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6-04-01 (수)

(장태민 칼럼) 전세 소멸과 주거 사다리 걷어차기

  • 입력 2026-04-01 15:24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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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서울 도심에 집을 공급하겠다는 국토부 홍보물

자료:서울 도심에 집을 공급하겠다는 국토부 홍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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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작년 6월부터 본격 가동한 이재명 정부는 이틀전인 3월 30일에 출범 300일을 맞이했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후 300일이 지난 이 시간까지도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 하층민들의 삶은 더욱 궁핍해져, 주거 불안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정부 출범 후 채 1년이 지나지 않은 가운데 서울 아파트 값은 두 자리수로 뛰고, 전세는 씨가 말랐으며, 월세는 폭등했기 때문이다.

■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폭등보다 더 걱정되는 일은 임차인 문제

KB국민은행 데이터 기준으로 이재명 정부 출범 뒤 서울 아파트 값은 11% 남짓 뛴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6.27대책, 10.15대책 등 각종 대책을 내놓았지만 집값을 통제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특히 각종 규제책은 서울 지역에서 사는 '없는 사람들'을 더욱 힘들게 했다.

무엇보다 정부의 다주택자 규제가 문제였다. 정부의 좋은 의도와 달리 다주택자 규제는 없는 사람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정책이다.

다주택자들이 내놓은 집에서 살 수 밖에 없는, 전월세 임차인들의 삶은 다주택자들을 규제하는 순간 더욱 고통스러워진다. 아이러니해 보일 수 있지만 당연한 일이다.

사실 이재명 정부가 펼치고 있는 부동산 정책은 '가난한 자들 서울에서 내쫓기 정책'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여전히 다주택자와 임차인의 운명이 '연결돼 있다'는 점을 깨우치지 못한 정부의 정책을 보고 있으면 답답할 뿐이다.

정부가 자랑하는 '좋은 의도와 착한 정책'이 없는 사람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 10.15는 전세 순환고리 끊어내는 외통수였다

서울에서 아파트 전세를 살고 있는 지인 A씨는 요즘 집 문제 때문에 잠을 설치고 있다.

A씨는 원하는 주택을 살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돈을 모으지 못한 상태에서 새로운 전세 물건을 찾아야 하는 궁지에 몰려 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서울의 변두리 지역에서도 '괜찮은' 전세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울상을 지었다.

서울 하급지인 노도강·금관구 등의 아파트 단지에서 전세 매물이 '아예 없는' 케이스들이 나타나고 있다.

1천세대, 2천세대 아파트 단지에서 전세 매물이 아예 없는 현상이 2026년 서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여태 보지 못한 이런 희귀한 일은 정책 효과가 '제대로 발현됐기 때문'에 나타났다.

정부는 작년 10월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었다.

아파트 전세 매물은 집주인이 직접 살지 않고 세를 놓을 때 나오지만,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는 이 구조가 막힌다. 실거주 의무 때문이다.

토지거래허가구역 내에서 주택을 구입하려면 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때 2년간 직접 거주하겠다는 확약서를 내야 한다.

집을 사자마자 세를 놓는 갭투자가 원칙적으로 금지되고 새로 팔리는 집들이 모두 주인 실거주용이 되니 시장에 나올 전세 매물이 사라지는 것이다.

집을 가진 사람들도 집을 팔 때 '실거주할 사람'에게만 팔 수 있다.

매수자가 한정되다 보니 거래 자체가 줄어들고 집주인들도 이사 가기보다 어려워 그냥 눌러 앉아 버린다.

■ 다주택자, 임차인에게 집 공급한 '좋은 일' 한 사람으로 볼 순 없었을까

아울러 정부가 전세의 중요한 공급원이었던 다주택자와 임대사업자를 억압하면서 임차인들은 집을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다주택자나 임대사업자는 투자 목적으로 집을 사서 임차인에게 임대주택으로 공급하던 중요한 공급자였다.

하지만 이제 이런 사람들이 임대차 시장에서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없다.

오로지 '1주택 실거주자' 위주로만 가는 구도를 만들어 놓다보니 여기저기서 수급 병목현상이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임대차 시장에 공급될 물량의 씨가 마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주택시장을 관찰해 온 사람들은 이미 10.15대책이 나왔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전세의 순환고리가 끊어져 버려 서울 무주택자, 하층민들, 돈없는 청년층 등에겐 더욱 힘든 시기가 펼쳐지고 있다.

작년 10.15 대책 이후 서울 전월세 매물은 5개월 남짓 만에 50% 가까이 급감한 상태다.

특히 노도강 등 서울 하급지들의 경우 매물이 절반 이상 대폭 줄어든 곳이 허다하다.

■ 급속히 월세화 되는 한국 임대차 시장

지금 임대차 시장은 월세 시장으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

정부의 정책 탓에 이제 임차시장에서 전세는 '희귀템'이 되고 월세가 대세가 되고 있다.

어느새 임대차 시장에서 월세가 70% 가까운 비중으로 올라왔다.

집주인들도 월세를 선호한다. 특히 보유세 등 세금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월세 선호도가 높아졌다.

서울 아파트값이 급등하면서 집주인이 내야 할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는 크게 늘었다.

집주인은 생돈으로 세금을 내기보다 세입자에게 받는 월세로 세금을 충당하려고 한다.

세금 부담의 상당 부분은 세입자에게 돌아가고 결국 월세가 더욱 뛰게 되는 것이다. 이 세금 전가 효과는 이미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때 수도 없이 관찰한 바 있다.

전세금을 월세로 전환할 때 적용하는 전월세전환율은 보통 은행 예금 금리보다 높다. 집주인 입장에선 매달 꼬박꼬박 월세를 받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싹을 틔우고 윤석열 정부가 해법을 잘못 찾은 '빌라왕 사태' 역시 월세를 부추긴 요인이 됐다.

통상 시중금리가 높을 때는 세입자들이 비싼 전세대출 이자를 감당하기 힘들어 전세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또 고금리 효과로 전세가격이 떨어지면 집주인은 나중에 나가는 세입자에게 돌려줄 전세금이 부족해지는 역전세 난을 겪을 수 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빌라왕 사태'를 학습한 뒤 목돈이 안 드는 월세를 선호하기도 한다.

■ 전세와 월세 경쟁의 소멸...주거비는 더 오를 수 밖에 없어

사실 오랜기간 한국의 임차인들은 한국에만 있는 특수한 제도인 전세 때문에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비해 '싸게' 살아 왔다.

전세와 월세가 경쟁하는 구도 속에서 한국의 주거비용은 어떤 선진국보다 낮았다. 이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하지만 정부는 전세를 없애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서울 입주 물량마저 없는 엄혹한 '공급의 겨울'에 대출 규제까지 펼쳐 놓으니 전세시장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었다.

한국의 성장 시대엔 월세에서 전세로 옮겨가고 궁극적으로 내 집을 마련하던 '주거 사다리'라는 게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사다리는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다.

이제 임차인들은 어쩔 수 없이 매달 현금 지출을 강요 받아야 하는 월세 구조에 내몰리고 있다.

오랜기간 한국인들은 전세 보증금을 나중에 돌려받는 '저축'의 성격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실제 대출 이자를 내더라도 월세보다는 저렴했던 게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매달 매몰비용(월세)을 물어야 한다. 소득의 상당 부분이 주거비로 빠져나가면 '없는 사람들'이 집을 사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월세가 대세가 돼버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종잣돈을 모으기 더욱 힘들어졌다는 푸념을 늘어놓곤 한다.

임대차시장의 개편...'월세의 시대' 서울에 살려면 돈 더 내야

정부 정책 덕분에 전세는 사라지고 있다.

상당수 정부 관계자들이 '한국에만 있는 이상한 제도'라며 전세를 비하했지만, 한국의 상당수 '없는 사람들'은 전세 때문에 집을 마련해왔다.

이제 월세만 남는 구조가 빠르게 만들어지고 있다.

향후 전세가격은 희소 가치 때문에 더욱 뛸 것이다. 경쟁하는 대체제 전세가 소멸되는 상황에선 월세 역시 상승 압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서울 아파트 평균 월세는 올해 2월 기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 뛰어 151만 원에 도달했다. 이 가격은 더 오를 것이다.

아울러 가족 단위로 거주하는 '좋은' 아파트의 경우 이미 월세가 수백만원에 달한다.

보증금 1억원을 전월세전환율 6%로 환산하면 월세는 50만원이다. 일반 아파트의 경우 월세 300만원은 이제 흔해졌다.

현금 흐름이 괜찮은 임차인들은 깨끗한 신축, 입지 좋은 준신축 등에서 살기 위해 보증금과 월세를 조정해서 반전세 형태로 계약하는 경우도 많다.

예컨대 보증금 1억원, 월세 400만원와 같은 거래를 할 때 현금흐름에 따라서 보증금과 월세를 조정하는 반전세 형태의 거래를 많이 하기도 한다.

정부 정책 덕분에 집이 없는 사람들은 서울에서 '더 높은 주거비'라는 선물을 받았다.

필자는 왜 이다지도 많은 사람들이 '없는 사람들 괴롭히는 겉모습만 착한 주택정책'에 찬성하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미국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가르치는 필자의 한 지인이 '몇 년 전'에 했던 말이 생각난다.

"미국 대도시에선 우리 돈으로 월세 700만원, 800만원 이상 줘야 한국의 평범한 아파트 정도 되는 곳에서 살 수 있습니다. 한국 임차인들은 전세 제도가 있는, 전세계에서 주거비가 가장 저렴한 곳에서 살 수 있는 것을 행운으로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제 저렴한 임차 공간을 내주던 다주택자들은 모두 우리 사회의 적폐세력이 돼 버렸다.

한국도 조만간 많은 선진국 대도시처럼 부부 중 한 사람의 월급을 월세를 내는 데 써야 하는 '진정한' 선진국이 될 것 같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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