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5-09-19 (금)

(장태민 칼럼) 양경수와 한석호, 노동의 이중구조과 자본의 도피

  • 입력 2025-09-19 13:21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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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9일 현재 민주노총 홈페이지

사진: 19일 현재 민주노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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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최근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민주노총은 이제 약자라는 인식을 깨야 한다"고 말해 주목을 끌었다.

양 위원장은 13일자 <한겨레신문> 인터뷰에서 "민주노총은 대공장·공공부문 중심의 괜찮은 일자리 조합원이 많다"면서 약자를 위한 투쟁 조직임은 분명히 하되 ‘약자라는 인식’은 벗어야 한다고 했다.

양 위원장은 국회 중심의 사회적 대화 기구에 참여해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의 사회안전망 확대, 산업 전환에 따른 일자리 대책 등 사회적 과제를 논의하고 싶다"고 했다.

■ 변화 모색하는 민노총

민주노총은 이달 3일 26년만에 '사회적 기구'에 참여하겠다는 입장을 정해 관심을 끌었다.

민노총은 1999년 노사정위원회(現경사노위) 탈퇴 이후 26년 만에 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 해부터 추진하고 있는 <국회 주도 사회적 대화기구>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한국노총이 경사노위에 참여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노총은 '정부 대신 국회'의 손을 잡아 관심을 끌었다.

민주노총은 최근 변화의 징후를 보여 주목을 끈다.

양경수 위원장은 한겨레신문 인터뷰에서 "민주노총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투쟁만 한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힘과 권한을 제대로 쓰는 집단이라는 이미지를 가져야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면서 "법·제도 개선을 위한 사회적 대화를 통해 그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수고용노동자 사회안전망, 산업구조 변화에 따른 일자리 대책, 초기업 교섭 등을 사회적 대화 의제로 꼽았다.

민주노총은 최근 '특고' 대상 영업을 강화했으며, AI·로봇 등 활용도 증가에 따른 고용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

초기업 교섭은 사업장 단위 교섭을 넘어 같은 산업이나 업종 내 여러 기업의 노동자들이 연대해 공동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협의하는 방식이다.

초기업 교섭과 같은 업종별 교섭을 활용하면 개별기업의 저임금 경쟁을 완화할 수 있다. 중소·영세··하청 등 에 속한 취약한 노동자들의 권리 강화 방식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양 위원장은 당연히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에 대해선 박수를 쳤다. 그러면서 경영자 쪽의 과도한 공포 조장을 비난했다.

노란봉투법과 관련해 정부는 법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게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했다.

■ '노동귀족'과 '강성노조' 중심 민노총 변화의 기미

민주노총은 현대차 등 대기업 노조와 공공노조가 중심이다.

노동자 계급 가운데 '양반 상위 계급'이 민주노총의 인적·물적 토대다.

즉 임금수준이나 처우가 '상위 10% 이내인 노동자'가 사실상 민주노총 투쟁의 주력 부대다.

민주노총 조합원 수는 약 110만 명 정도로 16개 산별노조와 연맹으로 구성돼 있다.

주요 산별노조로는 민노총의 상징인 전국금속노동조합(자동차와 금속산업)이 있다. 현대, 기아 등 완성차 4개 노동조합 등이 민노총을 끌고 간다.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철도, 버스, 우체국 등 공공부문과 운수업종)도 막강하다. 이 조직에선 철도노조가 세를 과시한다. 현재 노동장관이 된 김영훈이 이 쪽에서 잔뼈가 굵었다.

전국교직원노조 및 전국교수노조도 민노총의 상징 중 하나다. 전교조 교사들도 민노총의 자랑스러운 주력부대다. 전교조는 사실상 오래전부터 한국의 교육감 시스템을 장악해왔다.

언론노조도 민주노총에 소속된 대표적인 산별 노조다. 조합원수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지만 민주노총의 투쟁 방향을 홍보하고 이미지를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밖에 요즘은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서비스업),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건설업) 등도 힘을 발휘한다.

■ '경기동부' 양경수, 노동귀족 대변자 민노총 저변 넓힌 인물

양경수 위원장 자신은 최근 건설, 택배 노동자 등으로 세를 넓히는 역량을 보여줬다.

양 위원장은 민주노총을 이끌면서 건설·택배·콜센터 등 노동조건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사각지대로의 조직 확대를 적극 추진했다.

그간 민주노총은 전통 제조업과 공공부문 노조에 주력하다가 플랫폼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등으로 세를 확대했으며, 여기엔 양 위원장의 '영업력'이 큰 기여를 했다.

건설·택배 등 노동시장 사각지대의 조직화를 이뤄내면서 민주노총 조합원 규모와 영향력을 확장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양 위원장은 한국외대 용인캠퍼스 총학생회장, 한총련 간부를 지낸 인물로 경기동부연합의 핵심이었다. 최초의 경기동부 출신 민노총 위원장이다.

경기동부연합은 운동권 내 강성 민족해방(NL) 계열이다. 한국 내 '주사파'의 본류 중 한 곳으로 평가 받는다. 경기동부는 해산된 통진당의 주력이었으며, 이석기 전 국회의원이 오랜기간 핵심 역할을 해왔다.

■ 한석호 "당연한 사실 지금에야 인정하는 민노총, 그래도 반갑다"

양경수 위원장의 민주노총 변화 선언 이후 한석호 한국노동재단 상임이사의 반응을 살펴봤다.

한 이사는 전태일의 유지를 이끌면서 노동운동을 해온 사람이다.

그는 특히 민주노총 등 한국의 노동운동가라는 사람들이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비판해 온 바 있다.

따라서 양경수 위원장의 '민노총은 약자라는 인식 깨야한다'는 발언을 당연히 환영할 수 밖에 없었다.

한 이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주력 조합원은 한국사회 소득기준 상위 10% 안에 진입했다. 그중 일부는 상위 5%에 진입했고 일부는 상위 5%의 문턱에 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이 사실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한다"고 적었다.

양경수 위원장이 '드디어 사실을 사실대로 말했다(민노총 조합원은 상위계급이라는 사실)'면서 노동의 문제는 노동의 이중구조에서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이사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높은 임금과 성과급, 고용 안정, 풍부한 복지, 주기적 승진, 노조의 보호 등 혜택을 받는, 주로 대기업·공무원·공공부문·전문직 등의 1차 노동시장 노동자>와 <그렇지 못한, 주로 비정규직·하청노동·플랫폼·프리랜서·영세소상공인 등의 2차 노동시장 노동자>로 분절된 현상을 일컫는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아직도 노동계 일부에선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개탄했다. 그런 노동계 사람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노동자는 불안정하다'는 이유를 든다고 했다.

그러면서 페이스북에 직설적인 글도 올렸다.

한 이사는 "기본 연봉 1억에 성과급으로 5천~1억 추가로 받는 원청 노동자가 연봉 3~5천에 성과급이라고는 꼴랑 수십만원 받는 하청 노동자한테 '나도 너만큼 불안정해'라고 얘기한다고 치자. 그러면 하청 노동자가 뭐라고 하겠는가"라며 '욕설 문자'를 대거 첨부했다.

사실 노동 운동 한다는 사람들 중 여전히 상당수가 '노동자라고 다 같은 노동자는 아니다'라는 현실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했다.

한 이사의 말처럼 '예전에 노동운동 좀 했네'하면서 '칼 맑스 성리학'이나 읍조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한 이사가 비판하는 '맑스 성리학자들'이 볼 때 노동계급은 하나여야 하는데,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노동계급이 분절됐다는 의미로 읽힐 수 밖에 없어 이를 눈 감고 있는 것이다.

희한하게 한국에선 맑시스트들 가운데 유물론을 버리고 성리학을 택한 자들이 많다. 그러니 작금이 현실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 노동 성리학 논쟁 한가해 보이는 시대...미국의 RIGHT TO WORK를 아시나요?

양경수 민노총 위원장이 노동계 내에 '노동의 이중구조' 문제에 동의했지만, 상위계급 노동자들은 '하층 노동자' 뿐만 아니라 '사측의 현실'도 살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측을 압박해서 떡고물이 떨어지는 구조가 천년만년 지속될 수는 없다. 특히나 지금과 같은 첨단산업 시대는 더욱 그렇다.

이런 가운데 최근 조지아 현대차 공장에서 한국 근로자들이 대거 억류되면서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한국의 투자를 받는 미국이 공장을 설치해 주러 한 한국 엔지니어들을 감금하면서 전국민의 분노를 끌어냈다.

그러면 한국 제조업들이 다시 국내로 돌아오고 국내 노동자들을 대거 고용할 수 있을까. 필자는 지금과 같은 한국의 노동 환경에선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필자는 그간 국내 제조업체들이 한국을 떠나는 현실이 아타까웠다. 그리고 여기엔 사실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강성 노조들도 큰 기여를 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현대차가 미국 어디에 공장을 지었는지를 봐도 알 수 있다.

과거 현대차 그룹에서 일하던 친구에게 들은 얘기지만, 현대차는 미국에 공장을 지을 때 강성 노조의 토양이 될 만한 곳은 아예 선택지에서 배제해 버린다고 한다.

현대차 공장이 있는 미국 앨러바마(Alabama)와 조지아(Georgia) 모두 미국 내에선 라이트투워크(Right to Work)법을 채택한 주들이다. 유니언샵(Union Shop)과 클로즈드샵(Closed Shop)은 꿈도 꿀 수 없는 곳이다.

이 주들은 노동조합 가입이나 노조비 납부를 고용의 조건으로 강제할 수 없도록 하는 법을 시행 중이다. 노동자들은 노조 가입을 강제당하지 않을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받는 곳이다.

한국의 힘센 노동 단체들도 정신차려야 한다.

사실 냉정하게 말해 그들은 노동 약자들의 대변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사람들이 노동자의 대표 행세를 해온 것이다.

1990년대 말 IMF 사태 이전만 하더라도 원청과 하청의 임금격차가 이렇게 크지 않았다.

당시 문건 등을 보면 하청이 원청의 80% 이상을 받는다는 기록물도 있었다. 지금은 절반도 가져가기 어렵다.

하지만 민노총 등이 원청 노동자의 대변자로 나서면서 '하청과 나눌 수 있었던 몫'을 원청이 다 가져갔다. 좀 야박하게 말하면 민노총은 노동자 집단 내에서 하층 노동자를 착취했다!

그런데 지금은 힘센 상층부 노동자들이 계속해서 자본을 적으로 규정하면서 밖으로 내쫓으면, 결국 자신들의 일자리도 없어지고 말 것이다.

오랜기간 민노총의 보호를 받으면서 노동귀족의 지위를 누린 억대연봉 현대차 노조원들의 미래 역시 장기적으로 볼 때는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올해 초 현대제철의 대규모 미국 진출 소식이 필자에겐 충격이었다.

현대제철은 전기요금도 싸고 RIGHT TO WORK법도 있는 루이지애나에 공장을 지어 이를 현대차 등에 납품하기로 했다.

이번 '조지아 사태'로 미국정부가 한국 엔지니어들에게 씻을 수 없는 능욕을 안겼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은 이미 골치 아픈 자국 내 생산을 강화할 의지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최근 미국인들의 '한국인 차별'이 새로운 문제(?)가 됐지만, 한국의 노조도, 미국의 관세도 무서워서 미국에서 생산하는 게 나을 것이다.

여전히 많은 노동자들이 부러워하는 현대차의 '높은 지위'가 10년, 20년 등 얼마나 오래 이어진다고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최근(16일) 올해 임단협 가결 사실을 밝혔다. 합의안은 기본급 10만원(호봉승급분 포함) 인상, 성과금 450%+1580만원, 주식 30주, 재래시장상품권 20만원 지급 등을 담고 있다. 통상임금에 명절지원금, 여름휴가비, 연구능률향상 수당 등을 포함하는 방안도 합의했다. 정년퇴직(60살) 후에도 최대 2년간 촉탁 계약하는 계속고용제를 유지하고 정부 차원의 정년연장에 대비해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현재 현대차 직원들의 평균 연봉은 1.2억원 내외로 추정되고 있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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