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5-11-18 (화)

(장태민 칼럼) 대미투자 '150억불+50억불'에 대해...

  • 입력 2025-11-18 14:27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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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통령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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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한미 관세협상 팩트시트가 공개된 가운데 일각에선 과연 '매년 200억불 돈 마련에 문제 없을까'하는 의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여당 일부에선 '극도로 성공적인 협상'이라고 주장하면서 홍보에 치중하는 모습도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돈 마련 문제가 만만해 보이지는 않는다.

투자하는 돈의 총량 뿐만 아니라 투자처도 중요하다. 미국의 지시대로(?) 투자하다가 돈을 날릴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그러나 '돈이 되는 곳에 투자한다'면서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막돼먹은 트럼프의 미국이 '한국을 압박하면서 투자처를 정할 위험이 있다'는 우려도 남아 있다.

■ 대미 투자, 돈 마련과 외환시장 영향...정부와 한은 '문제 없다'

10월 29일.

정부는 대미 투자금 총 3500억달러 가운데 2000억달러를 현금으로 투자하되 연간 한도를 200억달러로 제한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이 정도 규모이면 돈 마련에 큰 문제 없으며, 외환시장에도 큰 영향 없이 돈을 준비할 수 있다고 했다.

당시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연간 200억달러의 한도 내에서 사업 진척 정도에 따라 투자하기 때문에 우리 외환시장이 감내할 수 있는 범위에 있으며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최소화할 수 있다"고 했다.

정책실장은 외환시장 불안이 우려되는 경우 납입 시기와 금액의 조정을 요청할 수 있는 별도의 근거도 마련했다면서 국민들을 안심시켰다.

아울러 투자 약정은 2029년 1월까지이지만 실제 조달은 장기간 이뤄지고 시장 매입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조달해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완화될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엉뚱한 곳에 투자할 가능성도 차단했다고 자평했다.

원리금이 보장되는 상업적 합리성이 있는 프로젝트만 추진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MOU에 명시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원리금 상환 전까지 한미간 수익을 5대 5로 배분하고 20년 내에 원리금을 전액 상환받지 못할 것으로 보이면 수익배분 비율을 조정하는 게 가능하도록 했다.

정부의 '연간 200억불 한도' 투자는 한국은행의 컨설팅에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정부에 "외환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고 1년 사이 외화를 조달할 수 있는 규모는 150억~

200억달러 수준"이라고 알린 바 있다.

■ '150억불 + 50억불' 정말 문제 없을까

하지만 경제전문가들 사이엔 '한국의 체력을 넘어선' 대규모 대미 강제 투자에 대한 우려를 접지 못하고 있다.

전날 국회 기재위에서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은 연간 200억불 투자 상한과 관련해 "한은의 지난해 외환보유액 수익은 12.8조원, 88억달러였다. 이 수익은 최근 3년 가장 높은 것이었다"면서 200억불 투자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박 의원은 행시와 사시를 모두 합격한 뒤 기획예산처, 기재부, 세계은행 등에서 일했던 경제통 의원이다.

박 의원은 "요즘은 금융시장 변동에 따라 투자수익도 요동치고 있다. 최근 한은 외환보유액이 4조원대 수익을 낸 적도 있었다"고 걱정했다.

그는 "결국 한은 외환보유고 수익률이 최소 5% 이상 나와야 한다. 여기에 구조적으로 한은이 운용수익을 전부 대미투자에 활용하지도 못한다. 30%는 한은 적립금 등으로 제약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연간 200억달러 투자는 천문학적이라고 봐야 한다"고 했다.

구윤철 부총리는 자신과 한 때 기재부 동료였던 야당 경제통 의원의 이런 걱정을 접수한 뒤 "한은 외에 KIC가 운용해서 올리는 수익도 있다. 200억불은 한도 개념이고 기성고에 따라 간다"고 답했다.

정부는 150억불 정도는 한은 외환보유액과 KIC 투자에서 마련하고, 나머지는 해외 외환시장에서 기채를 해서 마련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또 투자내용와 관련해서도 '상업적 합리성'이란 안정장치를 갖고 있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미국의 강압에 못이겨 엉뚱한 투자를 할 수 있다는 우려도 그치지 않는다. '트럼프의 미국'은 동맹의 손발을 비틀어서라도 이익을 챙겨갈 수 있는 무서운 나라가 됐기 때문이다.

CJ제일제당 대표를 지낸 최은석 의원은 "상업적 합리성이란 말은 사실 모호하다. 이런 말로 2천억달러 원리금이 회수된다고 국민을 현혹해선 안 된다"고 일갈했다.

그는 "국민들에게 투자(의 위험성)를 제대로 알려줘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이런 걱정들은 달러/원 환율이 고원에서 잘 내려오지 못하는 원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사실 환율이 1,450원 위에서 못 내려오는 가장 강력한 심리적 원인이 관세협상 아니냐"면서 "1,450원 환율이 뉴노멀이 됐다"고 평가했다.

■ 산업공동화, 정말 기우일까?

한국이 경제 덩치에 비해 너무 큰 대미투자를 하게 됨에 따라 환율 불안정, 국내 산업 공동화에 대한 우려 등이 이어지는 중이다.

이런 와중에 국내 대기업들이 대규모 국내 투자를 약속해 국민들에게 안도감을 선사했다.

국내 기업들이 미국 투자를 위해 한국 내 투자를 줄이면 국내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란 우려가 컸던 상황에서 반가운 소식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16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요 대기업 총수들과 ‘한미 관세 협상 후속 민간 합동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정기선 HD현대 회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여승주 한화그룹 부회장 등 7명이 참석했다.

삼성은 회의 종료 후 5년간 450조 원을 국내에 투자한다고 밝혔다. 최첨단 반도체 공장인 평택사업장 5라인 공사를 추진한다고 했다. 삼성전자는 50조 원 이상이 투입되는 이 공장을 2028년까지 완공하겠다고 했다.

현대차는 2030년까지 국내에 125조20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했다. 직전 5년간 국내 투자액(89조1000억 원)보다 36조1000억 원 늘어난 규모라고 설명했다.

SK는 2028년까지 128조원, LG그룹은 5년간 100조원을 국내하겠다면서 생색을 냈다.

국내 언론들은 환호했지만 필자는 착찹했다.

과연 미국이 원하는 대로 투자를 해준 뒤에도 국내에 대규모로 투자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의 상황이 녹록할까. 결국 기업들이 돈을 잘 벌어야 이런 일이 가능해진다.

기업들 입장에선 미국 정부가 팔을 비틀고, 그나마 팔이 움직일 때 한국 정부가 한번 더 기업들의 팔을 비튼 게 아닐까.

필자가 볼 때 이런 식의 발표는 바보들을 웃기기 위한 코메디 쇼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진다.

■ 여당 최고위원 이언주의 아이디어..."비준해선 안 돼. 트럼프 맛 갈 가능성 있다"

집권 여당 내 최고 경제브레인 중 한명은 이언주 의원이다.

이 의원은 대기업 임원 출신으로 이번 관세협상 과정에서 미국 기업, 의회 인사 등을 만나 한국의 입장을 전달했다.

그런데 이 의원은 이번 관세협상에 대한 국회 비준을 반대한다. 국민의힘이 비준을 주장하지만 이 의원은 꽤 설들력 있는 반대 논리를 내세운다.

이 의원은 17일 "비준 주장은 스스로 바보임을 인증하는 꼴"이라며 "한국의 보수 정당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얼마나 공부를 안 하면 이런 주장을 하는지 정말 의심스럽다"고 했다.

그는 "국힘의 주장대로 부담이 큰 내용을 입법부 비준으로 못 박을 실익이 없다. 아니 못 박으면 도리어 우리 손해"라며 "매년 미국 중간선거결과가 어떻게 될지, 연방법원의 관세 판결이 어찌 될지 모른다"고 했다.

관세 때문에 미국 물가가 폭등하거나 주가가 폭락해서 트럼프 정부 스스로 관세율을 더 내릴 수도 있고, 다른 나라에서 무슨 일이 생겨서 부담을 더 낮추게 되면 우리도 다시 재협상을 요구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트럼프 정부 초기인 지금보다는 시간이 갈수록 우리에게 유리하게 수정될 여지도 있다. 국회 입법으로 못 박아서 수정이 어렵게 만들자는 주장은 어느 바보의 머리에서 나온 것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

필자가 볼 때 이런 주장은 꽤 타당해 보인다.

한국은 트럼프와 같은 비정상적인 대통령이 미국에서 변을 당할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대비를 하는 게 옳지 않을까?

■ MB 사대강 20조원의 추억...돈의 무서움 모르는 한국인들

필자는 사실 트럼프의 한국에 대한 조공 요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애시당초 한국이 미국에 대기로 한 돈은 '기업들'이 자기들의 이익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것인 줄 알았다.

아마 대부분이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 갑자기 '업 프런트'로 돈을 내놓으라고 했다.

냉정하게 얘기해서 한국 사회 물정을 아는 대부분의 사람, 즉 99%는 트럼프의 업프론트 주장을 보고 '미친 놈'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미친 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머리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아니면 거시경제를 전혀 모르는 사람일 수 있다.

필자가 정말 용납하기 힘들었던 부분은 트럼프의 미친 요구에 대해 50% 이상의 사람들이 '이 정도면 잘한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건 너무 나이브한 반응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사대강 사업으로 20조원의 돈을 쓰겠다고 했을 때 한국인들 반응이 기억 안 나는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20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감히' 쓰겠다는 데 동의하지 않으면서 '쥐박이는 미친놈'으로 몰았다.

그런데 지금 이 사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이명박 때의 20조원이 애교로 보일 정도의 큰 돈이 난무하고 있다.

한국은 지금 미국의 압제에 의해 '지금까지 생각도 해본 적 없는 규모'의 규모의 미국투자를 약속해 놓고 다수가 '잘했다'고 박수 치고 있다.

물가가 많이 올라서 지금의 투자금액은 '괜찮다'고 생각하면 당신은 경제를 전혀 모르는 것이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정말 안 드는가?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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