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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의 채권포커스] 연준·ECB·BOE의 변화와 이자율 시장의 맹공...중앙은행업자들 경고발언 귀에 안 들어와

  • 입력 2023-02-03 11:10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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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

사진: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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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이번주 연준, ECB, BOE의 통화정책회의가 모두 글로벌 금리 하락 재료가 됐다.

서구권의 세 중앙은행은 모두 시장 예상 수준의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하지만 세 중앙은행이 조금씩 변화의 시그널을 보이자 이자율 시장은 강해질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중앙은행업자들이 너무 기대치가 큰 시장에 대해 경고를 주는 일도 잊지 않았으나 시장은 변화에 주목했으며 금리는 크게 낮아졌다.

■ 파월, '디스인플레이션 시대' 선언과 시장에 대한 너그러움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 1일 기준금리 25bp 인상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디스인플레이션 과정이 시작됐다"면서 도비시한 모습을 보였다.

연초 금리를 빠르게 낮추고 있는 시장을 나무라지도 않았다.

당시 1월 금융시장 움직임이 연준 의사 결정에 영향을 주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파월은 "장기적인 관점이 중요하다.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발언은 주가는 더욱 띄우고 채권 금리를 더욱 하락시키는 재료가 됐다.

과도한 시장 기대감에 대해 태클을 걸지 않는 모습은 다소 의외였다는 평가들도 적지 않았다.

다만 연준은 성명서에서 '지속적 금리인상'이라는 문구를 살려두면서 인플레이션을 통제 범위에 두기 위해서 금리를 계속 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시장은 지속적 금리인상 문구가 사라지지 않았지만 너그러워진 파월의 태도 변화에 점수를 줬다.

■ 라가르드, 그래도 매파적 냄새 강했는데...

ECB는 2일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50bp 인상했다. 주요 재융자 금리 3%, 예금금리 2.50%, 한계대출금리 2.25%로 결정해 시장 전망에 부응한 뒤 3월 50bp 인상까지 예고했다.

라가르드는 특히 3월 50bp 인상과 관련해 "확약은 아니지만 현실화되지 않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이상한 화법을 구사했다.

시장 일각에서 의심스런 '3월 25bp 인상론'이 부각되는 상황에서 ECB 총재가 경고장을 선물한 것이다.

그간 3월도 50bp 인상이 대세로 여겨졌으나 금리인상 강도 완화와 관련한 소문이 피어나자 총재가 한 마디 한 것이다.

하지만 ECB는 3월 50bp 인상 뒤 인상 속도를 낮출 가능성을 시사했음, 유로존 금리들은 일제히 폭락했다.

독일10년물 금리는 20.36bp 폭락한 2.0750%, 2년물은 17.81bp 급락한 2.4966%를 기록했다.

프랑스10년물은 26.09bp 폭락한 2.4988%, 2년물이 12.18bp 하락한 2.6240%를 기록하는 등 유럽 지역 금리시장이 흥분했다.

유럽 금리시장의 흥분은 독일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신용이 좋지 않은 이탈리아 10년 금리를 41.16bp나 빼 3.7520%로 되돌려 놓았다. 이탈리아 2년 금리는 29.77bp 하락한 2.8255% 역시 앞자리 숫자를 바꿨다.

라가르드는 기자간담회에서 "유로존 경제가 예상밖에 회복 탄력성을 보인다. 3월 50bp 인상은 극단의 상황이 아니라면 변경하는 것을 생각할 수 없다. 중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2% 수준까지 낮추는 것이 우리들의 결의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기준금리를 제약적 범위에서 충분한 기간 유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라며 지나친 기대감을 갖지 말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유럽 채권시장은 이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너무 엇나가는(?) 시장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도 제기될 수 밖에 없었다.

박윤정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채권시장이 ECB의 금리인상 의지를 과소평가하고 있다. 예금금리와 독일10년 금리 스프레드는 -42bp로 급격하게 축소됐는데, 이는 2019년 9월 금리인하 한 달 전에, 그리고 2020년 3월 코로나 발발 직후 역전된 전례가 유일하다"고 했다.

그는 "유로존 전반적으로 1월 근원 물가가 확대된 가운데 독일의 1월 OpenTable 식당 예약률 추이도 지난 4분기 대비 높아 물가 서프라이즈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 베일리, 변화 시사하면서도 인플레 경계 유지시키는 화법 구사...시장금리 폭락

영란은행은 2일 기준금리를 예상대로 50bp 인상한 4.0%로 조정했다. 이번 인상으로 영국 기준금리는 2008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섰다.

그런데 BOE는 이번 통화정책회의 성명문에서 '필요시 강력 대응'이라는 문구를 철회했다. 최근 30여년래 가장 빠른 속도였던 금리인상 기조를 끝낼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또 BOE 정책위원 9명 가운데 7명이 50bp 인상에 찬성했으나 2명은 동결하자고 했다.

베일리 총재는 인플레 경로의 변화를 거론하면서도 시장의 기대감이 너무 커지는 것은 경계하는 듯한 화법을 구사했다.

베일리는 "인플레이션이 방향을 트는 것을 볼 수는 있다. 다만 너무 이른 전환은 리스크가 너무 크다"며 "승리를 선언하기엔 너무 이르다"고 말했다.

그는 "인플레이션 압력은 여전하며, BOE는 현 기조를 전환하기에 앞서 완전한 확신을 해야만 한다. 어떤 때보다도 리스크는 상방 쪽으로 더욱 편향돼 있다"고 했다.

하지만 성명서에서 '강력한'이 빠지고 물가 둔화 전망에 힘이 실리자 채권금리는 폭락했다.

영국10년물 금리는 30.70bp 폭락한 2.9981%를 기록하면서 3% 아래로 내려왔다. 영국10년물 금리는 지난해 가을 '영국 사태' 때 4.5%를 넘는 폭등세를 나타내기도 했지만 현재는 2%대까지 욕심을 낸 것이다. 영국 2년물은 25.27bp 떨어진 3.2442%를 기록했다.

■ 파월이 싸우지 않으면 라가르드 발언도 힘 빠져...해외금리·외국인 선물매수에 끌려내려가는 국내 금리

파월 의장이 시장 기대감에 대해 특별히 대항하지 않자 라가르드의 매파적 발언 약효도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라가르드는 파월과 달리 유로존은 아직 디스인플레이션 과정이 시작되지 않았다고 했다. 파월의 메시지와 반대였지만, 시장은 5월부터 긴축의 무게감이 확실히 떨어질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박성우 DB금융투자 연구원은 "ECB는 성명서와 라가르드의 기자회견을 통해 매파적 신호를 보냈지만 유로존 국채시장은 5월 인상폭이 25bp로 낮아질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5월 인상폭이 25bp로 보폭이 축소될 것으로 보지만, 근원 인플레 둔화가 확인되기 전까지 경계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글로벌 금리시장 분위기와 외국인 선물 매매는 국내 시장도 좌지우지하고 있다. 금리 레벨 부담에도 계속되는 해외 강세 분위기와 외국인 선물 매수를 넋 놓고 보기도 한다.

증권사의 한 채권딜러는 "유럽 금리가 폭락하고 외국인은 선물을 다시 샀다. 이러자 레벨 부담이고 뭐고 없이 금리가 다시 빠지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양호한 유동성까지 거드니 어쩔 수 없다는 지적도 보인다.

지금은 국고10년물 금리까지 3.1%대로 내려왔으며, 우량 신용채권들은 이미 금리 레벨을 대폭 낮춘 상태다.

이날 개장 직후 농금채 1년이 민평보다 5bp 낮은 3.55%에 발행되고 중금채 2년이 6.3bp 낮은 3.43%에 발행되는 등 금리가 상당히 낮아졌다. 만기가 더 긴 중벤공(AAA) 5년은 언더 27에 1,700억원이 낙찰됐다.

다른 채권딜러는 "글로벌하게 금리가 빠지는 상황에서 국내적으로는 채권 공급도 부족해 보이는 상황"이라며 지금의 상황에 대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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