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콤 장태민 기자] 전세계 중앙은행들이 높은 인플레이션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각계 각층에선 지금의 인플레이션 과거 어느 사례와 유사한지 따져보는 작업들도 이어가고 있다.
물가가 크게 올랐던 과거 시기와 비교해 지금의 글로벌 고물가 양상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등을 검토하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물가 급등 시대는 과거 인플레 급등기 특징을 '거의 모두' 갖고 있어서 물가 제어가 만만치 않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물가가 고유가, 공급부족, 경기와 고용, 통화정책, 재정정책, 이연수요 등으로 큰 영향을 받지만 현재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고물가는 이런 상황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국제금융센터는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인플레이션 압력은 주로 공급망 차질과 상품수요 급증에서 비롯됐지만, 이후 통화·재정정책 대응과 경기·고용 호조, 에너지·원자재 가격 상승 등이 영향을 미쳤다"면서 "즉 과거 고물가 사례와의 유사점들이 모두 존재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 2차 세계대전 종전 후의 물가(46.7월~48.10월)
국제금융센터는 시간 순으로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를 넘었던 시기의 특징을 분석했다.
각 고물가 시기별로 물가를 올린 요인들은 다르다.
센터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 CPI는 46년 7월 9.4%를 기록한 후 48년 10월까지 2년여간 5%를 지속적으로 상회했다. 47년 3월에는 최고 19.7%를 기록했으며, 이 기간 평균 CPI 상승률은 12.3%에 달했다.
저금리, 저물가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겐 와닿지 않는 수준의 물가다.
2차대전 종전 후 가격통제 철폐, 공급부족과 이연수요(pent-up demand)등이 물가 급등의 주요 원인이었다. 전쟁 중 급증한 재정적자와 본원통화도 영향을 미쳤다.
전쟁 중 제조업 역량이 군수물자 생산에 집중되면서 소비재와 산업재 공급이 제약됐다. 생필품과 내구재의 할당 배급으로 소비가 제한되고 개인저축은 크게 증가했다.
종전 후 소비재·산업재의 생산이 정상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가격 통제가 철폐되고 전쟁 중 억눌린 소비욕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했다. 전후 인플레이션 압력은 약 2년간 지속된 후 공급망이 정상화되고 소비자 수요도 둔화되면서 안정을 찾았다.
즉 이 시기엔 고유가 요인을 제외하고 공급부족과 이연수요, 재정/통화정책, 경기와 고용 모두 물가 상승을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
■ 한국전쟁 시기(50.12월~51.12월)
미국 CPI가 5%를 넘었던 시기엔 한국전쟁도 들어간다.
국금센터가 조사한 내용을 보면 50년 6월 시작된 한국전쟁이 53년 7월 휴전까지 3년간 지속되는 와중에 미국 CPI는 50년12월에 5.9%를 기록한 뒤 51년 12월(6.0%)까지 1년간 고물가를 지속했다.
한국전쟁 발발 직전 미국경제는 짧은 침체기(48.11~49.10월)와 물가하락을 겪고 있었으나 다시 전시 체제가 시작되면서 물가가 반등했다.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가계들이 공급부족을 예상해 상품수요가 급증한 영향을 받았다. 일부 소비재는 군수물자로 동원되고 가격통제도 재개됐다.
하지만 2차대전 이후처럼 가격통제가 철폐된 후에 인플레가 급등하지는 않았다. 이는 일부 소비재 생산이 군수물자로 전환됐지만 소비재 전반의 공급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고 이연 수요도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전쟁기 물가 급등의 큰 원인으로는 공급부족, 이연수요, 경기와 고용이 큰 작용을 한 것이다.
■ 60년대말 경기확장기(69.3월~71.2월)
지난 1960년대말 경기확장기의 후기(69.3월~71.2월)에도 미국 물가가 급등했다.
센터의 분석을 보면 65년~69년 중 분기별 실질 GDP 성장률이 평균 4.8%를 기록하는 등 경기호조 속에서 69년 3월 CPI가 5.2%를 기록한 뒤 73년 2월(5.0%)까지 5%를 지속적으로 상회했다.
이 기간엔 경기호조와 함께 베트남 전쟁 등에 따른 재정적자 확대 등이 인플레 압력을 자극했다. 2차대전 후 고용법(Employment Act of 1946) 제정으로 정부의 고용안정 의무가 명문화됐으며 다소 높은 인플레이션을 통해 영구적으로 낮은 실업률을 유도할 수 있다는 필립스곡선 이론에 기반한 경제 안정화 정책이 추진됐다.
국금센터는 "71년 8월 닉슨 대통령의 임금·가격 통제 등으로 인플레가 일시 하락했으나 확장적 거시정책 기조는 이후 82년까지 이어진 대인플레이션기(The Great Inflation)의 단초를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 1·2 차 석유파동(73.4월~82.10월)
국금센터가 4번째로 제시한 물가 급등기는 너무도 유명한 석유 파동기다. 이 기간은 고물가가 거의 10년간 이어졌을 정도로 물가 압력이 장기화됐다.
그리고 지금 금융시장 등 각계에서 우려하고 있는 스태그플레이션을 경험한 시기다.
당시 미국 경제는 두 번의 석유파동 등으로 인플레이션과 실업이 동반 증가하는 심각한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었다.
73년 4월~82년 10월 중 CPI는 대부분 5%를 상회했으며 최고 14.8%(80.3월)를 기록했다. 이 기간 중 평균 CPI는 9.0%에 달할 정도였다.
60년대부터 이어져온 ▲고용 중시 거시정책 환경 속에서 ▲73년·79년 오일쇼크로 에너지와 생필품 가격이 급등하고 ▲임금상승률도 높아졌으며 ▲브레튼우즈 체제 붕괴 후 경상적자 누적으로 달러화 가치는 하락했다.
물가보다 고용을 우선하는 정책·사회적 분위기와 유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 속에서 연준은 물가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웠다. 경제주체들의 인플레이션 기대가 높아지면서 필립스곡선의 상충관계(trade-off)도 변화했다.
당시 프리드먼과 펠프스 교수가 주장했던 것처럼 필립스곡선의 상충관계는 안정적이지 않았으며, 경제주체들이 높은 물가상승을 예상하게 되면 낮은 실업률을 유지하기 위해 더 높은 인플레이션이 요구됐다. 필립스곡선의 우상향 이동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물가와 실업률의 동반 상승으로 딜레마에 직면한 연준은 79년 8월 볼커 의장 취임 후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강력한 통화정책 긴축을 시행하게 된다.
볼커 이전 연준의 번즈(임기 70.2~78.1월), 밀러(78.3~79.8월) 의장은 오일쇼크로 물가가 더 심각해진 상황에서도 성장을 우선시하는 정책으로 물가 관리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따라서 볼커 의장은 취임 후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79년 10월부터 정책목표를 통화량 공급으로 바꾸고 통화공급 조절과 고금리 정책을 지속했다.
이 때 미국 경제는 2번의 경기침체를 경험했다. 두 번째 침체기 말인 82년 실업률은 약11%까지 상승했지만 인플레이션은 5% 미만으로 둔화되면서 대인플레이션 시대가 마무리를 짓게 된다.
■ 걸프전쟁(89.3월~91.5월), 그리고 2008년 에너지 급등기(08.6~8월)
89년과 08년의 사례는 모두 유가 급등이 물가 상승의 주된 원인이었다.
이 때 물가는 짧은 상승기를 거친 후 경기가 침체국면에 진입하면서 빠르게 둔화됐다.
89년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08년은 세계경제의 장기 호황과 중국 등 신흥국의 원유수요 증가, OPEC 감산 등이 원인이었다.
국금센터는 "87년 그린스펀의 의장 취임 후 연준은 테일러 준칙에 기반한 통화정책 운영으로 경기의 진폭을 낮추고 대부분의 기간동안 물가를 낮고 안정적으로 유지했다"고 평가했다.
■ 오랜만에 맞이한 물가 급등기...상당부분 정책 실패에 기인
세계는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기 직전에 짧은 물가 급등기를 경험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2000년대의 예외적인 현상이었다.
그러다 보니 저물가 환경에 익숙해졌으며, 금통위기 이후엔 각국 중앙은행들이 원하는 만큼 물가가 오르지 않아 골치였다. 한국은행도 관리목표에 미달하는 물가 때문에 비판을 받았다.
금융위기 당시 화폐를 대거 풀었는 데도 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물가는 코로나 사태 후 경제가 안정을 찾는 도중에 급등한 상태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인플레이션 압력은 주로 공급망 차질과 상품수요 급증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각국의 정책 대응 과정에서 물가 압력이 더 커졌다. 통화·재정정책 대응과 경기·고용 호조, 에너지·원자재 가격 상승 등 과거 고물가를 이끌었던 요인들이 모두 작용했다.
2차대전 종식 후 소비재의 생산과 재고가 부족한 상황에서 억눌려있던 수요가 폭발하면서 물가가 급등했던 것처럼 현재는 팬데믹 영향으로 소비패턴이 왜곡됐다.
또 코로나19 영향으로 글로벌 공급망 차질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작년부터 재난지원금 등으로 증가한 가계저축이 재화를 중심으로 한 보복소비로 연결됐다.
국금센터는 "60년대 미국의 경제 사조는 케인즈학파가 주도했다. 적자를 용인하는 재정정책이 물가를 자극하는 상황에서 연준도 물가보다 성장을 중시했다"면서 "67년부터 인플레이션 기대가 상승하기 시작했지만 연준은 이것을 인지하지 못했고 79년 볼커 의장 취임 전까지 물가를 낮추거나 기대를 통제하는데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 미국정부는 전후 최대 수준으로 재정적자를 늘리면서 경기를 부양했다. 연준은 코로나 이전에 지속된 저물가 경험에 기초하여 작년 하반기까지도 물가 상승을 '일시적' 요인으로 판단하고 고용 회복을 우선시했다.
센터는 "통화정책 실기(behind the curve)에 따른 인플레이션 기대 상승이 오일쇼크와 함께 8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의 주요 원인이었던 것처럼 현재의 연준도 대응이 늦어지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심화됐다"고 평가했다.
이같은 평가는 지금의 고물가가 상당부분 정책 실패에 기인한다는 보는 것이다.
A 증권사의 한 채권딜러는 "지금의 글로벌 인플레는 코로나 위기 발생에 따른 과도한 정책 때문"이라며 "연준이 BS를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2배 이상으로 뻥튀기시켰으며, 재정정책 또한 돈 퍼주기 등으로 일관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의 잘못된 유산(양적완화)를 연준 등이 과도하게 신봉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 물가, 자연스러운 상승 vs 부자연스런 상승
통상 물가는 경제가 견조한 회복세를 보이고 고용 호조로 임금 상승 압력이 커질 때 오름폭을 확대한다.
예컨대 60년대 미국경제는 전후 수요회복과 성장 중시 경제정책으로 GDP 성장률이 연평균 4.9%(59~68년)에 달하는 고성장기를 구가했으며, 그 결과 경기순환적 요인에 의한 인플레이션 압력이 점차 심화됐다.
지금의 인플레이션에도 이런 측면이 상당히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예컨대 지금 인플레이션이 시작된 것은 공급망 차질과 이연수요 등 일시적 요인에 의한 것이었지만, 완화적 통화·재정정책으로 경제가 빠르게 회복하면서 임금, 주거비 등 경기순환적 요인에 의한 물가 압력도 커진 것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은행이 근원 인플레이션의 기여도를 경기순환적(cyclical), 비순환적(acyclical) 요인으로 구분한 자료에 따르면, 중고차 등 공급문제에 의한 비순환적 요인이 여전히 크지만 경기순환적 요인의 기여도도 빠르게 올라간 것으로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원자재가격 상승 압력이 심화되자 70년대의 물가 악몽이 되살아났다.
이미 공급부족 여건에서 상승세를 보이던 유가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더욱 상승하면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재부각된 것이다. 러-우 전쟁은 이스라엘-아랍 전쟁을 기억을 소환했다.
73년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간 전쟁이 서방에 대한 석유 금수조치로 이어지면서 오일 쇼크가 발생한 것처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유가 급등을 초래했다. 전쟁으로 유가가 급등하기 전부터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었던 점도 유사하다.
당시 연준은 오일쇼크에 의한 물가상승과 경기침체, 즉 스태그플레이션에 직면하면서 금리인하로 대응했다. 하지만 이런 대응은 이후 인플레 기대를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연준이 최근 상당히 매파적인 모습을 보이는 데는 이 당시의 경험도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러-우 전쟁이 에너지·원자재 가격의 추가 상승과 함께 글로벌 공급망 회복을 저해하면서 경기둔화 위험을 높이고 통화정책 대응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점증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인플레이션 위험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총수요를 억제하고 인플레이션 기대를 낮추기 위한 강한 통화긴축이 불가피한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 연준은 이 과정에서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줄여야 하는 어려운 도전과제에 직면했다.
■ 과거의 경험이 시사하는 바
상당히 어려운 인플레 환경에서 과연 연준의 대응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B 증권사의 한 채권딜러는 "지금은 경기 침체를 감수하면서 금리를 올려야 하는 상황"이라며 "연준이 경기 낙관론을 피력하고 있지만 그들도 성장률 전망을 낮추지 않느냐"라고 했다.
하지만 금리를 지속적으로 인상함에도 불구하고 인플레 압력을 쉽게 제어하기 어렵다는 진단도 많다.
국금센터는 "재화에 집중됐던 소비지출이 엔데믹 전환과 함께 서비스 수요로 분산되겠지만, 이것은 한편으로 서비스 물가의 본격 상승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며 "또한 재정부양 효과 감소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의 엔데믹 전환과 고용증가, 임금상승 등으로 소비지출은 높은 수준을 지속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센터는 "실업률이 3.8%로 이미 완전고용에 근접한 상황에서 서비스 부문의 일자리 수요 증가는 임금상승 압력을 높이는 요인"이라며 "중국의 제로코로나 정책 고수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글로벌 공급망의 회복전망이 불투명하며 고유가 상황도 장기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미국 매체 블룸버그의 컨세서스를 보면, 우크라이나 전쟁 영향 등으로 미국의 22년 CPI 상승률 전망치가 2월에 5.0%에서 지금은 6.0%로 더 올라가 있다.
경제주체들의 인플레이션 기대가 이미 수십년래 가장 높은 수준으로 상승한 상황에서 기대심리를 통제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 됐다. 채권, 주식 등 금융시장도 어려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센터는 "과거 미국의 주식시장은 높은 인플레이션과 경제성장이 동반될 때에는 비교적 양호한 회복력을 보였지만, 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중에는 부진한 흐름을 지속했다"고 지적했다.
C 증권사의 한 채권딜러는 "미국 연준의 빅스텝 가능성에 우리 채권시장도 더 망가지지 않느냐"라며 "투자자들의 올해 금리인상 컨센서스가 1.75%까지였지만, 만약 연준의 빅스텝이 여러번 나오는 환경이라면 금리를 2% 위로 더 올려야 하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고 했다.

출처: 국제금융센터

[장태민의 채권포커스] 물가 급등기 역사와 정책대응
이미지 확대보기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