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5-11-26 (수)

(장태민 칼럼) 정책실장 딸 사랑에 가려진 진실

  • 입력 2025-11-26 15:26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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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

사진: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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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최근 한 야당 국회의원이 대통령실 정책실장에게 한 질의 영상이 세간의 큰 화제였다.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이 김용범 정책실장에게 질문하는 과정에서 '딸 얘기'를 하자 정책실정이 '버럭한' 사건이다.

급기야 김 실장과 '같은 편'인 김병기 국회 운영위원장(여당 원내대표)이 몇 차례나 고함을 치면서 둘의 싸움을 말려야 했다.

한국 사람들은 자신들의 혀를 끌끌 차면서 '동물 국회'를 즐겼다.

필자는 다만 많은 국민들의 눈요기가 된 이 말싸움 장면에서 질의의 본질은 사라져버린 것 같아 안타까웠다.

김은혜 의원의 질의 내용은 국가의 부동산 정책에 관여하는 아버지가 '본인 딸에게는 좋은 전세를 마련해 주면서 왜 다른 청년들에겐 월세에 살라고 하는 것이냐'는 것이었다.

■ 상황의 재구성

* 2025년 11월 18일 국회 운영위원회.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과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 대화의 일부>

김은혜: 지금 따님이 전세 살고 계시죠? 전세금은 누가 모은 겁니까?

김용범: 딸이 저축을 한 게 있고요, 제가 빌려준 게 있습니다.

김은혜: 그럼 실장님은 이 정부가 얘기하는 갭 투자로 집을 사셨죠?

김용범: 아닙니다. 갭투자 아닙니다. 2천년도에, 갭투자 아니고요, 중도금 다 치러서 한 겁니다.

김은혜: 따님은 자기 집을 살 수 있는...

김용범: 아니, 전셉니다. 보유가 아니고.

김은혜: 전세이고 월세가 아니잖아요. 보통 집을 살 수 있는 주거 사다리로 전세를 얘기하죠.

김용범: 그런 의미로 지금 가 있는 건 아닙니다.

김은혜: 자꾸 부인하지 마세요.

김용범: 아니 의원님, 집을 소유하려는 갭이 아니고...

---------중략----------

김은혜 의원이 '딸은 전세 살고 있지 않느냐, 왜 다른 청년들은 월세를 살라고 하느냐'며 정책을 비판한다.

김 의원이 계속 '딸 얘기'를 하자 드디어 우리의 정책실장은 '폭발'하고 말았다.

김용범: 질문을 한 만큼 저에게 답변할 시간을 주세요. 우리 딸을 거명해서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고요. 지금 생애 최초나 청년들 위한 대출 줄인 것 없습니다. 뭘 줄였습니까?

김은혜: 예산 보세요. 버팀목 대출...

(김병기 국회 운영위원장이 끼어든다)

김병기: (발언) 정리해주세요.

김병기 위원장이 끼어든 순간 김은혜 의원과 김용범 실장이 말싸움이 한층 거칠어진다.

김 실장은 김 의원이 '딸을 건드려서' 화가 났고, 김 의원은 '자기 딸만 소중하고 다른 청년은 소중하지 않은' 정책실장에게 열이 받았다.

김 실장은 급기야 딸이 공무원 아빠를 둬서 평생 눈치보고 살았다면서 딸에 대한 진한 부정(父情)을 드러냈다.

필자는 국회의 저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면서 저런 엘리트 공무원 아빠의 딸로 살면 꽤 행복할 것이란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옆에 앉아 있던 우상호 정무수석이 김용범 실장을 말리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뒤이어 이번엔 김병기 위원장이 폭발했다.

김병기: 정책실장! 정책실장! 정책실장!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여기가 정책실장 화내는 곳입니까?

김용범: 송구합니다. (...) 가족 문제는 예민한 것 아닙니까?

■ 아, 대한민국...있는 집 자식들은 '전세 살고' 없는 집 자식들은 '월세 살자'

김은혜 의원은 당시 정부가 청년들에겐 월세로 살거나, 임대주택에 살라고 종용한다면서 이를 문제 삼았다.

정작 이 정부 정책가들 본인 가족들은 임대주택이나 월세 따위엔 애초엔 살 생각조차 없다고 비판했다. 내 자식 귀한 줄만 알았지, 남의 자식 귀한 줄은 모른다고 한 것이다.

논란의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선 예산 편성과 관련된 숫자들을 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사실 청년이나 서민들의 주거와 관련된 예산에 눈에 띄는 수치 변동이 있었다.

정부는 이번 예산안에 디딤돌·버팀목 예산을 14조원에서 10.3조원 수준으로 대폭 깎기로 했다.

그간 상당수 가구는 버팀목 대출을 통해 전세를 구하고 디딤돌 대출을 통해 자가를 마련해왔다.

정부는 대신 임대주택예산과 월세지원예산을 늘렸다. 디딤돌·버팀목 예산은 3.7조원이나 깎은 뒤 월세·임대주택예산을 7조원 넘게 대거 늘렸다.

깎인 예산의 두 배 이상을 월세 쪽에 엎어준 것이다.

이러면 정부 정책이 전세와 자가 구입을 지원하는 쪽에서 월세와 집 사용료를 지원하는 쪽으로 옮아간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사실 김은혜 의원은 문제 제기는 당연한 것이었다.

정책실장이 자신의 딸에겐 전세를 지원하면서 정작 정책 차원에선 '전세, 자가'가 아닌 '월세'에 비중을 두니 당연히 질문이 나온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김 실장이 자신의 딸은 서초구 아파트에서 전세 살게 해주고 없는 집 자식들은 월세나 살라고 한다"고 흉을 본 것은 당연했다.

■ 전세 없애려는 자들 주시해야

정부가 정책을 통해 집값을 너무 띄워버리면 자신의 노동으로 내집 마련을 하려던 사람들, 부자 아빠나 부자 엄마가 없는 젊은층들은 궁지에 몰리게 된다.

하지만 정부는 집값을 계속 더 띄우면서 '전세 살지 말고 월세 살라'고 한다.

안 그래도 최근까지 월세가 급등을 거듭해왔는데, 정책마저 이런 식이면 없는 사람들은 더욱 어려워진다.

사실 필자는 문재인·윤석열·이재명 정부를 막론하고 '전세를 없애려는' 세력들이 적지 않아 당황한 적이 많다.

한국은 사실 다른 나라에 없는 '전세 제도'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싸게' 살 수 있었다.

뉴욕 등 세계 유명 도시를 보면 직장인이 번 돈의 절반 이상을 월세 내는데 받쳐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왜 한국은 지금 전세를 없애려는가.

필자는 과거 외국계 회사 등에 근무할 때 '한국의 전세제도'에 크게 놀라는 외국인들과 얘기를 나눠본 적이 있다.

그 외국인들이 한국의 전세제도를 진심으로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들은 또 한국 사람들이 복지국가로 알고 있는 북유럽의 임대제도보다 더 나은 게 한국의 전세제도라고 평가했다.

한국에서 전세와 월세는 서로 경쟁하면서 없는 사람들이 다른 나라보다 싸게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다. 한국에서만 살면 이런 진실을 모른다.

하지만 현재 전세제도는 '갭투자 악마화'·'다주택자 악마화' 등 사회 분위기 때문에 큰 위기를 맞고 있다.

그리고 김용범 실장과 같은 우리의 정책가들이 '가붕개'는 이제 개천에서 시내나 작은 강으로 옮기는 것조차 막는 정책을 쓰는 것 아닌지 걱정이 된다.

하지만 사람 좋은 김용범 실장이 절대 그럴 리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딸에게 '전세금'을 보태줄 정도로 전세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사람이 아닌가.

다만 예산안에서 전세, 월세 지원 관련 돈을 대폭 손질하는 걸 보니 의심이 좀 된다.

필자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전세를 없애려는 자들, 그들이 서민과 노동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의 진짜 적이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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