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4-04-27 (토)

(장태민 칼럼) 착지의 어려움

  • 입력 2023-03-09 10:56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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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롬 파월 연준 의장, 출처: 연준

사진: 제롬 파월 연준 의장, 출처: 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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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상당수 중앙은행의 금리인상 사이클은 후반부로 접어든 상태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지난해 급격히 금리를 올린 만큼 인상 강도가 둔화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하지만 각국 중앙은행별 통화 긴축 관련 온도 차이도 느껴지고 있다.

최근엔 금리 인상을 멈추거나, 강도를 낮추려는 모습들이 적지 않게 나타난다.

하지만 인상 강도를 낮추다가 다시 높여야 하는 것 아닌지 고민하는 미국의 사정이 한국처럼 대외 영향을 많은 받는 나라들에겐 통화정책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 한국의 연속 인상 뒤 멈추기

한국은 2021년 8월부터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했다.

수년간 이어진 집값 급등 뒤 2020년 초 코로나 사태가 발발하자 한국은 처음으로 '0%대 기준금리'를 실험했다.

하지만 이 실험은 댓가를 치렀다.

0%대 금리 실험으로 늘어난 유동성이 상당부분 집값 상승에 더욱 불을 지르면서 2020~2021년 부동산값 폭등에 기여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코로나 사태에 따른 통화 완화가 설득력이 있었지만, 한국이 굳이 제로금리 실험을 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식의 의문은 한은 내부에도 남아 있다.

한국은행의 한 직원은 자신들의 두뇌가 내린 결정을 비판하기도 했다.

"한은이 그간 다른 주요국보다 먼저 금리 인상을 시작했다면서 정책을 자화자찬하기도 했는데, 그런 말은 사실 염치가 없습니다. 당시 한은은 집값 폭등에 분노한 사회 분위기 때문에 주요국보다 빠르게 금리를 인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부동산 문제가 심각해지자 한은이 2021년 8월부터 어쩔 수 없이 뒤늦게 금리 인상을 시작했다는 평가를 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한은은 2022년 4월부터는 매 회의마다 금리를 올렸다. 한은은 7번 연속 금리를 인상한 뒤 올해 2월 인상을 멈추고 동결했다. 연속 인상 과정에서 두 차례는 50bp를 올렸다.

이후 작년 하반기 들어선 집값 급락 분위기와 함께 경기 침체 우려도 커졌다.

결국 한은은 올해 1월 인상을 끝으로 '쉬어가는 쪽'을 택했다. 이후 이자율 참가자들의 견해는 양분됐다.

금리 인상 사이클이 끝났다는 쪽과 한두 번 더 할 수 있다는 쪽이 대립했다.

■ 연속 인상 멈추는 나라와 멈추고 싶어하는 나라

지난 7일 이창용 한은 총재는 "4월 12일 금통위까지 미국, 캐나다, 일본 등 꽤 많은 나라들의 결정이 있어 이를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총재가 예로 든 나라 중 캐나다가 일단 금리 인상을 멈췄다.

캐나다 중앙은행(BOC)은 8일 기준금리를 4.50%로 동결했다. 최근까지 8차례 연속 인상한 이후 9번째만에 동결을 결정한 것이다.

BOC는 이미 지난 1월 통화정책회의에서 당분간 금리인상을 중단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시장도 동결을 예상했기에 놀라운 결정은 아니다.

BOC 정책위원들은 인플레이션을 2%로 낮추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추가로 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BOC 성명서는 "캐나다 노동시장은 매우 타이트하다. 인플레이션을 2% 수준까지 낮추기 위해서 기대인플레이션은 추가적으로 하락할 필요가 있다"면서 "전반적인 경제상황은 지난 1월 예상 수준에 부합한다"고 소개했다.

이어 "최근 지표는 BOC 예상에 부합한다. CPI는 올해 중반으로 가면 3% 전후 수준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단 중앙은행들은 그간 금리를 많이 올린 만큼 지금 정도면 인상을 멈춘 뒤 그간 대폭 올라간 금리가 초래할 '중력'을 확인하고 싶어했다.

아직도 연속 인상 중인 나라 중엔 우리도 조만간 멈추고 확인하고 싶다는 시그널을 보내기도 한다.

호주는 지난 7일 금리를 25bp 인상한 뒤 '멈추고 싶다'는 사인을 보냈다.

호주는 지난해 5월 25bp 인상을 시작으로 6, 7, 8, 9월 각각 50bp를 올렸고 이후엔 강도를 줄여 10, 11, 12월 그리고 올해 2, 3월 각각 25bp를 인상했다.

최근 10차례 통화정책 회의에서 연속으로 금리 인상을 단행한 뒤 이젠 좀 상황을 지켜보고 싶다고 한 것이다.

호주 통화정책 성명서는 지난 2월 '추가 인상'에서 3월 '추가 긴축'으로 바뀌어 상대적으로 도비시해졌다. 물가가 정점을 찍었다는 문구 '변화' 역시 관심을 끌었다.

정책회의 다음날인 8일 필립 로우 총재는 "통화정책은 제약적 영역에 있다. 경제 상황 전반을 평가하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금리인상을 중단하는 것이 적절한 시점에 근접하고 있다"며 "어느 시점에 금리인상을 중단할 지는 경제지표와 RBA 통화정책 위원들의 경제전망에 따라서 결정될 것"이라고 알렸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스탠스는 '보다 면밀한 경제지표 모니터링 필요성', 그리고 '좀더 유연한 대처'로 옮아가고 있다.

■ 미국, 인상 강도 줄이다가 '착지' 과정에서 문제 생겨

미국 FOMC는 지난달 1일 기준금리를 4.50~4.75%로 25bp 인상했다.

시장의 예상에 부합하는 결정이었으며 '지속적 금리인상' 문구도 유지됐다.

다만 당시 지속적 인상은 '25bp씩' 몇 차례 더 올린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미국은 작년 3월부터 8번 연속으로 금리를 올렸다.

첫 스타트는 25bp, 5월 결정에선 50bp, 그리고 6~11월 4차례 회의에선 75bp씩 인상했다. 그런 뒤 12월엔 50bp, 2월엔 25bp로 인상 강도를 낮췄다.

멀리뛰기 경기의 도움닫기→점프→착지의 과정이 이어지는 듯했다.

연준의 착지 과정이 진행된다고 보면, 조금만 더 베이비스텝으로 인상하면 인상 사이클이 종료된다고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의외로 예상보다 너무 좋은 경제지표나 기대 만큼 둔화되지 않는 물가지수는 최종금리에 대한 기대감을 변화시키고 있다.

결국 기준금리 인상사이클이 5% 초반에서 끝날 수 있다는 전망이 5%대 중반으로 옮아갔다. 더 나아가 6%까지 올리라는 훈수들까지 속속 등장했다.

■ 뭔가 안 맞는 지표의 흐름...착지 과정의 어려움

미국 경제지표 호조는 많은 사람들을 갸우뚱하게 만들고 있다.

'경제지표가 나빠야 사는' 금융시장 관계자들 사이에선 금리를 올려도 나빠지지 않는 미국 경제를 보면서 뭔가 근본적인 변화가 온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하는 중이다.

예컨대 지금의 경제는 이전 수십년 흐름과 비교해서 더 이상 금리에 민감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문까지 등장할 정도다.

시장도, 연준도 그 원인을 제대로 못 찾는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결국 금리로 더 압박하면 인플레는 둔화될 수 밖에 없다는 금과옥조를 버리진 못한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글로벌 채권 CIO인 릭 리더는 "연준이 기준금리를 6%까지 높이고 그 수준을 장기간 유지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연준은 긴축 기조를 유지하며 경기를 둔화시키고 인플레이션을 2% 수준까지 낮출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금융시장엔 연준이 혹시 기준금리를 6%까지 올릴지 모른다며 겁내는 사람, 연준이 인플레를 제대로 둔화시킬 수 있을지 걱정하는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은 우려가 크지만 물가상승률이 예상보다 빨리 둔화될 수 있다면서 지금의 분위기가 과장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까지 섞여 혼란스럽다.

금리 인상 사이클 후반부 미국 선수의 착지 과정이 원활하게 연결되지 않자 주변국들의 고민도 커졌다.

늘 경기장에서 동료들의 움직임을 살피면서 플레이를 하는 한국 선수의 착지 과정도 흔들리고 있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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