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4-04-24 (수)

(장태민 칼럼) 지역화폐 (상)

  • 입력 2021-12-10 14:32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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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2022년 예산안을 논의하는 예결특위 마지막 날이었던 11월 30일.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재명 후보가 공을 들인 지역화폐를 옹호하는 데 앞장섰다.

윤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예결소위 위원들이 지역사랑 상품권 예산 증액을 '독단적인 선거 지원용 예산 증액'이라 규정했다고 면서 이는 명백히 '가짜뉴스'라고 주장했다.

윤 원내대표는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지역화폐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 지역화폐 활성화, 정말 국민 모두 바라는 정책이라고?

당시 윤 원내대표는 "지역화폐는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의 요구가 높고 국민과 소상공인 모두가 바라는 정책"이라며 "지역화폐를 통해서 지역경제, 골목상권의 활성화는 우리가 이미 눈으로 확인한 사실"이라고 했다.

그는 "윤석열 후보도 50조 소상공인 지원을 공언한 만큼 소상공인 정책 중 하나인 지역화폐 예산 증액에 국민의힘이 소극적으로 임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 될 것"이라며 "예산까지도 정쟁의 소재로 삼으려는 자가당착에 빠져서는 안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윤 원내대표 주장 대로 지역화폐가 과연 '모든 국민들이 바라는' 정책일까?

또 여당 원내대표 말대로 과연 지역화폐가 지역경제와 한국경제에 긍정적인 역할만 한 것일까?

윤 원내대표의 '주장'은 사실이라고 단정할 수 없었다. 아울러 소상공인 지원이 곧 지역화폐 활성화라는 식의 주장은 논리적 정합성도 갖추지 못한 부정확한 주장에 불과하다.

윤 원내대표 주장과 반대로 지역화폐 활성화에 반대하는 사람도 많다. 모두가 찬성하는 정책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치의 계절에 여당 원내대표가 지역화폐를 과도하게 칭송하는 이유는 지역화폐가 자당 대통령 후보의 트레이드 마크 중 하나이기 때문일 뿐이다.

이재명 후보는 기본소득 등 각종 '기본' 시리즈와 함께 지역화폐도 자신의 주요 경제정책 브랜드로 내세웠다.

■ 1년 전 논란...'무서웠던' 이재명의 논문 저자 위협

지난 해 가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조세연)이 특정 지역에서만 쓸 수 있는 지역화폐 발행이 손실과 비용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보고서를 발간하자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발끈했다.

당시 조세연 보고서는 지역화폐가 경제적으로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을 거론하고 있었다.

그러자 지역화폐 옹호자인 이재명 경기지사는 "근거없이 정부정책 때리는 얼빠진 국채연구기관"이라며 조세연을 비난했다.

당시 이 지사는 "지역화폐는 골목상권을 살리는 최고의 국민체감 경제정책"이라며 "지역화폐로 지급되는 복지지출은 복지혜택에 더해 소상공인 매출 증대와 생산유발이라는 다중 효과를 낸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역화폐가 지방경제의 효자라며 국책연구기관을 비난했다.

그는 "연구기관이면 연구기관 답게 국민을 중심에 두고 정부정책을 지원해야 한다. 정치적 고려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일방적 주장을 연구결과라고 발표했다.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 사실이 참으로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정부정책을 훼손하는 국책연구기관에 대한 '엄중문책'이 있어야 마땅하다"고 했다.

당시 이 지사는 페이스북 등을 통해 조세연 보고서를 크게 질타했지만, '엄중문책'까지 운운하자 많은 사람들이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경제학 박사 학위를 소지한 2명의 연구자가 심혈을 기울여 쓴 보고서에 대해 대통령을 꿈꾸는 경기지사가 대놓고 '문책'을 거론하자 학자들이 설땅을 잃었다는 우려섞인 목소리마저 나오던 때였다.

결국 필자는 연구자들이 보고서를 손질해야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이게 뭐하는 짓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논리로 접근하는 사람들이 정치를 무서워해야 하는 세상이 됐다. 이런 분위기, 참으로 개탄스럽다.

■ 이재명의 '전문가 무시'하는 지역화폐 옹호

지난해 이재명 지사의 거센 반발과 국채기관에 대한 위협으로 인해 이 보고서가 큰 관심을 모았지만, 동시에 그 내용은 간과되기 십상이었다.

이 지사는 '모 아니면 도'식으로 지역화폐는 좋은 것이라는 우격다짐으로 나왔다. 그러는 사이 연구자들이 공들여 쓴 100페이지에 가까운 보고서의 알맹이는 간과됐다.

정치인이 아무리 '자신에게 유리한 주장을 하더라도' 경제적 진실을 가리지는 못한다.

하지만 당시 이 지사처럼 힘 있는 정치인이 학자들을 위협하기 시작하면, 냉정한 현실에 대한 연구나 비판은 사라지고 만다.

힘 센 자의 눈치나 보고 살아야 하는 위험사회가 되고 마는 것이다. 누구든 자신의 견해를 말할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며, 민주주의다.

당시 필자는 정치적 압력에서 누구보다 자유로워야 할 학자에게 가해지는 뜬금없는 위협을 목격한 뒤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런 사회 분위기는 권력의 입맛이나 신경 쓰면서, 세금이나 축내는 관변 학자들만 양성하고 만다.

대통령이 되려는 자가 자신의(?) 분야를 비판했다고 연구자에게 문책 운운하는 모습은 참으로 맨눈으로 봐주기 역겨운 풍경이었다.

■ 여당 대통령 후보가 지지하는 지역화폐...지역화폐 관련 예산 증액

올해 12월 2일 역대 최대 규모인 607.7조원의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본회의를 통과한 내년도 예산안은 정확히 607조 6,633억원으로 정부안인 604조 4,365억원보다 3조 2,268억원 순증됐다.

정부안보다 5조 5,520억원이 감액되고 8조 7,788억원이 증액됐다. 올해 예산안 대비 8.9% 증가했으며,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으로 정부안보다 늘었다.

예산 가운데 손실보상이나 지역화폐 관련 예산이 70조원에 가까웠다. 소상공인 손실보상금과 매출감소 지원,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 발행 등 68조원 규모의 소상공인 지원사업이 예산이 포함됐다.

이재명 후보가 적극 옹호한 지역화폐 발행 규모는 정부안인 6조원에서 30조원으로 대폭 확대됐다.

중앙정부가 대략 15조원, 지방정부가 15조원의 지역화폐 발행을 지원한다. 지역화폐 발행을 위한 국비 지원 예산은 정부안인 2,402억 8,400만원에서 6,053억원으로 증액됐다.

이후 김부겸 국무총리는 6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지역화폐 발행액 중 정부가 책임지는 부분은 12.5조원 쯤 되고 전체 30조 원 중 나머지 17.5조원 정도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자체 예산을 가지고 운용하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총리는 "지역화폐라는 게 할인을 통해 소비를 진작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액면가가 1만 원짜리가 있다면 9천원에 한다든가 그 차액 만큼만 각 지자체가 책임을 지라는 것"이라며 "각 지자체가 자체 역량이나 지역 사정에 따라 할 수 있게 했다"고 했다.

총리는 그저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나 여당이 읽어주길 원하는 문장을 읽었다.

아무튼 이재명 후보가 소상공인 지원 명분으로 강력하게 주장한 지역화폐는 예산안 통과 과정을 거치면서 '크게' 활성화되는 계기를 맞았다.

■ 지역화폐는 왜 출현했나

지역화폐는 낙후된 지역경제 활성화와 소상공인 보호를 목적으로 도입돼 운영 중이다. 행안부는 지역화폐를 발행하는 지자체에 국고를 지원하며, 지금은 거의 모든 지자체가 지역화폐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뒤 지역화폐를 크게 늘렸으며, 중앙정부도 예산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지역화폐는 말 그대로 지역내 소상공인 매출 증가를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한다. 사용처가 지역 내 소매점으로 제한돼 '지역 소비'를 촉진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특히 '함께 잘 사는' 포용국가를 모토로 내세웠으며 지역화폐, 즉 지역사랑상품권은 대표적인 소상공인 지원정책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다만 '전체 파이' 차원에서 볼 때 지역화폐는 국가경제 '전체'를 활성화하는 데는 한계를 띌 수 밖에 없다. 사실 이 정책은 전체 경제를 활성화시킨다기 보다는 낙후된 지역이나 특정 경제분야를 돕는 '분배정책'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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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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