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5-12-19 (금)

(장태민 칼럼) 고환율 고착화 우려

  • 입력 2025-12-19 13:15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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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달러/원 환율의 장기간 흐름, 출처: 코스콤 CHECK

자료: 달러/원 환율의 장기간 흐름, 출처: 코스콤 CHE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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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최근 달러/원 환율이 1,480원을 넘나들면서 외환당국이 바빠졌다.

당국은 해외로 빠져나가는 달러를 줄이고 국내로 달러를 유입시키기 위해 노력 중이다.

예컨대 기업들에겐 해외에 달러를 두지 말고 원화로 환전하라고 종용하고 있으며, 증권사들에겐 해외 주식투자 마케팅같은 것을 공격적으로 하지 말라면서 눈치를 주고 있다.

전날엔 국내 외화 유입을 촉진하기 위한 외환건전성 제도 탄력적 조정 방안을 마련해 달러/원 상승에 대응하기로 했다.

시장은 최근 1년 연장된 한은-국민연금 통화스왑 계약, 뒤이어 나온 외환건전성 제도 탄력적 조정, 그리고 당국의 구두개입·실개입 등에 따른 수급 조율 효과 등을 확인해야 한다.

이런 가운데 당장의 달러 수급에만 신경 쓰는 '관치 금융'이 향후 더 큰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는 등 혼란스럽다.

■ 정책실장의 기업들 군기잡기와 구설수

최근 달러/원 환율이 1,480원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인 뒤 당국자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전날 삼성전자, SK, 현대차, LG, 롯데, 한화오션, HD현대중공업의 CFO 등을 불러 ‘외환시장 관련 수출기업 회의’를 열었다.

김 실장은 특히 싱가포르나 홍콩 등 외국 금융시장에서 원화 약세가 오래 갈 것으로 전망하고 달러/원 환율 상승에 베팅 중이라고 점을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수출기업들에게 "작은 이익을 보려고 하지 말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져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즉 달러를 과하게 보유하면서 환 차익을 얻으려고 한다는 오해를 받지 않도록 해 달라고 한 것이다.

대통령실은 기업들의 올해 연간 수출액, 내년 해외 투자규모와 투자금 조달 방안, 환헤지 전략 등과 관련한 자료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내년 초(1~2) 환전계획 자료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자유시장주의자들 사이에선 대통령실의 요구가 과도했다는 평가도 보였다.

은행의 한 관계자는 "기업 환차익에 대해 정부가 왈가왈부하는 것, 갖고 있는 달러를 시장에 풀라고 하는 것 모두 비정상적"이라며 "민간의 재산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시장경제 원리에 위배된다. 사실상 중국과 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금감원의 해외투자 제어와 구설수

금감원은 19"최근 증가하고 있는 해외투자 관련 투자자 보호 실태를 면밀히 점검하기 위해 주요 증권사를 대상으로 '사전예방적 투자자 보호검사'에 착수했다"고 발표했다.

금감원이 해외주식 중개 규모 및 최근 현장점검 결과 등을 토대로 대상 증권사를 선정해 검사에 나선 것이다.

과당 경쟁을 유발하는 성과보수체계 운영 여부, 투자자에 대한 위험 고지의 적정성 등 실질적인 투자자 보호가 ‘제대로’ 이지고 있는지에 대해 집중 점검할 것이라고 알렸다.

금감원은 내년에도 해외투자 관련 내부통제 및 리스크 관리 강화를 위한 검사를 순차적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금융투자회사의 내부통제 및 리스크 관리 강화를 위한 검사를 지속적으로 실시함으로써 사전예방적 투자자 보호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금감원의 이런 움직임을 '해외투자에 대한 딴지걸기'로 이해하는 상당수 개인투자자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특히 최근 많은 개인투자자들은 환율 급등을 '서학개미의 탓'으로 돌리는 일부 정부 관계자들의 행태, '쿨해서 젊은이들이 해외주식을 하는 것 같다'는 이창용 한은 총재의 발언 등을 거세게 비판하기도 했다.

국내외 합쳐 주식투자 규모가 10억원을 넘는 50대 투자자 A씨는 "해외 주식투자는 전혀 쿨하지도 않고 이익을 내도 세금을 많이 뜯긴다. 해외투자 이유는 단순하다. 국내 주식으로 돈 벌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향후 한국경제에 대한 믿음이 없다보니 해외로 나가는 측면도 크다. 미국이 쿨해서 해외 주식을 하는 게 아니라 한국이 쿨하지 못해서 해외투자를 한다고 봐야 한다"면서 "미국 주식투자를 막을 게 아니라, 오래전 스웨덴이 보여준 것처럼 상속세라도 폐지해서 한국 주식투자의 메리트를 높이는 게 정부가 할 일"이라고 했다.

■ 역사적으로 '너무 높은 환율'...긴장할 수밖에 없는 레벨

금융위기 등 특수한 상황이 아닌 상황에서 환율이 이렇게 높았던 적은 거의 찾기 어렵다.

최근 환율 고공행진을 두고는 여러가지 원인이 꼽힌다. 수급 요인, 정책 요인, 경기와 통화량 요인, 안전자산 요인, 미국 투자 등이 모두 거론되는 중이다.

우선 수급 측면에선 '투자자''기업' 양쪽의 달러 수요가 문제로 거론된다.

예컨대 서학개미와 국민연금 등이 해외자산 투자를 늘리면서 달러 수요가 크게 늘었기 때문에 환율이 상승 압력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수출로 번 달러를 원화로 환전하지 않고 '내년 미국 등 해외 투자'에 대비하고 있다. '환율 추가 상승'을 감안해 환전을 미루는 측면도 있었다. 기업들이 래깅(Lagging) 전략을 취하자 달러 공급은 더욱 부족해졌다.

통화정책적 요인도 거론된다. 미국의 기준금리가 한국보다 높아 수익률이 높은 미국을 선호하는 자금이 많다는 점도 회자된다.

아울러 미중 패권다툼이 지속되는 상황이다 보니 안전자산 수요가 원화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평가도 보인다. 즉 대표적인 '위험자산'인 원화가 강해지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밖에 최근엔 고환율을 둘러싼 통화량 논란도 많았다.

■ 한은이 주장하는 통화량에 대한 오해? 그러면 이 통화량은 합당한 것인가

현재 경기와 통화량 요인도 환율 고공행진 요인으로 거론되는 중이다.

한국은 최근 확장적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으로 돈을 많이 풀었으며, 이는 원화 가치 하락을 계속 부추길 수 밖에 없었다는 평가들이 많았던 것이다.

또 한국의 M2 증가율은 지금의 성장률과 물가를 감안할 때 지나치게 높다는 평가들도 보인다.

한국의 올해 실질 성장률과 물가를 합쳐봐야 대략 3% 정도밖에 안 되는 상황에서 9%에 육박하는 M2 증가율은 누가보더라도 과도하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한은은 M2가 늘어난 것을 두고 ETF 등의 착시를 거론한다. ETF포함한 수익증권 급증 M2 수치 실제보다 과장됐다는 것이다.

예컨대 한은은 10M2 증가액 41.1 중 약 77%(31.5조원)가 ETF를 포함한 수익증권 증가분에서 발생한 것으로 분석했다. 10월 M2 증가율은 전년 동월 대비 8.7%를 기록했으나, 수익증권 요인을 제외하면 5%대 수준으로 크게 낮아진다는 게 한은의 관점이다.

개인이 개별 주식을 팔고 M2에 포함되는 ETF나 수익증권으로 자금을 옮기 시중의 총유동성 변화 없이도 통계상 M2 수치는 올라갈 수 있다. 한은은 '착시 효과'를 줄이기 위해 ETF, 주식형·채권형 펀드를 2026년부터 M2 구성 항목에서 제외한다.

하지만 한은의 '적극적인 유동성 해명'을 뜨악한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미 저성장의 늪에 빠진 한국경제가 돈 풀기에만 열중해 경제주체들을 좀비로 만드는 상황에서 한은이 '(환율 관련) 유동성은 문제없다'는 식으로 나서는 건 다분히 편향적이란 주장마저 있다.

국가 재정담당 기재차관 출신인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9"(정부와 한은이) M2 증가에 ETF 탓만 할 것이 아니라 분명한 관리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면서 "무리한 확장 재정으로 급증한 유동성에 대해 책임 있는 흡수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환율 고공행진과 관련해 '무엇보다' 내년부터 본격화될 대미 투자에 대한 경계감도 빼놓을 수 없다.

'트럼프가 강요한' 대규모 미국투자가 주는 긴장감

달러/원이 내려오지 못하는 이유와 관련해선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대규모 미국 투자' 영향도 많이 거론된다.

트럼프가 한국의 미국투자를 강요한 뒤 한국 정부와 기업은 6천억불, 7천억불 이상의 어마어마한 투자를 약속한 상태다.

특히 한국 정부는 '마스가(미국 조선 위대하게)'1500억불 투자 외에 '매년 200억불(상한) 10년 투자'를 약속한 상태다.

이 연간 투자와 관련해 한국은행은 외환보유액 운용수익과 일부 채권발행을 통해 충분히 조달가능하다는 내용의 컨설팅을 정부에 제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장 일각에선 "한은이 외환보유액 운용수익 150억불, 기타 채권발행 50억불 등으로 돈을 마련하다고 했지만 낙관적인 접근"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또 한국 정부가 약속한 미국 투자 외에 주요 기업들의 대규모 미국 투자가 예정돼 있어 이래저래 '미래의 수급'이 환율 상승을 견인하는 중이라는 우려도 많다.

다만 한국 정부나 한은 등은 시장 변동성이 지나치게 커질 경우 미국 투자 시기나 투자 규모의 조정을 요청할 수 있는 근거를 합의문에 삽입시켰기 때문에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 달러/원 환율 매우 특이한 흐름...고원(高原)에서 '장기간 유지'되는 환율

19971223.

한국경제가 '거의' 망했을 때 달러/원은 2천원을 향해 치솟은 바 있다.

코스콤 CHECK(5108)를 보면 19971223일 당시 달러/원은 1,962.7원을 찍은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순간적인 환율이 점프했던 때를 제외하고 '기간'으로 보면, 지금의 고환율 상황은 역대급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달러/원 환율 수준은 위기 때와 비교해도 결코 낮지 않으며, 오히려 위기 때보다 높은 측면이 있다.

한국이 IMF 구제금융을 받던 1997년 12월부터 2001년 8월까지 평균환율은 '겨우' 1,253원 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이 IMF 경제식민지로 전락하면서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구조조정을 거쳤던 1998년 평균 환율은 1,395원이었다.

한국 최악의 경제위기 때의 '평균' 환율이 지금보다 낮은 것이다.

따라서 '위기가 아닌 시기에' 환율이 1,400원대에서 장기간 머물 듯한 분위기, 어쩌면 1,500원을 트라이할 수 있는 분위기는 매우 생경하다고 볼 수 있다.

이같은 변화를 '수급 흐름의 변화'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이 흐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안주해서도 안 된다.

■ 원화는 '한국 매력 없다'고 웅변하는 중

자국 통화가 주요국에 비해 약세 일로를 걷는 것은 경제에 '큰 문제'가 있기 때문일 확률이 높다. 상식적으로 볼 때 매력적인 나라엔 외국자본이 들어오려고 한다. 그 나라 돈을 사서 뭔가를 하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인, 한국기업들은 자국 시장, 자국 투자보다 남의 시장, 남의 나라 투자를 더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달러/원 환율이 지금과 같은 고점에서 내려오더라도 얼마나 강해질지 애매하다는 우려도 크다. 이런 걱정을 하는 사람들은 '고환율의 뉴노멀'을 주장하는 중이다.

그런데 이 새로운 노멀을 인정하는 논리가 다소 서글프다.

과거 IMF 외환위기 때 달러/원 환율이 폭등했지만, 한국경제의 '성장잠재력'은 남아 있었다. 따라서 원화가 미래에 강해질 룸도 컸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경제의 모멘텀이 그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꺾였으며, 잠재성장률은 그 때와 비교할 바가 못 된다.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 그리고 구제금융을 받았을 때도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5%, 6% 수준이라고 평가받았다. 지금의 한국 잠재성장률은 1%대 어딘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시장에선 '현재 고환율은 비정상적이어서 시간이 지나면 달러/원도 자연스럽게 낮아질 것'이란 관점도 보이지만, 진정 원화가 강한 통화가 되려면 한국의 기업이 더 강해지고 한국이 더 매력적인 나라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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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외환당국의 18일 발표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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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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