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4-03-29 (금)

(장태민 칼럼) 민스키 모멘트

  • 입력 2023-03-22 15:27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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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최근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크레딧스위스 위기 등을 보면서 민스키 모멘트를 경고하는 목소리들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JP모간의 투자 전략가 마르코 콜라노비치도 20일 투자노트를 통해 민스키 모멘트를 경고했다.

그는 노트에서 "중앙은행들이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은행 파산, 시장 혼란, 지속적 경제 불확실성으로 인한 민스키 모멘트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주장했다.

이 스트레티지스트는 "중앙은행들이 파산 전염을 막더라도 시장과 규제당국 양쪽이 가한 압박 때문에 신용여건이 훨씬 빠르게 긴축될 것으로 보인다"고 적었다.

■ 민스키 모멘트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는 '금융 불안정 가설'(Financial Instability Hypothesis)에서 금융시장은 태생적으로 불안정성을 내포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금융시장 플레이어들은 '비합리적'이다. 따라서 금융시장 가격변수나 자산가격은 급등과 급락을 반복한다고 봤다. 자산가격은 거품 조성과 거품 붕괴를 주기적으로 연출한다고 고찰했다.

이 이론은 세상 물정에 큰 관심이 없는 '강단' 경제학자들의 비웃음까지 받다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재차 큰 주목을 받았다.

경제가 성장하는 때는 누구든 위험자산 투자를 망설이지 않는다. 더 나아가 최대한 빚을 끌어와 자산 투자를 하기도 한다. 거대한 빚은 투자 자산의 덩치를 크게 위험을 확대하게 된다.

하지만 실물경제 상황에 비해 자산규모가 과도하게 커지면 결국 조정 압력을 받는다. 민스키 모멘트(부채상환 위한 건전자산 처분 시즌)가 다가오는 것이다.

특히 금리가 올라가면 이런 투자들은 더욱 위험해진다. 높아진 금리는 빚 상환에 대한 의구심을 키울 수밖에 없으며, 금리 부담으로 자산을 던지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자산시장이 붕괴돼 경제 상황을 다시 그로기로 몰아 넣는다.

부채로 쌓아올린 경제가 무너질 때는 처참하다. 거대한 부채의 기반이 된 '지나친' 저금리라는 모르핀은 궁극적으로 보면 건강에 해롭다.

저금리로 부채가 급증해 급격한 자산가격 상승이 일어난 뒤 금리가 오르면, 빚이 많은 사람들은 부채상환능력이 떨어져 결국 건전한 자산까지 내다팔게 되고 이 과정에서 경제가 망가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심해지면 금융위기가 발생한다. 부채 호황의 끝은 자산가치 급락으로 귀결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지난해 미국이 무려 4차례나 자이언트스텝(75bp)을 밟는 등 금리를 대거 올린 뒤 이제 민스키 모멘트를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종종 들려온다.

■ 민스키 모멘트가 오는 중이라면 물가 걱정은 내려놓으라

민스키 모멘트는 지나친 레버리지(부채) 투자가 게임판을 바꿔버릴 수 있다는 이론이다.

빚을 갚는-좀더 유식한 표현으로 부채를 청산하는-과정에서 '손을 드는' 사람이 많아지면 민스키 모멘트의 현실성은 높아진다.

빚을 낸 사람들이 현금 부족 등으로 보유 자산을 매각하기 시작하면 자산가격이 연쇄적으로 하락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뿐만 아니라 대공황 등 역사적으로 유명한 경제·금융위기는 이 민스키 모멘트와 관련이 있다.

상당히 현실적인 이론이어서 금융위기 전 강단 경제학자들이 이 이론을 등한시했던 건 지적인 게으름 때문이었을 것이란 의심도 든다.

민스키 모멘트가 닥치면 고물가에 대한 걱정은 접어둬도 된다. 자산가격 하락으로 디플레이션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21년부터 문제가 되기 시작한 물가를 잡기 위해선 경제가 망가져버리면 된다. 민스키 모멘트가 온다면 각종 자산가격이 급락하고 사람들의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물가는 자연스럽게 내려올 수 있다.

미국이 지난해 그렇게 금리를 열심히 올렸지만 물가는 생각만큼 잡히지 않았다. 미국은 금리를 올려도 고용이 양호한 모습을 보여 많은 사람들이 갸우뚱했다.

하지만 미국 실리콘밸리은행에서 누구도 예상하기 힘든 속도로 뱅크런이 일어나자 사람들을 깜짝 놀랐다.

이 은행 사태 전까지만 해도 연준의 50bp 인상, 미국 기준금리 6% 가능성 등이 빠르게 세를 확장하다가 순식간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실버게이트 청산으로부터 촉발된 은행 시스템에 대한 우려는 실리콘밸리은행과 미국 지역은행을 거쳐 글로벌 대형은행인 크레딧스위스로 번졌다.

■ 민스키 모멘트 막으려는 세력들의 등장

몇몇 은행들의 유동성 위기 속에 민스키 모멘트 가능성을 거론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하지만 현재 '거기까지'(민스키 모멘트) 생각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물론 금융시장은 어떤 은행이나 기업 등에서 갑자기 위기 시그널을 보낼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이에 따라 기업의 신용, 즉 크레딧에 대해 투자자들은 더 큰 프리미엄을 요구할 수 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믿음을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김성환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크레딧 리스크는 부각되기 시작하면 이를 잠잠해지게 만드는데 두달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며 "이런 상황에선 기대 인플레이션도 압박받고 당장은 Flight-to-quality(안전자산선호) 대응이 유리해 보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현재의 은행 시스템 우려가 민스키 모멘트로 번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전반적으로 금융 시스템 지표들은 견고하고 실물 내 부채부담도 크지 않다"고 했다.

이 문제와 관련해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건 각국 금융당국 역시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늘 도덕적 해이 논란이 있지만 금융당국은 웬만해선 대마(大馬)가 죽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심지어 소마(小馬)가 넘어져 전염병이 번지는 것조차 겁을 낸다.

좋은 말로 위기가 전염되는 것을 차단하는 데 전력투구하는 것이다.

예컨대 실리콘밸리은행이 위기에 처한 10일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은 곧바로 SVB를 불충분한 유동성과 지급불능을 이유로 폐쇄하고,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파산관재인으로 임명했다.

SBV의 파산은 2008년 금융위기 때 무너진 워싱턴뮤추얼 이후 가장 큰 규모였으며, 이런 은행에서 뱅크런이 일어나자 즉각 대응했다. 당국은 당연히 예금자들에 대해선 돈 떼일 걱정 없다는 말로 안심시켰다.

미국 당국자들이 이렇게 움직이면 한국의 금융당국자들도 '24시간 상황 모니터링' 등을 거론하면서 위험에 대비하는 게 정해진 순서다.

미국 지역은행 사태는 글로벌 은행 크레딧스위스도 위기로 몰았다.

스위스 당국도 놀라운 수를 썼다. 스위스 당국은 자국 최대은행이자 글로벌 초대형 은행인 UBS가 크레딧스위스의 자양분을 섭취해 덩치를 더 키우도록 판을 깔았다.

■ 아직 민스키 모멘트 현실화까지는 멀어

금리 인상 과정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은행들에서 문제가 생겼다.

크레딧스위스는 한국계 유명투자자 빌 황에게 돈을 대줬다가 변을 당했으며, SVB 같은 곳은 금리 인상기 ALM(자산부채관리)에 실패해 파산을 맞아야 했다.

썰물 때 누가 벌거벗은 채 수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듯이, 중앙은행이 금리를 과격하게 올리면 누가 재무관리를 잘못했는지 드러난다.

금융시장엔 검은 백조를 찾아다니는 부류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지금 벌거벗고 수영했던 사람들이 혹시 더 있지 않았을까 의심하고 있다.

다면 현재로선 민스키 모멘트에 대한 전망이 과도하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중앙은행의 물가안정을 위한 방정식이 조금더 복잡해졌다.

일단 원론적으로 보면 중앙은행이 개별 은행의 불안은 한시적인 유동성 공급으로 틀어막고, 정책금리 결정은 거시경제 전반을 보면서 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지금은 기준금리 25bp 인상이 무난해 보인다.

작년 가을 영국 국채 사태, 한국의 레고랜드 사태 당시 중앙은행들은 문제가 생긴 곳에 유동성을 투입한 뒤 기준금리는 올렸다.

금리인상 과정에서 나타난 작은(?) 균열에 지나치게 신경 쓰다보면 물가상승률 둔화를 위한 중앙은행의 기조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또 금리를 동결하면 오히려 사람들에게 '상황이 정말 심각하다'는 시그널로 읽힐 수도 있다.

하지만 큰 둑이 작은 구멍 하나를 시작으로 무너질 수 있다는 차원에서 보면 이번 금융안정 문제를 사소하게 치부하기도 어렵다. 연준이 결국 물가와 금융안정 사이에서 '결정 장애'를 겪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통화당국이 가던 길을 계속 가겠다고 고집을 피우면서 금리를 계속 올리면 수영복을 반쯤 걸친 채 헤엄치는 사람까지 잡을 수 있다.

중앙은행의 금리인상 '직진'은 통화당국의 당초 의도와 달리 경기를 망가뜨려 조속한 금리 인하로 연결될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최근 글로벌 국채가격은 시장 분위기가 민스키 모멘트 기대감을 높일 때는 폭등, 원만한 해결 쪽으로 가닥을 잡아갈 때는 폭락했다.

FOMC의 기준금리 25bp 인상이 예상되는 가운데 연준이 발표할 미래 기준금리 경로에 눈길이 쏠릴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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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신한투자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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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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