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는 조만간 주택공급대책을 다시 발표할 예정이다
(장태민 칼럼) 투기수요 타령과 다주택자 사라진 시장
이미지 확대보기[뉴스콤 장태민 기자]
정부가 지난주 부동산 점검회의를 하면서 '투기 수요 차단'을 철저히 경계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집값이 오름폭을 확대하면서 투기가 다시 기승을 부리지 않을까 크게 걱정하는 모습을 보엿다.
정부는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세가 확산하는 모습을 보면서 '교란 행위 차단'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투기세력의 시장 교란행위는 상시조사를 통해 단속해 불법행위 엄단, 탈루 세액 추징 등 강력 대응하고 있다"고 경고한 상태다.
■ 투기세력 차단 '빈말' 아니라는 정부
정부는 최근 투기의 구체적 사례마저 거론하면서 '투기 차단' 경고가 빈말이 아님을 알렸다.
정부는 "모 아파트 단지 주택 보유자의 경우 특정 가격 이하로는 매물을 올리지 못하도록 매도자·공인중개사에게 강요하는 등 집값 담합을 주도한 행위가 국토부 부동산거래질서교란행위 신고센터에 신고돼 조사를 거쳐 최근 검찰에 송치됐다"고 소개했다.
집값 상승 분위기에 편승해 가격 담합을 하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다.
법 테두리를 벗어난 수단을 활용한 매도에 대해서도 으름장을 놓았다. 정부는 사례를 하나 더 들었다.
정부는 "부친이 대표로 있는 법인 소유 주택을 매수하면서 기존 임대차 계약에 따른 보증금과 부친 법인의 기업자금대출을 활용하는 등 전액 타인자금으로 주택을 구입한 사례도 편법 증여로 의심돼 국세청에 통보된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전방위적인 '단속'에 나선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국토부·금융위·국세청·금감원·지자체 합동 현장점검반을 가동해 수도권 전 지역을 대상으로 허위매물·신고, 편법증여·대출 등 위법행위 발생 여부를 현장점검한다"면서 "앞으로도 주택거래 중 이상거래를 점검해 불법행위 정황이 확인될 경우 국세청·금융위·경찰청·지자체 등 관계기관에 통보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급 부족으로 서울 집값이 오르지만, 공급엔 시간이 걸리는 만큼 법을 활용한 수요 차단, 즉 '투기 차단과 단속'에 할애한 것이다.
그렇다고 공급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 투기 단속 후 공급 강화 강조했는데...
지난주 부동산 관계장관 회의가 공급과 관련해 공지한 내용 중 당장 큰 주목을 끄는 것은 없었다.
그저 주택 공급 준비가 순조롭게 이어지고 있으며, 또 잘 공급될 것이란 점을 강조하는 데 무게를 뒀다.
LH 등 공공 부문 공공주택 공급 확대 노력 강화를 홍보했다.
LH가 2024년 사업승인목표 10.5만호와 주택 착공목표 5만호 공급계획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또 향후 공공주택이 실수요자에게 계획된 일정에 맞추어 차질없이 공급될 수 있도록, 사업승인 뿐만 아니라 착공·준공·입주 등 공급 관련 전 단계를 밀착 관리하기로 했다.
정비사업은 정부가 잘 하고 있으니 크게 걱정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윤 정부 출범 이후 재건축부담금 합리화 등 규제 개선에 나선 결과 서울의 재건축 안전진단 통과단지가 2018~2022년 연평균 4.4개에서 2023년 71개로 15배 이상 증가했다고 자화자찬하기도 했다.
또한 주택공급 확대 및 건설경기 보완방안(24.1.10. 발표) 후속 조치에 따라 안전진단 없이도 재건축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하는 재건축 패스트트랙 법안이 22대 국회에 재발의되는 등 정책적 노력도 지속되고 있다고 했다.
국토부가 개최하는 기초지자체 인허가 협의회를 8월 중 수도권부터 권역별로 개최하는 등 인허가 지연을 없애기 위한 제도개선에도 나선다고 했다.
정비사업장 전문가 파견·중재를 통해 공사비 조정 합의를 적극 지원해 착공 대기물량 해소도 추진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 관계자들은 정비사업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런 내용들은 곧 나올 '추가 주택공급 확대 방안'에 담길 예정이다.
정부는 최근 '공급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가 많은 비난을 들은 바 있다.
사람들이 원치 않는 거주 수단까지 아파트 공급 믈량에 포함시켜 충분하다고 윽박질렀으나 통할 리가 없었다.
공급 부족 속에 서울 집값 오름세가 이어지다 보니 정부의 조바심이 느껴진다.
하지만 공급을 일거에 늘릴 방법은 없다. 그러다 보니 일단 회의에선 '투기 세력 단속'이 큰 몫을 차지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 부동산 투자자 악마화
김범석 기재차관은 지난주 부동산 T/F 회의에서 "투기 수요가 유입돼 주택 가격 변동성 확대로 이어지지 않도록 경계하겠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회의 하루 전날에 "투기 수요가 일어나기 전에 아파트 가격이 올라가지 않도록 서둘러라"고 과제를 준 상태였다.
어떤 재화든 수요가 갑자기 몰려들면 일시에 가격이 오를 수 있다.
따라서 서울 아파트값 상승세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투기 세력에 대한 경계감을 표명하는 것은 이성의 자유로운 발로일 수 있다.
부동산뿐만 아니라 어떤 재화든 사려고 하는 사람들이 일거에 몰려들면 가격이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 경제나 금융시장이 작용하는 데엔 정부가 말하는 투기 세력의 순기능도 있다. 세상에 100% 옳고, 100% 틀린 것은 없는 법이다.
특히 한국사회에선 부동산 투자자(혹은 투기꾼)들이 악마처럼 묘사되고 있다. 심지어 집을 2채 이상 가지는 것은 범죄에 준하는 행위라는 '이상한' 믿음까지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올해 집값이 오른다고 투기 차단을 강조하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
투기를 강조하기 위해선 현재 서울 아파트값 상승세가 실수요장인가, 아니면 투기장인가에 대한 답을 먼저 구하는 게 맞을 듯하다.
■ 투자자 사라진 실수요 중심 시장...더 위험할 수 있다
사실 주택시장에선 이미 많은 투자자들이 떨어져 나갔다.
대폭 늘어난 취득세, 보유세, 양도세 등 세금 때문에 다주택자가 되고 싶어도 되기 힘든 국면이 도래한지 오래됐다.
최근 서울 집값이 오르는 것은 투자자들이 집을 여러 채 보유하기 위해 달려들기 때문이 아니다.
지금은 실수요 장세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최근 거래는 생애 첫 주택 구입자들이 매수를 하고 이들에게 집을 판 사람들이 갈아타기를 하는 과정에서 강화됐다.
작년까지 오랜기간 이어진 '거래 멸종기'를 거치면서 쌓인 누적 대기수요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까지 주택거래를 막는 정부 정책과 금리인상에 따른 고금리로 거래가 죽었지만, 그 기간 동안 대기 수요는 누적돼 거래가 늘 경우 집값이 오를 수 밖에 없는 구도가 만들어져 있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비난하는 투기꾼들이 사라져버린 시장은 더 위험할 수 있다.
주택 투자자가 일시적으로 집값을 올릴 수도 있지만, 이들이 늘린 임대 매물은 임대가격을 내려 매매가격을 아래로 당기는 역할도 한다.
■ 한국에선...다주택자 긍정적 측면 거론하면 비난 듣기 일쑤
몇 년 전 집값이 폭등할 때 친한 지인에게 다주택자 규제, 주택 투자자(투기꾼) 악마화 등이 서울의 싼 아파트 씨를 말리고 있다고 말했다가 크게 비난을 들은 바 있다.
한국인들의 뛰어난 도덕심(!) 때문에 '투자 대상이 아니고 거주의 대상인' 집을 두 채 이상 가지는 것은 죄악에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최근 수년간 도덕적이지도 않은 자들이 '성리학적 명분'을 내세워 투기꾼 타령을 하는 것이 집값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에 걸쳐 확인했다.
그래도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 것 인지, 집값이 오르면 습관적으로 투기꾼 타령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부 정책 역시 '집값이 오르니 일단 투기꾼부터 봉쇄해야겠다'고 한다.
부동산 시장의 투자자(투기꾼)가 그렇게 나쁜 것일까.
서울을 보자. 서울은 집값이 비싸 한국에서 자가 거주 비율이 가장 낮은 대도시다.
서울 가구의 절반은 집이 있고 절반은 집이 없다. 물론 절반이 거리에 나앉았다는 게 아니라 소유권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면 집이 없는 사람들은 누가 공급한 집에서 사는 것일까.
공공임대와 같은 질이 낮은(냉정하게 말해 공공임대엔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 산다) 주거수단에서 사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다수의 한국인들은 공공임대를 통한 공급을 칭송한다. 정작 자산들은 그런 집에 살길 원치 않으면서 이중적 태도를 취한다.
그리고 살기 좋은 공공임대 물량은 매우 제한적이다. 공공임대가 살기 좋다는 말조차 사실 언어도단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집 없는 사람들이 사는 곳은 많은 사람들이 '투기꾼'으로 비난하는 다주택자들이 제공한 집이다.
■ 다주택자가 사라지면 생기는 일
문재인 정부 이후 다주택자 규제가 오랜 기간 이어지면서 생긴 일은 무엇인가.
다주택자들이 '똘똘한 한채'만 남긴 채 나머지 주택을 처분한 뒤 시간이 흐르자 전세를 공급하는 임대인들이 줄어들었다.
문재인 정부가 4년 전 실시했던 7.10 부동산 대책은 다주택자들을 버티지 못하게 만들었다.
취득세, 보유세(재산세+종부세), 양도세 모두 활용해 이들을 압박했다. 결국 다주택자들은 손을 들었으며, 이는 전셋값 상승에 따른 임차인들의 고난으로 귀결됐다.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이 1년 이상 오르는 것은 신규 아파트 입주 물량 부족과 맞물려 기존 주택시장에서 일어난 이같은 변화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꼬아놓은 수급을 윤석열 정부는 제대로 이해도 하지 못했고 풀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다주택자들은 '똘똘한 지역'인 서울 강남 같은 곳의 주택을 보유한 뒤 '똘똘하지 못한 지역'의 주택은 팔자 그 지역에선 매물 부족으로 전세가격이 상승할 수 밖에 없었다.
최근 서울 강남 권역에서 소위 국민평형에 불과한 30평대 아파트가 50억원에 거래된 일이 있었다. 필자는 이를 수급을 꼬아 놓고 풀지 않으면 몇 년 뒤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해석한다.
다주택자들이 판 물건은 누구 손으로 갔는가.
다주택자 패널티가 여전히 큰 만큼 이 물건들은 1주택자들의 손아귀로 넘어가 '잠겨' 버렸다.
투자자들의 진입이 사실상 차단되고 실수요자가 10년, 20년 거주할 목적으로 집을 깔고 앉자 임대 가능 주택은 줄어들고 전셋값은 더 뛰었다.
아파트와 같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주거수단이 부족하면 대체재라도 그 기능을 해야 집값 상승 압력을 제어할 수 있다.
하지만 다주택자 규제 때문에 빌라 등 다른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도 어려워진 상황이었다. 서울 빌라 10채를 갖더라도 강남 아파트 1채를 사기 힘든 상황에서 모든 다주택자를 동일한 범주로 취급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처사였다.
■ 여전히 다주택자는 악이라는 도그마
최근 1년 넘게 서울 아파트 전세가 오르는 이유는 사실 '신규주택' 시장보다 '기존주택' 시장의 문제가 컸다.
일각에선 분양·착공·입주 물량 부족 등을 제1의 원인으로 꼽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기존주택시장에서 임대인이 자취를 감춘 영향이 컸다.
전세를 놓을 사람이 없어지면 임차인이 힘들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서로 엮여 있다. 많은 사람들이 투기꾼이라고 비난하는 갭투자자 등 임대인들이 기존주택시장의 공급자였지만 이들이 이제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전셋값이 높아져 여유있는 임차인이 매수로 돌기 시작하면 집값 상승은 더 자극을 받는다.
이런 흐름 속에 서울 내 집값 상승세는 강남 등 부자 동네에서 노원 등 서민 동네로 번지려는 중이다.
지난해 폐업하려다 올해 다시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공인중개사 A씨는 이런 말을 했다.
"최근 수년간 우리는 다주택자 규제가 결국 무주택자의 절망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봐 왔습니다. 집값이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오른 것은 결국 정책 실패 탓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다주택자 규제를 찬성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설문조사를 봤습니다. 현실을 보지 못하고 도그마에 빠져 있는 사람들과 연이어 멍청한 자들이 집권하는 정부 덕분에 서울 집값은 앞으로도 더 쑥쑥 오를 겁니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