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파리 올림픽 금메달 순위, 출처: 네이버스포츠
(장태민 칼럼) 파리 올림픽, 한국 스포츠 제자리 찾기
이미지 확대보기[뉴스콤 장태민 기자] 2024년 프랑스 파리 올림픽 대회에서 한국이 금메달 순위 8위를 기록했다.
3년 전 도쿄 올림픽에서 최악의 성적(금메달 순위 16위)를 기록한 뒤 다시 10위권 내로 진입한 것이다.
한국은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1980년대부터 의미있는 경쟁을 시작했다. 이후 오랜기간 스포츠 강국을 유지하다가 코로나로 한 해 늦게 열린 2021년 일본 도쿄 대회에선 최악의 성적을 기록한 바 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는 구기 종목들의 무더기 본선 진출 실패 등으로 한국 스포츠의 위상 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컸다.
하지만 전쟁 관련 종목들인 활(양궁), 총(사격), 칼(펜싱)에서 양호한 성적을 낸 뒤 국기인 태권도에서도 금메달을 보태 금메달 순위 8위를 기록했다.
■ 금메달 순위, 간신히 본 모습 찾은 한국 스포츠
한국의 역대 올림픽 최고 성적표는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작성됐다.
당시 한국은 금메달 12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11개를 따 금메달 순위 4위를 기록했다.
우선 메달 수는 지금과 당시를 직접 비교할 수는 없다. 올림픽 세부 종목 수가 대폭 늘어났기 때문이다.
당시 금메달이 239개가 나왔으나 올해엔 326개가 나왔다.
올림픽 세부 종목이 급증하면서 금메달 수는 36% 가량 증가했다.
최고의 성적을 냈던 1988년 올림픽 금메달 수를 지금 시대에 환산하면 16~17개 정도 된다.
또 당시 올림픽이 한국 수도 서울에서 개최됐기 때문에 홈 어드밴티지를 많이 활용했다.
따라서 이후 성적표가 한국의 평균에 가까울 것이다.
88올림픽(4위) 이후 한국의 금메달 순위를 보면 7위(92년 바르셀로나)→10위(96는 애틀랜타)→12위(00년 시드니)→9위(04년 아테네)→7위(08년 베이징)→5위(12년 런던)→8위(16년 리우)→16위(21년 도쿄)였다.
평균적으로 한국은 세계 10위권 내에 드는 스포츠 강국이었다. 그러다가 3년 전엔 16위라는 상상하기 힘든 성적을 내면서 우려를 키웠다.
1980년대 이후 한국 스포츠가 금메달 순위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던 때는 IMF 외환위기 직후였던 2000년, 그리고 최근인 2021년 도쿄 대회가 '유이'하기 때문이다.
■ 올림픽 성적표, 경제력(기술력)과 인구에 비례
올림픽 성적표는 대체로 한 국가의 경제력과 인구에 비례한다.
현대 스포츠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경제력(기술력)은 세계 최고의 선수를 길러내는 데 필수 요인으로 작용한다. 동시에 그 풀(POOL, 인구)이 넓으면 유리한 것도 두말할 필요 없다.
이런 점에서 지금은 미국과 중국이 우승을 다투는 구도가 됐다.
88올림픽 때만 하더라도 중국은 경제력(기술력)이 모잘라 10위권 밖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인구와 높아진 기술력을 바탕으로 미국과 금메달 순위 1위 자리를 놓고 다투고 있다.
이번 제33회 파리 올림픽에선 미국과 중국이 모두 금메달을 40개씩 획득했으나 미국이 2위, 3위를 기록한 종목이 많았기 때문에 미국이 다시 한번 스포츠 최강국 위상을 과시했다.
도쿄 대회에선 미국이 금메달 39개, 중국이 38개였으며 중국은 내심 이번 파리 대회에서 미국을 누를 수 있다는 기대를 표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미국과 중국의 1위 경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스포츠 저변을 지닌 미국과 압도적으로 많은 인구수를 바탕으로 경제력을 끌어올린 중국의 대결 구도는 이어진다.
■
한국이 강한 분야
스포츠 종목에서 미국이 가장 고르게 잘하는 나라지만, 대체적으로 국가별로 전통적 강세 종목들이 있다.
전통적으로 각국은 주 종목의 기반를 확고히 한 뒤 저변을 확대해 스포츠 강국을 유지하는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은 누가 뭐래도 양궁이 최고의 경쟁력을 지닌 종목이다.
특히 이번 대회의 남자 개인전 결승전은 양궁 경기의 백미였다.
한국 김우진과 미국 브레이디 엘리슨의 결승전은 양궁 경기 역사에 길이 남을 박진감 넘치는 경기였다.
김우진이 0:2로 뒤진 뒤, 2:2로 동점을 만들고, 다시 4:2로 뒤지다가 4:4 동점을 만들었다. 5번째 게임에선 두 선수 모두 만점(10, 10, 10)을 쏘면서 5:5가 된 뒤 '슛 오프'로 승부를 결정지어야 했다.
단 한발로 승부를 결정짓는 순간, 김우진이 10점을 쐈지만 화살이 금에 물려 있었다. 김우진이 만점을 쐈지만 엘리슨의 컨디션과 실력을 감안할 때 김우진의 금메달이 멀어지는 듯했다.
모두가 숨 죽인 순간 엘리슨의 화살 역시 10점의 금에 물려 머릿속이 일순간 하얘지는 느낌이 들었다.
두 궁사 모두 '금에 물린 10점'을 쐈지만, 김우진의 화살이 중앙에 더 가까져 김우진이 3관왕을 차지할 수 있었다. 김우진의 '4.9mm 차' 승리였다.
엘리슨은 20년이나 미국 대표로 활약하면서 한국 선수들의 킬러로 활약해 온 세계를 대표하는 궁사였다.
누가 이겨도 이상하지 않은 그 게임에서 김우진은 40세의 노장 엘리슨을 꺾고 양궁에 걸린 5개의 금메달을 모두 한국이 가져오게 만들었다.
한국 양국은 이번 대회에서 5개의 금메달을 모두 가져오는 최고의 성과를 냈다. 한국은 이밖에 사격(3개), 펜싱(2개), 태권도(2개)에서 1위 선수를 배출하면서 금메달 순위 10위권 내로 진입했다.
다만 과거에 비해 투기 종목의 경쟁력은 떨어졌다. 한국은 레슬링에서 단 한개의 메달로 획득하지 못했으며, 투기 종목 중 금메달이 나온 종목도 태권도가 유일했다.
'황금세대'의 출현으로 큰 기대를 모았던 수영에서도 동메달 1개가 전부였다. 이번 대회에선 여전히 세계와 큰 격차를 확인한 것이다.
■ 다른 나라들도 '전략종목' 있어...전략종목 경쟁력 유지하면서 저변 확충이 스포츠 강국 유지 전략
중국의 전략 종목은 다이빙과 탁구다.
중국은 다이빙에 걸린 8개의 금메달을 휩쓸었으며, 탁구에 걸린 5개의 금메달도 모두 가져왔다.
중국에선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사격, 역도 등이 이런 종목들을 받치고 있다.
이번 대회 3위를 한 일본은 레슬링 강국이다. 일본은 전략적 육성을 통해 레슬링에서 무려 8개의 금메달을 독식했다. 일본이 획득한 전체 금메달 20개의 절반에 가까운 8개가 레슬링에서 나온 것이다. 유도(3개)와 스케이트보드(2개) 등이 뒤를 받치고 있다.
과거 수영 영웅 이안 소프의 고향인 호주는 수영 강국이다. 이번 대회 4위를 차지한 호주가 획득한 18개의 금메달 중 수영에서 나온 금메달이 7개였다. 호주는 카누(3개), 요트(1개) 등 수상 종목이 강한 나라다.
홈 어드밴티지를 등에 업고 5위를 차지한 프랑스는 수영에서 4관왕을 배출했다. 프랑스 국민 영웅 레옹 마르샹이 금메달 4개를 땄다.
마르샹은 개인 혼영 200미터, 400미터 최강자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영 선수로 평가받는 마이클 펠프스의 세계 기록을 깨기도 했다.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사이클(3개), 유도(2개) 등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왔다.
이번 대회 6를 차지한 네달란드는 조정에서 금메달 4개, 7위를 마크한 영국도 조정에서 3개를 땄다. 이런 나라들은 한국이 전혀 메달 욕심을 내지 않는 조정같은 종목에서 일정 부분 메달을 확보하고 경쟁을 시작한다.
■ 몰락 우려 덜어낸 한국 스포츠...적절한 위치는 10위권 이내
3년 전 한국이 도쿄 대회에서 40년만의 최악의 성적을 내면서 몰락하자, 한국은 주변 국가로부터 '더 이상 스포츠 강국이 아니다'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번 대회 역시 우려가 컸지만, 나름대로 상당히 선방한 것이다.
사실 한국의 경제력(기술)과 인구, 과거 평균 성적 등을 감안하면 한국이 올림픽 순위 10위권 밖으로 밀려나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선진국들도 여전히 자국의 스포츠 순위를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쓴다.
올림픽이 공식적으로 순위를 메기지 않지만, 스포츠의 성과는 그 나라의 경제력을 대변하는 측면도 있다.
스포츠 성적표 순위 하락을 '경제 모멘텀 둔화'와 연결 짓는 시각도 있다.
현대 스포츠는 기본적으로 '돈·기술'과 관련이 깊다. 또 스포츠 실력은 그 나라가 경쟁에 대한 가치를 중시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따라서 잘 하던 나라의 스포츠 성적이 하락하면 그 나라 경제의 모멘텀에 이상이 생긴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도 한다.
지난 도쿄 대회에서 한국이 인구와 경제력을 감안하면 상상하기 힘든 16위로 밀리자 이를 한국경제의 모멘텀 둔화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번 대회에서 필자의 눈에 들어온 성적표 중 하나는 독일의 몰락이었다.
오래 전부터 스포츠를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독일이 미국, 중국 뒤를 이어 받을 것으로 생각했을 수도 모른다. 하지만 독일은 이번 대회에서 예전처럼 힘을 쓰지 못했으며, 금메달 순위 10위를 간신히 사수했다. 최근 독일 경제 모멘텀의 둔화가 스포츠 경쟁력 저하와 오버랩 된다.
한국 스포츠가 이번 올림픽에서 반등에 성공하면서 이전의 스포츠 강국 이미지를 상당 부분 회복해 다행스럽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