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4-04-19 (금)

(장태민 칼럼) 가파른 유동성 증가율 둔화와 당국의 금리 관리...그리고 미국 변수

  • 입력 2023-02-14 15:18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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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한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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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유동성 증가세 둔화가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유동성 증가세는 급격히 꺾이고 있다. 광의통화(M2)의 전년비 증가율은 거의 10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전년비 증가율은 한국은행이 2021년 8월부터 금리를 인상한 뒤 그 해 12월(13.2%) 이후 가파른 둔화 흐름을 기록 중이다.

금리 인상 지속으로 유동성 증가세가 확연히 둔화된 가운데 지금은 둔화의 '중력'도 작용하고 있어서 한은의 추가 금리 인상 필요성도 크지 않아 보인다.

■ 금리 인상과 가파른 유동성 증가세 둔화

1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12월 M2(평잔 기준) 증가율은 4.5%로 전월의 5.4%에 비해 크게 축소됐다.

증가율은 12개월 연속 둔화되고 있으며, 지난 2013년 8월(+3.9%) 이후 최저치다.

지난해 M2 증가율을 보면, 1월 12.7%에서 4월 9.3%로 한자리수로 축소됐고 8월엔 7.2%로 낮아졌다. 10월엔 5.9%로 둔화되더니 12월엔 4%대로 줄어든 것이다.

금리 인상에 따라 M1이 확연히 꺾이면서 광의통화인 M2 둔화 역시 탄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M1 증가율은 작년 9월 0.4% 하락한 뒤 11월 6.8% 떨어졌다. 이후 12월엔 9.0%나 줄어든 것이다.

전월비를 통해 최근의 모멘텀을 살펴보더라도 둔화가 가파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12월 M2는 전월비 계절조정기준 0.2% 감소했다. 작년 4월 이후 9개월만에 감소한 것이다. M2 평잔은 3,779.0조원으로 전월대비 6.3조원 줄었다.

M1은 지난해 10월 1.9%, 11월 2.7% 줄어든 뒤 12월엔 2.3%로 추가로 축소돼 평잔이 1,231.4조원으로 축소됐다.

■ 코로나19 사태 이후....급증하던 유동성, 큰폭 둔화로

코로나19 사태 발발 당시 한은이 기준금리를 사상 최초로 0%대로 낮추면서 유동성이 대거 늘어난 바 있다.

한은 경제통계시스템을 보면, 코로나 사태가 본격 발발한 2020년 3월 M2의 전년비 증가율은 8.4% 수준이었으나 금리 인하 등으로 그 해 7월 10.0%로 두 자리수 증가율을 기록했다. 이후 2021년엔 줄곧 두 자리수의 증가율을 나타냈다.

하지만 과잉 유동성이 집값을 천정부지로 끌어올리는 밑거름 역할을 했다는 비판을 받자 한은은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2021년 8월 전년비 M2 증가율이 12.5%로 치솟았을 때 한은은 금리 인상에 나섰던 것이다.

금리인상 지속에 따라 작년 3월 M2 증가율은 9.4%를 기록해 한 자릿수로 내려왔으며, 12월엔 4.5%라는 근래 보기 힘들었던 증가율을 보여주고 있다.

유동성 체계에서 돈 팽창의 '씨앗'은 본원통화다. 본원통화가 기초적으로 신용 창출을 일으킨 유동성 M1은 '새싹'이다. 이 새싹은 M2, L 등 보다 큰 유동성으로 배양된다.

협의통화(M1)를 보면 다이나믹한 증가와 축소가 더욱 잘 나타난다.

2019년 1월 M1의 전년비 증가율은 2.1%에 불과했으나 금리 인하 등으로 2019년 12월엔 9.6%로 빠르게 늘었다. 지난 2017년 11월과 2018년 11월 한 차례씩 금리를 올렸던 한국은행은 2019년 7월과 10월 금리를 두 차례 인하하면서 유동성을 공급했다.

2018년 금리 인상을 전후한 시기 월간 M1 증가율은 1~2%대였으나 한은이 금리인하로 방향을 튼 뒤 바르게 상승했으며, 2020년 1월(11.5%)부터는 두 자릿수로 올라왔다.

한은이 공격적인 금리 인하를 단행한 후인 2020년 11월엔 M1 증가율이 26.8%, 평잔은 1,140조원 수준으로 급증했다. 이후 한은이 2021년 8월부터 금리를 올리자 20%를 넘던 M1의 전년비 증가율은 10%대로 내려왔으며, 작년 4월엔 9.5%를 기록하면서 한 자릿수로 내려왔다.

공격적인 금리인상이 이어지자 이 흐름은 작년 9월(-0.4%) 마이너스로 전환됐으며 M2, LF, L 등 큰 단위의 유동성 증가율도 크게 떨어뜨렸다.

■ 2023년 초, 기준금리는 올렸는데...시장금리는 빠지고 정부는 금리 상승 막아

한은이 2023년 1월 기준금리를 3.5%까지 올렸으나 시장금리는 작년 10월 고점을 찍고 하락했다.

작년 10월 한은이 2번째 빅스텝(50bp)을 통해 기준금리를 3%로 올라자 사람들은 한국 경제 체력의 감당 범위를 벗어나는(긴축) 통화 기조에 당황했다.

그 시절 레고랜드 사건 등 신용 사건도 터지면서 한은의 정책금리 추가 인상과 별도로 정부 쪽에선 금리 관리에 나서야 했다.

한은이 정책금리를 올렸지만 정부 쪽에선 예금금리, 대출금리의 과도한 인상에 제동을 거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레고랜드 신용 사건에 따라 시중금리가 오버슈팅한 부분이 되돌림되는 측면도 작용했다.

지금도 여전히 정책금리 인상의 중력이 작용하고 있으며, 유동성 둔화 흐름도 이어지는 중이다.

이 와중에 정부의 금융회사 지도 등으로 다시 3%대의 대출금리도 구경할 수 있는 등 뭔가 정책 엇박자같은 느낌도 나고 있다.

작년 가을 정책금리가 긴축수준으로 올라간 뒤 신용 경색 등 만만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자 한은은 금리인상을 조심하고 있으며, 정부는 시중금리가 크게 뜨지 못하도록 감시를 강화했다.

■ 금리 인상 사이클 끝 무렵 정책적 혼선

지난해 정책금리 인상으로 시중금리가 크게 뛰고 은행들이 이익을 많이 내 성과급 잔치를 벌이자 최근엔 대통령까지 나서 경고하고 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서서 "금리상승기 금융 소비자의 이자 부담이 크게 가중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은행들의 '이자 장사'를 비판했다.

대통령은 전날에도 혼자만 고금리 시대를 즐기는 은행들에게 한 마디 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이미 은행 간부들을 불러 금리를 과하게 올리지 말도록 지침을 준 상태였다.

한국 은행들의 구조상 금리 인상기 은행 이익 증가는 당연한 면이 있다.

하지만 전반적인 대출자들의 고통이 커질 때 은행들의 기쁨이 배가 되니 사회 분위기에 예민한 한국 정책자들의 특성상 '개입'한 것이다.

일부 시장주의자들은 "정부가 인기 관리를 위해 관치금융과 포퓰리즘을 강화했다"고 비난했지만, 이자부담에 짓눌리던 사람들은 "혼자만 잘먹고 사는 잘 사는 은행을 적절하게 제어했다"고 칭송하기도 했다.

정치권에선 거대야당 민주당이 유가가 올라 해피한 정유사와 함께 금리가 올라 혼자 즐거운 은행들에게도 '횡재세'를 물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당과 정부는 횡재세에 반대하지만 '공공 성격'이 강한 은행이 물 들어올 때 노를 너무 심하게 저었다고 비난했다.

■ 이미 긴축적인 한국 통화 환경...예상보다 좋은 글로벌 경기와 미국이 주는 부담

한국 경제 체력의 한계를 감안해 한미 정책의 '디커플링'을 거론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여전히 미국의 정책 결정은 무시하기 어려운 변수다.

그런데 최근 글로벌 경제지표들이 예상보다 상당히 좋았다.

연초 국내외 이자율 시장은 최근 금리가 오르기 전까지 물가 상승률 둔화, 경기 침체 등에 기대 강세 흐름을 구가했다.

하지만 최근 주요국 경제지표가 예상보다 양호한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IMF 등은 기존 전망을 상향조정했다.

유로존의 4분기 GDP는 전망치인 -0.1% 대신 +0.1%라는 수치를 보였으며, 미국도 전기비 연율 2.9% 성장해 3분기(3.2%)에 이어 견조한 성장을 이어나갔다. 중국 역시 나쁘지 않은 수치를 보여주는 등 주요 경제 권역 성장률은 예상 이상이었다.

따뜻한 유럽 날씨, 공급망 개선, 에너지 가격 안정, 중국 정책에 대한 기대 등이 공히 경기 비관론을 낮추는 역할을 했다.

물론 여전히 통화긴축에 따른 경기 둔화나 글로벌 경기의 하방 요인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최근 확인한 경기 관련 지표들은 예상보다 좋았다.

이런 상황에서 물가에 대한 경계감이 다시 커지자 각국 금리들은 최근 상승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다들 미국 CPI를 한번 더 확인해 보자고 한다.

한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사실상 끝났다고 보면서도, 지난해 과격한 금리인상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미국 경제와 물가 때문에 신경을 끄지 못하는 것이다.

은행권의 한 채권딜러는 이렇게 논평했다.

"한국 경제에선 유동성 둔화, 부동산 하락 등 금리 인상 효과가 확실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시장도 지금 모두 미국 CPI를 대기하고 있습니다. 미국(경제)이 금리 인상을 잘 견디면 견딜수록 한국에겐 더 큰 인내심이 요구되는 구조입니다. 미국 경기는 예상보다 덜 둔화됐는데, 물가마저 제대로 제어되지 않는다면 최악의 경우 국내도 다시 추가 금리 인상을 생각해야 할 수 있습니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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