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태민 칼럼) 자주파의 무리수와 북·중·러에 붙는다는 의심
이미지 확대보기[뉴스콤 장태민 기자]
안보 문제가 한국 경제를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최근 한미 관계가 경색되면서 한국이 서방 세계에서 왕따를 당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나오는 것이다.
미중 패권 다툼이 글로벌 경제의 '기본 디폴트값'인 상황에서 이러면 결국 한국이 경제적으로도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보인다.
금융권에서도 이 문제를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증권사의 한 임원은 "최근 한국 외교부 내 동맹파와 자주파 갈등에서 자주파가 우위를 점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미국이 한국을 불신하는 기류가 역력하다"고 평가했다.
■ 동맹파 vs 자주파...자주파 부상에 한미관계 냉각
흔히 한국 외교 라인을 동맹파와 자주파로 구분한다.
동맹파는 한미동맹을 외교·안보의 최우선 축으로 삼는다. 미국과의 긴밀한 공조를 통한 한반도 안보를 확보해야 한다고 본다.
이재명 정부 내에서 위성락 안보실장이 동맹파의 대표 인물로 꼽힌다. 전통적인 외교부 라인이다.
동맹파의 반대 쪽에 자주파가 있다. 자주파는 말 그대로 미국과의 관계보다 '자주성'을 강조하는 세력이다.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체제 등을 강조한다. 상대적으로 친북·친중·친러 성향을 보인다.
정동영 통일장관, 이종석 국정원장이 자주파의 실력자들이다.
자주파는 최근 한미 관계 악화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일부에선 자주파가 일부러 미국을 자극했다고 보기도 한다.
■ 불안한 한미관계, 정동영의 기밀 노출
올해 3월 정동영 통일장관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북한의 우라늄 농축 시설의 위치 등에 대한 정보를 노출했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확인했던 영변과 강선 외에 '평안북도 구성'을 북한의 '세 번째 우라늄 농축 시설 가동 지역'이라고 언급했다.
이 시설의 우라늄 농축도가 90%에 달한다는 세부 내용과 함께 전년도 영변 원자로에서 플루토늄 16kg을 추출한 것으로 추정한다는 구체적인 수치를 밝혀 논란을 키웠다.
한미 연합 정보자산이 한국의 '자주파' 통일장관에 의해 대외에 노출돼 버린 것이다.
이 문제가 커지자 정동영 장관은 누구나 알 수 있는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구성에서 우라늄 농축이 진행된다'는 점을 알고 있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미국은 사전에 협의 없이 한국 정치권·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중요한 위성 자산 정보 공유를 꺼리게 됐다.
■ 불안한 한미관계, 이종석의 회의 배제
올해 6월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북한 사이버 위협 대응 한미일 외교당국 간 실무그룹 회의에 이종석 국정원장이 참석하지 못했다.
미국 측이 한국 국가정보원의 회의 참석을 배제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큰 파장이 일었다.
이 회의에서 국정원이 빠진 것은 협의체 출범 이후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이달 8일 국정원은 "국익 차이로 종종 오해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적시에 풀어가느냐가 중요하다"면서 "현재 한미 정보당국 간에 오해는 없으며, 국정원은 안보 전 영역에서 미국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국정원장의 회의 배제 문제를 두고 미국이 한국 정보기관을 못 믿는다는 의심이 끊이지 않는다.
■ 불안한 한미관계, 미국을 못 믿는 국방장관
강신철 국방장관은 26일 국방위 종합 국정감사에서 "북한과 전쟁이 일어났을 때 미군을 믿을 수 있느냐"는 발언을 해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이 발언이 논란이 되자 국방부는 '한미 동맹에서 신뢰를 강조한 발언'이라는 쉴드를 쳤다.
하지만 강 장관의 발언은 '한국군이 미군을 못 믿는다'는 인식을 키웠다.
사람들은 국방을 책임진 사람의 말이 부정확하고 가볍다고 우려했다.
최근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도를 넘은 발언을 해 한-미간 갈등이 커진 측면도 있다.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의 "남측철책선 이남이 대한민국 영토"라는 발언은 잘못된 것이다. 강력히 항의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의 핵전력, 미국의 위성 등 정보자산에 의존해야 하는 한국 입장에서 미국과 계속 충돌을 일으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 미국 비자 못 받은 여권의 실력자들
이번 국감 시즌에 정청래 전 민주당 대표는 미국 비자를 받지 못해 미주 국정감사에 참여하지 못했다.
민주당은 미국의 처사에 유감을 표명하기도 했다.
정청래 의원은 1989년 10월 미국 대사관저 점거 사건에 참여해 1990년 3월 징역 2년, 자격정지 2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하지만 미국이 여당 대표를 지낸 동맹국의 정치 거물에게 비자를 내주지 않은 일은 찜찜한 뒷맛을 남겼다.
정 의원을 둘러싼 의혹이 가시지 않은 가운데, 최근엔 진성준 국회 국방위원장도 비자를 발급받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진성준 위원장은 미국 하와이에 있는 미 인도태평양사령부(USINDOPACOM)를 방문하고 미군 고위 지휘관들과 한미 안보협력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출국하려던 참이었다.
진 위원장과 여야 국방위원 3명은 오는 11월 1~5일 하와이를 방문할 예정이었다.
관용비자(A-2)를 신청했으나 진 위원장의 비자 발급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같이 가기로 한 김병주(민주당) 국방위 간사, 임종득(국민의힘) 국방위 간사, 천하람(개혁신당) 국방위원은 비자를 발급받았다.
진 의원은 전북대를 다니다가 군에 입대했으나, 군복무 중 국가보안법을 위반해 징역 3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여당의 거물들이 젊은 시절 반미활동을 한 전력 때문에 미국 입국이 거부되고 있다는 의심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
사실 미국이 한국의 유력 정치인에 대해 '과거 반미 전력'을 근거로 비자를 안 내주는 것도 옹색해 보인다.
하지만 이는 그만큼 현재 한미 관계가 위태롭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울림 없는 '한미 관계' 좋다는 주장
지난 9월 10일 조현 외교장관은 '외교부 성과'로 한미동맹 강화를 꼽았다.
당시 국회에서 '외교부의 성과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나오자 조 장관은 '한미동맹 강화'를 강조했다.
조 장관은 한미 동맹이 보다 강화된 점과 함께 글로벌 사우스 정상 외교 강화, 경제 안보에 걸맞는 외교 등을 '성과'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의 많은 사람들이 '한미 관계 악화'를 걱정하고 있다.
정부는 문제 없다고 강변하지만 뭔가 이상한 일들이 계속되면서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지난 9월 30일엔 미국 하원의 유력 의원이 '한국의 친중 행보'를 우려하는 서한이 공개되기도 했다.
당시 미·중 전략경쟁특별위원회의 존 물레나르 위원장이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에게 발송한 편지가 공개됐다.
이 편지엔 △ 한·중 정상의 밀착에 대한 우려 △ 한국 기업의 대중국 투자(반도체)가 중국의 한국에 대한 영향력을 키울 것이란 우려 △ 미국 기업(쿠팡 등)에 대한 차별과 중국 기업(알리, 테무 등) 우대에 대한 우려 △ 한국 지도부의 미군 비판과 대만의 안보 상황 경시에 대한 우려 등이 담겼다.
몰레나르는 한국의 '미국 차별'에 대해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최근 국정감사에서 강경화 주미대사는 "한미 정보협력이 기대만큼 회복되지 않았다. 백악관과의 고위급 소통도 답답할 정도로 원활하지 않다"고 실토했다.
정부가 아무리 '한미 관계 좋다'고 주장해 본들 외교장관을 지낸 강경화 대사의 이 발언이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물론 미국 고위층과의 소통이 잘 안된다는 강 대사 자신의 발언은 스스로의 무능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 불안한 한미 관계, 경제도 걱정
정부가 한미 동맹에 문제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긴 어렵다.
미국이 중대 회의에 일부러 한국을 배제하는 일, 한국 여당의 유력 정치인들에게 비자를 내주지 않는 일, 한미 군사 협의를 미루는 일 등을 보고 있으면 두 동맹의 관계에 균열이 났다고 볼 수밖에 없다.
경제계에서도 이를 걱정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당장 한국이 미국에 막대한 투자를 약속한 상황에서 미국이 압박 강도를 높일 가능성도 있다. 외교갈등이 통상마찰로 번질 우려도 적지 않다.
특히 미-중 패권이 부딪히는 지금과 같은 시대엔 외교와 통상을 따로 떼서 볼 수가 없다.
일각에선 한국이 미·일·유럽이 아니라 북·중·러와 친해지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의심을 하고 있다.
■ 한·미 많은 사람들 '한미관계' 우려...유럽 매체, 한국의 '친러행보' 우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inancial Times)는 28일자에서 '한국 외교가 이상하다'는 내용을 담은 기사를 보도했다.
한국-우크라이나 관계가 악화된 가운데 한국-러시아의 밀착을 우려하는 보도가 나온 게 예사롭지 않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러시아에 기운 한국이 유럽 동맹들을 불안하게 만든다'(South Korean ‘tilt’ towards Russia alarms European allies)는 기사에서 한국과 러시아의 밀착에 대해 우려했다.
매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협력 강화라는 엄중한 상황에서 한국의 행동이 걱정스럽다고 했다.
이 매체는 최근 한국 선박이 러시아 북극항로를 이용해 컨테이너 운송을 한 사례, 한국산 연료의 러시아 유입, 군사적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는 CNC 공작기계(탄약생산 기계)의 러시아 수출 등 '납득할 수 없는 행동'들을 지적했다.
한국은 미국과 안보동맹을 맺고 있으며, 유럽에는 방산 수출을 확대해 왔다.
유럽은 한국산 K2 전차, K9 자주포 등 방산 장비의 주요 고객이기도 하다.
유럽이 만약 한국이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충분히 이행하지 않는다고 판단할 경우 방산 협력은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한국의 오랜 우방인 미국, 유럽 등 서방권에선 이재명 정부의 '친북, 친중, 친러 행보'가 과도하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미·중 패권경쟁, 더 넓게는 한·미·일·유럽 VS 북·중·러·이란 간 패권다툼이 한창인 와중에 한국이 독재·권위주의 국가들과 접점을 지나치게 넓히려 한다는 우려들도 끊이지 않는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