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5-11-25 (화)

(장태민 칼럼) 녹아 내린 원화와 환율 방어에 동원된 국민연금

  • 입력 2025-11-25 13:37
  • 장태민 기자
댓글
0
자료: 25일과 최근 달러/원 환율 모습, 출처: 코스콤 CHECK

자료: 25일과 최근 달러/원 환율 모습, 출처: 코스콤 CHECK

이미지 확대보기
[뉴스콤 장태민 기자] 달러/원 환율이 1,470원을 넘는 고공행진을 이어가자 정부가 결국 국민연금 활용도를 높이는 처방전을 빼들었다.

정부는 한국 돈 가치가 추락하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최근 실질실효환율은 89.09까지 떨어져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8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급락했다.

9월 이후 달러 인덱스 상승폭이 3%에 불과한데 원화가 6% 넘게 약세를 보였다. 즉 한국 돈만 유독 더 약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역사적으로 달러/원이 1,480원 이상을 기록한 경우는 1998년 IMF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지난해 비상계엄 사태 등 3차례 정도였다. 결국 한국 정부의 인내심도 바닥났다.

정부와 한은은 전날(24) '외환당국-국민연금 4자 협의체 구성' 사실을 공표했다.

당국은 "기획재정부·보건복지부·한국은행·국민연금은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확대과정에서의 외환시장 영향 등을 점검하기 위한 4차 협의체를 구성했"면서 "금일(24일) 첫 회의를 개시했으며 앞으로 4차 협의체에선 국민연금의 수익성과 외환시장의 안정을 조화롭게 달성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다.

향후 시장 상황에 따라 비정기적으로 협의체를 가동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환율이 급등할 때 즉각 대응할 수 있는 ‘탄력적 회동’ 체제는 만든 셈이다.

하지만 금융시장 등에선 '정부가 기어이 국민연금을 환율 방어에 동원했다'면서 이를 우려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구조적 변화가 이끈 고환율...그리고 국민연금까지 동원할 수 밖에 없었던 사연

정부가 적극적으로 국민연금 카드를 꺼내든 이유는 고환율 요인이 단순 수급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요인까지 겹친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즉 정부는 최근 환율 급등을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다.

정부는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 확대와 개인투자자의 미국 주식 매수 증가가 달러 수요를 고착화시키는 구조로 작용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소위 서학 개미들의 덩치가 커진 뒤 국내 기업들이 수출을 통해 달러를 많이 벌어도 해외로 나가는 달러 규모는 커졌다.

윤철 경제부총리 최근 "풍부한 수출 달러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외화가 해외로 빠져나가 달러 부족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울러 트럼프 2기가 열리면서 한국은 FTA 체결국으로서 수출에서 관세를 물지 않다가 이젠 15% 이상의 관세를 물게 됐다.

한국이 과거엔 상상도 못했던 관세를 물게 되면서 일단 달러/원은 오를 수 밖에 없었다.

이와 함께 매년 맥시멈 200억불 내에서 미국에 투자해야 한다는 점 역시 고환율이 쉽사리 해소되기 어려운 요인으로 평가된다.

한은 등이 달러투자금 마련에 큰 문제는 없다고 했지만, 정부가 한·미 관세협상에서 받아들인 매년 최대 200억 달러의 현금 대미투자 약속은 외환보유액을 직접 갉아먹는 구조다.

최근 미국의 금리인하 기대감 퇴조 등 시장 요인이 달러/환율 상승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한국이란 나라 자체의 구조적인 변화가 고환율을 떠받치는 요인이 됐다.

아무튼 최근 원화 가치의 절하 정도는 주요국에서 가장 두드러진 모습을 보였으며, 이는 당국이 국민연금까지 동원하는 계기가 됐다.

환율 방어선은 올라갔다...'뉴노멀' 인정한 금융당국의 기본틀 만들기

2024년 4월.

달러/원 환율이 1,400원을 돌파하자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표는 "국가 경제 전반에 위기가 현실화됐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당시 "정부 구체적 대책을 마련해야 하다"면서 압박을 거듭했다.

후 야당 대표는 대통령이 됐으며, 이제 달러/환율은 1,500원향해가고 있.

대통령은 야당 시절의 환율 1,400과 지금 시대 환율은 그 성격이 달라졌다고 보고 있다. 이제 1,400을 어느 정도 넘는 환율은 용인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1400을 넘어선 환율은 '뉴노멀'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1,500원을 위협하는 환율을 계속 지켜보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판단된다.

앞으로 달러/원 환율 급등 당국이 국민연금의 전략적 환 헤지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은 해외자산 비중이 44%에 달하는 만큼 보유 달러를 시장에 공급하면 원화 약세 압력을 완화할 수 있다.

환율이 미리 정해둔 기준을 넘어설 경우 해외 자산 중 최대 10%까지 달러를 매도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시장에서는 발동 기준선이 1,480원 안팎일 것이라는 , 레인지를 너무 타이트하게 잡으면 부담이 커진다는 둥 이런저런 얘기가 흘러다닌다.

기존의 한은-국민연금 외환스왑 계약은 당연히 연장될 것으로 보인다. 양 기관은 지난해 650억달러 규모의 스왑 계약을 체결했으며 연말 만료를 앞두고 있다.

스왑이 연장되면 국민연금은 해외투자용 달러 조달 시 시장에서 직접 달러를 사지 않아도 돼 외환시장 수급 안정을 돕는다.

향후 한은, 정부 등이 당국의 개입 등을 보면서 당국의 환율 관리 틀에 대해 좀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 노후자산' 국민연금, 환율 방어 활용에 놀란 사람들

전날 당국이 국민연금을 활용한 환율 방어를 발표하자 놀라는 사람들도 많았다.

우선 금융시장 등에선 1,322조원의 국민 노후자산 국민연금을 환율 방어에 활용한다는 '발상 자체가 위험하다'는 비판이 많았다.

정부 정책의 실책으로 인한 외환시장 불안을 국민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을 활용해 해결한다는 태도 자체가 문제라는 식의 감정적인 반응도 있었다.

환 방어 명목으로 연금을 털어먹으면 결국 젊은 세대가 더 큰 부담을 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들도 나왔다.

국민연금이 환율에 신경쓰다 보면 수익성이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컸다.

국민연금은 환헤지 비용을 줄이고 환차익을 확보하기 위해 2015년 이후 환헤지를 하지 않는 전략을 유지해 왔다.

전략적 환 헤지는 달러 매도 시점에 따라 기금 수익률을 떨어뜨릴 수 있고, 해외투자 비중 조정은 장기 수익성과 포트폴리오 안정성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정부 말대로 최근 환 시장에 나타난 '구조적 변화'인정한다면, 오히려 서둘러 국민연금을 동원하는 듯한 모습 자체가 약점을 노출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시장여건 자체를 감안해 현실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진단들도 보인다.

예컨대 현재 한국의 기준금리2.50%로 미국보다 125~150bp 낮다. 미국 투자가 늘어날 수 있는 조건이다.

여기에다 대미 관세협상에 따라 기업들은 향후 대미 투자 준비로 달러에 대한 수요를 이어가야 한다.

일각에선 자칫 연금을 무리하게 동원하다가는 국민의 재산인 연금에 손실을 입히고, 헤지 펀드 등에 약점을 노출해 외환위기로 몰릴 수 있다는 다소 비현실적인(?)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다.

예컨대 외환당국이 그간 200-300억달러 가량을 풀어 환율을 방어해왔지만 한국의 방어능력이 약화되자 국민연금에 손을 벌린 꼴이라면서, 투기자본이 이런 정황을 활용해 공격하면 환율이 1,500원을 넘어 1,600원, 1,700원까지도 가서 결국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식의 걱정도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국민연금을 활용한 환율 방어는 연금의 '안정성''수익성' 모두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 한국 돈이 녹는 이유...구조적 고환율 우려에 더한 '확장재정' 후폭풍 걱정

일반적으로 특정 국가의 화폐가치가 추락하는 것은 그 나라 경제의 체력이 약화됐거나, 미래에 약화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국제교역에서 원화의 구매력이 떨어지면 수입 물가가 뛰면서 내수경제는 타격을 입는다. 대신 해외에 내다 파는 물건은 현지국민 입장에선 싸지기 때문에 수출 경기는 좋아지는 효과가 있다.

최근엔 외국인이 주식시장에 국내 주식을 대거 팔면서 환율 상승을 위협했다. 아울러 3,500억달, 아니 그 이상의 미국 투자가 지레 환율이 오를 수 밖에 없다는 식으로 겁을 주는 효과도 있었다.

이런 요인들과 함께 '확장재정, 그리고 그에 따른 재정건전성 우려' 역시 원화를 위협하는 중대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일각에선 이재명 정부가 결코 한 두 번으로 끝내지 않을 현금 살포 정책 등이 결국 원화 가치를 더 떨어뜨리면서 한국경제의 건강을 해칠 것이라고 걱정하기도 한다.

정치권에선 야당에서 특히 이런 목소리가 많이 나온다.

국가재정을 담당하는 기재부 2차관을 지낸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4 한국 경제에 대한 불신과 잘못된 재정정책이 원화가치를 더욱 낮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환율 상승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한 마디로 요약 한다면 대한민국 경제에 대한 구조적인 불신, 다시 말해서 대한민국 경제의 미래가 매우 어렵다는 뜻일 것입니다. 거기에다 확장적 재정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소모적인 재정지출이 늘어납니다. 이에 따라 시중에 원화 유동성이 늘어나면서 국가부채가 늘어나는 악순환이 계속됨으로써, 결과적으로 환율이 지금 1,470원을 돌파하고 있는 상황인 것으로 보입니다."

금융 바닥에서도 이런 주장과 궤를 같이 하는 진단들이 꽤 많다. 한 채권딜러는 이렇게 논평했다.

"사실상 의미 있는 국가 중 원화가 전세계에서 가장 약한 통화가 됐습니다. 정부에서 서학개미 때문이라는 얘기를 하는 것도 들었고 내년부터 억지로 일으켜야 할 대미투자 때문에 지레 겁먹은 것이란 얘기들도 들었습니다. 이런 얘기에도 진실이 있지만, 한국이 기축통화국도 아닌데 무분별하게 민생지원금 같은 현금살포 로 통화량을 늘린 요인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한국 재정정책에서 보이는 유동성 팽창 시도는 결국 원화를 휴지조각으로 만들 위험이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 저작권자 ⓒ 뉴스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로그인 후 작성 가능합니다.

모바일화면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