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4-04-19 (금)

(장태민 칼럼) 정말 예금자보호한도 1억원 이상으로 올려야 할까

  • 입력 2023-03-30 14:21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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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금보험공사

출처: 예금보험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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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국회의원들이 앞다퉈 예금보호한도를 1억원 이상으로 상향하자는 법안을 발의하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 파산으로 '은행사태'가 발생한 뒤 정치권이 예금보호한도를 높이자는 법안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금융이 디지털화되면서 뱅크런의 속도도 빨라질 수 있어 현재의 5천만원 한도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의원들은 한도를 1억원 이상으로 올리고 견해에 따라선 '전액' 보호 등을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 2001년 결정된 예금자 보호한도 5천만원은 22년째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 국회의원들, 미국 '은행사태' 계기로 예금자보호 상한 올리는 법안 경쟁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3일 예금보호한도를 5천만원에서 1억원 이상으로 상향하고 중대한 금융 경제상의 위기시 예금 전액을 보호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김 의원은 "개인 예금자뿐만 아니라 특히 기업이 일시적으로 임금 등을 지급하기 위해 예치한 금액을 보호함으로써 금융 리스크가 실물 리스크로 전이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면서 경우에 따라 '전액' 보호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양기대 민주당 의원은 24일 예금자 보호 한도의 최소금액을 1억원으로 상향하고 예금보험공사가 매년 금융업종별로 한도를 결정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의원들은 SVB 파산, 크레딧 스위스 사태 등 금융환경이 불안정해 예금자들에 대한 확실한 보호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병욱 민주당 의원은 30일 예금자 보호를 위한 보험금을 1억원으로 올리되, IMF 사태와 같은 중대한 금융·경제상의 위기가 있을 경우 예금보험위원회 의결을 통해 보호 가능한 금액을 더 올릴 수 있도록 하는 안을 냈다.

또 금융회사 부실화 이전에 정부가 유동성을 지원하고 자본 확충을 통해 선제적으로 금융회사를 지원할 수 있도록 예금보험기금 내에 '금융안정계정'을 추가로 설치하는 내용도 이번 개정안에 추가로 포함시켰다.

작년 12월엔 박성준 민주당 의원이 예보가 5년마다 예금보험위원회 의결을 거쳐 보험금의 지급한도를 결정하는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 22년간 제자리인 '한도' 조정 필요성...그리고 선진국의 경우

예금보험제도는 금융회사가 경영 악화 등의 이유로 파산해 예금자의 돈을 지급하지 못하게 될 경우 예금보험공사가 해당 금융사를 대신해 예금자에게 일정 한도 내에서 예금 지급을 보장하는 제도다.

보험금 지급한도는 1인당 국내총생산액과 보호되는 예금 규모 등을 고려해 정하고 있지만, 지난 2001년부터 현재까지 보험금의 지급한도는 5천만 원에서 변함이 없다.

1인당 국내총생산액이 3배 이상 증가하는 등 경제적 여건이 변한 것을 감안하면, 현재의 5천만원은 법 취지와 맞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예금할 돈이 많은 사람들은 보험한도를 감안, 원리금을 5천만원 이하로 쪼개서 여러 은행에 맡겨두고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한국의 예금 보호한도는 주요 선진국에 비해 낮다. 미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7만5천달러를 약간 상회할 정도로 크지만 한국은 3만3천달러 남짓으로 세계 30위권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5천만원 한도는 작아 보이는 측면이 있다.

예금보호한도는 미국이 25만달러로 현재 환율을 기준으로 하면 3억2천만원이 넘는다. 영국은 8.5만파운드로 1억3천만원 남짓이다. 일본 1천만엔, 즉 대략 1억원 정도다.

모두 한국보다 2배 이상 보호한도가 크다.

하지만 이런 상대적 비교가 한국의 예금보호 확대를 절대적으로 지지하는지는 의문이다.

■ 예금보호한도 확대, 정말 '당연한 일'인가...지금 한도 확대 딱히 시급한가

현재 분위기가 분위기이다 보니 국회에서 얘기하는 예금보호 한도 확대 법안의 필요성이나 시급성이 설득력을 얻는 듯하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모두가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위험에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긍정적인 부분이 있지만, 글로벌 분위기에 휩싸여 좀 성급한 것 아닌가 하는 지적들 역시 적지 않다.

사실 꽤 많은 사람들이 분위기에 휩쓸려 결정하기 보다는 '한 템포' 늦출 것을 주문하고 있다.

A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예금보험한도 확대 필요성에 대해 "미국에서 은행사태가 났다고 우리도 예금보험한도를 높여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 일인지 모르겠다. 국내는 특별한 이슈도 없는 상황에서 굳이 부자 예금자들에게 유리한 식으로 제도를 바꾸는 게 시급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B 은행 관계자는 "오랜기간 한도가 묶여 있었다는 점, 뱅크런을 막는다는 차원에서 한도 확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며 "하지만 1인당 평균 저축액 등도 따져서 접근할 필요가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사실 한도 확대는 저축액이 작은 사람들에겐 의미가 없고 거액 현금을 들고 있는 사람들에게 유리하다. 아울러 예보채 발행이나 예보료 인상 등의 문제가 없는지 봐야 할 듯하다"고 했다.

C 관계자도 "한도를 늘리려면 보증 여력을 따져봐야 한다. 예보채 발행이나 예보 수수료 인상 등의 문제도 봐야 할 듯하다"고 했다.

■ 예금보호한도 확대, 장점 못지 않은 단점도 있다는 점 감안해야

사실 예금보험공사는 지난해 예금보호한도 상향, 그리고 금융기관 부실예방을 위한 '금융안정계정' 도입 등을 검토했다.

또 최근 미국 은행사태에서 보듯이 예금보호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은행 관련 리스크가 커질 수 있는데다 금융의 디지털화에 따른 뱅크런 우려 등이 일순간 커질 수 있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한국 예금자들의 대부분은 한 금융사에 5천만원 이상을 잘 예치하지 않는다.

예금보호한도 내 예금자 비중을 보면 생명보험이 95%, 은행이나 금융투자 등 다른 쪽은 97% 이상이다. 즉 보호한도 상향의 문제는 고액 예금자들에게 예민한 이슈로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예금보호한도를 상향조정하면 예보료도 오를 수밖에 없다. 이렇게 오른 비용은 예금자와 대출자에게 전가된다.

이같은 흐름도를 감안할 때 예금자 2~3%의 추가적인 예금보호를 위해 전체가 부담하는 예보료를 올리는 게 맞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예금자 보호한도 확대는 또 '도덕적 해이' 이슈와도 맞물려 있다.

사실 조금이라도 높은 금리를 받으려면 예금자가 신용이 낮은, 즉 덜 안전한 금융사를 택하는 게 상식이다. 투자 행위나 경제 행위에 대해선 당사자가 책임을 지는 문화가 건전하다.

금융안정계정 도입 문제 역시 비용과 직결돼 있다.

금융안정계정은 유동성 부족이나 자본 확충 문제에 직면한 금융사들의 리스크를 막아 줄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보증료를 올릴 수 있는 데다 재원 마련을 위해 예보채 발행이나 예보기금 계정간 차입이 필요할 수 있다.

■ 과거 금융권 출신 국회의원은 왜 보호한도 확대에 반대했을까?

미국 은행사태 이후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예금보호 한도를 늘리자는 목소리가 강해졌고, 조만간 현실화될 것 같은 분위기도 만들어졌다.

하지만 금융권에서 오랜기간 몸 담았던 국회의원이 반대하기도 했던 이슈다.

카카오뱅크 사장 출신인 이용우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가을 예금보험공사가 예금보호한도 상향 필요성 등을 거론할 때 전반적인 비용은 오르는데, 혜택은 소수에게 돌아간다면서 반대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당시 "예금보호한도 상향은 일부 고액예금자를 위해 전체 예금자와 대출자가 부담을 져야하는 문제"라며 "금융안정계정 문제 역시 '부실우려' 여부를 판단할 명확한 기준을 세우기 어렵고 예보지원을 받는 경우 낙인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어 전액회수가 불확실하다"고 지적했다.

더 나아가 "부실우려가 있어서 예보에 지원을 받게 되는 경우에는 낙인효과로 인해 오히려 뱅크런 사태가 촉진될 수도 있다. 제도를 도입하는데 있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은행 파산으로 인한 은행사태로 한국도 '경제 체격'에 맞는 예금보험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국회의원들은 앞다퉈 법안을 발의하면서 위험에 대비하자고 했으며, 이런 주장은 시대 분위기를 타고 상당한 설득력을 얻는 듯하다.

하지만 경제 관련 제도 개편이 흔히 그렇듯이 이 문제 역시 명(明)이 있으면 암(暗)도 있는 사안이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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