점적 지위를 활용해 쉽게 돈을 번다고 비판한 것이다.

이후 금감원장은 여러 차례 지침을 하달했다. 그의 은행들에게 내린 분부는 이렇게도 요약할 수 있다.

"은행들은 과도한 이자 이익을 지양하고 예대금리차 축소 등을 통해 국민과 상생하라. 돈을 벌었더라도 성과급 등으로 나눠갖기 보다는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은행의 손실 흡수 능력을 확보하는데 활용하라."

이런 지침 하달에 은행권에선 불편한 목소리들이 나오기도 했다.

한 불온한 시중은행 지점장은 "정부가 올해는 돈 벌지 말라고 한다. 이자로 많이 남기지 말라고 하고, 또 번 돈은 나눠갖지 말라고 한다"면서 우스꽝스러운 관치금융이라고 몰래 욕했다.

물론 정부는 인터넷은행 등을 키우고 은행 내 경쟁을 활성화시켜서 과점 시스템을 손보겠다는 의지도 여러번 비친 상황이다.

아무튼 이런 분위기 속에 연초 한은이 금리를 올렸지만 대출, 예금 금리 모두 낮아지는 일이 벌어졌다.

■ 답답했던 조윤제, "금리 올려도 금리 내려가니 더 올려야 한다"

지난 2월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동결할 때 조윤제 위원은 혼자 25bp 인상을 주장했다.

당시 조 위원은 25bp 인상 필요성을 거론하면서 "금융시장이 한은의 정책의도보다 완화적 기대를 형성해 실제 이것이 현재 금융시장 상황으로 반영되어 있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은행이 지속적 금리인상을 통해 의도해 온 긴축 기조에 비해서 시장이 완화적 상황에 있는 것으로 보여 금리를 더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시장금리는 이미 1월 금리 추가 인상 당시 인하처럼 반응했으며, 2월엔 미국 고용지표 등이 양호하게 나온 뒤 급반등했다. 그런 뒤 이달 들어선 미국에서 은행 사태가 일어나면서 2월 초에 기록한 저점 수준으로 다시 내려오는 등 급등락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정부는 계속해서 '이기적인' 은행들의 버릇을 바로 잡기 위해 노력 중이며, 각종 은행들도 대출금리를 낮추는 성의를 보여야 했다.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 지금의 분위기를 보면서 사람들은 '대통령실의 의도', 그리고 '만일의 사태에 대한 두려움'을 거론하기도 한다.

금융 당국 쪽에서 일하는 한 직원은 이렇게 평가했다.

"한은이 금리를 올려도 정부가 대출금리 등을 내려버리는 모습에 '이게 뭐지?'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대통령실의 의지가 투영된 것으로 봅니다. 기본적으로 (정부는) 금융권이 부당한 이익을 취한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더해 부동산PF 등에서 만일의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부담이 큰 것으로 판단했다.

"정부가 SVB처럼 알지 못하는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할까봐 두려워하는 면도 있는 것으로 봅니다."

■ '은행 착하게 만들기' 프로젝트

시중은행들은 정부의 지도편달에 발맞춰 '상생금융' 지원책을 발표하고 있다.

신용도가 높다고 보기 힘든 고객들을 앞에 놓고 시중은행들은 돌아가면서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지난주 24일 신한은행이 발표한 지원책을 보자.

신한은행은 당시 모든 가계대출 신규·대환·연기 고객을 대상으로 △ 주택담보대출(신규·대환) 금리 0.4%p △ 전세자금대출(신규·대환·연기) 금리 0.3%p △ 일반 신용대출(신규·대환·연기) 금리 0.4%p △ 새희망홀씨대출(신규) 금리 1.5%p 인하를 발표했다. 이를 통한 개인 고객의 이자비용 절감 예상규모는 약 1천억원이라는 설명까지 곁들였다.

소상공인·중소기업 고객에 대해서는 코로나19 이차보전 대출 이용 고객을 대상으로 이차보전 기간 종료에 따라 금리가 인상될 수 밖에 없는 대출에 대해 은행이 자체적으로 이차보전 기간을 연장해 이자비용을 줄여주기로 했다. 이차보전은 국가가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특정한 부문에 저리의 자금을 지원할 필요가 있을 때 시중은행 대출금리와의 차이를 보상해주는 제도다.

신한은행은 또 신용보증기금 매출채권보험 지자체 협약상품을 이용하는 소상공인·중소기업 고객의 보험료를 지원해 소상공인의 금융비용을 절감을 도와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로 했다.

취약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올 2분기 중 시행 예정이었던 △ 신용등급 하락 시 금리 상승 분 최대 1%p 인하 △ 금리 7% 초과 취약 중소기업 최대 3%p 금리 인하 △ 변동금리대출 고정금리 전환 시 현재 금리 유지 등 지원책을 이달 말로 앞당겨 시행한다.

이런 대책들을 통한 소상공인·중소기업 고객의 금융비용 절감 예상규모는 약 623억원 수준이라고 했다.

은행들은 감독당국 앞에서 '우리가 이렇게 돈을 덜 벌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어필해야 했다.

감독당국이 이자수익에만 눈먼 은행을 째려보고 있으니, 이제 악당들은 좋은 사람이 돼 가고 있다고 신고해야 했다.

신한은행은 "은행연합회 예대금리차 공시에서 2023년 2월 기준 1.06%로 시중은행 중 가계예대금리차(정책서민금융 제외) 최저치를 기록했다"며 "이번 ‘상생금융’ 확대를 통해 추가되는 금리 인하로 신한은행의 예대금리차는 앞으로 더 낮아질 것"이라고 했다.

한국에선 지금 은행들이 좋은 사람 흉내를 내면서 돈을 덜 벌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하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착한 은행 만들기' 캠페인의 대장이 된 이복현 금감원장은 몸소 '신한 SOHO 사관학교'(17년 시작된 신한은행과 소상공인 상생 프로그램) 수료식에 참석해 소상공인을 응원했다. 정상혁 신한은행장은 금감원장 앞에서 이렇게 다짐했다.

"고금리로 인해 이자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은행이 국민과의 상생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에 깊이 공감합니다. 체감할 수 있고 진정성 있는 정책으로 상생의 문화를 선도하고 이를 금융권 전체로 확산시켜 금융이 국민의 든든한 동반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이상한 정책공조, 한은이 올려도 정부가 내린다

오랜기간 한국의 은행들은 이자 장사에만 몰두한다는 비판을 받았던 게 사실이다. 예금 금리와 대출 금리의 차이로 수익의 80% 이상을 올리자 '하는 일 없이 앉아서 돈 번다'는 비난도 많이 받았다.

특히 작년 같은 경우 금리가 올라가 더 많은 돈을 버니, 주변에서 은행을 보는 시선도 곱지 않았다.

그런데 정부가 은행을 악당으로 보는 사람들과 같은 편을 먹기로 했다. 그간 은행도 좀 심하긴 했지만, 정부의 은행에 대한 지도편달이 심해지면서 이를 걱정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은행 비즈니스의 기본은 금리차를 먹는 것이고 예대마진 비중이 높아 한국의 은행들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측면도 있다.

은행에 공공적 성격이 적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돈을 벌어야 하는 사기업이다. 하지만 지금 은행은 '상생'이라는 새로운 대의명분에 충실할 것을 요구 받았다.

지금은 한국의 은행들이 '상생금융'이라는 멋진 모토 아래 집결했다.

그러나 은행 쪽 첩자인 듯한 사람들은 이 새로운 사조(思潮)가 한국의 은행들을 부실하게 만들 수 있다는 루머도 흘리고 있다. 또 은행을 착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통화정책을 한은이 하는 것인지, 정부가 하는 것인지 헷갈려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몰상식한(!) 의심을 하기도 했다. 증권사 직원 한 사람은 작금의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려도 은행은 대출금리를 내립니다. 정부의 방향은 금리를 낮추는 것이지요. 눈치빠른 이창용 총재도 곧 용와대의 하명을 받들 것으로 봅니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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