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 2024-03-28 (목)

(장태민 칼럼) 이창용의 포워드가이던스

  • 입력 2022-11-25 13:25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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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4일 금통위 이창용 한은 총재 기자회견 모습, 출처: 한국은행

사진: 24일 금통위 이창용 한은 총재 기자회견 모습, 출처: 한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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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포워드 가이던스 통해 역대 어떤 총재보다 상세하게 통화정책방향을 알려주고 있다.

총재는 시장 등의 반응을 확인한 뒤 가이던스를 가다듬었다.

지난 7월 기준금리를 사상 최초로 50bp 올린 뒤엔 특별한 사정 변화가 없다면 25bp씩 금리를 올린다는 메시지를 준 뒤 비판을 받기도 했다. 10월에 다시 한번 50bp 올렸기 때문이었다.

이후 이 총재는 여러 차례에 걸쳐 10월 빅스텝은 연준 정책금리 전망의 대폭 상향 조정 등 큰 '사정 변화'때문이었음을 어필했다.

한은의 약속에도 '조건'이 달려 있었던 만큼 자신은 충분히 메시지를 줬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 총재는 상세한 해명과 함께 다시 포워드 가이던스를 지속하고 있다.

전날 금통위에서 이 총재는 금리 인상 사이클이 거의 종착역에 다달았음을 알렸다.

이 총재는 '(금통위가)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한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역대 어떤 한은 총재보다 자세하게 방향을 알려주고 있다.

■ 포워드 가이던스

포워드 가이던스는 중앙은행이 향후 통화정책 방향을 외부에 상세하게 알려주는 정책 툴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중앙은행들을 중심으로 포워드 가이던스가 유행했다.

포워드 가이던스는 향후 금리결정 전망, 금리 변경의 '조건' 등을 금융시장이나 경제주체 등에게 미리 고지하면서 불확실성을 줄이려는 행위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시간이 흐른 뒤인 2012년 12월 미국 연준은 실업률 6.5%, 기대 인플레이션 2.5% 등을 금리인상 조건으로 내세우면서 본격적인 포워드 가이던스 시대를 열었다.

1년이 지난 뒤에도 연준은 "실업률이 6.5%를 웃돌고 향후 1~2년 기대 인플레가 2.5%를 넘어서지 않는 한 기준금리를 현 수준에서 동결하겠다"면서 포워드 가이던스를 유지했다.

이후에도 미국은 이런 스탠스를 유지했다. 미국의 '제로금리 시대'는 2008년 12월부터 2015년까지 이어졌다. 연준은 2015년 12월에야 기준금리를 25bp 올리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에서 벗어났음을 알렸다.

한국에선 2022년 4월 이창용 한은 총재가 취임한 뒤 '한국식' 포워드 가이던스 시대를 열었다.

한국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큰 만큼 이 총재는 '불확실한 것은 불확실하다'고 말한 뒤 구체적인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과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국에 있어선 포워드 가이던스가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지만, 이 총재는 나름의 '이창용식 시스템'을 꾸려가고 있다.

■ 금통위, 더 이상 비밀집단 아니다

이 총재는 전날 금통위에서 금통위원들이 보는 최종금리를 공개해버렸다.

총재의 이런 직설적인 화법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역대 어떤 한국은행 총재도 제공하지 않았던 금통위원 개개인의 금리 전망이었다.

상당히 긴 문장을 구사하는 이 총재의 설명은 장황했지만, 꽤 자세했다. 그의 설명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최종 금리 수준에 대해서는 이번에 금통위원들 간에 의견이 굉장히 많이 나뉘었습니다. 최종 금리가 3.5% 정도로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시는 분이 세 분 계셨고요. 3.25%, 이번에 올린 것에서 멈추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한 분 계셨고, 3.5%에서 3.75%로 올라갈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신 분도 두 분 계셨습니다. 그래서 대다수 위원들이 지금 말씀드린대로 3.5%를 제안하셨는데 지난 10월에 3.5%를 최종 금리로 봤을 때에 비해서는 어디에 주안점을 두었는지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다 기억하시듯이 10월에는 최종 금리를 고려할 때 그때 외환시장 변동성이 상당히 큰 상황이었기 때문에 대외 요인에 더 많은 중점을 두고 최종 금리를 고려했다면, 이번에는 금융안정상황을 어떻게 고려해야 되는지, 또 지금 예측치를 발표하듯이 성장세가 많이 둔화되는 것을 더 고려해야 된다는 그런 측면이 있고, 또 다른 측면에서는 아직도 물가 수준이 5%대 유지를 하고 있고 그 지속성이 상당히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또 미국의 FOMC가 속도 인하를 시사했지만 얼마나 더 오래 갈 지에 따라서 외환시장이 다시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 이런 것들을 충분히 고려해야 된다는 이런 양쪽의 견해가 둘 다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균형해서 금통위원들께서 전망은 지난번처럼 3.5%를 중심으로 퍼져있어서 같은 수준이지만, 이번 상황에서는 대외 변동성 요인, 국내 요인도 굉장히 많이 변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수준보다는 유연성을 더 많이 가지고 결정해야 된다는 면에서 지난번과 수준은 같더라도 토의 내용은 많이 바뀌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요약하면 최종금리 3.25% 1명, 3.50% 3명, 3.50~3.75% 2명이라는 의미다.

금통위원 중 1명은 여기서 금리를 더 올릴 생각이 없고, 다수는 금리를 1번만 더 올리고 인상 사이클을 끝내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이 총재가 미국 연준처럼 '한국은행 점도표'를 제시한 것이다.

한국이 세계경제의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 나라지만 이 총재는 '틀릴 것을 각오하고' 자신들(금통위)의 견해를 알리고 싶어했다.

다만 금통위 이전 이자율 시장도 최종금리를 3.5%, 좀 높게 잡으면 3.75% 정도로 봐 왔다는 점에서 금통위 전망과 별반 차이는 없었다.

일부 투자자들에게 더 궁금한 건 '금리 언제 내리느냐'는 것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이 총재는 나름대로 상세히 입장을 밝혔다. 다시 총재의 발언을 그대로 옮겨보자.

"앞으로 최종금리에 도달한 뒤에 시기적으로 1년 정도는 그대로 유지할 거냐 이런 질문에 대해서는, 저는 어떤 시기를 못 박아서 유지된다고 말씀드리기는 어렵다고 생각하고요. 최종 금리에 도달하는 시기조차도, 미국의 금리 결정이라든지 조금 전에 말씀드린 여러 요인을 다 고려해서 최종 금리의 도달시기를 결정할 텐데 최종 금리에 도달한 이후에도 금리를 낮추기 위해서는 한국은행은 물가수준이 물가목표 수준으로 충분히 수렴하고 있다는 증거를 충분히 확신한 이후에 금리인하에 관한 논의를 하는 것이 좋고, 지금은 언제 금리를 인하할 것인지 논의하기에는 좀 시기상조라고 생각합니다."

즉 금리 인하를 위해선 물가 상승률의 목표 수렴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고 지금 인하까지 말하는 건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은 금통위는 이제 '이창용 체제'를 맞아 비밀주의를 벗어던지고 전망을 직접 제시하는 등 적극적인 이코노미스트가 된 듯하다.

이 총재가 역대 어떤 총재보다 솔직해지자 오래 전 한 때 거론됐던 금통위의사록 '실명제'까지 도입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있을 정도였다.

■ 이창용의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이 총재는 질문을 던지지 않아도 자신이 나서서 알려주고 싶어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내가 알려주고 싶은데 왜 안 물어보느냐는 분위기까지 풍겼다.

금리정책 변화에 있어서 물가 상승세 둔화 속도는 매우 중요하다. 총재는 앞으로 발표될 소비자물가에 대한 예상, 그리고 이 물가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까지 알려줬다.

이 총재가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에 특화된 총재라는 평가까지 받는 이유다.

조만간 나올 물가 상승률을 '읽는 법'에 대한 총재의 설명을 그대로 옮겨 보면 이렇다.

"11월은 굉장히 예외적인 달이 될 것입니다. 작년 11월을 보면 한파로 인해서 채소가격이 보통은 한 10% 정도 떨어지는 게 보통인데, 작년 11월에는 확실하진 않지만 7∼8% 이상 올라갔고 유가도 굉장히 추운 날씨 때문에 굉장히 많이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11월에 그렇게 이상 요인이 있었기 때문에 전년동기대비로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작년 11월에 이상적으로 올라간 채소가격과 유가 때문에 11월, 예상하는 물가지표가 저도 정확하게 예상을 못하겠지만 상당폭, 10월 자료가 5.7%인데 5.7%에서 상당폭 낮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 12월에도 그 여파가 미칠 수 있고요. 그래서 11월, 12월의 물가상승률 자료가 많이 떨어지더라도 '아, 이제 갑자기 물가가 안정됐구나' 이런 해석을 하는데 상당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요. 연초가 되면 이 기저효과가 사라지면서 1, 2월에는 다시 5%대의 물가상승률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말씀하시는 대로 11월, 12월에 4자가 앞에 찍히면 바꾸느냐, 이런 것은 기조 전체를 봐야 되기 때문에 전체적인 흐름을 봐야 된다고 말씀드리고요. 또 하나 말씀드리는 것은 항상 물가가 5% 수준을 넘어가는 높은 물가 수준이 지속되면 물가 중심의 경제정책을 할 수 밖에 없다고 얘기할 때 5% 수준을 ‘아, 4.99면 바꾸고 5.01이면 안 바꾸고' 이렇게 해석하시기보다는 전체적으로 큰 흐름을 보고 결정하는 거고요. 4%대 물가가되더라도 그 4%대 물가가 다시 정책목표 수준으로 빠르게 수렴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것 자체가 금리를 낮춘다든지 이렇게 변화를 의미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수학적으로 숫자를 생각해주지 않으셨으면 하는 게 제 바람입니다."

내년초 물가상승률에 다시 높아질 수 있으니, 올해 11~12월 낮아지는 물가상승률에 흥분하지 말고 전체적 흐름을 봐야 한다는 얘기다. 금통위 의장이 중심에 서서 한은의 전망을 시장 등과 공유하고 이 전망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까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창용 총재는 취임 후 '솔직하고 직설적인' 화법으로 많은 칭송을 받았으나 이후 '약속과 달리' 금리를 50bp(10월) 올렸다고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한은 총재는 다시 적극적으로 포워드 가이던스에 대한 사람들의 편협한(!) 접근을 시정하기 위해 노력했다. 즉 '조건부' 약속을 '절대적' 약속으로 믿은 일부 사람들의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한동안 상당히 노력했다.

어차피 불투명한 미래를 알 수 있는 정확히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 총재는 '인풋이 바뀌면 아웃풋도 바뀐다'는 상식적인 명제를 강조하면서 비판에서 벗어나려는 모습을 보였다.

■ '한국식' 포워드가이던스 게임에 적응하기

이자율 시장에선 이 총재 취임 후 그의 '직설화법과 전망 공유' 등을 칭송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후 한은이 두 번째 50bp 인상을 시사할 때는 '이전 말과 다르지 않느냐'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를 정해놓고 하는 게임은 게임이 아니다.

총재는 전망이 한국 재료, 미국 재료, 중국 재료 등 국내외 통화정책의 인풋 재료들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강조한 뒤 카드패를 다시 돌리기 시작했다.

게임의 큰 방향은 알려주지만, 이 게임엔 상황이 변화되면 방향대로 가지 않을 수 있는 불확실성이 내재돼 있다.

이창용 총재의 한국식 포워드 가이던스 '실험'에 대해 '칭찬(취임 이후)→비난(두번째 50bp 인상 시사)→칭찬(어제)'을 한 한 채권딜러는 자신도 이제 한은 총재와의 게임에 적응하고 있음을 알리며 이렇게 말했다.

"불확실성 해소를 통해 불필요한 변동성을 줄여주는 일은 좋아 보입니다"

물론 이 딜러도 이젠 인풋이 바뀌면 한은 총재의 '조건부' 약속 역시 지켜지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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