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6-01-28 (수)

[전문] 특검, 윤석열 전 대통령 사형 구형 관련 논고문과 최후진술

  • 입력 2026-01-14 08:31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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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13일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특검 논고문 전문>

본격적인 논고에 앞서, 이 사건 비상계엄 및 내란 범행과 관련하여 장기간에 걸친 심리와 다수의 공판기일을 통하여 실체적 진실의 규명에 최선을 다하여 주신 재판부의 노고에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아울러 이 사건의 수사와 재판 과정을 엄중한 시선으로 지켜보아 온 국민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헌법 제66조는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영토의 보전·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라고 규정합니다. 제69조는 대통령으로 하여금 취임 시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라고 선서하도록 규정합니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에게 헌법 수호의 막중한 책무를 부여하면서 국민 앞에 “헌법 준수” 및 “국민의 자유와 복리 증진”을 엄숙히 선서하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가보안법 제1조는 “이 법은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 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2024. 12. 3. 현직 대통령인 피고인 윤석열과 김용현 등이 국민이 받을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권력욕을 위해 비상계엄을 수단으로 입법권과 사법권을 찬탈하여 권력을 독점하고 장기 집권할 목적으로 북한의 무력도발을 유인하여 비상계엄 요건을 조성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자, 헌법과 법률이 정한 실체적·절차적 요건도 충족하지 못한 상태에서 국회에서 헌정질서 내에서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정치활동을 내란을 획책하는 반국가 행위로 몰아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군과 경찰을 동원하여 국회의 권한 행사와 기능을 무력으로 정지시키는 한편, 정치적 반대 세력에 대한 체포 및 판 언론사 봉쇄를 시도하며, 국회 무력화의 명분을 만들기 위한 부정선거조작과 선거관리 사무 장악을 위해 군과 경찰을 동원하여 헌법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기능 을 강제로 침해한 사안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행위는 헌법 수호 및 국민의 자유 증진에 대한 책무를 저버리고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직접적이 고 본질적으로 침해한 것으로서, 그 목적과 수단, 실행 양태에 비추어 볼 때 국가보안법이 규율 대상으로 하는 반국가활동의 성격을 갖는다고 평가함이 상당합니다.

나아가 이 사건은 피고인들이 명분으로 지목하였던 이른바 ‘반국가 세력’이 실질적으로는 누구였는지를 명확히 드러냅니다 .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무장 군인 난입과 언론사 단전·단수 시도 등 우리 헌정사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운 ‘반국가 세력’에 의한 중대한 헌법질서 파괴 사건이라 할 것입니다.

특히 이 사건은 대통령 등의 단순한 권한 남용이나 위법한 국정 운영의 차원을 넘어, 장기 집권을 위해 헌법이 설계한 국가 작동 구조를 무력화하고 군사력과 경찰력에 의해 국가권력과 통치구조를 재편하려 한 내란 범행이라는 점에서 국민과 국가에 준 충격과 불안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습니다.

비상계엄 선포 직후부터 국민은 1980년의 전두환·노태우 세력의 비상계엄과권력 찬탈의 기억을 떠올리며 극도의 불안과 분노를 표출하였고, 국회·선관위봉쇄, 정치인 체포 및 언론사 봉쇄 시도, 무장한 군과 경찰의 대규모 동원이라는일련의 사태는 대한민국이 쌓아 올린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성취가 일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사회 전반에 확산시켰습니다.

비상계엄을 앞두고 소집되어 비상계엄 선포시까지 장시간 대기한 국무총리 한덕수, 행안부장관 이상민, 국정원장 조태용, 법무부장관 박성재, 대통령비서실장 정진석, 안보실장 신원식, 민정수석 김주현, 안보실 차장 김태효 등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명 및 자유 그리고 법치를 담당하는 지위에 있던 자들은, 당시 총·칼로 위협받거나 통제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동하고 통신할 수 있었고 실제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핸드폰을 사용하고 있었음에도, 비상계엄을 선포하려 한다는 사실과 이를 위해 국무위원들을 소집하고 있다는 사실을 언론을 통해 국민에 알려 이를 제지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 중 단 한 명이라도 문자메시지 등 통신으로 비상계엄 선포 예정을 외부에 알렸다면, 2024. 12. 3. 비상계엄의 실행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였을 것입니다.

정부와 대통령실에서 공직을 맡았던 자들은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명·자유가 중대하게 위협받는 상황에서, 국민과 국가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책무에따른 국가와 국민에 대한 충성을 저버리고, 피고인 윤석열에 대한 충성과 그에 따른 권력 공유에 대한 탐욕을 선택하였습니다. 친위 쿠데타의 목적은 예외없이 독재와 집권 연장이라는 것을 잘 알고 이에 동참하거나 묵인한 그들이야말로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명 및 자유를 위태롭게 하는 피고인 윤석열 등의 헌정질서 파괴행위, 소위 ‘반국가활동’에 동조한 ‘반국가세력’으로 평가받아 마땅한 자들이라 할 것입니다.

치안과 범죄 대응 직무를 수행하는 경찰청장과 서울경찰청장은 국회·야당 당사·언론사 봉쇄를 지시받고 주저 없이 이를 이행하였고, 지시를 받은 경찰간부들 역시 주저 없이 이를 이행하였습니다. 극히 일부의 예외가 있었지만, 군 사령관들의 지시를 받은 군 간부들 역시 같았습니다.

이번 내란은 국민의 저항과 국회의 신속한 조치로 극복할 수 있었지만, 이와같은 공직 엘리트들의 행태는, 전두환·노태우 세력의 내란을 단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향후 비상계엄을 수단으로 한 ‘친위 쿠데타’에 의한 헌정질서 파괴 시도가 다시 반복될 위험성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합니다.

따라서, 이번 재판을 통해 공직 엘리트들이 자행한 헌법 질서 파괴행위를 전두환·노태우 세력에 대한 단죄보다 더 엄정하게 단죄함으로써, 대한민국이 형사사법시스템을 통해 스스로 헌정질서를 수호할 수 있음을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하에서 구형의 사유가 되는 이 사건 비상계엄을 수단으로 한 내란범행 이 헌법 질서와 국민주 권, 민주주의의 근간에 어떠한 중대한 침해를 초래하였는지, 그리고 각 피고인이 그 과정에서 수행한 역할과 책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주요 혐의에 대한 증거관계]

내란죄는 다수인이 공동하여 국가의 존립과 헌정질서를 침해하는 집합범으로서, 일부 가담자에게도 전부 책임의 원칙이 적용됩니다.

따라서 피고인들이 이 사건에서 발생한 여러 폭동 행위 전부에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중 일부 폭동 행위에 가담하였음이 인정되는 이상, 폭동 전체에 대하여 형사책임을 부담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첫째, ‘범행의 동기 및 사전 모의’ 입니다.

피고인 윤석열, 피고인 김용현, 피고인 노상원은 방첩사령관 여인형 등과 함께 2023. 10. 이전부터 비상계엄을 수단으로 한 내란을 준비하면서, 군과 경찰을 동원하고 계엄사령관 포고령을 발령하여 국회 및 야당 당사를 봉쇄하고, 주요 정치인을 체포·구금함으로써 국회의 기능을 무력화한 후, 국가비상입법 기구를 통하여 입법권과 사법권을 장악하고 정치적 반대 세력을 일거에 제거하여 권력을 독점하고 헌법 개정을 통해 장기간 집권할 목적을 공유하였습니다.

이들은 선제적 군사 조치로 북한의 무력도발을 유인하는 방식으로 군사적 사태 등 비상계엄 선포 요건을 조성하려 하였으나 그러한 여건이 형성되지 않자, 야당의 입법 활동과 공직자 탄핵, 예산 삭감 등을 내란을 획책하는 반국가행위로 몰아, ‘반국가세력 척결’이라는 사유를 내세워 비상계엄을 선포하기로 계획·모의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사전 모의 사실, 비상계엄을 통한 권력 독점과 장기 집권 목적은 노상원의 수첩, 여인형의 휴대전화 메모,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에 대한 지시 문건 등 객관적 자료와 모의에 참여한 피고인 김용현, 곽종근, 이진우, 여인형 등의 진술로 충분히 입증됩니다.

둘째,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과 그에 대한 인식’ 입니다.

이 사건 비상계엄은 헌법과 계엄법이 정한 실체적·절차적 요건을 모두 결여한 명백한 위헌·위법한 조치입니다.

헌법과 계엄법은 대통령의 국가긴급권 남용을 방지하기 위하여 비상계엄의 실체적 요건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으나, 계엄 선포 당시 이를 정당화할 객관적 사정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사정은 평균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식할 수 있는 것이었고, 피고인들 역시 그 위헌·위법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국무회의의 실질적 심의를 거치지 아니하였고, 사전에 국무위원의 부서도 없었으며, 국회에 지체없이 통지하지도 아니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절차적 하자는 한덕수 국무총리, 최상목 기획재정부장관 등의 진술로 충분히 입증됩니다.

셋째, ‘위헌·위법한 포고령 발령’ 입니다.

이 사건 폭동 실행 과정에서 헌법과 법률에 반하는 포고령을 발령하고, 이를 근거로 계엄해제요구안 의결을 위하여 국회에 진입하려는 국회의원을 체포하려 하였으며, 계엄에 반대하는 국민의 정치적 의사표시를 제한하는 등 국민을 강압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포고령의 위헌·위법성은 과거 유사한 내용의 포고령 조항이 위헌·위법하다고 판단된 다수의 판례와 피고인 윤석열 및 피고인 조지호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 등에 의하여 명확히 확인됩니다.

따라서 포고령 발령 및 집행 행위가 폭동 행위에 해당한다는 점은 충분히 입증됩니다.

넷째, ‘군·경을 동원한 국회 봉쇄 및 출입 통제’입니다.

이 사건 내란 실행 과정에서 군과 경찰을 동원하여 국회를 봉쇄하고, 국회의원들의 본회의장 진입을 차단함으로써 국회의 계엄해제요구안 의결을 방해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국회 CCTV 영상, 피고인 김봉식과 서울청 경비부장 주진우, 피고인 목현태와 국회사무총장 김민기 사이의 통화 녹음 등 각종 통화 녹음, 일반 및 비화폰 통화 내역, 서울청 지휘망 및 영등포경찰서 행사망 녹취록, 경찰 지휘 무전망 주요 지시 사항, 출동 현황, 작전일지 및 작전 경과, 특전사 707특임대 텔레그램 단체대화방 대화 내역, 수방사령관 이진우의 휴대전화 포렌식자료, 국회사무처가 회신한 비상계엄 관련 피해 자료, 그리고 피고인 윤석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문 등 객관적 자료와 특전사령관 곽종근, 수방사령관 이진우, 계엄사령관 박안수, 경찰청 경비국장 임정주, 서울청 공공안전차장 오부명, 특전사 1공수 여단장 이상현, 특전사 707특임단장 김현태, 수방사 1경비단장 조성현, 수방사 군사경찰단장 김창학 등 진술로 명확히 드러났습니다.

다섯째, ‘군·경을 동원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봉쇄 및 출입 통제’입니다.

이 사건 내란 실행 과정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과천청사를 점거하고 서버실을 폐쇄하는 한편, 제2수사단을 이용하여 선관위 주요 직원들에 대한 체포를 시도함으로써 선관위의 기능을 마비시켰습니다.

롯데리아 안산상록수점 및 선관위 CCTV 영상, 피고인 노상원 차량 블랙박스 영상, 국방부 조사본부 수사관 명단과 이를 기초로 한 국방부 일반명령, 국방부 인사 명령 초안, 비화폰 및 일반전화 통화 내역, 각 부대 출동 현황 등 객관적 자료와 방첩사령관 여인형, 정보사령관 문상호, 국방부 관계자 및 선관위 직원 등의 진술로 충분히 입증됩니다.

또한 경찰과 특전사 병력은 선관위 외곽 및 주요 시설에 대한 경계와 점거·출입 통제를 실행하였으며, 이는 선관위 CCTV 영상, 112망 무전 기록, 작전일지 및 작전 경과보고 등 객관적 자료와 관련 지휘관들의 진술로 확인됩니다.

여섯째, ‘주요 정치인 등 체포조 운영’입니다.

이 사건 내란 실행 과정에서 국회의원과 주요 정치인 등 이른바 ‘반국가 세력’으로 지목한 인사들의 신병을 확보할 목적으로 합동체포조를 편성·운영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반국가세력 합동체포조 관련 계획이 기재된 방첩사령관 여인형의 휴대전화 메모와 피고인 노상원의 수첩, 국수본 및 경찰 간부와 방첩사·국방부 조사본부 관계자들 사이의 통화 녹음, 피고인 윤석열과 국정원 1차장 홍장원, 피고인 조지호와 방첩사령관 여인형 등 주요 인물들 간의 통화 내역,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 대화 내역, 홍장원 1차장의 자필 메모, 실무자들 사이의 통화 및 문자메시지 내역, 비상대기 인력 현황과 부대일지, 그리고 피고인 윤석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문 등 객관적 자료와 방첩사령관 여인형, 국방부 조사본부장 박헌수, 국정원 1차장 홍장원, 방첩수사단장 김대우, 방첩사 수사조정과장 구민회 등의 진술로 충분히 입증됩니다.

일곱째, ‘주요 언론사 단전·단수 및 민주당사 봉쇄’입니다.

정치적 반대 세력 제거를 위해 1공수여단 등 특전사 병력을 투입하 민주당사를 봉쇄하고, 당사 내부에 있던 인원 전원을 강제로 끌어내려 하였고, 언론사 단전?단수를 통한 봉쇄를 통해 비상계엄 반대 여론 확산 을 차단하려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특전사 작전일지, 1공수 여단장 이상현과 부대원 간의 통화 녹음 등 객관적 자료와 특전사령관 곽종근, 1공수여단 참모장 김병준, 3대대장 장희재 등의 진술과 행정안전부 장관 이상민, 이상민의 지시를 하달받은 소방청 관계자들의 진술로 충분히 입증됩니다.

[피고인들 양형 관련]

형법 제51조 ‘양형의 조건’은, 형을 정함에 있어서는 1. 범인의 연령, 성행, 지능과 환경, 2. 피해자에 대한 관계, 3.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4. 범행 후의 정황 등을 참작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 내란 범행의 중대성에 대하여 말씀드린 후 피고인들에게 개별적으로 적용되는 양형의 조건들을 살펴보는 방법으로 피고인들에 대한 구형 의견을 진술하겠습니다.

□ 내란 범행의 중대성

1. 공동체 존립 위협하는 내란 범행의 중대성

내란죄는 폭동에 의하여 불법으로 국가조직의 기본 제도를 파괴함으로써 헌법이 설계한 민주적 기본 질서와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범죄로서, 그 성격과 중대성에 있어 어떠한 범죄와도 비교될 수 없는 중대 범죄입니다.

과거 사례는, 내란은 그 본질상 군사력 또는 이에 준하는 무력 사용이 수반될 수밖에 없고, 특정 세력의 권력 장악이나 정권 교체에 그치지 아니하며, 권력 장악과 유지 과정에서 국가 공동체의 근간이 파괴되거나 국민 다수의 생명·신체·재산 및 자유가 무차별적으로 침해되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회공동체의 존립과 안전을 근본적으로 해하는 범죄에 대하여는 가장 극한 형벌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우리 형법 역시 내란죄에 대하여 우두머리의 경우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를, 모의 참여 등의 경우에도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금고를 법정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내란죄의 중대성과 위험성을 고려하여 ?헌정질서 파괴 범죄의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을 제정함으로써, 내란·외환의 죄 등에 대하여 공소시효의 적용을 배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존립 자체를 위협한 이 사건 내란 범행에 대한 엄정한 법적 책임 추궁은 헌정질서 수호와 형사사법 절차의 신뢰 및 정의 실현을 위한 최소한이 조치라 할 것입니다.

2. 1980년 이후 재현된 헌정 파괴

2024. 12. 3. 피고인 윤석열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1980. 5. 17. 전두환·노태우 세력이 권력 찬탈을 위하여 단행한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 이후 44년만에 이루어진 것으로서, 우리 헌정사에서 갖는 의미와 충격이 매우 큽니다.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는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유혈 진압으로 이어졌고, 국가 최고 권력이 헌법의 울타리를 벗어나 공권력을 동원하여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할 경우 어떠한 참혹한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우리 사회에 뚜렷하게 각인시켰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다시는 비상계엄을 수단으로 한 권력 찬탈과 헌정파괴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국민적 합의로 이어졌고, 이후 1987년 6월 항쟁을 거쳐 대통령 직선제 도입, 국회 권한 확대, 헌법재판소 설치 등 헌법 개정을 통해 자유민주적 헌정질서가 확립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대통령을 비롯한 국가권력이 헌법의 울타리 안에서 제도적으로 견제·통제되는 체제를 구축하였고, 국민 스스로는 물론 국제사회로부터도 안정된 민주주의 국가로 평가받아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비상계엄 선포와 이 사건 내란 범행으로 인하여 그동안 어렵게 쌓아왔던 ‘대한민국은 안정된 민주국가’라는 국민의 자긍심과 국제사회의 신뢰는 심각하게 훼손되었습니다.

3. 정치적 중립 및 국민에 대한 충성의무 있는 군·경 동원

대한민국헌법 제5조 제2항은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과 본질적 임무를 명시하고 있으며,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규정 제20조는 군인의 국민의 생명·신체 보호와 국민에 대한 충성의무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조직 및 운영에 관한 법률 또한 경찰의 본질적 임무가 국민의 자유와 권리 및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사회공공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있음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 반복되어 온 군 병력 동원에 의한 군사 반란과 국헌문란 행위에 대한 깊은 반성을 바탕으로, 군과 경찰이 국내 정치 갈등이나 권력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동원되어서는 안 된다는 헌법적·역사적 교훈을 제도적으로 확립한 결과입니다.

군과 경찰은 그 임무 수행의 특성상 파괴력과 살상력을 가진 무력이 수반되고 집중될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이를 통제하는 국가권력에는 해당 무력을 헌법과 법률에 따라 적법하고 엄격하게 관리·운영하여야 할 강력한 의무가 부과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 윤석열 등은 군과 경찰을 동원한 내란 범행을 감행함으로써, 군·경의 정치적 중립성과 본질적 기능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성실하게 복무하던 다수의 군인과 경찰의 사기 및 그에 대한 국민 신뢰에 중대한 손상을 입혔습니다.

4. 국민 갈등 및 국론 분열

비상계엄 선포 이후 피고인 윤석열에 대한 수사 및 탄핵 재판 과정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이 사건 내란 범행은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갈등과 국론 분열을 초래하였고, 그러한 현상은 일시적인 것에 그치지 아니한 채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갈등과 국론 분열은 정치적 반대 세력을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하고 그 척결을 내세운 비상계엄 선포가 없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며, 또한 비상계엄 해제 후 피고인 윤석열 등의 선동이 없었다면 확산되고 지속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특히 피고인 윤석열에 대한 체포·구속 과정에서 이루어진 대규모 찬반 집회는 법원 폭력 사태로까지 확산되었고, 이후 탄핵 심판 선고 국면에 이르러서는 대규모 경찰력 동원이 불가피해지는 등 사회 전체의 안정과 법질서가 심각하게 훼손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습니다.

5. 대한민국 경제 상황 악화 및 국가 신인도 추락

비상계엄 선포 이후 환율 급등, 주가 급락, 소비 심리 위축 등 즉각적이고 중대한 경제적 충격이 발생하였고, 이는 단기적 시장 변동을 넘어 경제 전반의 불안정성을 심화시켰습니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주식시장은 큰 폭의 하락을 기록하여 막대한 시가총액이 증발하는 등 국가 경제에 중대한 부담을 초래하였습니다.

나아가 국책 연구기관과 한국은행은 해당 사태와 정치적 불안정이 경제성장률 하락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였음을 공식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이 사건 내란 범행이 거시경제 전반에 실질적인 악영향을 미쳤음이 확인됩니다.

더욱이 이 사건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수준과 국가 경쟁력에 대한 국제적 평가에도 중대한 타격을 주어, 주요 국제기관의 민주주의 지수 및 국가 경쟁력 순위가 하락하고 해외 언론 역시 이를 헌정질서와 민주주의의 중대한 후퇴로 평가하였습니다.

이러한 평가는 대한민국이 장기간 축적해 온 국가 신뢰와 국제적 위상을 단기간에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하였으며, 그 부정적 영향은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국가 신인도와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는 일단 훼손될 경우 회복에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이 사건 내란 범행이 초래한 부정적 영향은 결코 가볍게 평가될 수 없습니다.

6. 재발 방지 필요성

민주주의는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최고의 정치제도이지만,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극단적인 정치 세력에 의해 파괴될 수 있음이 분명합니다.

피고인 윤석열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하여 비상계엄을 하였다고 주장하나, 그가 위헌, 위법적인 비상계엄을 통하여 국회 및 선거관리위원회의 기능을 훼손하고, 국민의 정치적 자유, 언론, 출판의 자유, 생명, 신체의 자유 등에 중대한 위협을 가하고, 전공의 처단 등 특정 직업군에 대한 위해적인 언사로 직업의 자유 등을 침해한 것은 그 자체로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를 파괴한 것입니다.

나아가 이 사건은 비상계엄의 준비와 실행이 대통령 개인의 단독적 판단에 따른 것이 아니라, 이를 인식하고도 비상계엄 성공 후의 권력 공유를 위해 다수의 공직 엘리트들의 동조와 방임에 따라 실행에 이른 구조적 사안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관계는 이번 비상계엄을 수단으로 한 내란 범행이 충분히 제지될 수 있었음에도 제지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향후 유사한 헌정질서 파괴 시도가 다시 반복될 위험성이 결코 작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대한민국은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월 민주화운동 등 민주주의 쟁취를 위한 수많은 희생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바, 이러한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다시는 권력의 독점과 유지를 목적으로 민주주의가 훼손되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 사건 법정에서 피고인들과 그에 가담하거나 동조한 세력에 대한 엄정한 책임 추궁과 단죄는 헌정질서를 수호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치라 할 것입니다.

7. 엄정한 형벌의 필요성 및 양형에 관한 판단

일반적으로 사회공동체의 존립과 안전을 근본적으로 해하는 범죄에 대하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엄정한 형벌로 대응하여 왔으며, 형벌의 양정에 있어서는 범행 이후의 태도, 특히 진정한 반성 여부가 가장 중요한 고려 요소로 작용하여 왔습니다.

이는 형벌이 단순한 응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기본 질서를 수호하고 유사 범행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규범적 기능을 수행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피고인 윤석열 등은 이 법정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행위가 헌법 질서와 민주주의에 어떠한 중대한 침해를 초래하였는지에 대하여 진지한 성찰이나 책임 인식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피고인 윤석열 등은 ‘독재와 장기 집권이라는 권력욕에 따른’ 위헌·위법적인 비상계엄의 선포와 실행을 자유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통치 행위라고 견강부회하고 있습니다.

8. 이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인 국민의 엄벌 호소

이 사건 내란 행위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는 독재와 권위주의에 맞서 오늘의 민주주의와 자유를 피와 희생으로 지켜낸 우리 국민입니다.

국민의 숭고한 희생으로 지켜 온 민주주의와 법치 등 소중한 헌법 가치와 자유 등 핵심 기본권이 이 사건 내란 행위로 한 순간에 무너져 버렸습니다.

피고인 윤석열 등의 이 사건 내란 행위로 인해 국민이 받은 충격과 공포, 불안, 상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고, 국민이 입은 이와 같은 피해들은 피고인들이 그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회복이 불가능합니다.

피고인 윤석열 등은 국민으로부터 용서받지 못하였고, 용서받을 마음도, 태도도 없어 보입니다. 이에 국민은 강력한 처벌을 희망하고 있고, 정의 수호의 마지막 보루인 법원이 그 역할을 해 줄 것을 기대하며 믿고 있습니다.

□ 피고인들 개별 양형 사유

1. 윤석열

피고인은 대통령으로서 이 사건 범행의 모의 단계부터 실행 단계까지 주도한 내란 우두머리로, 그 법정형이 사형 또는 무기징역, 무기금고밖에 없습니다. 결국 법정형 하한을 감경할 것인지와 피고인에게 부과할 형으로 사형과 무기를 택할 것인지는 기본적으로 형법 제51조에서 양형의 조건으로 정한 피고인의 연령, 성행, 지능과 환경, 피해자에 대한 관계,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합니다.

먼저 피고인의 연령, 성행, 지능과 환경 등을 살펴보면, 이 사건 범행은 피고인이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악용한 지능적·계획적·조직적 범행으로 연령, 성행, 지능과 환경 등 측면에서 피고인에게 특별히 유리하게 참작할 사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법률가로서 검찰총장까지 지낸 피고인은 대통령으로서 누구보다 앞장서 헌법을 준수하고 헌법 질서를 수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잘 알면서도 헌법 질서 파괴로 나아간 점에서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다음, 범행의 동기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피고인은 비상계엄 선포 사유로 주장하는 정치적 상황이 전개된 2024년 12월 무렵보다 훨씬 이전인 2023년 10월 이전부터, 비상계엄을 수단으로 사법권과 입법권을 장악하여 권력을 독점하고 장기간 집권할 목적으로 비상계엄을 준비하여 왔습니다.

우리는 역사적 경험을 통하여 권력을 가진 자가 내세운 친위 쿠데타의 명분이 실상은 허울에 불과하였고, 그 본질이 권력의 독점과 유지를 목적으로 한 것이었음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비상계엄 당일 실제로 실행된 행태와 비상계엄 준비 과정, 그리고 비상계엄 당일 생성·교부된 각종 문건에 비추어 볼 때, 비상계엄하에서 실행되었거나 지시대로 실행될 경우 그 행위들은 필연적으로 헌법 개정을 통한 권력의 독점과 유지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돌이킬 수 없는 조치들에 해당합니다.

임기가 3년 6개월 남아 있던 국회를 구성하는 약 190석의 야당을 이른바 반 국가세력으로 몰아 척결함으로써 국회의 기능을 무력화하고, 대통령 임기 종료일인 2027. 5. 9. 이후까지 국가비상입법기구를 존속시키기 위해서는, 비상계엄 상태를 지속한 채 대통령 선출과 관련된 헌법을 개정하여 대통령직을 유지하는 구조가 전제될 수밖에 없습니다.

헌법 개정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요하므로, 국회의 기능을 정지시키고 이를 국가비상입법기구로 대체하지 않고서는 비상계엄 세력이 의도하는 헌법 개정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아울러 대통령 임기 종료 이전에 새로운 국회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헌법에 의해 보장된 국회의원의 임기를 단축하는 헌법 개정 역시 필수적으로 요구됩니다.

이와 같은 일련의 조치들은 단기간의 권력 향유를 목적으로 선택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며, 단지 잔여 임기 약 2년 5개월 동안의 권력 유지를 위하여 비상계엄을 주도하거나 이에 가담할 합리적 이유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결국 비상계엄 관련 문건과 실제 행태 등 객관적 자료를 종합하면, 대통령 임기 종료까지 약 2년 5개월을 남긴 피고인 윤석열 등은 야당을 일거에 척결하여 국회의 기능을 정지시키고, 국가비상입법기구를 통해 입법권을 장악한 뒤, 대통령 임기 종료 이전 헌법을 개정함으로써 권력의 장기화를 도모할 목적으로 비상계엄을 기획하였음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정치적 반대 세력 제거를 통한 권력의 독점과 유지, 즉 독재와 장기 집권을 목적으로 장기간 준비한 끝에 이 사건 비상계엄을 선포하였음이 명백하고, 피고인은 이러한 목적을 감출 필요가 있고, 인정할 수도 없으므로 ‘경고성 계엄’ 등을 주장하며 비상계엄의 동기를 야당에 돌리는 허위 주장을 반복 하며 지지자들을 선동하면서 실체를 왜곡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피고인의 이 사건 내란 범행은 과거 권력의 찬탈과 유지를 목적으로 비상계엄을 남용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순전히 피고인의 권력 독점과 장기 집권 권력욕에 오로지 국가와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서만 사용되어야 할 군·경 등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한 것이므로 그 죄질이 매우 무겁습니다.

다음으로 범행의 수단과 방법에 대하여 보겠습니다.

피고인은 2024. 8.경 피고인 김용현을 국방부장관으로 지명할 무렵 제기된 계엄 의혹에 대하여 대통령실과 피고인 김용현의 입을 통해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라며 의혹을 일축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 피고인은 권력의 독점과 유지라는 사욕을 위해 이 사건 비상계엄을 장기간에 걸쳐 치밀하게 모의,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국민을 속인 것입니다.

피고인은 비상계엄 실행에 필요한 군·경을 동원하기 위하여 특전사·수방사·방첩사를 지휘하는 사령관을 중장으로 진급시켜 보직시킨 뒤 이들을 수시로 대통령 관저로 은밀히 불러 당시의 여소야대 정치 상황이 비상계엄 선포 없이는 해결이 어려운 것처럼 반복적으로 주입하는 방법으로 그들을 위헌적 비상계엄에 유인하였고, 결국 그들은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내란의 핵심 공범이 되어 구속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어 피고인은 헌법상 비상계엄 선포를 위해서는 국무회의 심의를 반드시 거쳐야 함에도, 국무회의 심의도 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려 하였다가 향후 절차상 논란이 될 것으로 예상되자 의사정족수에 필요한 최소한의 국무위원만 선별·소집한 채 실질적인 심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해 버림으로써 대통령의 권한 남용을 견제해야 할 국무회의의 기능을 무력화하고, 소집통지를 받지 못한 국무위원들의 헌법상 권한인 국무회의 심의권을 침해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마치 국무회의 심의를 적법하게 거친 것처럼 계엄 해제 이후에 국무총리와 국무위원들의 부서를 조작하기도 하였습니다.

피고인이 단순히 위헌적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에 머물지 않고,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에는 홍장원 국정원 차장 등에게 직접 주요 정치인 체포를 위한 위치 확인을 지시하기도 하였고, 국회의 계엄해제요구안 의결을 저지하기 위해 경찰청장인 피고인 조지호에게 직접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포고령을 근거로 해 국회에 진입하고자 하는 국회의원들을 체포하라고 지시하고, 수방사령관 이진우, 특전사령관 곽종근에게 직접 국회 봉쇄를 재촉하며, 본회의장에 있는 국회의원을 총으로 위협하여 강제로 끌어내거나 전기를 차단하는 지시까지 하여 그 지시가 현장 군·경에 하달되도록 하였습니다.

피고인은 국회가 계엄해제요구안을 의결한 이후에도 지체없이 계엄 해제를 선포하지 않은 채 국회의 해제 요구를 거부하거나 재차 비상계엄을 선포할 방안까지 모색하다가,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의결 후 군의 태도가 소극적으로 바뀌어 따르지 않을 것으로 보이자, 계엄 해제를 공표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며, 자발적으로 중단한 것이 아닙니다.

피고인은 비상계엄 선포 요건을 조성하기 위하여 북한의 무력도발을 유인하기 위해 선제적 군사 조치를 기획하고 실행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 정보수집과 공작을 임무로 하는 국군정보사령부를 중심으로 제2수사단을 구성하여 고문으로 부정선거를 조작하려 하였고, 단전 단수라는 비인간적 방법을 통해 비판 언론사를 폐쇄하려 하였습니다.

피고인이 실제 실행하거나 기획한 범행 수법은 형을 가중할 사유가 된다 할 것이며 감경의 여지는 전혀 없습니다.

피해자에 대한 관계 및 범행 후의 정황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사건 내란 범행으로 인한 궁극적인 피해는 결국 피고인이 대통령으로서 헌법 질서를 수호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신뢰했던 국민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피고인은 계엄 선포 이후 국가와 사회에 엄청난 피해와 해악을 초래한 이 사건 내란 범행을 진지하게 반성하기는커녕 국민에게 단 한 번도 제대로 사과를 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독재와 장기 집권을 위해 이 사건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유를 숨긴 채 비상계엄의 원인을 야당 탓으로 돌리고, ‘경고성 또는 호소형 계엄’ 등의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을 하며, 이 사건 비상계엄이 정당한 것처럼 지지자들을 선동하고, 사회 분열과 국민 상호 간 반목을 부추기는 등, 국민을 분노케 하고 있습니다.

피고인의 이와 같은 행위는 급기야 피고인의 선동에 영향을 받은 정치인 등의 피고인 체포방해 시도와 일부 극렬 지지자들의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동 사태를 유발하기도 하였습니다.

나아가 피고인은 구속된 이후에도 수사 및 재판 절차에 성실히 임하기는커녕,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을 거부하거나 조사를 회피하는 등 형사사법 절차 자체를 경시하는 태도를 보여왔습니다. 이는 자신의 범행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거나 진실을 밝히려는 최소한의 자세조차 결여되어 있음을 드러내는 것으로서, 피고인에게 어떠한 반성의 기미도 찾아볼 수 없음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피고인은 탄핵 심판과 이 사건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의 지시로 범행에 가담한 하급자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그들의 가담 행위에 책임지려는 자세를 보이기는커녕, 용기를 내어 사실대로 진술하는 사람들을 거짓말쟁이로 몰아세우는 등으로 그 책임을 전가하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재발가능성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1980년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 이후 민주화를 거치고 재판을 통해 1997년 5·17 군사 반란 등을 주도한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무기징역 등으로 단죄하면서, 우리 국민은 다시는 비상계엄을 수단으로 한 친위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고, 이 사건 비상계엄 선포 당시에 많은 국민이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듣고 가짜 뉴스로 취급하였습니다.

하지만 전두환·노태우 세력 단죄의 역사가 있음에도 비상계엄을 수단으로 내란을 획책한 피고인을 비롯한 공직 엘리트들의 행태를 통해, 국민은 비극적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다시금 전두환·노태우 세력에 대한 단죄 보다 더 엄정한 단죄가 필요함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피고인에 대한 형을 정함에 있어서는 재발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란우두머리죄에 대한 법정형은 최고 사형, 최저 무기금고입니다.

위와 같은 양형 조건에 비추어 볼 때, 참작할 만한 감경 사유가 전혀 없는 피고인에 대하여 법정 최저형인 무기형으로 형을 정하는 것이 과연 양형의 원칙에 부합하는지에 관하여 신중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대한민국은 사실상 사형 폐지 국가라고 합니다. 사형을 집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형은 구형되고 있고 선고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형사사법에서의‘사형’은 집행하여 사형을 시킨다는 의미가 아니라, 공동체가 재판을 통해 범죄 대응 의지와 그에 대한 신뢰를 구현하는 것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입니다.

피고인은 반성하지 않습니다. 양형에 참작할 사유가 없고 오히려 중한 형을 정해야 합니다. 따라서 법정형 중 최저형으로 형을 정함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법정형 중 최저형이 아닌 형은 ‘사형’ 밖에 없습니다.

이에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 김용현

피고인은 경호처장이자 국방부장관으로서, 이 사건 내란 모의 단계부터 실행 단계까지 피고인 윤석열과 한 몸처럼 움직였고, 수사 개시 이후 현재까지 피고인 윤석열과 동일한 입장으로 이 사건 수사와 재판에 임하고 있습니다. 피고인은 단순 가담자가 아니라 범행 전반을 지배·통제한 자로서,

우두머리와 다를 바 없는 지위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앞서 피고인 윤석열에 대한 형을 정함에 있어 고려해야 할 양형 사유들은 피고인에게도 기본적으로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할 것입니다.

피고인은 경호처장 재직 시부터 피고인 윤석열과 비상계엄을 모의·준비하였고, 그 과정에서 당시 신원식 국방부장관으로부터 대통령의 비상계엄 계획을 단념시키라는 조언을 받았음에도 멈추지 않고 피고인 윤석열과 비상계엄 모의를 진행하면서, 민간인인 피고인 노상원과 구체적 실행 방안 등 비상계엄을 기획하고 준비하였습니다. 이러한 계획 하에 피고인은 경호처장에서 국방부장관으로 임명되었고, 국방부장관의 지위와 권한을 이용하여 피고인 노상원과 함께 피고인 윤석열의 권력 독점과 장기 집권을 위한 비상계엄 선포 및 선포 후 조치 사항을 치밀하게 계획하고 준비하였습니다.

피고인은 국방부 장관 인사청문회 당시 비상계엄 계획설에 대하여 "어떤 국민이 용납하겠는가", "우리 군이 과연 계엄을 따르겠는가", "저라도 안 따를 것 같다", "시대적으로 안 맞으니 우려 안 하셔도 된다"며 계엄 의혹을 일축하며 국민과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를 철저하게 속였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국방부장관 취임 직후부터 피고인 노상원과, 그리고 방첩사령관 여인형과 비상계엄 선포 요건 조성을 위해 북한의 무력도발을 유인할 선제적 군사 조치 및 비상계엄 동원 인력 등을 기획하고 실행하였습니다.

피고인은 일련의 국헌문란 목적 폭동 행위 전반에 관하여 피고인 윤석열을 보좌하며 국방부장관으로서 총괄 지휘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피고인은 '비상계엄 선포문', '계엄 담화문', '포고령' 등 주요 문건의 작성에 관여하였고, 국회 및 민주당사 봉쇄, 국가비상입법기구 설치, 언론사 단전·단수 조치 등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찰청장, 기획재정부장관 및 행정안전부장관 등이 이행할 조치 사항에 관한 지시 문건을 마련하였습니다. 아울러 국무회의 심의의 외관을 갖추기 위하여 국무위원을 선별적으로 소집하고, 방첩사령관·특전사령관·수방사령관을 상대로 출동 준비 태세를 지시하였으며, 계엄 선포 이후에는 지휘통제실에서 국회 및 선거관리위원회 봉쇄 상황을 직접 지휘·통제하는 한편, 방첩사령관에게 주요 정치인의 신속한 체포를 지시하는 등 이 사건 폭동 행위의 실행 전반을 주도하였습니다.

범행의 동기와 관련하여, 피고인과 비상계엄을 준비한 노상원과 여인형의 메모 등을 통해 피고인은 피고인 윤석열과 권력 독점과 장기 집권을 목적으로 비상계엄을 준비하고 실행한 사실이 확인됩니다. 결국 피고인은 비상계엄을 수단으로 독재 권력을 창출하여 장기간 공유하기 위한 권력욕에 적극적으로 피고인 윤석열과 비상계엄을 모의하고 실행한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적 경험을 통해, 과거 전두환·노태우 내란 세력이 비상계엄에 의한 권력 찬탈에 성공한 후 주동자는 2명이 대통령이 되었고, 참여자들은 모두 권세와 부귀영화를 누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피해자에 대한 관계 및 범행 후의 정황 역시, 피고인 윤석열이 보인 행태와 조금도 다르지 않고, 피고인 윤석열을 적극적으로 비호하고 있습니다. 피고인은 피고인 윤석열과 마찬가지로 계엄 선포 이후 국가와 사회에 엄청난 피해와 해악을 초래한 이 사건 내란 범행을 진지하게 반성하거나 사과한 사실이 없습니다. 오히려 국회의 계엄해제요구안 의결 직후 전군 지휘관 화상회의에서는 '중과부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며 크게 아쉬워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나아가, 피고인은 '경고성 또는 호소형 계엄' 등의 납득하기 어려운 피고인 윤석열의 주장을 옹호하며, 지지자들을 선동하고 사회 분열과 반목을 부추기는 등 국민을 분노케 하고 있습니다.

피고인은 사용하던 노트북 등 증거를 적극적으로 인멸하였고, 법정에서까지 자신의 지지자들을 선동하며 궤변만 늘어놓고, 실질적으로 법정을 모욕하고 소동에 이르는 행위를 방관, 조장하며 형사사법시스템과 법치주의에 대한 신뢰를 훼손시켰습니다.

이와 같이 피고인은 이 사건 내란 범행에 있어 피고인 윤석열과 함께 이를 기획·주도하며 군을 동원한 범행의 실행 구조를 설계·운영한 핵심 인물로서, 그 책임이 극히 중대하고 참작할 만한 정상은 전혀 없으므로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합니다.

이에 피고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 최후진술 전문>

존경하는 재판장님, 재판부 판사님

1년 가까운 긴 시간 공정하고 현명한 소송지휘로 충실한 심리를 해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불과 몇 시간의 계엄을 내란으로 몰아 국내의 모든 수사기관들이 달려들어 수사했고, 이후에 초대형 특검까지 만들어져 수사를 했습니다. 임무에 충실했던 수많은 공직자들을 상대로 원하는 진술을 하지 않으면 마구잡이로 입건해 신병을 확보하고 무리한 기소를 남발하였습니다. 현대 문명국가 역사에 이런 일이 있었나 싶습니다. 하지만 “숙청과 탄압”으로 표현되는 광란의 칼춤 속에서도 법과 원칙에 따라 중심을 잡고 재판을 이끌어 주신 재판부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어느 방송인은 “방송으로 전국에, 전 세계에 시작한다고 알리고 두세 시간 만에 국회가 그만두라고 그만두는 내란 보셨습니까?”, “총알 없는 빈총 들고 하는 내란 보셨습니까?”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이 지난 1년간 이 나라를 휩쓴 광풍의 허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건 공소장은 객관적 사실과 맞지 않는 망상과 소설일 뿐입니다. 저도 과거 26년간 수사와 공판 업무를 담당했지만, 이렇게 지휘체계도 없이 중구난방으로 여러 기관들이 미친 듯 달려들어 수사하는 것은 처음 봅니다. 올바른 지휘체계가 없으니 제대로 된 판단도 없이 무조건 내란몰이라는 목표로 수사가 아닌 조작과 왜곡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오래전부터 지배해 온 어둠의 세력들과 국회에서 절대다수의 의석을 가지고 있는 민주당의 호루라기 소리에 맹목적으로 달려들어 물어뜯는 이리떼들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리떼들의 내란몰이 먹이가 된 바로 그 비상계엄령을 저는 2024. 12. 3. 밤 10시 30분경 선포하였습니다.

반국가세력, 체제전복세력, 외부 주권침탈 세력과 연계하여 거대 야당 민주당이 거짓 선동으로 여론을 조작하고 정부와 국민 사이를 이간질했습니다. 반헌법적인 국회 독재를 벌이며 헌정을 붕괴시키고 국정을 마비시키며 나라가 망국의 위기에 처하도록 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독립과 국가 계속성, 헌법수호의 막중한 책무를 이행해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이러한 국가비상사태를 주권자인 국민에게 알리고 이를 극복하는데 함께 나서주십사 호소하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국회의 반헌법적인 독재로 나라가 위기에 처해있는데 주권자인 국민을 깨우는 일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대의제 권력의 망국적 패악에 대해 주권자가 직접 나서서 제발 정치와 국정에 관심을 가지고 날 선 비판으로 감시·견제를 해달라는 호소였습니다.

국회의 경비와 질서 확보를 위해 투입된 소수 병력 중 일부는 비무장 상태로 국회 담벼락 아래 그냥 앉아 있었고, 일부는 빈총만 들고 국회 마당에서 수천 명의 군중에 둘러싸여 폭행당했습니다. 누구도 국민을 억압하거나 국회의원들의 계엄해제 요구 의결을 위한 의사일정을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특전사 92명과 수방사 15명이 밤 12시 무렵 국회 경내로 들어갔지만 이미 엄청난 인파가 들어와 있고 군은 너무나 소수여서 질서 확보 업무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뒤늦게 추가 병력이 국회 인근에 도착했지만 바로 계엄 해제 요구 의결안이 통과되자 전 병력은 즉각 철수하였습니다.

선관위에는 계엄법 제7조에 의한 행정·사법 사무 관장 권한에 따라 선거관리 시스템의 보안 점검을 하려고 들어갔지만, 시간과 준비 부족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서버 장비의 사진만 찍고 나왔습니다. 그동안 선거소송에서 가짜 투표용지가 다량 발견되었고, 불과 1년 전 국정원의 선관위 전산시스템 보안 점검 결과 국가기관이 갖추어야 할 기준에 현격히 미달하여 외부 해킹에 무방비인 심각한 상황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선거제도는 현대 대의민주주의 국가의 통치 질서를 형성하는 핵심적인 제도입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의 선거관리는 그 투명성과 공정성이 확실하게 담보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관위가 투명하고 공정한 검증을 거부하고 있었기에 선거관리의 중요성과 국민적 관심을 고려하여 점검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들이 국헌을 문란하게 했습니까?

폭동을 일으켰습니까?

계엄선포 시부터 해제 시까지 6시간 걸렸으나 새벽에 계엄 해제를 위한 국무회의를 소집하는데 시간이 지체되었을 뿐이지, 실제로는 계엄선포 두 시간 만에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의결이 이루어지자 즉시 병력을 철수시켜 계엄 상황을 종료하였습니다. 아울러 저는 국무회의 소집 중에 미리 계엄 해제 대국민 담화도 발표하였습니다.

처음에는 국민들께서 도대체 대통령이 왜 계엄을 선포했는지 어리둥절해 하셨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국민이 계엄을 선포하게 된 절박한 상황을 알게 되셨고, 제가 탄핵소추되어 탄핵심판에 임하게 되자 국민의 과반수 이상이 저에 대한 탄핵에 반대하셨습니다. 계엄선포의 이유와 불가피성을 공감하셨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많은 국민들께서 제가 계엄선포라는 비상벨을 울린 이유에 대해 공감하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12.3 비상계엄은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의 계엄과 같이 국민을 억압하는 군사행정 독재가 아니라 국민의 자유와 주권을 지키고 나라와 헌정을 살리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시는 국민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특히 미래세대인 청년과 학생들은 계엄의 이유와 나라의 위태로운 상황에 대해 인식하며 자신들의 역할과 행동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으로 압니다.

저에 대한 탄핵을 결정한 헌법재판소조차도, “피청구인인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자 국가원수로서 야당의 전횡으로 국정이 마비되고 국익이 현저히 저해되어 가고 있다고 인식하여 이를 어떻게든 타개하여야만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 계엄선포 및 그에 수반한 조치들은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피청구인이 가지게 된 이러한 인식과 책임감에 바탕을 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라고 판시하였습니다.

제가 계엄을 선포한 이유와 필요성에 대해서는 비상계엄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입장과 관계없이 모두가 그 목적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폭동이나 국헌문란의 목적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체제전복세력과 반국가세력들은 2022. 3. 대선 직후부터 아직 취임도 하지 않은 대통령 당선인을 상대로 선제탄핵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대선 불복이었습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전까지 무려 178회의 퇴진·탄핵 시위가 지속적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집회에는 거대 야당인 민주당 인사들도 연단에 섰습니다. 단순한 일부의 반정부 시위가 아니라 제도권과 연계된 조직적 퇴진·탄핵 시위였던 것입니다.

국정원에서 수사한 여러 간첩단 사건에서도, 간첩들은 자유민주주의와 한미동맹에 충실한 윤석열 정부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흔들고 마비시키라는 지령을 받고 있었음이 확인됩니다. 이들은 북한의 지령을 전파·공유하며 쉴 틈 없이 국론을 분열시켜 왔습니다. 민주당 역시 이들과 연계하여 헌법상 입법부의 권한을 남용하여 공직자들을 줄탄핵하고 입법 및 예산 폭거를 하며 국정마비를 획책했습니다.

선출된 정부의 국정과제 이행에 필요한 입법에 발목을 잡아 일을 할 수 없게 만든 것은 다들 알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 헌정사와 의회사에 유례가 없었던 일들이 수없이 자행되었습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헌법 질서, 우리 안보와 경제의 주춧돌인 한미동맹, 북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일 안보협력에 충실하게 매진하는 정부를 거대 야당이 체제전복세력 및 반국가세력들과 연계하여 국회의 헌법상 권한을 남용함으로써 식물정부로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헌정질서를 뒤엎고 자유진영 국가들과의 연대를 붕괴시키려 한 것입니다.

특히, 북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동맹을 핵기반으로 강화하고 한미일 해군·공군 협력을 통해 공동으로 미사일 대응을 하는 것을 집요하게 방해하였습니다. 이러한 매국선동과 핵심 국익의 지속적인 훼손이 반국가세력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애국세력입니까?

자유민주주의에 충실하게 나가려는 정부가 아무 일도 못 하게 경제와 민생에 관한 입법을 거부하면서 위헌적인 법률을 양산하고, 안보와 경제를 짓밟았습니다. 핵심 국익을 훼손하는 법률을 반복 상정함으로써 대통령의 거부권을 유도하여 국론분열을 야기하였습니다.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 폐지에 이어 국가보안법 폐지를 추진함으로써 체제전복을 빌드업하였고, 국가기밀과 첨단 산업기술이 중국으로 줄줄이 유출되는 심각한 현실에서 간첩죄 개정도 반대하였습니다. 중국의 반간첩법에 대한 최소한의 상호주의 대응도 못 하게 한 것입니다.

국가안보에는 방산 기술과 산업인프라 확충, 방산 시장 확대와 방산 협력 국가 간의 연대가 매우 중요합니다. 거대 야당이 장악한 국회는 방산 수출에 국회 동의를 받으라는 법안을 추진하여 자유진영 국가들과의 안보협력에 칼을 들이대고 북한, 중국, 러시아가 반대하는 방산 수출에 제동을 걸고 방산 기술 보안을 위태롭게 하였습니다.

핵심적인 안보 예산에 대한 거대 야당의 폭거를 보면 더욱 기가 막힙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공격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한 감시·정찰 자산과 미사일 방어 요격 시스템 사업예산을 대폭 삭감하여 사업추진이 불가능하도록 했습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한 확실한 대응은 안보뿐 아니라 국가 위험도를 줄임으로써 투자 유치와 경제 활성화에 매우 긴요한 것입니다.

국방인력의 허리에 해당하는 부사관과 초급간부에 대한 열악한 처우로 이탈이 심했습니다. 이들 전문성 있는 인력들을 장기근무로 유도하려는 처우개선 예산도 틀어막았습니다. 배정된 예산은 국민의 세금 부담이 그리 큰 것도 아니었습니다. 누구의 이야기를 듣고 실행하는 것인지 이와 같은 핵심 예산만 딱딱 집어내어 삭감하는 것에 기가 찰 노릇이었습니다.

치안예산과 관련하여 대표적인 부분은 마약 수사를 막기 위한 인건비 삭감과 특활비 폐지입니다. 민주당 정부 때에도 마약 수사 조직을 경찰로 일원화하여 관록과 실력 있는 검찰의 마약 수사 조직을 폐지하더니 이번에는 경찰의 수사 예산까지 삭감하였습니다. 마약은 미래세대를 병들게 하는 것일 뿐 아니라 마약 시장을 장악한 세력은 모든 범죄조직을 장악하고 결국 한 국가의 정치·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오늘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부도덕한 하이브리드 비전투 전략·전술에서 마약전에 대한 국가적 대응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면서도 일부러 무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민주당은 마약 대응에 이토록 소극적이고 움츠러드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어느 나라 정당이고 어느 나라 국회입니까?

검찰 수사권과 수사 활동비 폐지와 아울러 부정부패와 대형 금융 사기 사건을 전문성이 부족한 기관에 몽땅 넘겼습니다. 그러나 정적과 반대세력을 탄압하기 위해서는 수사와 공소를 모두 담당하는 초대형 특검들을 만들어 천억 원의 국민 혈세를 쏟아붓고 토끼몰이식 수사와 소설로 기소하고 여론선동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 당시 공직자 줄탄핵은 22건이 발의되어 일부는 사퇴하고 일부는 탄핵소추 되어 직무가 정지되었습니다. 탄핵심판에는 보통 6~9개월, 길게는 1년 넘게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장기간의 직무정지와 국정마비를 막기 위해 사퇴하더라도 후임자 선정, 인사검증, 인사청문까지 많은 절차와 시간이 소요됩니다. 취임한 이후에도 업무를 파악하고 조직 장악에 시간이 필요합니다. 해당 기관의 직원들도 새로운 기관장의 업무방침에 적응하기 위해 시간이 걸리고 이에 적응하느라 고생을 해야 합니다.

우리 헌정사 70여년간 공직자 탄핵 발의와 소추는 거의 없었습니다. 윤석열 정부에서만 비상계엄 전까지 22건, 저에 대한 탄핵 결정 전까지 30건에 이릅니다. 심지어 대통령을 탄핵소추한 후에는 다시 국무총리를 탄핵소추하였고 부총리까지 탄핵하려 하였습니다. 과연 이것이 정상적인 탄핵소추권의 행사입니까? 국회에서 다수 의석만 가지면 이런 입법·예산 폭거와 무고한 공직자 줄탄핵을 마음껏 하도록 헌법이 허락한 것입니까?

이는 분명한 헌법상 권한 남용이고 헌법의 정신과 취지에 명백히 위배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반헌법적인 국회 독재를 왜 이렇게 집요하게 벌이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자유민주주의 체제, 자유시장경제 체제, 자유진영과의 연대라는 헌법상 지향해야 할 국가의 노선을 뒤엎기 위한 것 아닙니까? 체제전복을 노리는 것 아닙니까?

감사원장과 서울중앙지검장 탄핵을 추진하는 것을 보고 저는 경악했습니다.

감사원장은 민주당 정부가 임명한 감사전문가로서 정치적인 인물도 아닙니다. 당시에 선거관리위원회가 벌인 초유의 채용비리 사건이 터졌습니다. 약 1천 명이 마치 가족회사처럼 불법채용되었다는 것이었고, 국민권익위원회의 기초조사를 거쳐 감사원이 감사를 하였습니다. 또한 민주당 정부 시절 사드 배치 관련 국가기밀을 중국 측에 유출한 안보 관계자들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여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반드시 필요하고 적법한 감사에 대해 민주당은 감사원장 탄핵으로 감사원의 업무를 방해하였습니다.

이런 사정을 보면 선관위와 민주당의 유착, 국가기밀 유출이라는 간첩 이적 행위에 대한 조직적 비호를 대놓고 드러내는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헌법기관장인 감사원장을 탄핵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헌정 시스템을 뒤엎겠다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습니다. 전국의 모든 공직자와 산하 기관, 국영기업체, 금융위, 공정위, 금감원 등을 감사하는 감사원장이 무슨 해임 사유가 될 만한 비리가 있는 것도 아닌데 탄핵하여 직무정지를 시킨다면 국가행정과 공직기강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 헌정사는 물론 세계 헌정사에도 초유의 일입니다.

서울중앙지검은 부패, 경제 등 중요 사건의 50% 이상을 다루는 핵심 수사 사법기관입니다. 자신들의 부패를 수사하는 검사들을 압박하고 줄 세우기 위해 탄핵을 추진하는 것을 보고 저는 ‘이제 판결이 마음에 안 들면 판사도 탄핵하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탄핵소추권을 가지고 광란의 칼춤을 추고 결국 헌정을 무너뜨리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헌법은 결코 이런 국회, 이런 의회주의를 허용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민주당에서 감사원장과 서울중앙지검장 탄핵을 추진하는 것을 보고 그때까지는 인내해 왔으나, 이제는 망국적인 국회의 독재에 주권자인 국민을 상대로 비상벨을 울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유민주주의와 공화제를 기반으로 하는 헌정질서가 붕괴되고 외교·안보·경제·미래투자·공직기강·법집행·수사 사법 등 국가기능의 정상적인 수행이 현저히 위태로워진 상황은 과거 우리나라에서 선포된 비전시 계엄 중 가장 위중한 국가비상사태라고 판단하였습니다.

다만 국가비상사태를 초래한 원인이 거대 야당이 지배하는 국회이기 때문에 대의제 권력의 패악과 독재를 주권자인 국민들에게 알리고 호소하며 깨우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2024. 11. 말경 김용현 국방부장관을 한남동 대통령 관저로 오게 했습니다. 감사원장 탄핵에 관해 이야기를 하면서, 거대 야당이 헌법상 권한을 남용해서 헌정질서를 무너뜨리고 국정을 마비시키며 망국의 위기 상황이 되었다는 점을 이야기했습니다. 과거 비전시 계엄이 내려진 ① 1964. 한일회담 반대 시 6.3 사태 ② 미·중 데탕트와 미군 철수에 따른 1972. 10. 17. 특별선언, ③ 1979. 10. 26. 대통령 급서와 같은 상황보다 더 심각한 위기 상황이 되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거대 야당이 헌법상 권한을 남용해 헌정을 파괴하고 있지만, 저는 헌법상 대통령의 국가긴급권을 헌법의 틀 안에서 행사하고 주권자인 국민들에게 호소하여 국민을 깨우고 각성하게 하는 것으로 헌정 붕괴와 국정마비를 회복시키고자 한다고 하였습니다. 김용현 장관에게 헌법상 국가비상사태 선언은 곧 비상계엄 선포이니, 이를 검토해서 보고해 달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몇 가지 사항을 분명히 해 두었습니다. 먼저, 이 계엄은 과거 계엄과는 다른 것이며, 여소야대 상황이니 이른 시간 내에 국회가 계엄해제 요구를 의결할 것이고 빠르면 반나절, 길어야 하루면 계엄이 해제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실시간 방송을 통해 계엄선포 대국민 담화를 할 것이며, 병력은 2개 중대 규모 250~280명으로 2개 팀을 구성하여 1개 팀은 국회에 몰려들 인파에 대한 질서유지를, 다른 1개 팀은 몇 군데의 선관위 전산시스템 서버 소재지에 각각 몇십 명씩을 보내 보안 시스템을 점검하고 국정원이 1년 전 지적했던 망분리, 방화벽, 비밀번호 문제 등이 시정되었는지 확인하도록 한 것입니다.

한편, 출동 병력에 대해서는 실탄 소지를 금하고 안전사고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경험 있는 부사관 이상으로 편성하되, 대통령의 계엄선포 대국민 담화 이후에 소속 부대에서 출발시키도록 하였습니다. 국회에 투입되는 병력도 경비와 질서유지를 하는 것이니만큼 국회의원과 국회 관계자들의 출입과 업무는 지장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당시 국회는 회기 중이었으므로 국회에 수천 명의 인원이 있어 250~280명의 병력으로 질서유지가 될 수 있을까 싶었지만, 투입 규모가 많아지면 불안감 조성과 안전사고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여 소수의 투입 규모를 유지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계엄선포는 보안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김용현 장관 혼자 검토하고 준비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김용현 장관은 과거 합동참모본부에서 부장, 본부장을 지냈기 때문에 합참 계엄과 매뉴얼 정도는 잘 알고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습니다.

실제 계엄선포 대국민 담화는 12. 3. 22:23~30 이었으며, 계엄선포 기준시는 23:00, 군이 국회에 도착한 시간은 24:00경이었고, 출동한 병력은 특전사 92명, 수방사 40명이었습니다. 특전사 77명은 국회 마당에, 나머지 15명은 본관에 위치하였고, 수방사 15명은 아예 총도 내려놓은 완전 비무장 상태로 국회 경내로 들어가 7번 출입문 앞에 앉아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추가 투입된 병력은 계엄해제 요구 의결 시인 12. 4. 01:03 무렵에 국회 본관 뒤편에 도착하였으나 계엄해제 요구 의결 직후 즉시 철수하였습니다.

국회 마당에 있던 특전사 대원 77명은 민간인들과의 충돌 금지 지침에 따라 질서유지는커녕 시민들로부터 폭행을 당하면서 자리를 유지하기가 버거웠고, 계엄해제 요구 의결 직후에는 시민들에게 공손하게 인사하고 철수하였습니다. 국회 본관에 들어간 15명도 국회 직원들이 소화기를 분사하자 이를 피해 도망 다니기 바빴으며, 수방사 병력은 민간인들과 어떠한 접촉도 아예 없었습니다.

계엄선포 후 24:00 조금 지난 시점에서 김용현 장관으로부터 선관위와 연계하여 확인할 것이 있어 여론조사 꽃과 민주당사에도 가는 게 좋겠다는 건의가 있었으나 민간기관은 절대 안 되고 더 이상 병력을 추가로 운용하지 말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김용현 장관은 제 지시를 즉각 이행하였습니다.

김용현 장관은 11. 말부터 12. 2. 사이 밤에 대통령 관저로 찾아와 준비하고 있는 것을 보고하였습니다. 김용현 장관이 작성해 온 대국민 담화문은 거의 고칠 것이 없었고, 포고령 역시 계엄이 금방 해제될 것이라 시행될 리 없다고 생각하였고, 또 상위법에 저촉되면 아예 효력이 없는 것이어서 특별히 손댈 필요가 없었습니다.

계엄선포 전에 해야 하는 국무회의는 주례 국무회의에서 할 경우 그 과정에서 계엄선포가 알려지게 되고 불필요한 혼란이 야기될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 병력 투입을 더 해야 할 상황이 생길 수 있어 병력 투입 최소화를 유지하기 위해 최대한 보안 유지를 하면서 계엄선포 전에 국무총리, 외교, 국방, 통일, 행정안전, 법무 등 계엄 관련 필수 국무위원에다가 추가로 몇 분의 국무위원을 보안손님으로 대통령실로 더 오게 하여 정족수를 충족시키기로 하였습니다.

비상계엄 선포와 같은 국가긴급권은 대통령이 독점적이고 배타적으로 행사하는 헌법상 권한으로서 그 실체적·절차적 행사 요건의 구비 여부에 대한 판단 역시 대통령에게 전속하는 것입니다. 오로지 국회의 계엄해제 요구라는 정치적·사후적 통제만 받을 뿐입니다. 전 세계 헌정사에도 대통령의 국가긴급권 행사와 관련하여 형사법정에 선 전례가 없습니다. 물론 계엄선포 이후 유혈사태가 발생하여 개별 행위들에 대하여 그 상당성과 책임 문제를 논하는 것은 별론입니다.

내란몰이 세력들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고 했다거나 정치인들을 체포하라고 했다는 등 선동해 왔지만 비화폰 통화내역이 드러나면서 이 법정에서 모두 허위 조작임이 밝혀졌습니다.

군을 수만 명 동원해서 과거와 같은 계엄을 한다면 모르지만, 최소한의 질서유지 병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한다는 말입니까? 상식적으로 전혀 불가능한 일입니다.

저는 김용현 장관에게 12. 2. 월요일 예정된 감사원장 탄핵 발의가 무산되면 계엄선포는 없었던 것으로 할 것이라고 분명히 해두었습니다. 그리고 12. 2. 감사원장 탄핵발의가 되면 다음 날인 12. 3. 화요일에 계엄을 선포하겠다고 하였습니다. 회기 중인 주중에 선포함으로써 국회가 계엄해제 요구를 의결할 것이면 바로 할 수 있도록 당당하게 대통령과 국회가 각각의 헌법상 권한을 행사하자는 뜻이었습니다.

아마도 김용현 장관은 저의 계엄선포 대국민 담화 직전 또는 직후 국회에 출동할 특전사령관, 수방사령관, 그리고 선관위에 출동할 방첩사령관에게 비상계엄에 관한 이야기를 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다 보니 사령관들은 그 전에 부하들에게 계엄과 관련한 준비나 지시를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방첩사는 장병들이 휴가 또는 퇴근하였다가 언론을 통해 계엄선포 담화문을 시청한 후 부대에 복귀하여, 24:00가 되어서도 간부들의 부대 복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수방사는 야간 당직 근무자 위주로 소수만 편성하여 별도 임무 하달 없이 통상의 주요 공공시설 경비·방호 임무만 가지고 국회로 출동하였고, 특전사도 707부대를 수송할 헬기 운항 승인을 수방사에서 내주지 않아 시간이 한참 지체되었습니다. 사전에 각 기관 사이에 소통이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내란몰이 세력은 몇 시간 계엄, 대국민 메시지 계엄을 친위 쿠데타라고 하고 있는데 친위 쿠데타를 이렇게 하는 것 보셨습니까? 친위 쿠데타라는 것을 어떻게 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생각도 해본 적 없지만 이렇게 방송으로 언론에 알리고 사전 준비 없이 야간 당직 근무자 소수만 데리고 하는 것입니까? 친위 쿠데타를 한다면 선관위는 왜 갔겠습니까? 사태를 장악하고 나중에 가도 되는 것이고 친위 쿠데타라 하면 당분간 선거할 일도 없지 않습니까?

국민들이 각자 생계에 바쁘셔서 대놓고 이야기를 안 하시지만 국민들도 상식적으로 판단하실 수 있습니다. 국민들은 절대 바보가 아닙니다.

경찰은 처음부터 12.3 계엄에 투입할 계획이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비상계엄이 선포되었으니 당연히 최소한의 군이 투입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국회의 10여 개 출입문에 대해 전혀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저와 김용현 장관 모두 공무원 시절 국회를 다녀보았기 때문에 야간에는 의원회관 인근 출입문과 정문 정도만 열어둘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계엄선포 당일 저녁 무렵 김용현 장관이 제 방에 와서 “투입되는 군 병력 규모가 워낙 소수이다 보니 질서유지가 어렵습니다. 국회 외곽은 경찰 지원을 받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하여 전화로 김용현 장관과 조지호 경찰청장을 연결해 주려다가 삼청동 안가에서 한 10~15분가량 만나게 했습니다. 계엄선포 후 국회 출입문 차단, 이후 개방, 다시 차단된 일련의 조치는 경찰의 자체 판단이었으며, 대통령이나 국방부장관,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의한 것이 전혀 아닙니다. 국회 출입문과 담은 워낙 낮아 얼마든지 넘어다니는 것이 가능하고 실체 수천 명이 별다른 제지 없이 국회 마당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계엄선포 후 조지호 청장과 23:15경 55초가량의 첫 통화를 시작으로 23:20 36초, 23:28 39초, 23:30 17초, 23:34 41초 등 5차례에 걸쳐 통화하였습니다. 그리고 1시간 10여 분 뒤인 00:48 32초, 01:08 58초, 01:10 58초 통화하였습니다.

23:15 통화는 국회 주변 상황을 물은 것이고, 조지호 청장은 “군이 아직 오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밀려와 일단 국회 출입문을 닫았는데 김봉식 서울청장이 법적으로 국회의원들과 국회 관계자는 들여보내야 한다고 해서 신분 확인해서 들여보내고 있답니다.”라고 했고, 이에 저는 “김봉식 청장이 수사통이라 법을 잘 아는구먼, 당연히 그래야지, 잘했어.”라고 했습니다. 경찰은 실제 23:07부터 국회 출입문을 열고 국회 관계자들을 들여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그 이후 23:34까지 4차례에 걸쳐 조지호 청장에게 짧은 시간 순차로 통화한 것은 국회 주변 상황 파악과 안전사고 염려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검사장이나 총장 시절에도 주요 사건의 압수수색 같은 현장 상황을 늘 직접 챙겼기 때문에 현장 상황을 파악하고 안전사고를 방지하고자 경찰청장과 사령관들에게도 전화를 한 것입니다.

조지호 청장은 제가 23:15에는 국회를 통제하라고 했다고 하고 23:34과 그 이전 통화에서는 국회 담을 넘는 월담 의원들을 체포하라고 했다고 증언하였는데 이는 모두 사실무근이고 거짓입니다. 조지호 청장은 2024. 12.경 내란몰이 수사 초기에는 제가 자신과 여섯 차례 통화했고 여섯 차례 모두 “국회로 들어가려는 국회의원들을 모두 체포하라”고 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러나 비화폰 통화내역이 나오자 최근에는 23:15~23:34 사이 5번의 통화 중 후반부는 ‘월담 의원’을 체포하라고 했다고 새로운 증언을 내놓습니다. 2024. 12. 수사 초기 제가 “국회에 들어가려는 의원들을 모두 체포하라”는 지시를 했다는 조지호 청장의 진술을 들은 수사관계자들도 당시 배치된 경찰 인력 등에 비추어 납득이 되지 않았는지, 조서를 봐도 더 묻거나 구체적인 추궁을 한 정황이 보이지 않습니다.

2025. 12. 이 법정에서 조지호 청장에 대해 주신문을 진행하던 검사도 그 시간은 국회의원과 국회 관계자의 출입이 자유로운 시간이어서 월담할 필요가 없는 때인데 피고인이 그런 지시를 했다는 것이 맞느냐고 하며 의문을 가질 정도였습니다.

저는 계엄해제 의결 후와 계엄해제 후 조지호 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수고 많았다, 잘했다, 경찰이 초동조치 잘하고 의원들 출입시켜서 계엄이 빨리 해제되었다.’라고 하였고, ‘김봉식 청장에게는 좀 쉬었다가 내가 직접 전화하겠다’라고 하였습니다. 헌법재판소 심판정과 이 법정에서의 조지호, 김봉식의 증언에 의하면, 조지호 청장과 김봉식 청장은 제게 이와 같은 격려 전화를 받았다고 하고 있고, 국회 게이트 차단은 경찰 자체 판단으로 23:37에 결정되었으나 사실상 24:00까지 국회의원과 국회 관계자들을 출입시켰다고 합니다. 저는 24:00 국회 출입문을 다시 닫은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제가 이진우 수방사령관에게 00:32(29초), 00:34(16초), 00:36(25초) 전화를 하는데 두 번째와 세 번째 통화에서 ‘경찰이 관리하는 출입문을 찾아보라’, ‘의원회관 쪽 문으로 가보라’고 한 것이고, 이진우 사령관도 이 법정에서 그에 부합하는 증언을 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이진우 수방사령관은 이 법정에서 24:00 이후 국회에 도착해 보니 경내에 엄청난 사람들이 들어가 있었고, 담을 넘는 사람들을 경찰이 뒤에서 받쳐주어 도와주고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2024. 12. 내란몰이 수사 초기부터 수사기관들은 수많은 공직자들을 상대로 입건과 기소, 구속에 대한 위협으로 엄청난 거짓 증언들을 이끌어 냈습니다. 그들에게는 신병의 문제는 물론 연금 등 생계와 관련하여 매우 절박한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진우 수방사령관 증언과 같이, 언론에 가짜뉴스들이 쏟아지고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진술했다고 들이대면서 원하는 진술을 하도록 했습니다.

헌법재판소 탄핵 인용의 결정적 증거로 곽종근, 홍장원의 증언, 한덕수 총리의 증언을 들고 있습니다. 헌재 탄핵심판에서 비화폰 통화내역과 CCTV 영상이 제시되었더라면 이 법정에서와 같이 거짓 증언들이 쉽게 분별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헌법재판소에는 탄핵절차법상 증거능력 없는 수사기록들이 무제한으로 제출되고 사실인정의 증거로 사용되었습니다. 탄핵은 일종의 행정징계 절차라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이 법정에서 주요 증거 대부분이 허위·조작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전체 국민이 직접 선출한 최고의 민주적 정당성을 가진 대통령을 그런 식으로 재판해서 탄핵했다는 것이 상당히 안타깝습니다. 계엄해제 직후부터 몰아진 내란몰이의 수사는 탄핵심판에서 대통령을 끌어내리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는 국회의 계엄해제 요구 의결이 있자 이를 즉각 수용하여 군을 철수시키고 국무위원 소집을 기다리다가 김용현 장관과 계엄사령관을 제 집무실로 불러 지금 바로 군의 계엄상황을 종료시키라고 지시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김용현 장관은 즉시 화상으로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를 소집하여 군의 계엄상황을 종료시켰고, 저는 국무위원 도착 전 계엄해제 대국민 담화를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내란몰이 세력들은 제가 두 번 세 번 계엄할 것이라는 터무니 없는 황당한 선동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저는 계엄선포 후에도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에게 전화하여 ‘대야관계에 너무 고생이 많았다. 계엄선포를 미리 알려주지 못해 미안하다. 의원님들은 걱정할 것 없다. 곧 끝날 거다.’라고 이야기했고, 추경호 의원 역시 대통령이 자신에게 전화하여 ‘국회가 절차를 밟아 계엄해제 요구 의결을 하면 즉시 수용하여 해제할 것이다.’라고 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이는 추경호 의원에 대한 공소장에도 동일하게 기재되어 있습니다.

저는 계엄선포 전인 12. 2. 공주 민생토론회와 산성시장 방문, 12. 3. 키르기스탄 대통령 공식 방한 행사를 모두 소화하였고, 주말인 11. 30. 및 12. 1.에는 거의 하루 종일 관련 자료 숙독과 준비에 시간을 보냈습니다. 계엄선포 직전 공식 행사장의 제 모습은 여느 때와 다름없었으며 어떠한 초조함이나 긴장감도 없었다는 것을 다들 보셨을 것입니다. 친위 쿠데타를 기획했다면 이런 행사들을 연기했거나 아니면 계엄선포일을 다른 날로 잡았을 것입니다. 더욱이 국회 회기 중이고 평일이어서 즉시 국회 본회의가 열릴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국회 본회의를 무력화시키거나 방해할 의도가 전혀 없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방첩사령관은 12. 1.부터 12. 2.까지 이틀간 휴가였고, 부대원들 역시 퇴근했다가 뉴스를 보고 24시가 넘어 부대에 복귀했습니다. 수방사는 계엄 당일 저녁 주요 간부 부부 동반 만찬이 있었고 대부분은 퇴근하다 보니 소집에 시간이 걸리는 바람에 야간 당직 근무자 위주로 그 자리에서 인원이 편성되었습니다. 전혀 사전 준비를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는 대국민 호소, 대국민 메시지 계엄이니 긴장하지 않고 평소와 다름없이 준비한 것입니다. 정치 지형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초법적 조치가 아니라 헌정 붕괴와 국정 마비의 국가 위기 상황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주권자를 깨우기 위한 조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12. 4. 새벽 계엄을 해제하고 관저로 돌아와 안전사고 없이 잘 마무리되어 다행이라 생각하고 안심하였습니다.

저는 처음에 내란몰이가 시작되는 것을 보면서 원래 늘 저러는 사람들이려니 생각하였고 이제 국민들이 국가 위기 상황을 인지하셨으니 달라지리라 생각했습니다. 저 스스로 법률전문가로서 내란이라는 선동이 너무나 어이없고 기가 막혔기 때문입니다.

공수처가 서울서부지법에 체포 영장을 청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내란죄에 대한 수사권이 없으니, 영장이 기각되면 경찰이나 검찰로 넘기려는 출구전략인 모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는 탄핵소추 사유 중 내란이 포함되어 있으니 탄핵 심리 과정에서 이를 잘 설명하고 국헌문란 목적이나 폭동이 없었다는 것만 소명하면 수사 역시 자연히 마무리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정치적인 리스크는 있었지만 탄핵 반대 여론이 높아지고 국민들이 계몽되었다며 응원해 주시는 것을 보고, 제가 울린 비상벨이 그래도 효과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26년간 검찰에서 주요 수사를 했지만, 법과 원칙에 따라 일했기 때문에 정치적 음모에 의해 수사라는 이름을 빌어 이렇게 치밀하게 내란몰이가 기획되고 진행되는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2025. 1. 3. 공수처가 저를 체포하겠다고 관저로 왔을 때도 대통령 관저가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출입과 수색이 불가능하니 저러다 말겠지 싶었습니다. 그러다 1. 15. 수천 명의 경찰이 들이닥치는 것을 보며 제가 본 국가의 위기가 실제는 더 심한 지경이었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얼토당토않은 수사를 하고 법과 원칙을 어기면서 수천 명의 경찰을 동원하여 대통령을 체포하겠다고 달려드는 내란몰이 세력들이야말로 자신들의 정권 획득을 위해서는 헌정 붕괴와 국정 마비도 상관없다는 사람들입니다.

12.3 비상계엄이 몇 시간 만에 해제되고 1년이 넘게 흘렀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정적과 반대 세력들을 숙청하고 탄압하려는 내란몰이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민생 경제 위기 경고등이 심각하게 울리고 있는 대한민국의 상황, 자유진영과 연대의 균열 등 국가 위기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들과 청년들은 계엄령이 계몽령이 되었음을 알고, 국가 위기 상황에서 불가피한 결단이었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저는 이미 탄핵소추 직전인 2024. 12. 12. 담화, 공수처 체포 직전인 2025. 1. 15. 담화,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에서 2025. 2. 25. 최종 의견진술을 통해 세 차례 걸쳐 12.3 비상계엄에 관한 제 입장을 일관되게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진술은 그 후 드러난 비화폰 통화내역과 법정 증언 등을 통해 확인된 실체를 더해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제가 국가 위기 상황이라 진단하고 비상계엄을 선포하게 된 이유에 대하여 이미 증거로 제출한 2024. 12. 12. 담화, 2025. 1. 15. 담화, 2025. 2. 25. 헌법재판소 최종진술을 세세히 숙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국가 위기 상황에서 주권자를 깨우는 비상계엄 선포에 따라 임무를 수행한 군 관계자와 공직자들이 내란몰이에 희생되어 고난의 시간을 겪고 있습니다. 나라를 진정 사랑하고 자유와 정의를 지키려는 많은 국민과 청년들도 고통과 좌절의 시간을 겪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모두 제 부족함의 소치입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드리는 일입니다. 고초를 겪고 있는 군 간부, 공직자분들, 정직하고 선한 우리 국민들과 청년들을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 넉넉히 함께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지켜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 사건이 갖는 헌법적 함의와 대통령으로서 국가 위기 상황에서 헌정 붕괴와 국정 마비를 막으려 했던 엄중한 책임감에 대해 살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것은 결코 국헌문란이 될 수 없습니다. 폭동이 될 수 없습니다.

고된 일정 속에서 충실하게 심리해 주신 재판부에 감사드립니다. 또한 방청과 중계를 통해 이 사건의 실체를 확인하고 응원해 주신 국민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대통령의 국가긴급권 행사는 내란이 될 수 없습니다.

귀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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