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4-04-26 (금)

(장태민 칼럼) 추경, 안 풀리는 산수 문제

  • 입력 2023-05-24 14:00
  • 장태민 기자
댓글
0
[뉴스콤 장태민 기자] 대부분 아이디어 고갈이었다.

필자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나쁜 머리 탓을 하면서 기재부의 '추경 없다'는 말을 이해하기 힘들어했다.

나라 살림살이에서 돈이 부족하면 두 가지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 지출을 안 하거나, 돈을 만들면 된다.

하지만 기재부는 추경도 하지 않고 강제불용도 없다고 한다.

올해 살림살이를 계획대로 끌고 가기 위해선 국채발행을 하거나 증세를 해서 돈을 마련하거나, 예산에 잡혀 있던 사업을 없던 일로 해야 한다. 하지만 두 가지 방안 모두 기재부의 계획엔 없다.

그러면 조만간 경기가 크게 좋아져서 세수가 많이 들어온다는 얘기일까. 정부는 대체 어떤 복안이 있는 것일까.

■ 1분기 덜 걷힌 세금

현재 1분기까지 나라 살림살이 관련 데이터가 공개돼 있다. 1분기 국세수입은 87.1조원으로 전년동기에 비해 24조원이 적었다.

법인세, 소득세 쪽에서 들어온 세금이 여의치 않았다.

작년 하반기 기업들의 성과가 크게 나빠진 데다 부동산 거래부진 등으로 부동산 관련 세금이 기대에 못 미쳤다.

하지만 기재부는 적극적으로 상황을 알리기 보다는 '알아서 할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듯한 말만 하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는 22일 국회 기재위에서 "추경은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 추경을 하지 않는 방법으로 대응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수부족에 따른 강제불용도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지만, 민생 관련 예산은 차질없이 집행할 것이라고 했다.

세계잉여금, 기금여유재원 가용재원 등을 최대한 동원하는 방법을 활용할 것이며, 수지에 다소 어려움이 있더라도 빚을 더 안 늘리는 방법을 택할 것이라고 했다.

부총리의 말을 들으면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산수 실력 부족'을 탓하기도 했다.

기재부는 추경을 안 해도 사업은 사업대로 할 수 있다고 하는데, 도무지 방정식을 풀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 쓸 수 있는 돈 찾기

현재 확정된 가용 세입엔 일반회계 세계잉여금 2.8조원이 있다.

다른 곳에서 돈 나올 구멍이 있을지 봐야 한다.

기금여유자금, 예상되는 불용액 등이 통상적인 수준보다 큰 것일까. 아니면 세입 예산을 재추계를 해 보면 없던 돈이 생길까.

이 부분을 물음표로 두고 남는 돈을 살펴보면, 특별회계 세계잉여금 3.1조원이 있다. 하지만 특별회계는 각각 특별회계로 이입되기 때문에 자유롭게 돈을 가져다 쓸 수가 없다.

결국 다시 기금여유자금 쪽을 쳐다보면서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게 된다.

2010년대 중반부터는 기금여유자금 쪽에선 5조원 이상 당겨서 쓴 적이 없었다. 경험을 감안하면 돈을 마련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이다.

기금 여유자금을 사용하기 위해선 각각의 기금별로 협의를 해서 여유자금을 공자기금에 예탁시킨 뒤 일반회계로 빼와야 한다. 국민연금 등 기금의 큰 덩치를 차지하는 사회보장성 기금 같은 건 이런 일에 쓸 수 없다.

상황이 이런 데도 정부가 자신감(?)을 갖는 이유는 혹시 자연스러운 '불용', 즉 쓰지 않고 남는 돈이 상당하다고 보기 때문이 아닐까.

지난해 예산불용액 규모는 13조원에 달해 2015년 이후 가장 컸다. 사실상의 코로나 종식을 선언하면서 관련해서 쓰려던 돈 등을 아꼈다.

하지만 사용하지 못하는 돈이 크다는 것은 예산을 잘못 짰다는 얘기가 된다. 또 지난해와 같은 '특수한' 일이 발생해 돈이 많이 남는다고 생각하기도 쉽지 않다.

■ 낮은 세수 진도율, 추세 대로 혹은 상황이 나아진다면...

1분기말 현재 세수 진도율은 200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세수진도율이 22% 수준이어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6~7%p 가량 낮다.

1분기엔 올해 세입예산 400.5조원의 1/5 남짓한 돈만 들어왔다. 이 추세가 연말까지 그대로 이어진다면 상당한 적자가 쌓일 수 있다.

다만 정부는 세정지원 이연세수 감소 등에 따른 기저효과가 9.7조원이라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실질적인 세수감은 14.3조원 수준이라는 것이다.

현재의 추세가 계속되면 50조원 넘는 세수결손이 생길 수 있다. 물론 1분기 분위기가 계속되기 어려워 부족액이 이 정도까지 늘어나진 않을 것이란 지적들도 많다.

어찌됐든 미래 불확실성을 감안해 20조원대~50조원대의 넓은 세수결손 범위를 잡아도 돈을 만들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일반회계 세계잉여금 2.8조원, 기금여유자금에서 최대 10조원 이상을 빼서 쓴다고 하더라도 돈은 꽤 부족해 보인다.

정부나 한은의 전망대로 하반기 경기가 좋아지더라도 세수 환경이 얼마나 좋아질지는 미지수다.

기관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성장률은 대략 상반기 1%, 하반기 2% 정도를 기대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작년 11월 1.7%, 올해 2월 1.6%를 전망했으며, 이번 금통위에선 조금 더 내릴 예정이다.

부동산 거래는 여전히 과거 평균에 크게 못 미치지만, 작년 하반기 거래 절멸 당시와 비교하면 올해 대폭 늘었다. 지난해 거래 절멸 당시 급매로 인해 급락했던 서울 송파구 등 일부 대단지 아파트 가격은 최근 급반등하기도 했다.

아무튼 정부는 국채발행이나 증세와 선을 긋고 있다.

■ 건전재정 의지 정말 확고하다면 감액추경 어떤가

정부가 강제 불용은 없다고 했지만, 건전재정에 대한 열화과 같은(!) 의지를 감안하면 감액추경이 답일 수 있다.

세수 구멍을 인정하고 지출을 줄이면 정부가 강조하는 건전재정에 가까워질 수 있다. 이러기 위해선 재정 조기집행에서 한발 물러나 돈이 나가는 속도도 정상화해야 한다.

정부가 어떤 해답지를 제시할지 궁금해진다.

정부도 내부적으로 산수를 다시 해 본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일단 정부는 세수 전망 재추계 결과를 공개하지 않기로 해 반발도 사고 있다.

세수 전망은 정책 결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차원에서 공개하는 게 좋아 보인다.

하지만 정부는 나라살림 '비법'이 새는 걸 원치 않아서 그런지, 아니면 비판이 무서워서 그런지 내부적으로 알아서 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나라살림 비법에 접근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정부가 거짓말로 버티다가 어느 순간 불쑥 추경 카드를 내놓을 것이란 불경스러운 전망을 하기도 한다.

상상력과 정부에 대한 믿음 모두 부족하다고 자신을 소개한 한 채권딜러는 이렇게 주장했다.

"추경호 부총리의 추경 없다는 말 아무도 안 믿어요. 정치적으로 최대한 미루다가 하반기 어느 시점엔가 불쑥 던지겠죠."

자료: 최근 기재부의 기금 평가 결과

자료: 최근 기재부의 기금 평가 결과

이미지 확대보기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 저작권자 ⓒ 뉴스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로그인 후 작성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