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3-02-08 (수)

(장태민 칼럼) 흥국 콜옵션 사건이 남긴 의혹과 환율

  • 입력 2022-12-13 13:56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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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지난달 초 흥국생명이 신종자본증권 콜 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한 그 '사건'이 일단락된 뒤에서 뒷말이 적지 않았다.

11월 초 당시 일부에선 '제2의 레고랜드 사건'이라는 식으로 사태를 부풀렸으나 납득하긴 어려웠다.

레고랜드와 흥국생명 사건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레고랜드 사태는 보증을 선 강원도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듯한 시늉을 하면서 부도가 난 사건이었으나, 흥국생명 옵션 행사 건은 법적으로나 구조적으로나 아무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소위 '관행'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문제가 됐던 사건이다. 하지만 그 시절은 연준의 대폭적인 금리 인상 등으로 글로벌 채권 발행시장이 망가지다시피 한 때였으며, 다른 나라들도 콜 만기가 돌아오는 신종자본증권에 대해 콜을 행사하지 않고 넘어가곤 했다.

하지만 당시 한국사회 분위기는 이상하리 만큼 이 문제에 대해 엄격했다. 몇몇 언론들은 사태의 본질은 따져보지도 않은 채 신종자본증권 콜 미행사가 한국경제 위기의 시그널이라는 식의 보도를 남발했다.

누가 이런 분위기를 조장했을까. 시간이 좀 흐른 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당시 보도를 봤을 때 코메디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주식이 뭔지, 채권이 뭔지도 모르는 자들까지 합세해 대대적으로 떠들었죠. 흥국생명이 마치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핏대를 올렸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흥국이 행사를 안 하는 게 너무 자연스러워 보였어요. 그 때 콜 만기가 돌아온 다른 나라 금융사도 종종 그렇게 했으니까요."

■ 콜 미행사 '과장' 분위기, 의심스러웠다

흥국이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은 사채만기일을 30년으로 설정하나 만기 연장 횟수에 제한이 없어 사실상 만기가 없는 영구채로 볼 수 있었다. 대신 스텝업 조항에 따라 일정 시간이 지나면 금리가 올라간다.

신종자본증권엔 콜옵션이 달려 있다. 다수 신종자본증권은 5년이 지난 뒤 콜 옵션을 행사해 사채를 상환할 수 있게 설계돼 있으며, 많은 투자자와 발행자들이 콜 시점을 실질 만기로 보고 대응해 왔다.

그런데 이 '관행'에 대한 다른 접근법이 논란이 됐다. 2022년 가을 한국 금융시장에선 관행에 도전하면 마치 큰 일이라도 날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였던 것이다.

흥국은 11월 1일까지 콜 미행사는 문제 없음을 항변하고 있었다. 금감원 등 당국도 이에 동의했다.

흥국생명은 당시 "3억불 규모의 외화채 발행이 결의됨에 따라 예상 발행 조건 등을 공시했지만 금융시장 환경을 고려해 10월 31일 발행 결정 취소를 결의해 이사회 결의일을 발행 결정 결의일에서 취소 결의일로 정정했다"고 밝혔다.

흥국은 2017년 5억달러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한 바 있었고 올 가을 그 증권에 달려 있는 콜 만기가 다가왔다. 흥국은 당초 발행 5년이 지난 올해 11월 9일 조기상환을 하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외화채로 3억 달러, 원화채로 1천억원을 조달해 상환 자금을 마련하기로 했던 것이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크레딧 스프레드가 확대되고 발행시장이 경기를 일으키자 마음을 바꿔 먹은 것이며, 금융당국도 '오케이'를 한 상태였다.

신종자본증권의 만기는 2047년 11월 9일이었으며, 콜 미행사 시 금리 조건은 기존 4.475%에서 6.75%로 변경되는 상황이었다. 변경된 금리는 추후 5년간 적용되는 상황이었다.

만약 투자자는 당장 현금이 필요없거나 재투자 기회가 많지 않다고 판단했다면, 액면 이자금액이 늘어나는 효과를 누릴 수도 있었다. 발행자 입장에선 6개월 단위로 콜 일정이 도래하기 때문에 옵션 행사 '타이밍'을 조율할 수도 있었다.

당시 글로벌 외화채 발행시장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해외 금융사들도 콜을 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런 분위기를 감안하면 흥국에게만 '콜 옵션을 행사해야 한다'고 엄격한 잣대를 갖다 대는 게 이상한 측면도 있었다.

■ 신종자본증권 콜 옵션 행사의 문제

신종자본증권 콜 미행사와 관련한 유명한 사례로는 2019년 스페인 산탄데르, 2020년 도이치은행과 로이드은행 등의 케이스가 있었다.

그런데 은행도 아닌 한국의 특정 '보험사'의 콜 미행사를 크게 문제 삼는 것을 의아하게 보는 시각도 있었다. 크레딧 채권에 장기간 투자해온 한 베테랑 투자자는 당시 이렇게 평가했다.

"투자자들이 첫 콜 일자를 만기도래일로 보고 투자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따라서 은행들의 경우 이를 지켜려고 해 왔습니다. 그러나 관행이었을 뿐 은행도 아닌 보험사에게 콜을 강요하는 분위기는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시장 상황이 워낙 좋지 않았던 상황에서 다른 나라의 금융사들도 조기 상환을 하지 않는 경우들이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올해 10월 스페인 4위 은행인 방코 사바델은 신규 조달비용이 올라 신종자본증권을 조기 상환하지 않기로 했다.

호주에선 금융당국이 나서서 경제적으로 불리한 콜옵션 행사를 제한하는 성명까지 발표했다.

과거 발행 시보다 상당폭 높은 금리로 차환발행을 해 신종자본증권을 조기 상환하는 행위에 제동을 걸었던 것이다.

한국의 경우 레고랜드 사태로 크레딧 채권들이 고난을 겪고 있던 시기여서 이미지 증폭 효과가 작용하긴 했지만,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 콜 행사의 이면, '환율'이 키였다

흥국은 당초 신종자본증권 콜 옵션을 행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당시 발행시장 분위기가 정상이 아니었다.

흥국이 4%대에 발행했던 증권이 콜을 행사하지 않으면 스텝업으로 6%대로 올라가지만, 발행시장에선 턱없이 높은 금리를 요구하고 있었다.

흥국은 한 자리 수 금리면 콜옵션을 행사하고 차환발행하려고 했으나 10% 이상의 과도한 금리를 요구하는 바람에 당초 계획을 접어야 했다.

당초 콜을 행사하려다 행사하지 않기로 한 흥국의 결정에 대해 금융당국도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후 시장에서 흥국의 콜 미상환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당국이 상환을 강요하는 쪽으로 태세를 전환했다는 비판도 들려왔다.

당시 왜 이렇게 시장 등에서 콜 상환을 안하면 큰일 날 것처럼 분위기를 몰았을까. 이와 관련해 흥국 외화채 발행을 지켜본 한 금융시장 관계자는 의심을 제기했다. 그는 환율 때문에 일부 투자자가 분위기를 몰았다고 말했다.

"제가 알기론 흥국 사건의 핵심은 환율이었습니다. 흥국이 당연히 스텝업을 작동시키면서 콜 행사를 늦춰야 함에도, 누군가 분위기를 반드시 해야 한다는 쪽으로 몰았어요. 달러/원 환율 급등으로 20%, 30% 이익이 들어오기 때문이었죠. 사실 흥국 신종자본증권 투자자의 40%는 내국인이었고 이들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 복무해 준 것이죠."

당시 달러/원 환율은 1,400원을 넘어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었다. 금리도 금리지만, 달러값 급등에 따른 이익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의심을 제기한 시장 관계자는 사회 분위기가 이런 투자자들의 '이익'을 위해 돌아갔다고 아쉬워했다.

■ 시장 상황 완전히 달라졌는데도...관행이니 무조건 과거처럼 하라?

관행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게 아니다. 그리고 그 관행이라는 것도 '시장 분위기'에 영향을 받는다.

올해 들어선 10여년간 형성된 저금리 상황이 단번에 뒤바뀌어 버렸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를 대폭 올리면서 시장에 급진적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다.

급변 상황에선 그에 맞춰 대응하는 게 옳다는 지적들도 적지 않았다.

시장금리가 갑자기 급등한 뒤 국제 발행시장 자체가 비정상적인 국면에 진입했는데도 '무조건' 신종자본증권 콜을 행사해야 한다고 우기는 분위기는 뭔가 석연치 않았다.

비슷한 시기 호주 당국은 예컨대 '재무상태가 좋지 않으면 헛돈 쓰지 말 것'을 주문하면서 콜 옵션 미행사를 종용하고 있었던 때다.

글로벌 크레딧 스프레드가 확대된 시기의 콜 옵션 행사는 높은 금리를 부담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술적으로 볼 때 차환 발행 금리가 스텝업 금리보다 높으면 당연히 신종자본증권이 내포한 '권리'를 따져보는 게 옳다.

발행자 입장에선 조달금리 수준, 콜 옵션 행사 후 자본비율 변화, 투자자 신뢰 등을 따져서 종합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해외 쪽은 이런 식으로 대응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국내는 이상하게 흥국이 다른 발행사에 줄 피해, 즉 스필오버 이펙트에만 무게를 뒀다. 레고랜드 사태에 흥국마저 저러면 다른 회사는 어떻게 하란 것이냐는 식의 논리가 판을 쳤다. 당시 한 발행시장 관계자는 이렇게 논평했다.

"발행사가 시장의 신뢰를 잃는다면 그건 발행사가 감당할 몫입니다. 다른 회사 발행에 악재가 될 수 있다고 그 기업을 비난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회사는 주주들의 이익을 위하는 게 먼저 아닌가요?"

■ 회계와 배임의 문제

신종자본증권은 태동할 때부터 주식이냐, 채권이냐를 놓고 논란에 휩싸였다.

만기를 계속 늘릴 수 있는 영구채 속성 때문에 주식 성격도 있고, 이자를 계속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선 채권 성격도 있었다.

사실상 채권이지만 회계기준 상 자본으로 인정해주기 때문에 '가짜' 자본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국제적으로 자본 인정을 받았지만 금융당국이 '발행 5년 후 무조건 콜 강요'를 한다면 한국의 신종자본증권은 이상한 취급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여전히 신종자본증권의 자본 성격을 두고 논란은 남아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무조건 5년마다 콜 옵션을 행사해야 한다면 이는 회계원칙 상 부채로 봐야 합니다. 이러니 당국도 무조건 행사하라고 대놓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죠. 자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증권을 부채로 취급해버리는 꼴이니까요."

시장의 다수는 관행을 들어 '콜 행사'를 당연시했지만, 신종자본증권이 자본으로 취급받을 수 있는 이유는 조기상환을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또 콜 행사는 '주주에 대한 배임' 문제로 연결될 수 있다고 했다. 흥국은 비상장이지만, 만약 상장회사가 주주의 이익을 무시하고 최근처럼 불리한 환경에서 '관행'을 중시해 콜을 행사하면 주주 이익 침해와 관련한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콜 행사와 차환 발행이 스텝업을 받아들일 때보다 더 높은 금리를 부담하는 일로 이어진다면, 주주 입장에선 당연히 경영진에게 따질 수 있는 건덕지가 생긴다. 더 낮은 금리로 조달할 수 있는데 왜 회사에 해를 끼쳤느냐고 물을 수 있는 것이다.

신종자본증권 태동 뒤 대체로 이어진 저금리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한국에선 콜 행사를 당연시 하면서 다른 나라 눈치를 봐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다른 나라에선 '콜 행사가 불리하다'(호주)고 지도하기도 했고, 투자자 신뢰의 문제와 조달금리의 사이에서 저울질을 해 콜 여부를 결정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글로벌 시장에선 콜 만기시 신규 조달금리과 스테업 조항에 따른 리셋 금리의 차이의 정도에 따라서 콜 행사 여부를 결정하는 사례들이 이어질 수 있다. 이 금리들 사이에 차이가 크다면 콜 행사 관련 불확실성이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이제 스스로 선택권(옵션)을 포기하고 무조건 행사하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듯하다. 흥국생명 신종자본증권 콜 행사 '강요 사건'이 남긴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자료: 11월 2일 금융당국의 흥국생명 콜옵션 미행사 관련 긍정적 입장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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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금융당국이 태도를 바꿔 콜 옵션을 행사하도록 지도한 뒤 흥국생명이 올린 반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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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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