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최상목 경제부총리

[장태민의 채권포커스] 여·야 예산안 시한 넘기고 대치...경제부총리, 정쟁 따른 국가신인도 훼손 우려
이미지 확대보기[뉴스콤 장태민 기자] 우원식 국회의장이 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본회의에 예산안을 상정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회의원장은 예산안이 법정 기한(2일)을 지키지 못하게 돼 국민들에게 대단히 송구하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법정기한을 지키지 못한 것을 감수하면서 예산안 처리를 미룬 이유로는 "예산안 처리가 국민에게 희망을 드리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 의장은 야당 출신인 만큼 여당과 정부의 잘못에 무게를 실었다.
그는 "정부가 국회의 예산심의권을 얼마나 존중하고 충실히 뒷받침했는지도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정부의 자성과 태도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야와 야는 예산안 처리 시한을 넘기면서 상대방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국민의힘의 민주당은 단독 예산안 처리 철회를 사과해야 추가적인 협상에 나설 수 있다고 했다.
야당은 대통령실이나 검찰의 특활비 등의 감액을 반영한 예산안을 처리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 여당, 야당은 왜 마약수사 못하게 막는가
여당은 이번에 삭감된 경찰 특수활동비의 상당수는 마약범죄 수사에 활용되는데, 왜 이런 예산이 '쓸데 없다는 것이냐'고 반발했다.
여당은 "경찰의 특정업무경비와 특수활동비가 한 푼도 없으면 어떻게 마약 공급·유통 과정에 은밀히 접근해 증거를 수집하고 마약 유통책들을 잡을 수 있겠느냐"면서 "혹 민주당에게는 마약사범을 잡으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민주당이 아무리 힘자랑하고 싶어도 그렇지, 대학생의 꿈과 어려운 환경에 있는 아이들의 저금통까지 흔들어서야 되겠느냐고 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은 대학생 근로장학금 예산도 83억원을, 그리고 취약계층 아동 자산형성 지원 예산마저 21억원을 깎았다"고 지적했다.
국힘은 "어려운 환경에 있는 아이들 저금통까지 손대는 것이 민주당이 말하는 ‘민생’이고 이재명 대표가 말하는 ‘먹고사는 문제 해결’이냐"고 했다.
'쓸데없는 것만 잘라냈다'는 이재명 대표에게 다시 묻는다고 했다.
여당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 석유탐사를 위한 도전, 마약 잡는 사회안전, 그리고 대학생의 꿈과 아이들의 저금통이 '쓸데없는 것'이냐"고 했다.
야당이 단독으로 처리한 감액 예산안에는 전공의 지원사업 예산이 1천억원 가까이 삭감됐다. ‘대왕고래 프로젝트’라 불리는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 사업 예산 505억원 중 8억원만 남기고 497억원이 삭감됐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민주당이 단독으로 역사상 최초로 예결위를 통과시킨 예산안에 대한 총평은, 그냥 국정마비를 목적으로 한 목적만 보이고, 디테일로 들어가 보면 앞뒤가 안 맞다"면서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주도한 AI 기본법에는 적극 동의했으면서도 AI 생태계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안정적 전력 공급의 새 희망인 소형모듈 원자로 SMR 관련 R&D 예산은 대폭 삭감했다"고 우려했다.
한 대표는 "더 답답한 것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비효율을 그대로 방치하면서 지역화폐 비효율은 더욱 키우려 한다는 것"이라며 "국회의 특활비는 그대로 살려놓고 밤길 편하게 국민들 다니게 하는 경찰의 치안 유지를 위한 특활비는 0으로 만들었다"고 비난했다.
민주당이 오히려 이재명 당 대표를 위해 정략적으로 예산안을 활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재명 대표가 징역형을 받은 허위사실 공표죄를 아예 없애버리겠다고 했던 것, 그리고 당선무효형의 기준을 벌금 1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했던 것, 그리고 범죄자가 검사를 취사선택할 수 있게 하고, 공범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판사를 기피할 수 있게 법을 뜯어고치겠다고 한 일을 생각해야 한다"면서 "이런 일이 백주대낮에 벌어지고 있고, 그리고 국민들 모르게 벌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 대단히 개탄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야당이 최재해 감사원장,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조상원 중앙지검 4차장, 최재훈 중앙지검 반부패2부장검사, 이렇게 자기들을 수사하거나 자기들에 관한 비위를 조사했던 사람을 콕 찍어서 찍어내겠다고 탄핵하는 것, 이게 대한민국에, 2024년에 있을 수 있는 일인가"라고 했다.
경제부총리를 지낸 추경호 원내대표는 야당이 겉으로는 예산증액을 포함한 협상을 하는척 하면서 뒤로는 단독 삭감예산안을 기획하여 날치기 통과시켰다고 비판했다.
추 원내대표는 "역풍이 두려운지 뻔뻔하게도 정부가 수정안을 내면 협상할 수 있다고 하는 민주당 대표의 이중플레이는 정부 여당을 우롱하고 국민을 바보로 여기는 처사"라며 "민주당은 예결위 날치기 처리에 대해 국민과 정부‧여당에 사과하고 즉각 감액 예산안을 철회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했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민주당이 예결위에서 감액예산을 통과시킨 것은, 아마 이제 앞으로 예산을 인질로 잡고 자신들이 요구하는 예산증액을 협상하기 위한 지렛대로 삼기 위한 것"이라며 "예산 처리 과정에서 민주당은 자신들이 요구하는 예산을 증액시키기 위해서는 정부 운영에 가장 필수 불가결한 예산을 일단 감액해 놓고, 그것을 원상회복하는 조건으로 자신들의 증액 요구를 관철 시키려 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 야당, 특활비 삭감 '당연'...지역화폐 예산 등 관련해 불만 표출
오늘은 헌법에서 정한 2025년 예산안 처리 시한이다.
헌법 제54조 2항은 ‘정부는 회계연도마다 예산안을 편성하여 회계연도 개시 90일 전까지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이를 의결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야당은 예산안이 처리되지 못한 책임을 여당으로 돌렸다.
박찬대 민주당 원대대표는 "정부와 국민의힘이 민생예산 증액엔 관심이 없고 특활비 사수에만 관심을 쏟고 있는데 협상 기한을 더 준들 뭐가 달라질까"라며 "민주당은 마지막까지 민생예산, 미래를 준비하는 예산, 그리고 정책예산을 관철하기 위해서 정해진 기한 내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박 원대대표는 "민주당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당과의 합의 불발로, 그리고 기재부의 반대로 내년 예산에서 총수입 3천억, 총지출 4조 1천억 원을 감액하게 됐다"면서 "국회가 감액권한만 있고 증액권한이 없는 상황에서 비정상으로 운영되고 있는 나라살림을 정상으로 돌리기 위해 국회가 가진 권한으로 내린 특단의 조치"라고 주장했다.
야당은 정부가 감액한 예산이 사실상 24조원에 이른다면서 자신들이 감액한 예산은 '대통령 비서실과 검찰 등 권력기관 특활비 전액과 과도하게 편성된 예비비 2조 4천억원'이라고 항변했다.
원대대표는 "유례없는 최악의 세수펑크 사태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초부자감세를 진행하며 민생 예산 24조를 감액 편성했다. 정부가 민생과 경제를 입에 올릴 자격이 없다"고 했다.
야당은 지역화폐 예산 등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중이다.
윤종군 원내대변인은 "지역화폐, 기후위기 대응, 장애인 지원 예산 등 국민의 삶에 직결되는 예산 증액에는 ‘입꾹닫’하지 않았느냐"라며 "그런 입으로 민생 운운하다니 정말 뻔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권력기관 특활비를 지키겠다고 민생을 운운하는 파렴치한 정권에 분노한다"면서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정권과 여당의 예산 횡포를 막아내겠다"고 했다.
■ '무능한 여당' vs '세 과시 일관하는 야당'...부총리 "자칫 국가신용도 흠집날라"
여당은 야당의 예산안 관련 횡포를 '이재명 지키기'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야당은 권력기구가 쓸 수 있는 돈을 못 쓰게 막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이런 가운데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이날 정부 합동브리핑 자리를 마련해 "국가 예산을 책임지는 주무부처 장관으로 유감을 표한다"면서 "야당은 지금이라도 헌정사상 전례가 없는 단독 감액안을 철회하고 진정성 있는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했다.
최 부총리는 "미국 신정부 출범에 따른 보호무역 심화, 공급망 불안 등 거센 대내외 도전에 직면한 경제난국임에도 야당은 감액 예산안 강행이라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고 했다.
특히 이런 식의 극한 정쟁은 국가신인도마저 떨어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부총리는 "(야당의 행위는) 대내외 악재에 대응할 여력을 줄이고 불확실성을 키워 우리 재정운용 역량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려 국가 신인도가 훼손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혁신성장펀드와 원전산업성장펀드 등 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정부 예산안을 삭감하고 출연연구기관과 기초연구·양자·반도체·바이오 등 미래 성장동력 R&D 예산도 815억원이나 감액한 것은 산업경쟁력 강화와 관련한 골든타임을 놓치게 만들 수 있다고 염려했다.
야당이 본회의에서 단독 통과시키려는 세법개정안에는 여·야·정이 잠정 합의했던 반도체·AI 등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세제지원 확대 등도 빠져 있다고 걱정했다.
아울러 야당 감액안은 국고채 이자비용 5천억원이나 삭감하면서 그 근거도 제시하지 못할 정도로 허술하다고 비판했다.
부총리는 세계가 총성 없는 경제 전쟁 중인 상황에서 거대 야당이 예산안을 볼모로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