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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칼럼) 중앙은행과 싸우는 채권시장

  • 입력 2023-01-05 11:20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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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연준 관계자들이 회의하는 모습, 출처: 연준

사진: 연준 관계자들이 회의하는 모습, 출처: 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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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미국 연준이 웬만해선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지난해 여름 성급한 정책변화 시그널을 주면서 에러를 저지른 뒤엔 매파적 태도를 쉽게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다.

물가 상승률이 둔화되고 있지만 상승률 자체는 여전히 높아 연준은 섣불리 태세 전환을 하기 보다 좀더 확실한 수치를 보고 싶어한다.

■ 아직 연준은 단일대오 유지

연준의 견고한 스탠스를 보고 있으며 지난 해 여름의 기억이 트라우마가 된 것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7월 FOMC 당시 연준은 가드를 약간 내리면서 좀더 자유롭게 움직이고 싶어하는 듯했다.

당시 연준은 "선제적 금리인상으로 필요한 수준에 근접하고 있으며, 언젠가 금리인상 속도를 낮추는 게 적절할 것"이라고 했다.

연준이 7월 FOMC의 75bp 인상에 대해 '이례적 큰폭'이라며 가드를 내리자 주식, 채권 가격은 급등하면서 피벗(Pivot)에 대한 기대를 키웠다.

시장이 이렇게 나오자 연준은 기대 인플레 관리를 우려해 다시 가드를 올렸다.

연준 관계자들은 결국 8월 하순 잭슨홀에서 다른 나라 중앙은행업자들까지 끌어들여 매파 단일대오(單一隊伍)를 형성했다. 당시 연준 행사에 참여한 유럽의 매파들은 자신들도 75bp를 할 수 있다며 보조를 맞췄다.

이후 연말로 가면서 미국을 포함해 각국의 물가 상승률이 둔화되는 흐름을 보였다. 하지만 연준의 대오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 연준 매파적 입장 여전

현지시간 4일 공개된 지난 12월 FOMC 정례회의 의사록에 따르면, 회의 참석자들은 "FOMC 대응에 대한 대중의 오해로 금융 여건이 부적절하게 완화하면, 연준의 물가안정 회복 노력이 복잡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연준의 이같은 입장은 섣불리 가드를 내리지 않겠다는 선언문 같았다. 연준 멤버들 중 올해 금리 인하가 적절할 것으로 예상한 사람도 없었다.

멤버들은 "인플레이션이 통제 범위에 있다는 확신을 하기 전까지 물가 오름세가 둔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더욱 많은 증거가 필요하다"고 했다.

연준이 최근 4번 연속 75bp 인상을 단행한 뒤 12월엔 50bp로 인상 강도를 줄였지만, 자신들의 대오는 굳건하다는 점도 알렸다.

연준은 "금리인상 속도를 낮추는 것이 물가안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연준의 결의가 약화된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고 강조했다.

누가 보더라도 연준의 스탠스는 호키시했다.

중앙은행업자들의 입장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향후 최종금리가 현재의 예상인 5% 초반이 아니라 5% 중후반이 될 수 있다면서 물러서기도 했다.

■ 연준과 싸우는 채권시장...Fight the FED

흔히들 Don't fight the FED(연준에 맞서지 마라)라는 말을 하곤 한다. 정책금리 결정이라는 큰 칼을 쥐고 있는 자들의 눈 밖에 나는 행동을 하는 건 꽤 위험하다.

다만 이 퀘퀘묵은 경구에 '절대적으로' 얽매일 필요는 없다. 금융의 역사에서 연준과 맞서 싸워 시장이 이긴 사례도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연준 역시 경기와 물가 흐름을 꿰뚫어보는 선지자와는 거리가 멀다. 연준은 코로나19 사태 후 물가 흐름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으며, 오락가락 말 실수도 많이 했다.

연준은 데이터를 확인하고 움직이는 중이다. 아울러 그간 연준의 정책 실기(behind the curve)를 질타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미국 채권시장은 연초 연준에 맞서 싸우는 중이다.

지난해 말 3.88% 수준에서 거래를 종료했던 미국채 10년물 금리는 새해 들어 2거래일만에 3.6%대로 하락했다. 2년물은 4.42% 수준에서 4.34%로 내려왔다. 이미 시장금리들은 연내 금리 인하 가능성을 생각하면서 움직이고 있다.

연준 인사들이 3주전 했던 매파적 발언들이 의사록에 담겨 있었지만, 시장은 둔화되는 물가 상승률을 보면서 좀더 달렸다.

시장은 마치 연준에 'Don't fight DATA'(데이터와 싸우지 마라)라며 대거리를 하는 듯했다.

새해 첫 거래일 독일 CPI가 전년비 9.6% 오르면서 예상(10.2%)을 하회하자 미국 금리도 급하게 레벨을 낮췄다. 이번엔 프랑스 물가가 예상을 밑돈 점과 제조업 PMI에 나타난 물가 둔화 시그널에 주목했다.

프랑스 물가는 전년대비 6.7% 올라 예상치(7.3%)와 전월 수치(7.1%)를 하회했다. 미국의 12월 ISM 제조업 PMI는 전월비 0.6p 하락한 48.4를 기록해 예상(48.5)을 밑돌았다. 특히 물가와 관련해 PMI 내 지불가격지수가 9개월 연속 하락한 점이 주목을 받았다. 가격지수는 전달 43.0에서 39.4로 내려와 2020년 4월(35.3)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채권시장의 가격변수들은 연준의 매파적 스탠스를 확인했지만 물가상승률 둔화, 경기 침체 가능성, 유가 하락 등에 비중을 두고 올라갔다.

■ 가드 약간 내린 한은

한국은행은 최근 가드를 다소 내렸다.

작년 가을 레고랜드 사태 등 부동산PF 관련 이상 징후들이 나타나는 등 고금리 여파가 이곳저곳에 문제를일으키자 긴장하는 듯했다.

IMF에서 일하면서 국제인이 된 이창용 한은 총재는 "한은은 연준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고 했다가 최근엔 "한국의 사정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쪽으로 태세를 전환했다.

최근 금리결정에 있어서 물가 외 다른 요소들의 비중을 높일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물가 상승률 5% 위에선 '물가가 최우선'이지만, 올해는 여러가지 요인들을 균형감을 갖고 보면서 정책을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총재는 2023년 신년사에서 "금리인상 영향이 본격화되며 물가·경기·금융안정이 상충할 가능성이 있다"며 "정교한 정책조합이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라고 했다.

물가안정에 중점을 둔 정책기조를 지속하는 가운데 금융·외환시장의 안정에도 각별히 유의할 것이란 입장이다.

총재는 3일 금융사 간부들 행사에서도 이같은 입장을 반복했다.

총재는 또 "관계당국 간 긴밀히 소통하고 협력할 것"이라며 "필요시 적극적인 시장안정화 조치도 취할 것"이라고 했다.

이러자 시장 일각에선 한은의 가드가 점점 더 아래로 내려오고 있다면서 자신감을 갖기도 했다.

일각에선 인플레파이터가 점점 체력 안배와 잔기술을 중시하는 아웃복서로 변해가는 중이라며 기대를 하기도 한다.

당연하게 여겨졌던 1월 금통위 25bp 인상에 대해 '동결할지도 모른다'는 의구심도 조금씩 강해졌다.

하지만 연준이 아직 가드를 내리지 않은 상황에서 한은의 변신엔 한계가 있다는 두려움은 남아 있다.

연준이 자꾸 저러면 한은이 언제 다시 가드를 올릴지 모른다는 의구심 역시 말끔히 가신 건 아니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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