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콤 김경목 기자] 국제 금값이 사상 처음으로 온스당 5400달러를 돌파하며 또 한 번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달러 약세를 용인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은 가운데 달러 가치가 급락하자,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금으로 자금이 급속히 몰린 영향이다.
29일 오전 기준 국제 금 현물 가격은 온스당 5410달러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전날 온스당 5300달러선을 돌파한 데 이어 하루 만에 추가로 급등한 것이다. 금값이 5400달러를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28일(현지 시각)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금 선물 가격은 전 거래일 대비 3.95% 급등한 온스당 5323달러에 마감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후 아시아 거래 시간대에도 상승세가 이어지며 현물 가격은 5400달러선을 넘어섰다.
이번 급등의 직접적인 계기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다. 트럼프는 최근 “달러 약세가 좋다”고 언급하며 강달러 정책에 대한 기존 기조와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따라 달러화 가치는 4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달러 약세에 대한 헤지(위험 회피) 수요가 금 시장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금값은 이미 가파른 상승 흐름을 이어오고 있다. 금 선물 가격은 올 들어서만 약 22% 상승했고, 지난 1년간 상승률은 90%를 웃돈다. 지난해 한 해 동안의 상승률도 60%를 넘는다.
로빈 브룩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달러 약세가 금값 상승을 직접적으로 부추기고 있다”며 “트럼프 발언 이후 금속 가격이 매우 과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귀금속 전반으로 랠리가 확산되는 모습이다. 은 가격도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3월 인도분 은 선물은 28일 하루에만 8% 넘게 급등하며 온스당 114달러선을 돌파했고, 은 현물 가격 역시 110달러를 넘어 113달러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은 가격은 지난해에만 150% 이상 급등했다.
시장 관계자들은 금값 상승이 단기 재료를 넘어 구조적인 흐름으로 굳어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제이너메탈스의 피터 그랜트 선임 금속 전략가는 “귀금속 랠리는 이제 자체적인 생명력을 갖기 시작했다”며 “금은 과매수 국면에 있지만, 조정이 나타날 때마다 강력한 매수세가 유입되며 상승 추세를 지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금의 다음 목표 가격으로 5400달러 이상을 제시한 바 있다.
시장 변동성 확대와 지정학적 불확실성도 금값을 떠받치고 있다. 그린란드를 둘러싼 미·유럽 간 갈등 가능성, 중동과 동유럽의 지정학적 긴장, 글로벌 자산 시장의 변동성 확대가 안전자산 선호를 자극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달러 약세 우려가 겹치며 미국 자산 비중을 줄이고 실물자산으로 이동하는 이른바 ‘디베이스먼트 트레이드’가 금·은 가격 상승의 핵심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현재의 금 랠리는 1980년 기록했던 역사적 고점을 무색하게 만드는 수준”이라면서도 “향후 달러화 반등,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완화, 러시아·우크라이나 평화 협정 진전 등은 금값 조정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했다.
다만 금융투자업계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달러 약세를 용인하는 태도를 유지하고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한, 금값의 강세 흐름이 쉽게 꺾이기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김경목 기자 kkm3416@newsko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