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5-05-24 (토)

(장태민 칼럼) '호텔경제학' 둘러싼 경제학도들의 발랄한 반응

  • 입력 2025-05-23 14:50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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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이재명 후보가 2017년 2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던 그림

자료: 이재명 후보가 2017년 2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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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이른바 '호텔경제학'이 인터넷의 밈 현상을 촉발시키면서 한국사회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지금까지 한국인들에게 알려졌던 경제학 중 가장 뜨거운 호응을 불렀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다만 일반인들의 '호텔경제학'에 대한 평가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밈의 상당수가 조롱이었다.

하지만 이재명 후보는 사실 오래 전부터 '호텔경제학' 얘기를 해왔다. 이번에 보다 대중화된 것 뿐이다.

이 후보는 2017년 초 자신의 페이스북에 '기본소득, 그리고 지역화폐의 유용성'을 홍보하기 위해 호텔경제학 관련 내용을 올리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 대선 선거운동을 하면서 지난 16일 군산 유세에서 다시 ‘호텔경제학’을 써먹었다. 그러자 한국사회에 지난 번보다 더 뜨거운 반응이 이어진 것이다.

한국에서 뜬 '호텔경제학'

호텔경제학은 2025년 대선 정국에서 뜨거운 이슈가 된 '경제학'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역화폐의 유용성, 확대 재정정책의 필요성 등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개념이다.

대략 핵심 경제행위들에 번호를 매겨보면 이렇다.

1. 한 여행객이 호텔에 10만원의 예약금을 낸다.

2. 호텔 주인은 이 돈으로 가구점에 외상값을 갚고 가구점 주인은 그 돈으로 치킨집에서 식사를 한다.

3. 치킨집 주인은 문구점에서 물건을 사고, 문구점 주인은 호텔에 빚을 갚는다.

4. 마지막에 여행객이 예약을 취소하면, 호텔은 받은 10만 원을 환불해준다

이 과정에서 돈의 총량은 변하지 않지만 각 경제주체들이 소득을 올리거나 빚을 갚는 등 경제 행위를 하게 돼 경제를 순환시켰다는 내용이다.

이재명 후보는 재정을 확대하면 이런 식으로 소비가 늘어나 경제가 살아난다는 논리를 차용했다.

■ 호텔경제학에 대한 조롱...그리고 '좀 심하다'

하지만 인터넷 등에선 이런 식의 '경제활성화' 논리를 조롱하는 비판이 많았다.

또 실제 경제에선 돈이 들어오면 모두 소비로 활용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잖은 지적도 많았다. 한계소비성향이 1인 경우는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전소득의 한계소비성향은 0.2 수준에 불과해 이재명식 '순환경제'는 성립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무튼 다수의 사람들은 단순한 순환 논리만으로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호텔경제학'에 대해 경제학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소위 '호텔경제학'을 무조건 조롱하는 것은 좀 지나치다는 평가도 나온다.

현재 고위 공직자로 인하는 경제학 박사 A씨는 "호텔경제학 얘기 구조를 보면 호텔 주인의 누군가에 대한 부채와 채권이 없어지는 것으로 나온다. 여러가지 불투명한 승수효과나 심리효과를 보면 상황은 생각보다 복잡할 수 있다"고 점잖게 말했다.

■ 이준석이 본 호텔경제학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는 이 문제에 대해 유쾌하게, 그리고 매우(!) 진지하게 접근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후보는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경제학과 컴퓨터사이언스를 전공했던 인물이다.

지난주 경제분야 토론에서 이 문제를 비판하기도 한 그는 20일 페이스북에 관련 내용을 올려서 다시한번 비꼬았다.

이준석 후보는 "이재명 후보는 인터넷 밈을 대한민국의 경제를 돌리는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면서 일단 잽을 먹였다.

그런 뒤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는 '호텔경제학'의 시초에 해당하는 2009년의 글을 올렸다.

2009년 오스트리안 경제에 대해 글을 쓰는 블로거인 로버트 블루멘은 Mises Institute 기고문에서 비슷한 사례를 소개하며 이를 '오해를 부르는 두뇌게임(Misleading Brainteaser)'이라고 비판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이 얘기는 경제학 담론이 아니라 역설을 이야기하는 게 목적이고 원전은 2009년 6월 15일에 누가 블로그에 올린 글이라고 했다.

이준석 후보는 "이재명 후보가 이 글을 읽고 호텔경제학을 자신의 경제철학으로 삼았다면 인터넷 '조롱'을 원전으로 삼아서 대한민국의 경제를 운영하려고 한 것"이라며 "심지어 이 이야기는 저급한 조롱에 해당하는 역설이라 내용 중에 호텔에 돈을 가져다 주는 것은 '매춘부'로 돼 있는 것이 원전의 내용"이라고 했다.

그는 "이재명 후보의 버전에서 매춘부 대신 문방구로 바뀌어 있다고 해서 이 이야기가 그럴듯한 경제담론이 되는 게 아니다. 나도 정치에서 어지간한 기이한 상황은 다 겪어봤다고 생각했는데 인터넷 조롱 수준의 내용을 경제정책으로 유세차에 올라가서 이야기하고 우격다짐을 이어가는 경우는 처음 본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얘기를 철회하고 이런 천박한 이야기를 경제철학으로 설파한 것에 책임을 지라"고 했다.

■ '이재명 경제책사' 하준경 교수의 호텔경제학 옹호

'호텔경제학'이 조롱거리로 전락할 우려를 나타내자 하준경 한양대 교수가 나섰다.

하 교수는 한국은행 출신으로 미국 브라운대학에서 박사를 받은 인물이다. 2022년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를 지지한 바 있으며, 이재명 후보의 경제 관련 멘토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가 이재명 후보의 '성장' 공약을 뒤받침하는 인물인 만큼 이 후보가 호텔경제학으로 과도한 비판을 받는 것을 방어해야 했다.

한국은행 출신인 하 교수는 한은 역시 이번 호텔경제학 스토리텔링에서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하 교수가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했던 말을 보자.

"어느 마을에 낯선 여행객이 나타나 그 마을의 조그만 모텔에 묵으려고 들어갔습니다. 그는 하룻밤 묵을 비용인 5만원 지폐를 모텔 주인에게 지급한 후 2층 방으로 올라갔죠. 모텔 주인은 며칠 동안 고기를 외상으로 사느라 빚졌던 5만원을 갚았고… 이 얘기는 한국은행이 2024년 발간한 ‘한국은행과 지급결제제도’에서 돈이 돌아야 거래가 생기고 빚도 갚게 된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든 예시입니다."

그러면서 하 교수는 "경제는 매우 복잡해 그 속에 숨어있는 원리를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은 복잡한 것을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가능한 한 현실을 단순화시킨 예시를 이용하여 원리를 설명한다"고 했다.

한국사회 일각의 '호텔경제학'에 대한 조롱이 불편한 모습이었다.

하 교수는 케인즈가 공황에 빠진 세계경제를 구하기 위해 1936년 쓴 ‘일반이론’도 중요한 예라고 했다.

그는 "경제가 깊은 불황일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정부가 땅에 구멍들을 파는 정책을 편다. 혹은 병안에 돈을 집어넣은 뒤 폐광에 묻고 쓰레기로 덮은 후 민간기업들이 이 돈을 다시 꺼내도록 하는 정책을 쓴다. 이런 극단적인 예를 통해 케인즈는 이런 비현실적이고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정책이라도, 확장적 재정정책이 총수요 부족에 따른 경제침체의 경우에는 경기회복에 도움을 줄 수 있음을 웅변적으로 표현했다. 케인즈의 유효수요이론과 그 예시를 두고 지금 어떤 경제학자도 이를 '땅구멍 경제학'이나 '폐광 경제학'이라고 호도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 교수는 돈이 잘 돌게 해서, 새로 '돈풀기'를 하지 않고도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어떤 상황을 단순화해서 소개한 '호텔의 예시'를 '호텔경제학'이나 '돈풀기식 괴짜경제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면서 자신의 주군(!)을 옹호했다.

별 가치 없는, 밈 거리의 논쟁?

일부에선 '호텔경제학' 밈 현상을 한가하지 않은 한국경제에서 벌어지는 '한가한 말장난'이라는 평가도 내놓았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경제학과 투자론을 가르치는 B 교수는 인터넷 밈을 차용해 이렇게 말했다.

"손님이 다음날 식사를 위해 초밥을 예약한 뒤 막상 다음날이 되자 취소했다고 합시다. 비록 가게에 들어온 돈은 없지만 수산시장과 운송업 경제에는 활기가 돌았기 때문에 경제 활성화엔 기여했다는 게 호텔경제학이죠."

만약 호텔경제학(초밥경제학)이 맞다면 어려운 한국경제는 당장 전국에 있는 모든 호텔(초밥집)에 10만원씩 예약하고 취소하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를 통해 경제가 활성화된다면 호텔경제학은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못하는 것은 이 이론이 전혀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B 교수는 복잡하고 진지하게 생각할 것 없다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이 논리는 부도수표 유통과 같다고 봅니다. 그리고 굳이 논평을 하자면 견식초성(犬食草聲)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어려운 한자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냥 개 풀 뜯어먹는 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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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벤 버냉키와 '호텔경제학'을 얘기하는 포브스의 2011년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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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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