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4-04-26 (금)

(장태민 칼럼) 계몽주의자의 환율 오해 바로잡기와 금리 문제

  • 입력 2023-03-08 14:37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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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2시 24분 현재 달러/원과 일중 변동 상황, 출처: 코스콤 CHECK

자료: 2시 24분 현재 달러/원과 일중 변동 상황, 출처: 코스콤 CHE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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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한국은행에서 20년 남짓 근무하고 있는 필자의 한 지인은 이창용 총재를 '계몽주의자'라고 부른다.

이 직원은 한은 총재에 대해 엘리트 의식이 강한 사람이며, 자신이 뭔가를 알려줘야 한다는 사명을 지닌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이창용 총재 스타일도 이전 총재들에 비해 직설적인 편이다.

이 총재는 숨기는 것 없이 '아는 것은 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는 새로운 유형의 통화당국 수장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것을 남들이 오해하고 있으면 바로잡아 주고 싶어 했다.

계몽주의자는 이성(理性)을 중시한다. 주변 사람들이 감성과 감정에 휘둘려 상황을 오판할 때 이성의 수호자 역할을 자임한다.

하지만 지금은 글로벌 금융시장과 현대사회의 복잡성 때문에 계몽주의자들의 입지도 많이 줄어든 상태다.

■ 환율 급등과 IMF에 대한 쓰라린 기억

최근 금통위나 방송사 질의응답 프로그램에서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해 환율 급등을 과도하게 해석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지난해 9월 하순 달러/원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서고 다음달 1,450원선 근처까지 점프하자 'IMF'를 거론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도 했다.

IMF는 이창용 한은 총재가 장기간 근무했던 곳이었지만, 여전히 상당수 한국 중년들에겐 '한국 현대사 최대 위기'와 같은 의미로도 사용된다.

지난 1997년말 터졌던 IMF 외환위기는 한국경제 최대 위기였으며, 당시 상당수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된 그림이 한국 돈 가치의 추락, 즉 달러/원 환율 급등이었다.

지난해 때 마침 한국이 지속적인 무역 적자를 기록하는 등 상황도 좋지 않은 가운데 환율이 '위기의 레벨' 1,400원을 넘어서자 우려가 커졌던 것이다.

■ 계몽주의자의 환율 인식 바로잡기...외부 요인 때문에 움직인 환율로 위기 부추겨선 안돼

지난해 환율 급등기에 일부 사람들을 중심으로 'IMF'같은 일이 또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자 이창용 총재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 애썼다.

한은 총재는 최근까지 몇 차례에 걸쳐 '환율 급등은 외부 요인에 의한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사실 한국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통화들도 달러에 비해 맥을 못 추긴 마찬가지였다.

총재는 전날 방송사들을 이용해 중앙은행 입장을 표명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총재는 다시금 "작년 환율이 1400원대로 오를 때 IMF 위기와 관련한 말을 많이 했는데, 이건 우리 문제만이 아니라 강달러 때문이었다. 너무 불안해 할 필요 없다"고 했다.

총재는 "지금은 국내 요인보다 해외 요인이 환율 변동성 이끌고 있다. 특정 수준을 타겟하지 않지만 환율 변동이 물가나 금융시장에 주는 영향을 감안해 정책을 펴겠다"고 했다.

아울러 지난해 4월부터 쉬지 않고 금리를 올리던 한은이 올해 2월 처음으로 금리를 동결한 것을 최근 환율 변동의 이유로 꼽는 시각도 바로잡았다.

그는 "최근 환율이 뛴 것도 미국 통화정책 기대가 변하면서 강 달러가 이어졌기 때문이며, 환율이 떨어졌던 것은 중국 요인 때문이었다"고 했다.

중국 재개방 기대로 위안이 강해질 때나, 중국 당국이 제시한 경제 성장률 전망이 예상이 못 미칠 때 원화도 영향을 받았다.

■ 연준이 금리 예상보다 더 올리면 결국 다시 환율 문제 가중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7일 상원 은행위원회 청문회에 나와 "전체 경제지표가 더욱 빠른 긴축을 정당화한다면 연준은 금리인상 속도를 높일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파월은 "최종금리 수준은 앞서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높아질 수 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이러자 미국 금리선물 시장에선 3월 50bp 인상 가능성이 70%로 급반영되는 등 만만치 않은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 여파로 이날 달러/원은 20원 넘게 급등해 1,320원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달 초만 하더라도 달러/원 환율은 1,220원을 밑돌기도 했으나, 최근 다시 강달러 요인이 강해지자 재차 날아가고 있다.

지난해 환율 급등기 때와 비교하면 버퍼가 남아 있지만, 다시 환율 상승 속도가 가팔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 환율 급등이 주는 긴장감과 흔들리는 국내 통화정책 기대

금융시장엔 한은 총재가 나서 환율 급등을 '외부요인'이라고 계몽했지만 이를 전적으로 믿지 못하는 사람도 보인다.

아울러 한국 경제가 주요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취약한 상태라는 평가를 내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한국은 내부적으로도 계속해서 무역 적자가 나고 있으며, 중국 경제 성장률이 지난해 3%에서 올해 5%로 올라가더라도 한국이 과거와 이익률을 취하지는 못한다.

여기에 한국은 변동금리 비중이 높아 상대적으로 금리 인상에 더 취약한 면도 있다.

금융시장엔 한국 경제의 취약성 때문에 한은이 금리를 더 올리기 어렵다는 평가도 많지만, 동시에 한국의 '크레딧'이 문제되면 외자 유출이 자극을 받을 수 있어 미국 통화정책이나 금리인상을 무시해선 안 된다는 훈수도 적지 않다.

이 문제에 대해선 계몽주의자 총재도 단정을 못 짓고 있다.

이창용 총재는 전날 다시 한번 "특정 환율 레벨을 타게팅하지 않지만 환율 변동이 물가나 금융시장 주는 영향을 감안해서 정책을 펼 것"이라고 했다.

채권시장에선 사실상 한국의 금리인상이 끝났다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지만, 지금은 한은 총재가 취임시에 했던 말 '한국은 연준 정책에서 독립적이지 않다'는 말을 생각나게 한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지금은 누군가의 주장이나 전망에 흔들리지 말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지금 국내 채권시장의 모든 채권 애널리스트들이 한국 금리인상은 끝났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만약 연준이 6%까지 금리를 올리면 한국은 최소 기준금리를 4%까지 올릴 수 밖에 없을 겁니다. 한국 경제가 어렵긴 하지만 한은 역시 최대한 빌미를 주지 않는 결정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연준이 다시 빅스텝으로 나올 가능성이 커지고 환율이 재차 날뛰면서 한국 통화정책 전망에 대한 자신감도 흔들리는 중이다.

증권사의 한 채권딜러는 "한국경제가 어려워 금리를 더 올리면 안 되는 게 아니라, 미국이 이러면 한국은 일단 올릴 수 있는 만큼 더 올려서 버티는 쪽을 택하는 게 정석"이라고 했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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