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4-09-20 (금)

(장태민 칼럼) 양호한 반도체 수출경기 이면에 도사리는 위험

  • 입력 2024-08-19 15:10
  • 장태민 기자
댓글
0
[뉴스콤 장태민 기자] 최근 한국 경제를 두고 '수출 경제는 양호하나 내수 경제는 부진하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다만 한국 경제엔 태생적 약점이 있다.

한국 경제는 내수를 활성화 시키기가 구조적으로 어려운 데다 수출 위주로 경제를 굴리는 것 역시 우리 힘 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만든 많은 제품의 최종 수요처가 미국이다 보니 혹시라도 미국경제가 침체에 빠지기라도 하면 내수·수출 모두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수출 회복세라는 얘기를 한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수출의 반도체 의존도는 더욱 높아졌다.

■ 한국 수출 이끄는 반도체...그러나 한국 반도체도 큰 여유는 없다

일부에선 한국 경제의 높은 반도체 비중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책적으로 반도체를 억압해 반도체 비중을 낮추는 일은 어리석다. 오히려 반도체 산업 지원을 강화하고 다른 산업도 같이 끌어올려야 한다.

미국, 중국, 일본, 대만 등 각국은 반도체 패권을 잡기 위해 승부수를 던진 상태다.

하지만 한국은 상대적으로 반도체 지원이 더디고 반도체 패권 경쟁에 상대적으로 느긋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받고 있다.

한국 경제 역시 반도체 지원을 늘리면서 경쟁력을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난 달 29일 삼성전자 사장을 지낸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 산자위에서 "반도체는 앞으로 4년, 5년이 골든타임"이라며 "이 시기를 놓치면 10년 이상 뒤처지게 된다"고 주장했다.

고 의원은 "지금은 산자부가 반도체 기업과 손 잡고 명확한 비전, 의지, 실천을 보여야 할 때"라며 " 파운드리와 팹리스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통한 경쟁력 확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파운드리는 생태계 경쟁력이 중요하다.

따라서 법적으로 반도체 산업을 뒷받침하고 반도체 클러스터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반도체 클러스터와 관련해선 송전망 10기가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반도체 관련 에너지 공급 문제를 값싼 에너지원으로 제때에 해결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사실 최근 글로벌 반도체 생태계 재편을 맞아 세계 각국은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퍼붓고 있다.

AI 전쟁에서 반도체는 그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주요국이 반도체 패권 전쟁에 뛰어들면서 한국 반도체 산업 위상 저하에 대한 우려는 끊이지 않는다.

■ 전직 삼성전자 사장이 내놓은 반도체 경쟁력 강화 법안은...

그 동안 반도체 시장은 지적재산권과 설계 팹리스 분야의 경우 미국, 소재·부품·장비의 경우 일본, 위탁생산 파운드리의 경우는 한국과 대만이 역할을 담당하는 분업 구조로 돌아갔다.

메모리 최강 한국은 그러나 최근의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 하는 우려가 적지 않다.

특히 한국은 그나마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핵심 산업인 반도체에 대해 너무 느긋하다는 비판도 많이 받았다.

반도체클러스터 구축과 관련해서도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국가와 지자체가 반도체클러스터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전력·용수 등 산업기반시설 빨리 구축해야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우려 역시 적지 않다.

반도체 관련 우수 인력 확보에도 비상이 걸렸다. 최근엔 젊은층 인구 소멸 흐름이나 의대 증원 등과 맞물려 우수 인재를 구하기 더 어렵다는 볼멘소리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반도체는 산업적 측면, 국가 안보의 측면 등 여러 분야에서 중요하다. 주요 한국 경쟁국들이 '반도체 주권 강화'를 부르짖는 이유는 많다.

이런 위기 의식 속에 지난 6월 고동진 의원은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법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해당 법안엔 대통령 직속으로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를 설치해 ①반도체산업 관계 규제 일원화, ②신속 인허가 패스트트랙 도입, ③정부 책임의 전력 및 수력 인프라 신속 구축 지원, ④5년 단위의 법정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계획’의 수립, ⑤반도체클러스터 지정 및 육성시책 시행, 생산시설 등 인프라에 대한 보조금 지원 등을 심의 및 이행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특히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반도체클러스터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전력·용수 등 공급을 위한 산업기반시설을 선제적으로 신속히 직접 설치하는 동시에 그에 따른 비용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았다. 정부로 하여금 원활한 전력 수급을 위해 반도체산업에 대한 「국가 전력망 설치 및 확충에 관한 사항」을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의무적으로 반영하도록 했다.

법률안엔 ⑥정부가 반도체 설계 및 연구개발 등 국내외 인력을 유치 및 양성하도록 하고, ⑦반도체산업의 발전에 필요한 연구개발 및 지원사업 등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국가반도체산업진흥센터’와 ‘반도체산업특별회계’를 설치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았다.

또 ⑧반도체산업의 「연구개발 및 인력개발을 위한 비용」과 「사업화 및 연구개발 시설·장비에 대한 투자비용」을 사업소득세 또는 법인세에서 일몰 기간 없이 공제하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반도체에 대한 '과도한' 지원을 반대하는 목소리들도 들린다.

안 그래도 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반도체에 대해서만 유독 세금 감면과 각종 공제 혜택을 들이미는 것은 특정 재벌 배불리기라는 비판도 있다.

다만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국 반도체 산업이 경쟁력 유지에 뒤처질 경우 한국 경제의 미래는 암담해질 수밖에 없다.

■ 한국 수출, 반도체 빼면...

현재 한국경제 성장을 견인하고 있는 수출에서는 반도체 등 특정 산업의 독주가 두드러진 편이다.

최근 데이터를 보자.

7월 수출증가율은 13.9%로 양호한 모습을 보였지만 반도체 50.1%를 제외하면 나머지 품목의 수출증가율은 7.5%로 대폭 둔화된다.

반도체를 제외하면 안심하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반도체가 흔들리면 한국경제가 받는 충격은 더 커질 수 있다.

이영원 흥국증권 연구원은 "지난 6월에는 전체 수출증가율이 5.1%였고 반도체 수출 증가율이 50.4%였다. 반도체를 제외한 나머지 품목의 합계 증가율은 오히려 -3.9%를 기록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1-7월 누적 수출 증가율은 9.8%를 기록하고 있다. HSK 4단위 기준 수출 상위 품목 20개에서 반도체와 부품, 디스플레이와 부품을 제외한 품목 가운데 전체 9.8% 이상의 수출 증가율을 기록한 품목은 선박(18.4%), 화장품(+17.8%), 정밀기계(HSK 8479, 22.3%), 바이오(HSK 3002, 27.8%) 등 네 개에 불과했다.

승용차부품, 배터리와 배터리 양극재, 철강제품(HSK 7208) 등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감소세를 기록했다.

이 연구원은 "반도체 중심의 수출 회복이 아직 전산업으로 확산되지 못한 채 차별적인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이는 산업생산 동향에서 반도체와 반도체를 제외한 산업의 전년동기대비 생산증가율의 차이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내수 회복이 전제되지 못한 차별화된 성장은 외부 충격에 더욱 취약한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이런 산업 구도에서 한국경제는 미국의 경기 논쟁, 그리고 미중 반도체 패권 다툼에 더욱 예민할 수 밖에 없다.

■ AI 시대? 위험은 상시 도사리고 있다

최근 반도체에 대한 걱정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는 주식시장 움직임이 일었다.

주요국의 AI와 반도체 관련 주식이 7월 중순부터 8월초까지 급락세를 나타냈던 것이다.

올해 들어 AI 클라우드 서비스 회사(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AI 반도체 회사(엔비디아, TSMC, ASML) 등이 큰 폭의 주가 상승을 시현한 뒤 7월 중순부터는 휘청거렸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그간 주가가 너무 뛰었기 때문'에 조정을 받은 것이란 평가가 적지 않다. 즉 밸류에이션 차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강했다. 최근 반도체주 주가가 다시 반등한 데도 '고평가' 문제가 상당부분 해소됐기 때문이란 관점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AI 투자사이클이 정점에 도달한다는 우려, 미국 정부의 대중 반도체 제재 강화 등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는 평가도 끊이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AI나 반도체 회사들의 2분기 실적은 나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AI 클라우드 회사들이 낮은 ROIC를 기록할 수 밖에 없다는 현실론도 제기됐다.

다만 현재 수익성이 낮은 상황에서도 AI 클라우드 회사들은 투자를 확대하는 중이다. 결국 AI 플랫폼 경쟁에서 이기기만 한다면 중장기 수익 역시 양호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AI 인프라 투자에 비해 이를 이용하는 AI 응용서비스 개발 수요는 완만하게 증가하고 있는 중이다. 최종 소비자인 기업·개인들의 AI 수용(adoption)이 더디다는 우려 역시 적지 않다.

반면 낙관론자들은 향후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 AI 탑재 제품이 늘어나 AI 응용서비스 수요가 꾸준히 늘면서 과잉투자 우려가 사그라들 것으로 보고 있다.

■ 한국 반도체, 거친 패권 다툼에서 경쟁력 유지할 수 있을까

한국의 대표 수출산업은 미·중 패권다툼과 엮여 있다.

중국과의 기술격차를 유지하면서도 미국의 눈밖에 나지 않아야 한다는 '정치적' 어려움이 있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정립과 관련해 미국과 협력하면서도 한국의 입지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미국은 지난 2019년 트럼프 정부의 화웨이 제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중국 반도체 제재에 나선 바 있다.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 뒤엔 22년 반도체지원법과 대 중국 수출 통제 등의 조치를 통해 중국이 첨단 반도체를 수입하거나 자체 생산 역량을 강화하는 것을 막아왔다.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고성능 AI 반도체(엔비디아)와 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장비(AMAT, 램리서치 등)를 중국에 수출하려면 미국 정부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

대만 TSMC, 네덜란드 ASML, 일본 도쿄일렉트론 등 미국 외 반도체 장비 회사들도 미국 정부의 요구에 따라 수출 통제 조치를 적용받고 있다.

이에 맞서는 중국의 전략은 '독자적인 반도체 공급망 구축'이다.

중국은 일단 미국이 딴지를 걸지 않는 레거시 반도체용 장비 수입을 크게 늘린 뒤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중국이 자체 생태계를 꾸리는 과정에서 미국 제재 범위에서 벗어난 제품 수입을 늘리자 반도체 장비회사들의 대중국 수출 비중이 대폭 증가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동시에 중국에선 화웨이, SMIC 등이 반도체 생산과 관련해 상당한 기술적 성과를 올렸다는 소식도 들려오는 중이다.

중국은 미국의 제재 강화에 비례해 자국 반도체 기술 개발을 독려하는 중이며, 미국은 중국의 '예상 밖' 기술력에 놀라기도 하면서 추가 제재를 거론하는 중이다.

최성락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바이든 정부의 추가적인 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 움직임이 일고 있다"면서 "22년 1차 수출 통제, 23년 10월 2차 수출 통제에 이어 조만간 3차 수출 통제가 발표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글로벌 주요 반도체 기업들의 매출 감소 우려가 부상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최 연구원은 "그동안의 대중 반도체 제재에도 불구하고 화웨이(반도체 설계), SMIC(파운드리), YMTC(낸드), CXMT(D램) 등 중국 기업들이 첨단 공정에 근접하는 성과를 내면서 기존의 제재가 불충분하다는 평가가 제기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지난 2023년 8월 화웨이·SMIC은 ASML의 EUV 장비 없이는 불가능하고 여겨졌던 7nm AP 상용화에 성공했다. YMTC는 2021년 128단 낸드를 양산했고 2023년에는 232단 양산도 성공했다.

그는 "미국은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을 적용하여 미국 밖에서 외국기업이 생산한 제품이더라도 미국의 기술이 사용되었을 경우 대중 수출이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AI 용 메모리반도체인 HBM 수출도 금지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트럼프 재등장 가능성 등 향후 미중 패권 다툼 흐름, 중국의 반도체 경쟁력 강화 정도와 대중국 매출 감소시의 영향 등 반도체를 둘러싼 패권 다툼 여파도 계속될 수 밖에 없다.

최근 한국경제가 수출을 바탕으로 버티고 있는 가운데 그 선봉엔 반도체가 있다.

하지만 한국 반도체는 세계 열강의 패권 다툼 속에서 그 입지가 불안정해져 있다.

지금은 한국 반도체가 한 단계 더 치고 나갈 수 있는 기회의 시기이기도 하지만, 이 시기를 잘못 대응해 뒤쳐질 경우 한국 경제의 미래는 더욱 암울해질 수밖에 없다.

자료: 산업통상자원부

자료: 산업통상자원부

이미지 확대보기


<자료: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제재 일지>

(장태민 칼럼) 양호한 반도체 수출경기 이면에 도사리는 위험이미지 확대보기

(장태민 칼럼) 양호한 반도체 수출경기 이면에 도사리는 위험이미지 확대보기


(장태민 칼럼) 양호한 반도체 수출경기 이면에 도사리는 위험이미지 확대보기


자료: 국제금융센터

자료: 국제금융센터

이미지 확대보기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 저작권자 ⓒ 뉴스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로그인 후 작성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