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4-03-28 (목)

(장태민 칼럼) 난방비 논란과 추경 중독

  • 입력 2023-01-30 13:40
  • 장태민 기자
댓글
0
[뉴스콤 장태민 기자] 올해 본예산 규모는 638.7조원에 달한다.

본예산 기준으로 총지출 예산을 보면 2019년 469조원을 기록한 뒤 2020년에 500조원을 넘어선 512조원을 기록했다.

이후 2021년 558조원을 기록하더니 2020년엔 608조원으로 600조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추경 예산을 더하면 더 커진다.

특히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연초부터 추경 편성 얘기가 나올 정도로 추경은 나라 살림에서 무시할 수 없는 변수가 됐다.

코로나19 여파에 따라 수년간 추경이 불가피했지만 동시에 추경에 대한 관점도 달라졌다.

그간 추경은 '특수한' 경우에 한해 실시한다는 인식이 강했으나 최근 수년간 추경이 일상화되다 보니 연례행사처럼 여기는 사람도 많아졌다.

■ 추경 중독

2023년 연초부터 추경 얘기가 나온 이유는 난방비 급증 때문이었다.

과거엔 연초부터 추경을 입에 담는 일은 '금기 사항'에 가까웠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추경이 횡횡하자 추경을 언급하는 데 따른 부담도 줄어들었다.

특히 지난해엔 사상 초유로 2월에 추경을 실시한 경험까지 확보하게 됐다.

수십조원의 적자국채를 발행해서 미래 세대에 빚을 떠넘겨버리면 그만이라는 무책임한 인식이 국내 상당수 정치인들의 DNA에 이식됐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5년간 국가부채는 407조원 늘어 이제 1천조원을 넘어 1,100조원에 육박하는 넘는 빚이 생겼다. 비록 코로나19 사태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최근 5년 사이에 빚이 50% 훨씬 넘게 급증한 것을 정상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한국은 세계 초유의 저출산 국가인 만큼 빚을 감당할 미래 세대가 더욱 취약하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 세대의 빚인 국채 발행을 통해 문제를 풀어보려는 포퓰리스트들의 접근법은 매우 위험하다.

지난 2020년엔 한 해에 무려 4차례나 추경을 했다. 코로나19 사태가 한국경제의 추경 중독에 대한 좋은 구실이 됐지만, 평소 같았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본예산을 주먹구구로 짰느냐는 비판을 피해가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는 모든 확대 재정을 용납하는 좋은 핑계거리가 됐을 뿐이었다.

■ 경제 역성장 지표 속 난방비 급증...여당 '추경 불가' 입장도 흠집나나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난해 4분기 GDP 성장률은 마이너스 0.4%로 집계됐다.

반도체를 중심으로한 수출 부진, 높아진 금리와 물가의 역공 속에 경기는 둔화됐으며 그나마도 정부 소비의 기여로 성장세 하락이 다소 제어됐다.

여기에 가스비 정상화 과정과 추운 겨울이 맞물리면서 난방비가 2배, 3배로 뛰었다는 식의 보도가 난무하자 정치권에서도 머리를 굴리고 있다.

큰 정부를 절대선으로 여기는 민주당은 30조원 추경을 들고 나왔다. 국민의힘은 자신들이 했던 얘기, 즉 '건전재정'에 대한 약속 때문에 일단 반대했다.

하지만 팬덤 정치가 한국정치의 '기본'이 된 작금의 마당에 팬들을 위한다는 제스추어를 취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국민을 위한다는 코스프레를 하면서 자신의 상품성을 높이는 일, 이는 한국 정치인들이 지녀야할 가장 중요하고도 저질적인 덕목이다.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은 29일 "긴급 난방비 지원 추경을 편성해야 한다. 겨울철 한시적으로라도 긴급 난방비 지원에 나서자. 6.4조원만 쓰더라도 매달 10만원씩 3개월 동안 전국민에게 난방비를 지원할 수 있다"고 했다.

사실 정부는 2,144만 가구 중 277만 가구에 대해 난방비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조 의원은 '서민의 난방비 스트레스'를 이유로 추경을 하자는 주장을 폈다.

그는 "코로나19 지원으로 195조원 이상의 추경을 했다"며 그에 비하면 자신의 제안은 얼마 되지도 않는다고 했다.

정부는 일단 취약계층 117.6만가구에 지원하던 에너지 바우처 지원 금액을 15만 2천 원에서 30만 4천 원으로 2배 인상하고 사회적 배려 대상 162만 가구에 부여하는 요금 할인 폭도 기존보다 두 배 늘리는 대책을 발표한 상태다.

■ 추경, 좋은 의도(?)가 지닌 위험성

재정정책엔 늘 명과 암이 공존한다.

세수 등으로 들어오는 돈 이상으로 세출을 계속 늘려가면 그 돈은 결국 미래 세대가 갚아야 한다.

향후 초과 세수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적자국채를 찍어서 재원을 마련하려는 습성을 유지하는 것은 위험하다.

심지어 여전히 상당수 중년 한국인들에게 달갑지 않은 식민주의자로 남아 있는 IMF까지도 지금은 한국의 재정건전성을 우려한다.

아울러 각종 정책은 경계를 넘나드는 스필오버 이펙트를 일으킨다.

예컨대 난방비 부담을 덜기 위해서 추경을 실시하고 추경을 통해 지출이 늘어나면 이는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

물가 상승률이 둔화되는 흐름이지만 재정 쪽에서 돈을 계속 풀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기대 인플레도 고개를 재차 쳐들수 있다.

포퓰리즘은 기본적으로 '좋은 의도'에 기반한 것이다. 하지만 한번 중독이 돼 버리면 여기서 빠져 오기 어렵다. 극단적인 사례지만 20세기 초 선진국이었던 아르헨티나는 거의 100년 가까이 재정 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 억지로 막으면 한번에 튄다

과거 2010년대 저물가가 지속되던 시절 한국은행 사람들 중엔 정부의 물가 관리에 대한 불편을 호소하던 사람이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정부, 정치권 등은 '좋은 사람' 흉내를 내느라고 공공요금 인상을 막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의 이 고질병은 민주당, 국민의힘 등 정권 가리지 않고 지속됐다.

당시 그 한국은행 직원은 "원가가 올라가도 정부와 정치권이 막아버리니 물가는 '늘 낮게' 유지돼 통화당국도 곤혹스럽다"고 말한곤 했다.

정공법으로 원가 오른 것을 공기업이 반영토록 해야 한은의 물가 평가와 통화정책도 '정상적으로' 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시세를 무시한 가격 통제는 결국 국민들의 미래 부담으로 귀결된다. 국제 원자재 값이 올라 공공요금이 오른다면 국민들 역시 감수하는 자세가 기본이다.

정부는 가격 인상을 억압할 게 아니라 국민들에게 '국제 원자재 시장의 사정'을 설명하면서 지원 정책은 저소득층 중심으로 쓰면 된다.

지금 빚이 9조원으로 불어 한전에 이어 국민 골칫거리로 등극한 가스공사의 연료비 인상 요청을 묵살해 버린 일은 오늘의 사태를 예비한 사건이었던 게 진실이다.

예컨대 가스공사는 2021년 3월에 연료비를 전월에 비해 12% 올려 달라고 SOS를 쳤다. 이후 5월 4%, 7월 20%, 9월 34%, 10월 49%, 11월 88%, 2022년 1월 86%, 3월 71% '인상'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이런 요청들은 묵살됐고 작년 5월엔 오히려 정부가 나서서 3% 깎아 버리는 일까지 있었다.

■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현재 입장과 지키지 않는 추경 '요건'

더불어민주당은 29일 일요일 "난방비 폭탄은 시작에 불과하다. 윤석열 정부는 전기요금, 교통비 등 공공요금을 줄줄이 인상하겠다고 예고한 상황"이라며 "공공요금 인상으로 국민은 더욱 추운 겨울을 지내야 할 상황"이라고 좋은 사람 코스프레를 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여당은 더 늦기 전에 국민의 어려움을 직시하고 7.2조원 에너지 고물가 지원금 지급에 적극 응답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추경 30조원, 에너지 고물가 지원금 7조원 대 금액 등을 얘기하고 있다. 국회가 추경을 주장할 때는 국회의원의 세비도 자동적으로 삭감되는 법안이 있어야 국회의원들이 국민세금을 자신의 돈처럼 아낄 수 있을 듯하다.

국민의힘은 민주당, 즉 과거 여당의 반성이 먼저라고 했다. 그러면서 일단 건전재정에 대한 입장을 바꾸지는 않았다. 여당은 현재 추경 불가 입장을 고수하는 중이다.

국민의힘은 "올해 예산 잉크도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30조원을 더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물가 폭등은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며, 인플레이션을 잡자는 궤변을 한 것"이라고 민주당 주장에 대해 대응 가치도 없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또 "문재인 정권의 에너지 정책이 난방비 폭등이라는 태풍으로 되돌아왔지만 본인들의 잘못에 대한 반성이나 성찰은 없다. 도리어 뻔뻔하게 민생이 어려워진 틈을 타 연일 정치 공세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추경은 필요하면 할 수 있다. 하지만 추경을 남발하는 일은 곤란하다. 이미 크게 악화된 국가 재정 상황을 감안할 때 추경과 관련한 필요충분조건은 더욱 엄밀히 따져야 한다.

법률은 추경에 대해 상당히 '제약적으로' 용납한다. 대규모 재해, 대량 실업과 같은 '중대한' 여건 변화가 있을 경우에 한해서 추경을 할 수 있도록 요건을 규정한다. 하지만 더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은 추경 요건을 한국 정치권의 포퓰리스트들은 간단히 뛰어넘어 버린다.

한국 정치권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중대하다고 판단하면 추경을 단행하는 전통을 만들어온 것이다.

한편 금융시장엔 예산안 잉크가 말랐을 때 여당 역시 추경 욕심을 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전망도 적지 않다. 과거 행태를 봤을 때 지금의 여당이라고 다음 세대에게 빚을 떠넘긴 채 쓰는 돈의 재미를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장태민 칼럼) 난방비 논란과 추경 중독이미지 확대보기

출처: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

출처: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

이미지 확대보기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 저작권자 ⓒ 뉴스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로그인 후 작성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