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4-04-24 (수)

(장태민 칼럼) No Landing

  • 입력 2023-02-20 11:11
  • 장태민 기자
댓글
0
사진: 2월 1일 FOMC 파월 연준 의장 기자회견 장면, 출처: 연준

사진: 2월 1일 FOMC 파월 연준 의장 기자회견 장면, 출처: 연준

이미지 확대보기
[뉴스콤 장태민 기자]
최근 '노 랜딩'(No Landing)이 큰 주목을 끌었다.

물가를 잡기 위한 연준의 지속된 금리 인상으로 경기의 소프트 랜딩, 혹은 하드 랜딩이 논쟁의 주제였으나 최근엔 노 랜딩이 부쩍 많이 거론되고 있다.

거듭된 금리 인상이 경기에 타격을 입히기보다는 성장 속에 물가 하향 안정화를 이룰 수 있다는 낙관론이 세를 넓히는 것이다.

노 랜딩 기대감은 착륙 없이 비행기가 순항을 이어갈 수 있다는 의미로 골디락스 기대감과 결부돼 있다.

연준이 작년 3월부터 올해 2월까지 기준금리를 무려 450bp나 인상했으나 경제지표들은 예상보다 좋았고 최근 경기 침체 전망은 오히려 후퇴했다.

이런 이상한 구도가 형성된 뒤 채권, 주식시장 투자자들은 우려, 혹은 기대감을 키우기도 했다.

■ 미국의 이상한 지표들

노 랜딩이라는 말이 유행한 이유는 미국 경제지표들이 '일반적인' 예상 수준을 크게 벗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연준이 작년부터 금리를 거칠게 올렸지만 고용지표, 소매판매 등은 의외로 양호하게 나왔다.

미국의 1월 비농업 취업자수는 전망을 2배를 훨씬 넘는 52만명에 달했고 실업률은 54년만에 가장 낮은 3.4%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임금상승률은 둔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1월 소매판매는 전월에 비해 3%나 상승해 2% 전망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다만 금리를 대폭 올리면 경기는 타격을 받고 물가 상승률은 둔화되는 게 '당연한 수순'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최근의 모습이 '페이크' 아닌가 하는 의심도 적지 않았다.

■ 금리 이렇게 올려도 경기 충격 안 받는다?...채권시장 우려로 연결

금리를 지속적으로 인상함에도 경기가 타격을 입지 않는다면 물가 상승률도 제대로 꺾이기가 쉽지 않다.

이런 구도에선 연준이 금리를 더 올리려고 할 수 있다.

연준은 물가 상승률을 낮추기 금리를 더 올리거나 높아진 금리를 장기간 유지하면서 수요 억제에 나서야 한다.

각국 통화당국이 경기를 상당 부분 포기하고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 상황에서 노 랜딩은 투자자들이 꿈꾸는 '이상향'과는 거리가 있다.

여전히 인플레가 골치인 상황에서 덜 둔화되는 경기에 환호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금리인상 구간이 장기화되거나 고금리 유지기간이 길어질 수 밖에 없어 채권 매매 이익을 노리는 사람들에겐 더 큰 인내심이 요구된다.

■ 금리 이렇게 올려도 경기 충격 안 받는다?...주식시장도 마냥 좋아할 수 없어

올해 초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주가지수는 크게 올랐다.

주가지수는 금리인상 사이클의 끝, 더 나아가 인하 기대감까지 가져와 랠리를 벌였다. 중국의 재개방 기대감도 컸다.

이후 2월 초 FOMC에서 파월 연준 의장이 '디스인플레이션 시대'를 선언하고 금리마저 내려가면서 주식시장의 '1월 효과의 연장'에 대한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미국 고용지표를 필두로 각종 경제지표가 양호하게 나오자 채권금리, 달러값은 뛰었다. 한국 금융시장은 달러 강세에 더 취약할 수 밖에 없는 전통을 갖고 있다.

분위기 상 주식도 긴장할 법 했지만 '노 랜딩'을 거론하면서 '경기도 좋다'는 쪽에 무게를 두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주가 상승 모멘텀이 죽지 않은 상황에서 좋은 측면을 보려는 모습들이 눈에 띄었다.

2023년 초 누구도 예상치 못한 강세 흐름에 젖어 경기가 예상보다 좋으면 주가는 더 갈 수 있다는 쪽으로 해석하는 모습들이 나타난 것이다.

■ 채권, 주식 모두 연준 최종금리 오를까 부담

최근 미국 고용과 소비 지표의 양호한 수치, 예상보다 덜 둔화되는 CPI와 PPI 등은 연준 금리인상 전망을 강화시킬 수 밖에 없었다.

경기와 물가 지표들은 연준이 올해 상반기 내내 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는 우려, 연준이 베이비 스텝에서 벗어나 재차 빅스텝을 밟을 수 있다는 염려를 키웠다.

금융시장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하반기 한국과 미국 정책금리의 인하를 기대했으나 정책금리 인하를 더 늦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제 미국 금리선물시장은 6월까지 정책금리가 5.5%(상단)로 인상될 가능성을 50% 넘게 반영하는 모습을 보였다.

경제지표의 예상보다 양호한 흐름이나 물가 상승률 둔화가 이어진다면 연준은 어느 수준까지 금리를 올릴지 알기 어렵다는 우려도 부상했다.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켄 로그오프는 최근 "인플레를 낮추기 위해 연준이 최종금리를 6%까지 올려도 놀랍지 않다"고 했다.

매튜 루체티 도이체방크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회복세의 노동시장, 완화적인 금융시장, 높아진 인플레를 감안해 미국 최종금리 전망치를 5.1%에서 5.6%로 올린다"고 밝혔다.

연준의 최종 금리가 올라가면 채권시장 뿐만 아니라 주식시장도 부담을 떨치기 어렵다. 기술주 중심의 미국 나스닥은 최근 금리가 올라오자 상대적으로 더 긴장하는 중이다.

연초 랠리와 함께 국내 코스피의 선행 PER은 13배에 육박한 상태다.

국내 코스피지수는 1월 하순 2,500선에 바짝 붙는 모습을 연출하다가 후퇴했다. 환율이 뛰고 외국인 순매수 강도가 약화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긴장감이 커졌다. 하지만 비교적 견조하게 버텼다.

과거 코스피 12개월 선행 PER이 13배를 넘어섰던 시기로는 금융위기 전 버블장세가 이어지던 2007년 7월, 그리고 코로나 사태로 유동성이 급격히 풀렸을 때인 2020년 8월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당시 실적 전망이 빠르게 올라오지 않자 PER 13배선에서 모멘텀이 꺾였다. 가격조정이든 기간조정이든 조정을 거치면서 실적전망을 강화한 뒤에야 추가 상승을 위한 에너지를 모을 수 있었다.

다만 최근 한국 주식시장은 선행 EPS가 레벨다운되면서 오히려 좀더 비싸졌다. 지금은 '의외로 강한' 한국 주식시장 모멘텀에 기대는 것보다 리스크 관리가 더 중요한 때일 수 있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 저작권자 ⓒ 뉴스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로그인 후 작성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