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4-05-16 (목)

(장태민 칼럼) 과거와 기억 조작법

  • 입력 2021-12-28 14:26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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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과거는 아름답게 그려져야 한다.

힘든 현실을 버텨내기 위해서도 과거를 왜곡하는 일은 중요하다. 조작되고 취사 선택된 아름다운 과거는 어려운 현실을 떠받히는 든든한 밑천이 된다.

쓰라린 과거를 미화하는 방법엔 두 가지가 있다.

먼저 과거의 사실 자체를 부정(조작)하거나 엉뚱한 기억으로 대체하는 방법이 있다. 말 그대로 과거에 있었던 일을 없었던 것으로 한다든지, 과거에 없었던 일을 있었던 것처럼 꾸며내는 것이다. 조금 더 교묘한 방법엔 '기준'을 바꾸면서 사실을 왜곡하는 방법도 있다.

또 다른 과거 왜곡 방법엔 사실은 그대로 두되, 취사선택을 함으로써 전반적인 분위기를 바꾸는 기법이 있다. 예컨대 A라는 현상을 평가하기 위해 B와 C의 측면을 동시에 봐야 하는데, B 측면만 들여다 보는 방식이다. 통계 이용자가 '객관성'을 주장할 필요가 있는 경우엔 후자의 기법도 자주 동원되곤 한다.

물론 전자의 방법 가운데 통계 기준 변경을 가미한 뒤 특정 부문만 강조하는 식으로 둘을 혼합할 수도 있다.

■ 경제부총리의 '자화자찬'

문재인 정부는 포용적 성장을 표방해왔다. 이에 따라 분배지표의 개선이 중요했다.

이달 중순 홍 부총리는 2017년부터 3대 분배지표 개선세가 지속적으로 확대됐다면서 '경제위기=양극화 심화' 공식을 깨기 위한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고 했다.

그는 5분위 배율, 지니계수, 상대적 빈곤율 모두 2017년부터 4년 연속 개선되면서 포용성 정책의 성과가 나타났다고 자평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고용시장 충격과 자영업 어려움 등에도 불구하고 가계소득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최저임금 인상, 고용유지지원 확대, 피해계층 대상 일자리사업 등의 영향으로 근로소득이 증가했다고 했다.

그런데 지난해 1년 기준으로 부총리가 말한 근로소득은 1.7% 늘어나는 데 그쳤다. 부총리는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근로소득이 '증가했다'는 데 무게를 뒀다. 그러면서 잘했다고 한 것이다.

부총리는 재난지원금 등 네 차례 추경과 함께 기초연금 확대로 분배가 좋아졌다는 점도 거론했다. 공적이전소득(+31.7%)이 크게 늘어난 것은 각종 현금지원을 했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다.

공적이전소득은 그 규모가 다른 소득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적은 비정상적인 소득이다. 국민 세금으로, 혹은 채권 발행으로 빚을 내 없는 사람들에게 나눠줬는데, 소득 1분위의 경우 워낙 소득이 적기 때문에 소득 증가율은 크게 나타났을 뿐이다.

1분위(저소득층)부터 5분위(고소득층)까지 모든 소득분위의 소득이 증가했다고 했다. 2020년 1분위 소득증가율이 역대 최고를 기록하는 가운데 저소득층으로 갈수록 증가율(1분위 +12.0%, 5분위 +2.2%)이 높게 나타났다고 했다.

공적이전소득의 가계소득 개선 기여도(1분위 +10.0%p, 5분위 +1.3%p)가 저소득층에서 훨씬 컸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책효과가 가시화되면서 1분위 가계의 소득증가율은 2017년에 5분위 증가율을 상회한 이후 그 증가폭의 차이가 확대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딱히 새롭고 멋진 경제 상황 전개가 이뤄진 것은 아니다. 세금 지원이 원래 소득이 적은 1분위에겐 증가율을 크게 키우기 때문에 이는 당연한 것이다.

아무튼 부총리는 저소득층의 소득이 더 큰 폭으로 증가하며 5분위배율(△0.40배p), 지니계수(△0.008), 상대적 빈곤율(△1.0%p) 등 주요 분배지표가 모두 하락(개선)했다고 밝혔다.

이들 3대 분배지표는 2017년에 전년대비 하락을 시작한 이래 2020년까지 그 추세를 지속하고 있으며, 2018년 이후로는 개선폭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2020년에는 상대적 빈곤율(중위소득 50% 이하 인구를 전체 인구로 나눈 비율)의 개선폭이 특히 두드러지면서 2011년 통계 조사 이래 가장 높은 수준으로 기록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시장소득 대비 ‘정책의 분배 개선효과(정책효과)’도 확대됐다고 평가했다. 정부의 고용·사회안전망 강화, 돌봄 체계 확충 등에 따른 결과로 보이며, 이러한 정책효과는 꾸준한 개선세를 유지하면서 2020년에 3대 지표 모두 역대 최고치를 또 한 번 경신했다고 자평했다.

■ 부총리의 과도한 주장

부총리는 가계의 소득·분배지표는 가장 중요한 민생지표이자, 경제정책의 '최종 성적표'와도 같은 의미를 갖는다고 했다.

최근 4년간의 개선세 확대에 안주하지 않고, 이러한 추세가 우리 경제에 구조적으로 착근할 수 있도록 정부는 '전국민 고용보험', '국민취업지원제도' 등 기초 안전망을 더욱 촘촘하고 두텁게 확충하기 위해 더욱 진력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소득·분배지표가 경제정책의 최종 성적표라는 얘기는 경제 실적을 예쁘게 포장하기 부총리의 주장일 뿐이다.

정부는 '일시적으로' 국민 세금을 활용해 눈으로 보이는 소득·분배 지표에 대해 분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경제 주체다.

홍 부총리의 주장은 2020년 소득을 바탕으로 한 가계금융복지조사를 결과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의 주장이 새삼스럽지는 않다.

부총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저평가된'(?) 자신의 치적을 홍보하는 데 앞장섰다. 올해 5월 '1분기 가계동향 조사'가 나온 뒤엔 1년 전 6.89였던 소득5분위 배율이 올해 1분기엔 6.30배로 낮아졌다면서 스스로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은 바 있다.

소득 5분위 배율은 상위 20% 가구 소득을 하위 20% 가구 소득으로 나눈 것이다. 즉 상위 20% 소득이 하위 20% 소득의 몇 배인지를 나타내는 소득격차 지표다.

하지만 주변엔 일시적인 개선 수치만 보이면 경제수장이 자화자찬하는 모습을 못 마땅하게 보면서, 정부가 통계를 희롱한다는 의심을 하는 사람도 많았다.

문재인 정권의 소득주도성장과 코로나19 악재로 '격차가 확대됐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정권 후반부엔 오히려 '포용정책 성과'를 강조하고 있어 이런 흐름이 자연스럽지는 않다.

심지어 석연치 않았던 통계청장 교체, 통계 기준 변경 등을 통해 사실을 왜곡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아울러 소득격차 축소 등 정부의 자화자찬은 인위적 현금 살포를 통한 '일시적' 효과가 컸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즉 일부 계층에 국민 세금(정부지원금)을 전격 투입해 일시적으로 상황이 나아진 것으로 분식했다는 의심을 버리기도 어렵다.

냉정해야 할 경제지표에 '따뜻함'이 강조되고, '인위성' 마저 더해졌기 때문에 지금은 통계지표에 접근하고 해석하는 데는 상당한 조심성이 필요하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긴 어렵지만, 전직 통계청장은 문재인 정부의 통계에 대해 지속적인 의심을 제기해왔다.

통계청장을 역임한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은 그간 '소득 분배가 안 좋게 나오자 통계방식을 변경했다'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유 의원은 국가통계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주장하기도 했으나 최근 "코로나로 모든 정기감사 일정이 밀렸다. 통계청 감사도 올해는 힘들다는 답변을 들었다"는 식의 답변을 들은 것으로 전해졌다.

■ 세금, 제도 등으로 바꿀 수 있는 5분위 배율

홍 부총리가 자화자찬했던 5분위 배율을 다시 살펴보자.

부총리가 자화자찬하면서 인용했던 데이터는 2020년 기준 데이터다.

소득 5분위, 즉 상위 20% 가구의 2020년 소득은 1억 4,208만원을 기록했다. 전년에 비해 2.2% 증가했다.

반면 1분위기의 소득은 1,294만원으로 13.9% 증가했다. 소득 5분위의 소득이 세금 지원 등으로 급증했다. 하지만 늘어난 소득 금액은 1분위는 139만원에 그친 반면 5분위는 305만원으로 가장 컸다.

5분위는 단지 2% 남짓 소득이 늘었지만, 두 자리수로 증가한 1분위에 비해 2배 이상 더 큰 규모로 늘었다.

물론 1분위와 5분위의 월평균 소득은 비교대상이 아니다. 1분위가 108만원에 그친 반면 5분위는 1,184만원에 달한다. 단순하게 나누면 10배 이상의 차이가 난다.

소득 5분위배율에 활용된 데이터는 '균등화' 처분가능소득이다. 균등화 처분가능소득은 2020년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평균은 3,450만원으로 전년대비 3.9% 증가했다.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1분위는 1,179만원으로 전년대비 10.0% 증가했고 5분위는 6,892만원으로 전년대비 2.8% 늘었다.

균등화 소득은 가구 단위로 측정되는 소득을 가구원 개인별로 환산한 값이다. 균등화 소득 중 균등화 '시장소득'은 근로소득, 사업소득, 재산소득, 사적이전소득의 합으로 구성돼 가구가 직접 벌어들인 소득을 의미한다.

균등화 '처분가능소득'은 균등화 시장소득에 공적이전소득을 더하고 공적이전지출을 뺀 소득이다. 공적이전소득은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등 공적연금, 기초연금 등을 포함하고 공적이전지출은 세금과 사회보험료 등을 포함한다.

정부는 공적이전소득과 공적이전지출을 컨트롤한다. 경제정책 방향에 따라 이 부분을 제어할 수 있기에 코로나 사태 등을 이유로 이전지출을 손보면 '괜찮은' 데이터를 만들 수 있기도 하다.

전 통계청장 유경준 의원의 통계 조작에 대한 의심과 별도로 정부는 필요에 의해 저소득층 이전지출 확대, 고소득층 세부감 증가 등으로 수치를 변동시킬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는 것이다.

■ 진짜 중요한 것은 얘기도 하지 않는 경제 수장

경제지표를 볼 때는 플로우와 스톡을 같이 살필 필요가 있다.

상당기간 양호한 모습을 보이는 손익계산서가 모여서 튼튼한 재무상태표를 갖춘 회사가 만들어지듯이 각 가구나 개인의 살림살이 역시 마찬가지다.

소득과 투자(저축)가 재산을 형성한다. 한 해만 살고 인생 끝장을 볼 심산이 아닌 이상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소득이 아니라 재산이다.

하지만 정부 통계는 재산(순자산) 격차에 대해 특별한 얘기를 하지 않는다. 지나치게 플로우에 집착해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냉정한 진실은 재산 격차의 경우 이미 벌어질 대로 벌어져 있다는 것이다.

가계금융통계에 나와 있는 순자산 5분위의 자산은 14억 8,529만원, 부채는 2억 10만원으로 재산은 12억 8,519만원이다. 반면 1분위는 자산 4,039만원, 부채 3,015만원으로 재산은 1,024만원에 불과하다.

단순하게 이 수치를 나눈 순자산 5분위 배율은 무려 125.5배라는 무서운 수치가 나온다.

아무튼 사람들의 경제적 격차가 줄었다고 말하기 위해선 왠만해선 '재산 5분위 배율'을 얘기해선 안 된다.

순자산 2분위조차 재산이 1억원이 되지 않는 9,897만원에 그친다. 3분위는 2억 2,871만원, 4분위는 4억 4,935만원이다. 상위 20%와 차상위 20%의 격차도 2.9배로 나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수치를 바꾸는 것도 비교적 쉽다. 분모인 '없는 사람'에게 조금만 이전해 줘도 수치를 크게 조정할 수 있다. 사실 2019년 순자산 5분위 배율은 125.6배에서 2020년엔 166.7배로 더 뛰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비율로 접근하는 것은 금액 격차를 은폐하는 수단이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예컨대 재산 1분위가 1억원, 재산 5분위가 10억원이라고 하면 재산 5분위배율은 10배다. 하지만 각각 재산이 10%씩 늘어도 이는 동일하다.

이 경우 늘어난 재산은 1분위는 1천만원인데 비해 5분위는 1억원이다. 5분위가 1억원(10%) 늘때 1분위가 2천만원(20%) 늘어난다면 이 배율은 9.2배로 크게 줄어든다. 금액 격차는 계속 크게 벌어졌지만, 배율로 접근하면 좀더 평등해진 것처럼 여겨진다. 비율지표의 함정이다.

정부는, 그리고 홍남기 부총리는 특정 측면을 강조하면서 격차 축소에 앞장섰다고 말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쉽게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아무튼 사람들의 과거, 특히 권력자들의 과거는 아름답게 포장돼야 한다.

♣ 참고자료

다음은 최근 정부가 스스로 평가한 경제정책 4년 반의 주요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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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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