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콤 장태민 기자]
현재 메이저리그를 이끄는 두 인물은 야구의 '아이콘' 오타니 쇼헤이, 그리고 지구 최강의 타자 애런 저지다.
이들은 올해도 내셔널리그와 아메리칸리그의 MVP 1순위 후보로 꼽힌다.
그러나 2025년 저지가 뛰는 아메리칸리그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유형의 괴물이 등장했다.
켄 그리피 주니어와 랜디 존슨, 그리고 이치로 스즈키가 뛰었던 팀 시애틀 매리너스의 포수 칼 롤리다.
칼 롤리는 시애틀 매리너스의 홈런 기록을 갈아 치웠다. 전설적인 타자 켄 그리피 주니어가 1997년과 1998년 세운 56홈런 기록을 넘는 60홈런을 때려냈다.
시애틀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롤리의 활약 덕분에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우승을 차지하면서 24년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 포수가 60 홈런을 치다니...
9월 25일.
시애틀의 2번 타자 칼 롤리는 홈런 2방을 터트리면서 시즌 60홈런 고지에 올라섰다.
롤리의 홈런 개수는 2022년 27개, 2023년 30개, 2024년 34개에서 올해는 '무려' 60개로 급증했다.
롤리는 20대 후반을 맞이해 일취월장한 파워를 과시했다. 아메리칸리그 홈런 1위, 타점 1위, 득점 2위, OPS 3위, 출루율 7위를 달성했다.
타율은 0.247에 불과했지만 현대 야구에서 타율에 연연하는 사람은 물정 모르는 '옛날 사람'일 뿐이다.
지난 일요일 팀당 162게임을 치르는 페넌트레이스가 마감된 가운데 롤리는 아메리칸리그와 내셔널리그를 통틀어 유일한 60홈런 타자가 됐다.
AL, NL 모두 감안한 홈런 순위는 칼 롤리(60개), 카일 슈와버(56개), 오타니 쇼헤이(55개), 애런 저지(53개) 순이다. 올해 메이저리그에서 50홈런을 친 선수는 이들 4명이다.
특히 칼 롤리는 '포수 출신 홈런 기록'을 대폭 경신해 주목을 끌었다.
■ 베이브 루스, 로저 매리스, 애런 저지, 그리고 칼 롤리
한 시즌 60홈런은 2025년의 롤리를 포함해 10번 작성됐다.
역대 메이저리그 단일시즌 최다 홈런 기록은 2001년 배리 본즈가 기록한 73홈런이다.
2위 기록은 1998년 마크 맥과이어가 기록한 70개다.
3위는 1998년 새미 소사의 66개, 4위는 1999년 마크 맥과이어의 65홈런이다.
5위는 2001년 새미 소사의 64개, 6위는 1999년 새미 소사의 63개, 7위는 2022년 애런 저지의 62개다.
8위는 1961년 로저 매리스의 61개, 그리고 9위는 그 유명한 베이브 루스가 1927년 기록한 60개다.
지난 2022년 저지가 친 60홈런은 20년 남짓만의 일이었으며, 아메리칸리그 최다 홈런 기록이었다.
그런데 올해 포수인 롤리가 60홈런을 치면서 일을 냈다.
롤리는 포수이자 스위치 히터로 60홈런을 친 첫번째 선수가 됐다.
롤리 이전 포수의 최다 홈런 기록은 2021년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살바도르 페레스가 기록한 48개였다.
순수하게 포수로 출전해서 기록한 최다 홈런 개수는 2003년 하비 로페스가 기록한 42개다.
롤리가 올해 지명타자가 아닌 포수로 나와서 친 홈런 기록은 49개였다.
포수는 야수 중 체력부담이 가장 큰 포지션이기 때문에 162경기 전부를 이 포지션으로 출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를 감안할 때 롤리가 2025년 얼마나 어마어마한 일을 벌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롤리는 또 특이하게 스위치 히터다.
그간 스위치 히터 최다 홈런 기록은 미키 맨틀이 1961년 작성한 54개다. 2위도 미키 맨틀이 1956년 작성한 52개지만 롤리가 거뜬히 넘어섰다.
파워를 갖춘 스위치 히터를 찾기는 더욱 어려운 일이다.
■ 오해는 하지 말자...약쟁이들의 홈런 기록은 사실상 '전부 무효'
지난 2001년 배리 본즈가 기록한 73개의 홈런은 약물에 버무려진 것이다.
마크 파이나루-와다와 랜스 윌리엄스는 2006년 <그림자 게임(Games of Shadows)>이라는 책에서 배리 본즈가 약물로 만든 홈런을 폭로해 야구계 뿐만 아니라 세계 스포츠계에 큰 충격을 줬다.
저자들은 배리 본즈, 새미 소사 등이 마크 맥과이어의 '약물 홈런'에 자극 받아 스테로이드를 사용했다고 폭로했다.
2001년 36세이던 배리 본즈가 약물 복용을 하지 않았다면 그는 몇개의 홈런을 쳤을까.
본즈의 약물 사용을 폭로했던 마크 라이나루-와다는 30개를 치기도 힘들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다른 분석가들 역시 아무리 많이 잡아주더라도 50개를 기대하긴 어려웠을 것이란 반응을 보인 바 있다.
배리 본즈가 역대 최다 홈런 기록을 세운 2001년 이전 3년 홈런 갯수를 보면, 1998년엔 37개, 1999년엔 34개, 2000년 49개였다.
본즈는 30대 중반 홈런을 50개 근처로 끌어올린 뒤 근육이 퇴화하던 시기에 맞춰 최대한 약물의 힘을 빌렸다. 이를 통해 야구의 역사를 바꿔버렸으나, 본즈의 기록은 야구 역사상 가장 거대한 사기 중 하나였다.
본즈는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야구는 이제 '약쟁이' 배리 본즈를 버렸다.
한국인 1호 메이저리거인 박찬호는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 '스테로이드 괴물들'과 상대하면서 IMF 외환위기로 힘들어하던 한국인들에게 힘을 주기도 했다.
메이저리그 홈런 기록에서 마크 맥과이어, 배리 본즈, 그리고 새미 소사는 제거돼야 한다.
결국 60홈런과 관련해선 2022년의 애런 저지(62개)와 2025년의 칼 롤리(60개), 그리고 전설적인 타자들인 로저 매리스와 베이브 루스의 기록들만 남는다.
■ 롤리와 저지, 누가 AL MVP가 돼야 할까...팬그래프의 WAR로 접근해보자
팬그래프닷컴의 WAR 순위를 보면 애런 저지가 메이저리그 전체의 1위로 나온다.
2025년 페넌트레이스 성적표를 보면 애런 저지가 10.1, 오타니 쇼헤이가 9.4, 칼 롤리가 9.1, 바비 위트 주니어가 8.0을 기록한 것으로 나온다.
팬그래프의 fWAR를 기준으로 할 때 내셔널리그에선 오타니의 MVP에 도전할 만한 선수가 보이지 않는다.
아메리칸리그에선 애런 저지가 우세한 것으로 나오지만, 올해 칼 롤리의 임팩트가 워낙 컸기에 저지의 MVP를 확신할 수는 없을 듯하다.
야구 선수의 총체적 능력을 측정할 때 가장 가장 많이 사용되는 지표가 WAR이다.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 Wins Above Replacement)은 한 선수가 '평균적인 대체선수'에 비해 팀에 몇 승을 더 기여하는지를 수치로 나타내는 '종합지표'다.
흔히 이 수치가 0~2 사이라면 대체선수급, 2~4라면 주전 혹은 리그 평균, 6 이상이면 리그 정상급 선수 등으로 평가하기도 하지만, 추정 기관에 따라 수치엔 차이가 난다.
일단 아메리칸리그 MVP 경쟁에서 저지가 객관적(?) 수치에서 롤리를 앞서고 있지만 포수 최초 60홈런이라는 상징성과 임팩트 때문에 롤리에게 리그 1위표를 주는 기자들도 꽤 나올 것으로 보인다.
지난 18일 MLB.com은 각 구단 관계자들의 의견을 들어본 결과 14명 중 7명이 롤리, 6명이 저지, 1명이 동률 의견이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또 올해 AL MVP 예상이 쉽지 않다 보니 일각에선 야구팬들에게 전설로 각인된 오래된 이름들 간의 MVP 경쟁을 떠올리기도 한다.
지난 1947년 AL MVP를 놓고 뉴욕 양키스 조 디마지오와 보스턴 레스삭스 테드 윌리엄스가 각축을 벌인 바 있다. 일각에선 당시 디마지오가 1점차로 이겼던 사례 만큼 2025년 경쟁이 치열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WAR에서 가장 앞선 저지가 올해도 MVP라는 주장이 만만치 않지만, 롤리가 양키 스타디움을 홈으로 썼다면 홈런을 65개 정도 쳤을 것이며 그가 '포수라는 점'을 망각해선 안 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2025년엔 오타니와 저지라는 두 야구의 거인들 사이에 칼 롤리라는 최고의 포수가 등장해 야구판을 뒤흔들었다.

자료: 팬그래프닷컴의 2025년 메이저리그 WAR 순위 1~150위

(장태민 칼럼) 칼 롤리
이미지 확대보기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