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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칼럼) 지역화폐 (하)

  • 입력 2021-12-13 10:17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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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계속)

■ 지역화폐는 특정 지역, 특정 섹터 지원책

지역화폐는 기본적으로 사용처를 지역내 소매점으로 제한한다. 전체 소비의 파이를 키우는 정책이라기 보다는 대형마트로부터 소상공인으로의 '매출 이전'을 목표로 한다.

예컨대 지역화폐는 이마트나 롯데마트의 매출을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소매점으로 일정 부분 가져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아울러 '지역 활성화'라는 좋은 뜻에도 불구하고 '다른 지역을 차별화하는' 지역 이기주의 성격도 있는 게 사실이다.

외부지역으로 유출되는 소비를 제한해 지역 내 매출을 증가시키는 목적을 내걸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화폐 도입으로 역외유출 방지를 통한 지역 내 소매입 활성화는 인접 지자체의 소비를 차단하는 효과도 있다.

■ 모든 지역이 지역화폐 발행하면...돈만 낭비할 가능성 커진다

필자는 최근 A군(郡)을 방문해 지역화폐를 사용한 일이 있었다.

당시 A군에서 미처 사용하지 못한 지역화폐를 B군에서 사용하려고 했으나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깨닫고 '지역 이기주의'의 일면을 몸으로 체험한 바 있다.

사실 지역화폐 시스템에선 지역마다 지역화폐를 발행하는 게 '상대적으로' 유리할 수 밖에 없다.

지난해 '문제의' 보고서를 썼던 조세재정연구원의 송경호·이환웅 연구원은 이렇게 평가했다.

"소비의 역외유출을 막으면 인접 지자체가 매출 감소의 타격을 받게 되고, 이에 대응해 인접 지자체도 지역화폐를 도입하는 게 우월한 전략이 됩니다. 장기적으로 모든 지자체에서 지역화폐를 도입하면 소비의 역외유출을 차단함으로써 발생하는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는 사라지고, 지역화폐 발행으로인한 발행비용 증가, 소비자 후생 감소와 같은 비효율성만 남게 됩니다."

지역화폐가 '특정지역'이나 '특정 소상공인'에게 혜택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지역화폐라는 시스템이 가동하는 한 이 체제에 편입하는 게 유리하지만, 모두가 지역화폐를 발행하면 효과는 제한되고 국가 전체적으로 피해만 커질 수 있다.

경제학적으로 볼 때 연구자들은 무난한 결론을 도출한 것처럼 보였다.

■ 발행비용의 문제

광역지자체와 기초지자체에서 모두 지역화폐를 발행하는 경우도 있다.

이 같은 중복발행은 행정비용 낭비, 발행 고정비 증가, 소비자·소상공인의 지역화폐 이용 비용 증가 등을 초래할 수 있다.

지역화폐는 이름과 달리 '화폐'가 아니다. 지역화폐는 사용처, 기간 등이 제한된 상품권일 뿐이다.

당연히 현금보다 활용도가 떨어진다. 발행한 지자체 내 가맹점에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는 당연하다. 결국 사용 지역과 업종이 제약되기 때문에 지자체는 지역화폐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손을 봐야 한다.

예컨대 지자체는 이 상품권(지역화폐)의 판매와 유통을 촉진하기 위해 액면가 대비 10% 할인된 금액으로 지역화폐를 판매하고 그 차액을 정부가 보조하는 식으로 운영돼 왔다.

연구자들은 '당연히' 이 문제를 간과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경제학 박사들인 송경호·이환웅 연구원은 "지역화폐 발행엔 정부의 보조금 지급으로 재정지출과 사중손실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사중손실(死重損失, deadweight lossy)은 경제학에 나오는 용어로서 재화나 서비스의 균형이 파레토 최적이 아닐 때 발생하는 경제적 효용의 순손실(純損失)을 의미한다. 독점가격, 외부효과, 세금이나 보조금, 가격상한, 가격하한 등이 효용을 떨어뜨린다는 내용이다.

■ 지역화폐 '깡' 부추긴다

지자체는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할인발행 외에 출산지원금, 청년배당, 기초생활보장수급자 지원금, 공무원 복지 포인트 등은 지역화폐로 대체해 지급하기도 한다.

이 경우는 소비자가 지역화폐를 '할인' 받아 구매할 때나 동일한 금액을 현금으로 지급받을 때에 비해 손해다. 즉 소비자 후생 손실이 나타나는 것이다.

결국 지자체가 지역화폐 소지를 '강제'하기 때문에 '현금깡' 시장이 열리게 된다. 그리고 이 '깡'을 단속하기 위해 행정력과 비용이 낭비된다.

■ 지역화폐 나름의 의의 있다..하지만 이론적 장점에 부합하지 않는 현실

지역화폐는 '분배'에 초점을 둔 정책이다.

가난한 지역의 소상공인에게 혜택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사회 전체적으로 효율성이 떨어지더라도 나름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즉 국가 전체적으로 손해를 좀 보더라도 낙후지역 경제 활성화와 소상공인 보호 등에 기여할 수 있으면 의의가 있다.

다만 경제 전체적으로도 '손해'이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별 도움이 안 된다면 한국사회가 밀어붙이고 있는 지역화폐 활성화는 문제가 많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이재명 경기지사에게 위협적인 말을 들었던 연구자들은 당시 논문에서 이렇게 일갈했다.

"지역화폐 도입의 첫번째 목표인 낙후된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는 모든 지자체에서 지역화폐를 발행함으로써 사라지고 오히려 재정여건이 열악한 소규모 지자체는 매출 감소의 피해를 입을 수 있어 낙후된 정책목표에 부합하지 않는 결과로 나타납니다. 실증분석 결과 지역화폐 도입이 지역 내 소상공인 전체의 매출을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증가시킨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연구자들은 중앙정부가 지자체의 경제규모나 재정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발행을 보조(예컨대 중앙정부 8, 지자체 2)하고 발행수수료, 판대매행수수료 등 제반비용은 별도로 지자체에서 부담하면 재정여건이 양호한 지자체가 더 대규모로 지역화폐를 발행할 수 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결국 부유한 지자체의 지역민과 소상공인이 더 많은 혜택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 대목도 부유한 지자체 장을 하고 있던 당시 이재명 경기지사의 심기를 건드렸을지도 모르겠다.

연구자들은 또 두번째 정책목표인 지역 내 소상공인 보호는 기존의 온누리상품권으로도 달성할 수 있는 효과였고, 온누리상품권은 인접 지자체의 경제규모에 따른 외부효과가 발생하지 않고 발행주체가 일원화돼 있어 각 지자체에서 지역화폐를 발행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고 저렴한 비용으로 운영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자들은 결국 지역화폐 옹호론자들이 원치 않는 결론을 내리고 만다.

"실증분석 결과 소상공인 중 슈퍼마켓, 식료품점과 같은 일부 업종에만 지역화폐 발행의 혜택이 집중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지역 내 소상공인 보호라는 목적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려웠습니다."

보고서는 온누리상품권을 이용해 업종별로 상이한 할인율(캐시백)을 적용할 것을 제안했다. 연구자들은 현재 가장 큰 혜택을 집중적으로 받는 나타나는 슈퍼마켓 등에 낮은 캐시백 비율을 적용하고 전통시장에는 높은 캐시백 비율을 적용하는 등 소외된 업종에서의 소비를 유도할 수 있는 방안 등을 제안했다.

■ 전국을 지역화폐 천국으로?...득보다 실이 더 큰 정책

이제 지역화폐를 정리해보자.

지역화폐는 지자체가 발행한 '상품권'(화폐가 아니다)으로, 소외 지역이나 소외 집단(예컨대 소상공인)을 위해 고안된 것이다.

지역화폐는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는 특정 지역이나 특정 경제 주체를 위한 정책이 돼야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모두가 지역화폐를 남발하면 이런 정책적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지금은 전국이 지역화폐 경쟁에 몰두하고 있다. 이러면 특정 집단이나 지역을 위한 지역화폐의 의의가 없어진다.

대부분 지역에서 지역화폐를 발행하는 문제에 더해서 '지역화폐가 필요없는' 업종도 지역화폐를 받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입시학원과 같은 납득이 힘든 곳에 지역화폐가 쓰이고 있으며, 심지어 성형외과에서도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식의 지역화폐 남용은 법정화폐인 한국은행권을 오염시키는 처사에 불과하다.

지역화폐를 남발하면 국민 세금만 낭비하게 된다. 그럴수록 '힘있는' 지자체만 이익을 보게 돼 당초 취지도 무색해져 버린다. 예컨대 상대적으로 잘 사는 지역에선 할인율을 10%에서 15%로 높여 '상품권' 판매를 높일 수 있다. 남발된 지역화폐는 잘 사는 지역에게 상대적으로 더 큰 이익을 준다.

국가 전체적으론 손해다. 벌써 국민세금이 1조원 넘게 드는데다 계속 지역화폐가 활성화될수록 세금은 더 들어간다.

사실상 올해 20조원 남짓한 수준으로 발행된 지역화폐도 큰 낭비 행정이었지만, 내년엔 30조원의 지역화폐가 발행된다고 한다.

한국에 들어온 지역화폐는 귤화위지(橘化爲枳)의 과정을 거치면서 심하게 오염이 되고 있다는 게 진실이다.

정치권 일부에서 지역화폐를 '숭배'하고 있지만, 이는 진실을 호도하는 짓에 불과하다.

전세계적으로도 지역화폐는 쇠락한 지역에서 일시적으로 쓰이다가 사라졌다. 한국에서만 이상하게 지역화폐가 덩치를 한없이 키워가고 있다.

■ 선거용 정책 의혹과 특정세력 밀어주기 의혹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지역화폐 발행과 관련해 '선거용 전략'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태생적으로 쓰임새가 제한적일 수 밖에 없고 발행 비용도 상당히 드는 지역화폐의 덩치가 너무 커지다 보니 이를 이상하게 보는 '이성적인' 사람도 많다.

지역화폐 정책은 한국경제를 살리는 데 기여하지 못한다. 더 나아가 특정 세력이 연계돼 있다는 의혹마저 제기된다.

최근 <문화일보>는 이재명 대선 후보가 경기지사 재직 시절인 2019년 지역화폐 운영대행 민간업체에 추가 수익을 배분할 수 있도록 하는 협약서를 체결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경기도 카드형 지역화폐 플랫폼 공동운영대행 협약서>에 "'코나아이(업체)’는 지역화폐 인센티브, 정책수당 등에 대한 정산 처리 절차 및 낙전 수입, 이자 반납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협의해야 하는 것으로 규정돼 있다"고 보도했다.

낙전 수입(구매자가 제공량을 다 쓰지 않아 떨어지는 부가수입)을 지방자치단체에 귀속하도록 한 통상 협약서와 달리 이를 '협의 대상'으로 남겨놨다면서 특정 세력이 부당한 이익을 취하고 있다는 의심을 제기했다. 코나아이가 2018년 133억 원 적자에서 2020년 206억 원 흑자로 전환했다.

당연히 경기도와 이재명 후보 측은 이런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지역화폐 남발은 이미 많은 논란을 부르고 있다. 지역화폐의 '대중화'는 법정화폐를 서서히 좀먹고 한국경제엔 득보다 실을 안겨준다. '한국식' 지역화폐는 정치적 속임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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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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