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이재명 대통령, 출처: 대통령실

[장태민의 채권포커스] 대통령의 물가 타박...한은까지 국무회의 출석해 농산물·식품 물가 낮출 방안 제안
이미지 확대보기[뉴스콤 장태민 기자] 이번주 국무회의에선 경제부총리, 농림장관, 공정위원장 등이 '먹거리 물가'를 낮출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농산물, 식료품 물가를 낮추라'고 지시한 뒤 각자 연구한 견해들을 밝혔다.
이번 주 국무회의가 추석 연휴를 앞두고 '물가 문제'에 초점을 맞췄던 만큼 한국은행까지 참석했다.
■ 한은의 대통령 물가보고 "물가 가계에 부담되는 실정...OECD 1.5배 달하는 식료품 물가 문제"
이날 물가에 중점을 둔 국무회의엔 한국은행 관계자가 참석했다.
한은은 한국의 경우 식료품 물가가 OECD 비교대상국 가운데 유독 높다고 보고했다.
한은은 현재 물가상승률이 한은의 중기목표인 2% 수준이지만, 최근 수년간 전반적인 물가 '레벨'이 높아진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재원 한은 경제연구원장은 대통령에 보고하는 자리에서 "물가상승률이 2% 근처지만 전반적인 물가 수준이 높아져 가계에 큰 부담되고 있다"면서 "국민들이 체감하는 물가는 높을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식료품 물가는 소득 계층간 인플레 불평등을 유발한다고 밝혔다.
한은은 높은 먹거리 물가에 따른 '물가 불평등'은 취약 계층을 더욱 어렵게 하는 실정이라고 보고했다.
이 경제연구원장은 "최근 식료품 물가가 빠르게 상승했다. 평균 물가는 OECD 중간인데, 식료품 물가는 1.5배 정도돼 가격 차이가 크다"고 했다.
이 원장은 "우리보다 소득수준이 높은 OECD 국가들과 비교해도 한국의 식료품 부담은 크다. 다른 선진국 대비 우리 소비자들은 과일, 채소, 육류에 높은 가격을 지불한다"고 말했다.
먹거리 물가 중 농산물 물가 자체가 높다보니 가공식품 가격을 더욱 상승시키는 원인도 되고 있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왜 물가 중에서도 식품만 유독 많이 올랐느냐'고 묻자 이 원장은 "식료품 물가 문제는 단기적 현상이 아니다. 수십년 동안 식료품은 다른 품목에 비해 빨리 올랐다"고 답했다.
■ 한은의 대통령 물가보고 "높은 식료품 물가 원인은 높은 유통비용, 낮은 생산성 탓"
이 원장은 식료품 물가가 다른 나라보다 더 크게 오르는 이유는 유통비용 상승 때문이라고 했다.
소비자가격이 농가의 판매 가격보다 빨리 상승한다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특히 "식료품 유통비용률은 1998년 40%에서 2023년 50%로 10%p나 상승했다. 인건비, 임대료 상승과 부가가치 제고 노력 등이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인건비 등 원가의 상승, 비효율적인 유통 구조에다 '낮은 생산성'도 문제로 꼽았다.
이 원장은 "한국은 농가의 경작면적이 작아 생산성이 낮다. 생산 비용이 높을 수 밖에 없다"면서 "하지만 농가의 고령화 속도, 기후 변화 등을 고려할 때 생산성의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농산물 물가를 낮추기 위해선 수입 확대 등 외부 공급량을 늘리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이 원장은 "과일 등의 공급 채널 다양화(수입)를 통해 가격 안정을 높일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다만 농산물 수입을 얼마나 더 늘릴지는 농가의 손실 문제, 식량 안보 등도 감안해서 접근해야 할 문제라고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한국 농산물 가격의 고공행진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을 때 더욱 악화될 수 있다고 했다.
이 원장은 "농산물 물가는 지금 아무 대응도 하지 않으면 소비자들의 부담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근본적으로는 생산성 향상과 공급 다변화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한은의 보고 뒤 대통령 '물가 지도편달' 의지...관계 부처도 각자 아이디어
한국은행의 물가 상황에 대한 보고가 끝나자 이재명 대통령은 "한국 식료품 물가가 OECD 평균보다 1.5배나 높다는 것은 이해불가"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정부가 제대로 통제·지도·개입하면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유일하게 윤석열 정부에서 이재명 정부로 유임된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이 "할당 관세가 소비자가격 인하로 연결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할당관세는 특정 물품에 대해 일정기간 동안 일반 관세율보다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임시적인 관세 제도를 말한다. 국내 시장의 수급 조절이나 물가 안정을 위해 정부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활용한다.
대통령의 '지도 강화' 지시 후 정부 경제수장이 나서서 다시 한번 만만치 않은 물가 상황을 보고한 뒤 대책을 얘기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물가가 대체적으로 2% 내외라고 한은이 보고하는데, 농축수산물, 가공식품, 외식은 5년간 25%나 올랐다"고 말했다.
구 부총리는 특히 최근에도 먹거리 물가는 만만치 않게 오르는 중이라며 특히 저소득층이 힘들어한다고 했다.
부총리는 "8월에도 먹거리 물가가 많이 올랐다. 농축수산물은 4.8%까지 오르고. 가공식품도 4%대 초반"이라며 "특히 저소득층은 식료품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7월 전년비 2.1% 오른 뒤 8월엔 1.7%로 상승폭을 축소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비 1%대로 낮아진 것은 작년 12월(1.9%) 이후 처음이었다. 다만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대폭 둔화된 것은 SKT의 고객정보 관리 실패 등 사고에 따른 통신비 할인이라는 특수요인 등이 작용했다.
부총리는 농산물 물가는 정부가 억지로 관리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높게 나올 수 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했다. 아울러 실제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물가와 물가지표 사이에 괴리도 크다고 했다.
구 부총리는 "일반적인 물가상승률 2%는 서민 계층엔 안 맞다. 4% 이상으로 올라가 있어 서민 가계에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라며 "9월 농축수산물 물가 상승폭이 줄어드는데, 그 이유는 정부 지원 때문이며 지원하지 않으면 4% 수준으로 될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 농산물 물가, 해결책은 '생산성 향상'
한국 농산물이 비싼 이유는 기존의 '전통적 생산'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농촌 인구도 줄어들고 고령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기업형 영농'이 필요하다. 하지만 농민 보호에만 매달린 결과 농업 혁신은 더디고 농산물 물가는 고공행진 중이다.
정부 역시 '생산성 향상' 등 농업 방식 구조 개편의 필요성은 인지하는 모습이었다.
구 부총리는 "농축수산물에 대해 한국은 신토불이 개념이 있는 데다 상추, 배추 이런 건 이제 고냉지로 가야한다. 스마트팜으로 빨리 전환하지 않으면 물가는 더 올라갈 수 밖에 없다"고 했다.
농민들이 좁은 경작지에서 농사를 짓고 있지만, 온난화라는 기후 변화가 겹쳐 배추와 같은 채소는 좀더 시원한 땅을 원하고 있다.
부총리는 "앞으로 농산물 물가 상승률이 4%가 아니고 6%, 7%로 갈 수도 있다. 기후 변화 때문에 생산이 어려워진다"면서 "수산물도 바다에서 양식이 잘 안돼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당장은 높은 농산물 가격 문제를 풀 수 없기 때문에 재정을 투입해 물가를 낮출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부총리는 "농축수산물 물가를 이번 추석 때는 더 낮추려고 한다. 이는 정부 지원 때문에 낮아지는 것"이라며 "즉 단기적으론 재정 투입과 수입을 통해 가격을 낮추지만 궁극적으로는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 농산물, 식품 물가 고환율 때문에 높아진 측면 크다
현재 한국인들의 쌀 소비는 과거에 비해 대폭 줄었다. 그렇다고 빵과 같은 밀가루 음식을 대량으로 먹는 것도 아니다.
진실은 한국인들의 고기 소비가 크게 늘어났다는 데에 있다.
농림장관도 이날 이점을 고려했다. 아울러 한국이 '농산물 수입국'이란 점도 상기시켰다.
송미령 농림장관은 "한국의 축산물 소비는 2000년에 비해 2배 가량 증가했다"면서 "주요 농산물은 자급률이 하락했다"고 말했다.
송 장관은 "쌀, 채소, 계란 정도는 자급이 되나 그외 농산물은 수입 비중이 압도적"이라고 말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사료 곡물'과 '가공식품 원료'의 수입 의존도 역시 높다. 즉 소와 돼지, 닭 등을 먹이기 위한 사료 등도 수입에 의존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농산물 물가는 환율과 직결될 수 밖에 없다.
특히 최근 수년간 달러/원 환율이 고공행진을 벌이고 최근엔 1,400원을 웃도는 모습까지 보여 먹거리 물가를 관리하는 게 만만치 않다.
송 장관은 "환율이 불안하면 물가에 바로 영향이 간다. 또 커피 가격이 오르면 국내 물가에 바로 영향이 간다"면서 "환율 100원이 물가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 구조"라고 말했다.
사실상 한국의 먹거리 물가는 국제 곡물 가격 등 농산물 가격 동향, 환율 움직임 등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
송 장관은 "최근 밀 가격이 30% 이상 오른 게 환율과 국제공급 사이클 때문이었다"고 했다.
다만 대외요인을 어떻게 제어할 수가 없으니, 국내는 농업 생산성을 제고하면서 유통구조 개선에 힘을 쏟는 수밖에 없다.
송 장관은 스마트팜 활용 필요성 등을 거론했다.
송 장관은 "농산물 물가 안정을 위해선 채소류 비축 역량을 제고해야 한다. 아울러 생산성 향상을 위해 원예, 축산 등을 스마트팜으로 전환해야 한다. 현재 논과 달리 기계화가 덜 된 밭농업 기계화를 더욱 확대하고 고급형 스마트팜도 확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해온 '인당 경작지 확장' 등 농지 집단화의 필요성도 거론했다.
그는 "농가 고령화 문제에도 대응해야 한다. 농지 집단화와 이모작, 기계화 등도 필요하며 외국인 노동자들을 합리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 높은 농산물, 식품 가격...장관들 "유통구조, 제도 문제 따져 보겠다"
이재명 정부의 농림장관과 공정거래위원장은 유통과정을 개선하고 또 유통 상의 문제가 없는지 따져보겠다는 입장이다.
수입업자, 도매업자를 거치는 과정에서 가격이 지나치게 높아지는 것 아닌가 하고 의심하고 있다.
송미령 농림장관은 "농가 입장에선 환율, 국제 곡물가격은 어쩔 수가 없다. 비료, 사료 가격 등은 등락도 심하다. 가격 출렁거림이 한도를 넘을 경우 정부 지원도 필요하다"면서 "다만 유통구조를 온라인 중심으로 개선하고 도매시장을 손 볼 것"이라고 밝혔다.
송 장관은 윤석열 정부 때부터 농림장관을 맡아온 만큼 도소매 유통 과정에서 문제가 상당하다는 점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예컨대 "축산물은 직매장 운영만으로도 소비자가격이 30% 낮아지는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또 우유의 경우 생산자와 유업체 협상으로 가격이 결정되는데, 소비 여건도 반영할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지금은 유통구조에 좀 손을 본 결과 채소류와 과일 가격이 작년보다 안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이재명 대통령은 "중간 유통상의 독점이 문제라고 한다"고 거들었다.
그런 뒤 "정부가 시장을 이길 수 없다고 얘기하지만, 시장도 정부 정책을 이길 수 없다"면서 유통을 손보겠다는 장관의 의지에 힘을 실어줬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밀가루, 설탕 등의 과점 구도를 따져보겠다고 했다.
주 위원장은 "빵이나 라면은 원재료 가격 결정구조가 비효율적이었으며 밀가루, 설탕도 과점 구조"라며 "제빵 쪽을 보면 시장의 빵 가격은 높지만 회사들의 영업이익률은 낮았다"고 말했다.
그는 관련 업체들이 들으면 긴장할 법한 말도 했다.
주 위원장은 "설탕가격 담합사건과 관련해 10월 중 조사 결과가 나오면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밀가루는 국내와 국제 가격의 차이가 심해 엄정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유통구조와 관련한 높은 설탕값을 문제삼는 발언을 하자 공정위원장은 제도를 바꿀 필요가 있는지 따져보겠다는 입장을 취했다.
대통령이 "원당을 수입해 설탕을 만들어 비싸게 팔면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라고 묻자, 주 위원장은 "원당은 관세가 없고 설탕은 관세가 있다. 설탕 산업 보호가 지금도 필요한지 의문"이라고 답했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