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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칼럼) 한국야구의 몰락이 한국경제에 주는 메시지

  • 입력 2023-03-23 14:26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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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5회 WBC 우승 확정 후 환호하는 일본 선수들, 출처: MLB

사진: 제5회 WBC 우승 확정 후 환호하는 일본 선수들, 출처: ML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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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제5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회에서 한국이 시속 160km의 속도로 탈락했다.

필자는 WBC 대회 시작 전 기대보다 우려를 표명하곤 했다.

약간 과장을 보태면, 한국 야구는 10년 이상 세계 야구 흐름의 변화에 아무 관심이 없었던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는 것을 확인하는 데는 단 1게임이면 족했다.

한국은 20개팀 중 5개팀씩 4개의 조로 나눠서 진행한 조별리그 1차전에서 호주에 패하면서 '퇴보'를 증명했다.

한국은 평소 한 수 낮은 팀이라고 여겼던 호주와의 첫판에서 형편없는 실력을 선보이더니 결국 지고 말았다. 야구는 강팀이 질 수도 있는 운동이지만, 내용이 너무 안 좋았다.

각조 2개팀이 8강에 진출하는 상황에서 호주에 대한 첫 판 패배는 조별리그 사실상의 탈락을 의미했다. 호주와 첫판에서 보여준 경기력만 봐도 사실상 일본을 이기기는 어려워 보였다.

승부엔 늘 의외의 변수가 있지만, 야구에 진심인 일본인들마저 호주에 패한 '한국 야구'를 걱정해 줄 정도였다. 일본인들이 호주에 형편없는 경기력을 선보이고 진 한국야구를 애처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결국 한국은 두 번째 판인 일본전에선 7회 콜드게임(10점차)을 아슬아슬하게 면할 정도의 형편없는 승부를 펼치더니 사실상 탈락해 버렸다.

같은 조의 체코와 중국은 사실상 의미없는 팀이었다. 공이 둥글다고 하지만 이들이 호주를 이길 가능성도 거의 없었고, 일본이 호주에 질 확률도 아주 낮았기 때문이다.

■ 변화를 거부하면서 '부장급 선수'에 의존하는 나라가 된 한국

최근 10년간 한국야구는 끝없이 퇴보해 왔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는 상황에서 멈춰 있는다는 것은 그 자체가 퇴보다.

이제 이탈리아와 같은 '축구를 하는' 나라의 투수들도 직구 150km를 던질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세계의 야구판은 더욱 속도에 미쳐가면서 이탈리아, 이스라엘, 영국 등 야구 변방 국가의 투수들마저 150km를 던진다.

하지만 한국은 10여년 전의 영건 김광현이 '부장급 투수'가 돼서도 선발로 마운드에 올라가야 할 정도로 세대 교체를 하지 못했다.

직구 구속 140km 초중반 김광현의 야구 근육은 퇴화했지만, 한국엔 믿을 만한 선수들이 없었다.

작년 한국시리즈 SSG의 김강민 같은 이사급 선수가 보여준 짜릿한 홈런은 낭만이라고 있지만, 이번 WBC에서 한국은 '고육지책'으로 베테랑 선수들에 의존해야 했다.

하지만 베테랑 투수들은 야구 변방 국가들의 타자를 요리하는 데도 애를 먹었고, 늙은 타자들은 낮선 투수들의 속도를 당해내지 못했다.

젊은 선수들은 마치 야구를 처음 배우는 신참들처럼 허술했다. 젊은 투수들은 공도 딱히 빠르지 않은 데다 제구도 엉망이었다.

아직도 150km 직구에 대해 '와' 하고 찬사를 보내줘야 할 정도로 상당수 한국 야구팬도 세상의 변화를 인정하지 않았다.

■ 총체적 위기 한국야구

마음씨가 좋아 질 낮은 야구마저 기꺼이 소비해줬던 한국 야구팬들이 선수와 코칭 스텝의 버릇을 더욱 나쁘게 만들었다.

코칭 스탭은 선진 야구의 훈련법을 익히는 데 서툴렀다. 잠재성이 있다고 평가 받던 선수들조차 그들 밑에선 제대로 크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질 좋은 야구를 즐기고 싶었던 소비자들은 떠났다.

필자 역시 이전처럼 한국 야구를 많이 소비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론 이제 국내 프로 10개팀 선수들의 이름보다 메이저리그 30개팀 선수들이 이름이 더 익숙하다.

필자는 20년 전 쯤 <스포츠서울>에 야구 칼럼을 연재한 적이 있다. 당시 박찬호, 김병현이 메이저리그 정상급 투수 반열에 오르기도 했고, 한국 야구도 사실상 야구가 국기인 나라 일본과 '승부'를 해 볼 수 있을 정도로 경쟁력을 키워가던 때였다.

하지만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이 한국 야구엔 독이 됐다.

이후 한국 야구판에 '마음씨 좋은' 팬들이 늘어났고, '못해도 잘했다'고 박수쳐 주는 팬들이 크게 늘었다.

필자는 주변 사람들에게 야구를 모르는 팬들이 늘어날수록 선수와 코칭 스탭의 버릇만 나빠진다고 비판했다. 그런 비판을 할 때면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욕까지 먹어야 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한국야구를 걱정했던 사람들 상당수가 지금은 KBO리그 대신 메이저리그라는 대체제를 선택했다.

야구라는 서비스를 반드시 소비해야 하는 입장이다보니, 십수년째 아무 변화도 없고 새로운 얼굴도 나오지 않는 KBO에 목을 메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10여년 전 한국 야구의 얼굴이었던 류현진, 김광현 같은 부장급 선수들이 여전히 한국 야구의 얼굴이다.

한국 야구가 변화를 거부한지는 오래됐으며, 그 덕분에 한국은 야구 변방으로 밀려났다.

■ 냉정하게 얘기해서...미국서 뛰면 1억도 못받을 선수가 20억 넘게 받는 현실

사실 상당수 야구팬들이 복고적이고 과거 지향적인 분위기를 지지한다.

한국 야구 역시 '한국만의 꿈의 구장'를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식이면 한국 야구는 도태되고 만다. 이미 상당부분 도태가 진행됐다.

이번 5회 대회 WBC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한국은 3회, 4회에 이어 이번에도 1라운드에서 탈락해 8강 진출에 실패했다.

그전에도 한국 야구의 노쇠화와 약화는 눈에 들어왔으나 이번엔 그야말로 정도가 심각해보였다. 한국의 야구 행정가들은 현실을 냉정하게 보고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안타깝지만 우리는 한국의 대표 타자 박병호가 메이저리그에서 무참히 실패하는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다.

박병호는 심지어 마이너리그인 트리플A에서도 통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성실한 타자 박병호는 빠른 공을 칠 수 없었다. 한국에선 마음껏 배트를 휘저을 수 있었지만 조금만 한국을 벗어나면 그는 껍데기 타자가 되고 만다.

박병호가 한국에 있으면 연간 20억원 넘게 벌지만, 미국에서 야구를 한대면 억대 연봉도 기대하기 어렵다.

박병호는 빠른 공을 치지 못하기 때문에 트리플A도 그에겐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변화를 거부한 한국 야구판은 특정 선수에겐 꿀 빨기 좋은 곳이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한국 야구가 세계에서 비빌 입지는 줄어든다.

■ 개방하고 판 키워서 기술력 향상해야

메이저리그라는 KBO리그보다 더 멋진 서비스를 누려본 사람들은 '한국 야구의 수준 향상'을 요구한다.

지금과 같은 '그들만의 리그'가 이어진다면 한국 제품(서비스)은 시장에서 소외되고 종국적으로 시장성을 상실하고 말 것이다.

시스템을 뜯어고치고 제도를 바꿔야 한다.

예컨대 외국인 선수를 3명으로 제한하는 규정 등은 과감히 풀고 경쟁을 강화해야 한다. 외국인 선수 출전에 제한을 가하더라도 보유 수를 제한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더 나아가 대만 등 아시아 선수에 대해선 외국인 선수에 대한 별도의 대우를 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한국 야구의 몰락엔 선수들 뿐만 아니라 행정가, 코칭 스탭 등의 잘못도 큰 만큼 미국, 일본 등에서 선진 야구 훈련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일본에선 한국보다 덩치가 작은 선수들이 150km 이상의 직구를 쉽게 뿌린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의 투수 훈련 시스템은 구속보다 제구력에 무게를 둔다.

세계는 이미 강속구 시대로 변했다. 강속구 투수들이 즐비하고, 강속구를 칠 수 있는 타자들도 늘어났다.

물론 속도만 빨라진 것도 아니라 제구력도 더 정교해졌다.

세계 야구판에선 투수들의 기술(구속, 구질, 제구력, 다양한 변화구)이 발전하자 타자들의 방망이도 좋아졌다. 투수와 타자간의 경쟁이 심화되자, 둘 모두 도태되지 않기 위해 발전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WBC에서 본 것처럼 한국은 구속도 딱히 빠르지 않는데 제구도 엉망이었다.

한국 야구인들은 우물안 개구리처럼 살면서 세상의 변화에 눈과 귀를 막았다. 그러면서 능력에 비해 많은 돈을 받았다.

그런 삼류 영화같은 야구라도 좋아해주는 마음 넓은 팬들에게 감사하고 질 좋은 서비스를 위해 노력하는 게 도리다.

■ 한국야구의 몰락이 한국경제에 던지는 메시지는

WBC를 통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 한국 야구의 실상은 세상의 변화에 귀를 막고 자신들의 세계에 갇혀 지내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알려준다.

고참 운동 선수, 코칭 스탭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젊은 선수들을 키우는 일에 등한시했다.

선수 출신 야구 해설가들은 '팔이 안으로 굽은' 형편없는 해설을 하면서 기득권 세상을 지키는 데 몰두했다. 이처럼 폐쇄적이다 보니 한국엔 사실상 선수 출신 메이저리그 해설가도 없는 상황이다.

이런 한국 야구의 실상은 한국 경제에도 심각한 메시지를 던진다.

실상 한국 경제의 많은 부분이 야구와 비슷하다. 기득권은 최대한 자리를 지켜야 하고 젊은층에겐 제대로 된 기술을 전수해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야구처럼 한국경제도 제대로된 세대교체가 쉽지 않다.

하지만 남들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남들은 발전하는데 자리만 지키고 있는 것은 도태를 의미한다.

흔히들 하는 얘기로 예전엔 중국 경제가 성장하면 한국은 거저먹다시피 했다.

중국은 한국 등에게 기술을 배우고 훔쳐 발전해 온 나라다. 하지만 그들의 경쟁력이 올라오면서 한국은 '강력한' 경쟁 상대로서의, 과거와 다른 중국을 의식할 수 밖에 없다.

중국이 작년에 3% 성장한 뒤 올해엔 5% 넘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과거 만큼 한국이 큰 이익을 누리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경제에 미치는 외부 요인 중 중국은 가장 큰 비중을 자치한다. 하지만 중국 재개방 영향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요인은 0.3%p 정도로 아시아 다른 나라들보다 오히려 낮은 것으로 회자되고 있다.

중국의 한국에 대한 기술 의존력은 과거보다 줄었다. 오히려 위협적이기까지 하다. 중국은 첨단기술 분야를 놓고 이미 미국과 자웅을 겨루고 있다.

중국은 몇 년 전 '제조2025'를 내세워 한국 반도체 타도를 외치던 나라다. 한국과 중국의 수출은 보완 관계에서 경쟁 관계로 상당부분 변모했다.

중국은 한국에서 가장 많은 것을 수입하던 나라였으나 지금은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키웠다. 정책적으로도 커다란 내수시장을 국산품 위주로 움직여보려는 정책 의도를 가지고 있다.

이러다보니 지금은 한국의 중국에 대한 큰 의존도가 경제의 부담요인이 되기도 한다.

결국 기술을 더 발전시키고 시장을 다변화하는 일은 수출 중심 국가 한국이 살 길이다.

한국 야구계가 10년 넘게 세계의 변화를 등한시한 채 '기술'을 천시한 덕분은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야구 시장엔 좋은 제품이 사라져버렸다.

한국 경제는 이런 한국 야구의 실패를 거울 삼아야 한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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