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5-01-15 (수)

(장태민 칼럼) 계엄 사태로 떠올린 항공기 사고

  • 입력 2024-12-20 14:09
  • 장태민 기자
댓글
0
사진: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모습, 출처: 대통령실

사진: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모습, 출처: 대통령실

이미지 확대보기
[뉴스콤 장태민 기자] 12월 3일 밤 계엄령 발동 사태를 접한 뒤 몇몇 사람들이 한국의 상명하복식 문화를 거론했다.

그들이 이런 얘기를 했던 이유는 국무총리나 장관들이 왜 대통령을 제지하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일부에선 과거 불행한 비행기 사고를 떠올리면서 한국 특유의 문화가 계엄 사태에 한 몫 한 것으로 진단했다.

사실 과거 대형 항공기 사고 당시 외국인들은 '한국의 상명하복 권위주의' 문화가 가진 위험성을 거론하곤 했기 때문이다.

기장과 부기장 간의 권력 관계 등으로 부기장이 제대로 위험을 보고하지 못할 경우 리스크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비행기 기장이 술에 취해 있거나, 정신착란을 일으켜 판단 미스를 할 우려가 있을 경우 주변에선 이를 제어해야 한다.

과거 안타까운 항공기 사고 때처럼 한국 권력집단엔 이런 '안전판'이 없었다.

■ 비행기 사고와 한국의 권위주의 문화

지난 1999년 12월 22일 영국 런던 국제공항을 출발해 이탈리아 밀라노를 거쳐 대한민국 공항으로 회항이 예정돼있던 대한항공 8509편 화물기는 런던 공항을 출발하자마자 추락해 탑승자 4명이 전원 사망했다.

기장과 부기장의 계기판 신호가 달랐으나 부기장은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이 사건은 부기장이 비행기 내 기장의 권위에 주눅이 들어 위험 사실을 알리지 못한 불행한 일로 알려져 있다.

대한항공은 이 사건 이후 조종실 내 상하관계를 없애고 한국어를 금지하기도 했다.

안 그래도 권위적인 유교 문화 등으로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옳은 소리'를 못하던 차에 한국어의 발달된 '높임말'이 수평적인 의사소통을 막는다고 봤기 때문이다.

한국의 지나치게 엄격한 권위주의 문화가 각종 사고의 위험을 키울 뿐만 아니라 업무 효율성 저하로 연결된 사례도 있었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끈 거스 히딩크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은 '축구장 내 높임말 금지'를 거론해 주목을 끌기도 했다.

목소리 큰 선배에게 패스해야 하는 문화 등 삐뚤어진 권위주의가 승률을 떨어뜨리는 한국 축구의 병폐로 봤기 때문이다.

하급자들이 주눅이 들어 상급자의 잘못을 지적하지 못하는 문화는 팀을 위태롭게 만든다.

회사나 국가 역시 다르지 않다.

■ 엄청난 피해 냈던 그 사고

1999년 화물기 사고 이전인 1997년엔 더 엄청난 비행기 사고가 있었다.

1997년 8월 6일 김포국제공항발 대한항공 801편, 테일넘버 HL7468이 괌 국제공항으로의 접근하다가 추락한 사고였다.

당시 사고에선 승객 254명 중 228명이 사망했다. 엄청난 재난이었다.

이 사고로 인해 대한항공은 본래 가입하려 했던 항공동맹인 스타얼라이언스로부터 가입을 거절당하기도 했다.

공군 장교 출신의 유능한 조종사들이 몰던 이 비행기의 주된 사고 원인은 여러 가지였다.

하필 당시 괌 공항 계기착륙장치(Instrument Landing System)의 활공각 유도 장치인 글라이드 슬롭이 고장이 나 있는 등 여건이 좋지 않았다.

여기에 공항의 특이한 구조, 악천후, 조종사의 피로, 순간적 판단 미스 등도 사고의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됐다. 큰 불행이 닥칠 때는 여러가지가 잘못돼 있는 경우도 많은 것이다.

그런데 사고 원인과 관련해 한국의 '특이한 문화적 요소'도 거론됐다.

일각에선 조종석 구성원들의 위기 질서에 따른 커뮤니케이션 오류도 사고의 한 원인이라고 짚었다. 아울러 공군사관학교 출신 여부 등 학연과 관련한 갈등이 있었을 것이란 추론도 이어졌다.

조종칸 내의 서열이나 인간관계의 문제 등이 위기 대응 능력을 떨어뜨려 큰 사고로 이어졌다는 주장도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인기 작가인 말콜 글래드월은 자신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아웃라이어'에서 한국의 이 불행한 사건을 거론했다. 그는 한국을 꼭 집어서 '조종실 승무원들 간의 권위주의적 문화'가 항공 안전을 위협한 대표적 사례라고 기록했다.

물론 국내에선 오리엔탈리즘에 함몰된 서구 작가의 왜곡된 시선이 사고의 원인을 오도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아무튼 시간이 급박한 위기 시엔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대형 사고 이후 조종사는 외국인 등으로 다변화됐다.

어떤 조직의 수장이 자신만의 망상이나 아집에 빠져 폭주하려고 한다면 구성원들은 그를 제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견제 구조가 작동하지 않으면 조직은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

■ 리더의 오판...알려진 2명의 반대자

12월 3일 '선진국' 한국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계엄령이 발동됐을 때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필자도 누군가 거짓말이나 농담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믿지 않았다.

당시 후배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던 필자는 가게 종업원들이 '모두 집으로 철수해야 한다'고 알리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농담같은 일이 현실이 됐을 때, 즉 초현실적인 세계가 현실로 다가왔을 때 우리는 모두 당황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리더의 오판'을 되씹어 보면서 '한국의 권위주의 문화'를 떠올리게 됐다.

리더의 실수는 누군가 제어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런 점에서 형식조차 갖추지 못한 국무회의에 참석했던 국무위원들의 책임도 상당하다고 볼 수 밖에 없었다.

대통령의 아집이나 고집, 판단 실수 등이 있을 때 국무총리나 부총리, 장관 등은 적극적으로 말려야 했다. 말릴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할 수 있으나, 그런 말은 변명에 불과하다.

12.3 계엄 사태 때 적극적으로 말린 사람은 최상목 경제부총리, 그리고 조태열 외교부 장관으로 알려져 있다.

대통령은 야당의 끝없는 탄핵안 발의, 예산안 흠집 내기 등 여러가지 이유를 댔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계엄이 익스큐즈될 수는 없었다. 최상목 기재장관은 계엄 발동 일주일 뒤 국회에 나와 책임을 통감한다는 말과 함께 대통령을 말렸다고 했다. 경제부총리의 11일 국회 증언은 이러했다.

"(계엄 당시) 경제를 총괄하는 장관으로서 매우 심각한 영향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강하게 반대의사를 표명했습니다. 국가 신인도나 경제에 닥칠 막중한 영향을 우려했습니다."

야당은 부총리가 대통령(실)으로부터 받았다는 '쪽지'를 문제 삼으면서 '계엄용 예비비'까지 준비한 것 아니냐고 윽박질렀다.

조태열 외교장관도 13일 국회에 나와 대통령을 적극 말렸지만 통하지 않았다고 했다.

"계엄은 외교 파장만이 아니라 이 나라가 70년간 쌓은 외교 성과에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니 재고해 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전날 담화와 비슷한 취지의 말을 하면서 자신의 판단이라는 주장을 안 굽혔습니다."

■ 모두가 반대한 계엄?...그런데 왜 못 막았는가

국회에 출석한 다른 장관들도 모두 자신들은 계엄 반대 입장이었다고 했다.

국방장관을 제외한 국무위원 대부분은 대통령이 무슨 일을 꾸미는지 몰랐다는 식으로 답했다.

하지만 한국의 고관대작은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채 결국 일이 터진 뒤 자신의 '생존 문제'에만 집착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아울러 계엄에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은 '소극적 반대자'는 실질적으로 찬성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보였다.

한 국가의 특정 분야를 책임지는 장관이라면 '눈치나 보라고'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이 사태를 막는 데 나서지 않은 사람들, 즉 소극적 반대자는 '찬성자'로 볼 수 밖에 없다는 해석이었다.

야당은 이번 계엄사태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지만, 정치 판도를 180도 돌려버려 마치 신이 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번 계엄의 '최고 수혜자'는 야당의 이재명 대표라는 평가도 많았다. 필자의 한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은 야당에 경고하고 간첩들이 횡횡하는 나라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계엄을 했다는 식으로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변명 치고는 너무 옹졸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야당이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민주당은 거대 국회 권력을 통해 탄핵·예산 등을 미끼로 인내심과 디테일이 전혀 없는 대통령이 사고를 치도록 만들었습니다. 최고 수혜자는 여러가지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이재명 대표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재명 대표 최고의 은인은 윤 대통령이 됐습니다."

■ 한국은 무능한 대통령과 내시가 망치는 나라가 된 것일까

이 지인은 디테일과 업무 처리 능력이 없는 대통령 주위엔 '능력있는' 보좌진들이라고 있어야 했지만, 모두가 비위 맞추기 바빴다고 개탄했다.

"한국이 선진화됐다고 하나 최고 권력자들 주위엔 언제나 내시들 밖에 없군요. 더구나 트럼프 재등장 등으로 한국이 중차대한 시기를 맞은 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고관대작들에게 요구되는 핵심적인 소양은 '능력'과 '도덕성'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이런 기본적인 역량을 갖춘 사람을 찾기 어렵다. 다들 대통령과 그 가족에 잘 보여 자리만 탐하려 했다는 한탄도 들려왔다.

대통령은 모든 일에 전문가가 될 수 없다. 따라서 대통령은 인사는 냉정하고 객관적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마치 누군가에게 지배당하는 것처럼 보였다.

예컨대 능력이 의심스러운 자들이 보건복지부를 장악해 한국의 의료시스템에 큰 흠집을 냈지만, 대통령은 외골수로 '의대 증원은 옳다'만 외쳤다.

의료계의 수없이 많은 '전문가'들이 '각하 이렇게 하면 한국 의료 무너집니다'라고 외쳤으나 그 목소리는 대통령의 귀에 닿지 않았다. 대통령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말만 하는 조규홍 장관, 박민수 차관과 같은 내시 류의 고위공직자들만 싸고 도는 듯했다.

의료 사태 초기에 증원에 찬성하는 국민이 90%에 달했다고 하나, 필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전문 분야에서 중요한 것은 권력을 쥔 내시나 다수의 우매한 군중이 아니라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예컨대 페르마의 정리에 대해선 최고의 수학자들에게 물어야지, 일반인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답을 적어낼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런 측면에서 필자는 시도때도 없이 설문조사를 해 대는 황색 여론조사업체들의 문제도 많다고 본다.

사람들은 또 대통령이 자신이 나온 고등학교 동문들을 군의 요직에 발탁하는 등 '정실 인사'가 도를 넘었다고 개탄하기도 했다.

아울러 대통령 역시 계엄이 필요했다면 '그 동안 뭘 했나'하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대통령이 사실상 대국민 담화를 통해 이번 계엄의 목적이 '부정선거 의혹 파헤치기'라고 시사했지만, 그러면 그 전엔 뭘 했느냐는 비판 역시 매우 합당해 보인다.

옳은 일을 하기 위해선 옳은 인사를 써야 했다. 그리고 사고가 나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는 최대한 빨리 수습하는 게 원칙이다.

장관급이 되진 못했지만 고위 관료로 일하다가 공직을 은퇴한 필자의 지인은 무능한 대통령의 자충수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면서 이런 말을 했다.

"대통령이 진짜 부정선거가 있었다고 믿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면 미리 부정선거를 파헤칠 전문가를 기용했어야지요. 저는 별로 동의하지 않지만, 부정선거가 있었다고 의심이 되면 이런 일을 하던 사람을 써야죠. 그런데 (부정선거 전문가 중) 누가 기용됐다는 얘기는 전혀 들어본 적 없습니다. 임기 2년 반이나 지나 뒤늦게 이게 뭐하는 겁니까? 대통령의 때늦은 변명은 합리화되기 어렵다고 봅니다."

이 은퇴한 공직자도 헌재의 탄핵 심판 결과에 대해 알 수 없지만, 이번 사태엔 '할 말 못하는' 한국의 유교 문화, 그리고 인재를 적재적소에 기용하지 못한 인사 실패 등이 작용했다면서 안타까워했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 저작권자 ⓒ 뉴스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로그인 후 작성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