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5-08-30 (토)

(장태민 칼럼) 노란봉투법, 한국GM, 그리고 냄비 속 개구리

  • 입력 2025-08-29 14:46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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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국GM 홈페이지

사진: 한국GM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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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노란봉투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뒤 외국계 기업들이 국내를 떠날 수 있다는 우려도 관심을 끌고 있다.

이 법안으로 쟁의행위를 통해 회사에 피해를 입힌 노조원 개인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데 제한이 걸리는 데다 노조의 경영 간섭, 노사 분쟁 심화 등으로 외국계 기업부터 먼저 나가려고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염려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특별히 주목되는 외국계 기업도 있다. 바로 한국GM의 움직임이다.

한국GM은 과거 노조와 극심한 갈등을 벌인 적도 있기 때문에, 이번 노란봉투법으로 한국 철수 욕구를 키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는 중이다.

■ 노란봉투법, 외국계 기업 움직임도 주목

헥터 비자레알 한국 GM사장은 지난 8월21일 서울고용노동청에서 열린 ‘고용노동부-주요기업 CEO 간담회’ 자리에서 노란봉투법에 대해 강력한 우려를 표시하시면서 주목을 받았다.

당시 비자레알 사장은 "GM 본사가 한국 사업장을 재평가할 수 있다. 한국은 이미 노사 리스크가 큰 나라"라며 이번 법안이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은 △노조의 파업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고 △사용자 범위를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에서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확대한다.

또 △노조의 합법 파업 범위를 '노동처우'에서 ‘경영진의 주요 결정’까지 넓히는 성격을 띄고 있다.

특히 지금은 시기가 좋지 않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국 제조업의 부활을 거론하면서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대거 물리기 때문이다.

미국은 올해 4월 자동차 관세를 25%나 부과하기로 결정해 수출국들을 놀라게 했다. 최근 자동차 관세율을 15%로 낮아졌으나 미국 외 해외에서 생산하는 업체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에서 노란봉투법까지 통과시키니 한국GM과 같은 곳이 '때가 되면' 떠날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우려가 커졌다.

다만 한국GM의 철수설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한국GM이 떠날 수 있다는 관측은 지난 2018년에도 제기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한국GM은 산업은행으로부터 7억5천만 달러의 출자를 받으면서 생산시설을 10년간 유지하는 내용의 ‘10년 약정’을 맺고 잔류를 결정했다.

따라서 기술적으로 당장 떠나는 것은 어렵다는 평가도 나오는 중이다.

■ 어렵게 한국에 주저앉혀 놓은 한국GM, 노란봉투법이 떠날 명분 주다

지난 2018년 GM의 군산 공장 폐쇄 위기 당시 산업은행은 8천억원이 넘는 공적자금을 투입해 10년간 한국 내 생산 유지 약속을 받았다.

하지만 약속한 시간(2028년)이 다가오고 있다. 산업은행이 보유한 17% 지분과 비토권도 3년 후 종료돼 GM 본사가 자유롭게 철수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트럼프 정부의 정책이 한국GM의 어려움을 더욱 키웠다.

한국GM은 사실상 국내에서 생산한 자동차를 미국에 파는 회사다. 한국에서 생산한 차량의 90%를 미국에 팔기 때문에 트럼프의 관세정책에 크게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당장 미국 정부가 한국산 자동차에 15%의 고율관세를 부과하면서 연간 3조원 가까운 추가적인 비용 부담이 발생한다는 우려까지 나온 지경이다.

한국GM이 국내 판매를 늘려 어려움을 극복할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한국GM의 내수 판매 비중은 5% 내외에 불과해 관세 어려움을 극복할 방도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노란봉투법이 국회 본의회를 통과했다.

노란봉투법은 회사의 구조조정이나 사업장 이전 문제까지 다룰 수 있어 노사 갈등, 원청-하청 갈등을 키울 수 소지가 크다.

안 그래도 강경한 노사 대립이 낯설지 않는 업체여서 이번 법안이 철수를 부추길 수 있다는 진단이 많아진 것이다.

■ GM, 한국 제조업 우려 키우다

한국GM은 지난해 자동차를 49만대 남짓 팔았다. 국내 판매량은 5% 수준인 2.5만대에 약간 못 미쳤다.

한국GM 생산량의 95%에 해당하는 47만대가 수출 물량이었으며, 이 가운데 42만대 정도가 미국으로 나갔다.

한국GM 직원 규모는 1만명에 약간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협력 업체를 고려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국GM의 1차 협력사 수가 300곳에 육박하고 2차와 3차 협력사까지 합치면 3천곳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련된 노동자 수를 모두 합치면 10만명을 훌쩍 넘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따라서 인근 상권 등 한국GM 관련 사람들이 구성하는 생태계가 웬만한 도시 하나를 웃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국GM 철수가 현실화되면 국내 큰 도시 하나가 소멸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간 한국GM은 국내 고용 창출과 수출에 크게 기여했으나 노조와의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군산 공장, 부평 공장 등에서 갈등을 벌였으며, 노란봉투법 통과 이전에도 이미 '철수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란봉투법까지 통과돼 결국 '울고 싶은데 뺨 때린 셈'이 됐다.

■ 한국경제 이끌었던 석화, 철강 모두 큰 위기인데 국민들은 '평온'...냄비 속 개구리 된 한국민들

정부는 전날(28일) 충남 서산시와 경북 포항시를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한다고 발표했다.

중국의 각종 보조금을 동원한 과잉생산으로 한국 제조업이 위기에 처한지는 오래됐다.

반도체, 자동차와 함께 오랜기간 한국 수출을 이끌어왔던 철강, 석유화학이 위기에 몰려 있는 것이다.

지난 7월 충남은 석유화학산업의 구조적 어려움에 따라 서산시 석유화학 산업이 현저히 악화될 수 있다고 판단해 정부에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 지정을 신청했다.

충남 서산은 전남 여수에 이어 '석유화학 산업위기'에 따른 두 번째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됐다.

경북도 포항 철강 산업이 글로벌 공급과잉, 불공정 수입재 유입 등으로 현저한 악화가 우려된다고 판단해 위기지역 지정을 신청했다.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되면 정부는 긴급경영안정자금, 지방투자촉진보조금 우대 조치를 취한다. 이와 함께 중소기업에 대한 정책금융 지원도 강화한다.

정책금융기관에서는 중소기업 대출에 대한 만기연장·상환유예를 지원하고, 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에서는 협력업체·소상공인에 우대보증 지원프로그램을 출시한다.

정부는 이밖에 기업 경쟁력 강화 등을 위한 맞춤형지원(기업지원, 인력양성) 등을 할 예정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위기 대응과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산업공동화를 막기 어려울 것이란 비관론도 만만치 않다.

2020년대 들어 중국은 정부의 보조금 등을 활용한 과잉생산을 통해 한국, 일본, 독일과 같은 서방 제조업 강국들의 목숨줄을 노렸다.

그리고 그 작업들은 이제 큰 결실을 맺고 있다.

때 마침 미국은 중국이 주도한 자유 선진권역 제조업 해체 작업에 동참하고 있다.

미국이 중국과 한 편을 먹은 것인가 의심이 들 정도다.

미국은 한국 제조업에게 미국에서 생산하라고 손짓하고 있다. 전기는 한국보다 더 싸게 주겠다고 한다.

한국은 산업용 전기같은 제조간접비를 대폭 올려 자국 기업들에게 똥침을 날린 뒤 지금은 노란봉투법을 통해 '미국으로 가라'고 종용하는 중이다.

전세계가 부러워하던 한국의 낮은 산업용 전기 시스템, 그리고 제조업 콤비나트를 파괴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과장을 좀 보태면 필자의 눈엔 '한국경제의 자살'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 회담을 잘했다고 한다. 회담을 한 뒤 지지율 조사를 보니, 인기가 더 오른 건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필자는 이런 성리학적 이미지 조사엔 크게 관심이 가지 않는다.

한국은 최근 미국에 3,500억 달러 투자와 1,000억 달러 에너지 구매를 약속했다. 그리고 이번 이재명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서 1,500억 달러 직접투자를 또 약속했다고 한다.

인당 국민소득이 미국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중진국 한국'(!)이 '선진국 미국'에 이토록 인심을 쓰는 데도 별다른 위기 의식이 없는 한국민들은 보고 있으면 답답하다.

투자 규모를 보고 있으면 한국 기업들이 단순히 미국에 투자하는 게 아니라, 그냥 한국 제조업체들이 미국으로 옮겨가는 것 아닌지 의심이 갈 정도다.

한국인들 정신차려야 한다.

한국인들은 몇 년 전부터 중국이 과잉생산을 통해 한국 제조업을 먹어치울 때도 무신경하게 있더니, 제조 기반이 미국으로 이탈하려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러려니' 하고 있다.

필자는 작금의 한국 산업 위기와 한국민들의 너무나 평화로운 반응을 보고 있으면 자꾸만 '냄비 속 개구리'의 최후가 떠오른다.

중대한 변화를 눈치 채지 못하고 무관심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의 미래는 정해져 있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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