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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칼럼) 정치의 채권시장 위기 활용법과 흥국생명 사건이 남긴 뒷맛

  • 입력 2022-11-09 14:56
  •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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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흥국생명은 9일 현재에도 홈페이지에서 사과문을 내리지 않고 있다...출처: 흥국생명 홈페이지

사진: 흥국생명은 9일 현재에도 홈페이지에서 사과문을 내리지 않고 있다...출처: 흥국생명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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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콤 장태민 기자] 기준금리 인상 과정에서 발생한 채권시장 위기를 정치권이 자당 입맛에 맞춰 해석하고 있다.

정치권이 어느 때보다 채권시장에 대해 높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지만, 당리당략 차원에서 이 문제를 접근하고 있다는 비판들도 보인다.

지금은 금융당국이 나서서 신용 채권 발행과 매입 등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시장 일각에선 '새로운 관치금융 시대의 도래'라고 비판하고 있으나, 크레딧 시장이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평가도 많다.

동시에 금융당국이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으나, 지금은 도덕적 해이를 심각하게 따질 정도로 한가한 상황이 아니라는 반론들도 많다.

여당은 금융당국의 적극적 역할을 독려하면서 후원하고 있으나, 야당은 '사태' 발생을 부각시키면서 정부의 실책을 부각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 흥국생명 '사과문 게재'로 마무리된 신종자본증권 콜 옵션 사건

레고랜드 ABCP 사태 이후 이달 1일 흥국생명이 콜 만기가 도래한 신종자본증권의 옵션 미행사를 공시했다. 그러자 채권시장이 바짝 긴장했다.

레고랜드로 채권시장이 냉각된 뒤에 있었던 일이었기에, 관행을 벗어난 흥국의 결정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다.

결국 금융당국은 흥국이 6개월마다 행사할 수 있는 콜 옵션을 이번에 행사하지 않는 데에 제동을 걸었다.

흥국생명은 결국 8일 '사과문'까지 게재해야 했다.

흥국은 "17년 11월 발행한 5억달러 규모의 해외 신종자본증권에 대한 콜옵션을 행사하기로 결정했다"며 "최근 조기상환 연기에 따른 금융시장 혼란을 조속히 해결하고 태광그룹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자본확충을 지원키로 했다"고 전했다.

흥국은 그러면서 "흥국생명은 수익성, 자금유동성, 재무건전성이 양호하며 향후 추가적인 자본확충을 통해 자본안정성을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자산규모 30조원의 이 회사는 "당사의 기존 결정으로 인해 야기된 금융시장의 혼란에 대한 사과드리며, 앞으로 시장 안정과 고객 보호에 최선을 다했다"고 고개를 숙였다.

■ 여당, 금융당국 대응 칭찬하며 위기 대응 능력 호평

흥국의 사과문 게재 이후 정치권은 논평을 냈다.

우선 여당은 은행·공기관 등의 채권 발행 조절, 2금융권 지원 등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금융당국의 노력을 평가했다.

흥국의 콜 옵션 행사 결정을 이끈 것도 당국의 공이라고 내세웠다.

흥국생명의 콜옵션 행사 결정 이후 여당은 금융당국을 칭찬하면서 힘을 보태겠다고 했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8일 "레고랜드, 흥국생명 등에 대한 정부의 대처는 긍정적"이라며 "가계부채, 부동산 PF 등 문제가 있지만 이는 충분히 해결할 능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성 의장은 "금융시장은 위기 시 관리가 중요하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며 "당과 정부는 긴밀히 협조하여 금융시장에 불안이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금융시장의 돈맥경화는 국가 신용에 직접적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긴 하다.

아무튼 여당은 "대한민국 기업의 펀더멘탈은 세계적 수준"이라며 "3고의 위기 속에 기업들이 어려움이 없도록 정부는 일관성 있게 시장에 신호를 줘서 돈맥경화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하길 당부한다"고 했다.

■ 지금은 대통령실까지 나서서 채권시장 모니터링 하는 상황

8일 국회 운영위의 대통령실 국정감사에서 최상목 경제수석은 "금융시장 일일 모니터링하는 중이며 좀더 나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 수석은 "채권시장을 위한 50조원 플러스 알파 대책을 마련했다"면서 지금은 하루 단위로 시장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여당 의원들은 올해 한전이 대규모 채권을 발행해 채권시장 수급을 악화시킨 것과 관련해 이전 정권을 비판하기도 했다.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은 국감에서 "한전채가 전체 채권시장 43% 빨아들인다고 하더라. 탈원전 적자와 금리인상으로 인한 은행으로 자금 쏠림 때문에 채권시장에 탈이 났다"는 입장을 보였다.

금융당국은 연일 채권시장 안정 대책이나 점검 상황과 관련 내용을 발표하고 있으며, 대통령실도 이를 점검하고 있다.

지금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채권시장이 너무 많은 사람들의 감시를 받고 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 은행들, 채권 발행 조심하고 '맏형' 역할 다하겠다고 다짐

금융당국은 9일 아침 20명의 은행장들은 불러 모았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은행장들과 논의하면서 "급격한 금리인상 요인 외에 과도한 심리적 위축에 따른 신용경색 우려가 크다. 자금 흐름의 물꼬를 트는데 있어 정부의 시장안정 대책과 은행의 노력이 결합되면 채권·단기자금시장 안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은행들을 독려했다.

당국은 최근 시중 자금이 은행권으로의 빨려 들면서 상대적으로 제2금융권 등에 유동성 부족이 심화될 수 있는 만큼 은행들이 2금융권에 대해 '형 노릇'을 제대로 해 줄 것을 요구했다.

당국이 직접 은행들에게 '맏형'이란 이름표를 달아준 모양새다.

대신 금융당국은 지금이 위기 상황인 만큼 은행들의 유동성 비율 관리 등엔 버퍼를 만들어준 상태다. 정부는 LCR 규제 정상화 유예조치(10월 20일), 예대율 규제완화 조치(10월 26일)를 내놓은 뒤 이날엔 증안펀드 출자금에 적용하는 위험가중치도 코로나19 당시와 동일하게 하향 적용키로 했다. 증안펀드 출자금에 적용하는 위험가중치가 250%에서 100%로 하향된다.

은행들 역시 당국자들을 만나 정부 지도와 방침을 잘 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어필했다.

5개의 큰 시중은행은 24일 이후 현재까지 은행채를 발행하지 않고 있으며 연말까지 기존 발행계획에 비해 축소해 발행할 예정이라고 보고했다. 그러면서 단기 대출이라고 할 수 있는 RP매입과 관련해 5대 은행은 은행별 RP 평잔 3~8조원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10월 이후 약 250조원의 익일물·기일물을 매수했다고 상신(上申)해 금융당국의 신임을 얻으려고 노력했다.

은행들은 또 CP, ABCP, 전단채 매입, RP매수, MMF 운용 규모 유지 등을 통해 자금시장에 유동성 공급을 지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간담회에 출석한 20개 은행의 장들은 앞으로도 당국의 조치에 맞춰 '맏형의 중책'을 잘 마무리하겠다고 다짐했다.

은행 수장들은 앞으로도 제2금융권 '아우'들이 큰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쓰면서 당국의 지휘통제에 잘 따르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특히 "제2금융권의 크레딧라인 유지에 어려움이 없도록 은행권이 최대한 협조할 예정이며 CP, ABCP 등도 매입에 나서는 등 단기자금시장에 대해 은행권이 시장안정 역할을 하겠다"며 "은행 간 자금조달 경쟁 심화로 제2금융권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지지 않도록 시장상황을 최대한 고려하겠다"고 약속했다.

■ 야당 '레고랜드 사태, 흥국생명 사건' 등 내세워 정부 실책 부각에 집중

금융당국과 여당이 채권시장이 위기에 적극 대응 중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는 반면, 야당은 금융당국의 실책이 채권시장 위기를 불러왔다는 점을 어필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흥국생명이 콜 옵션 행사를 발표한 뒤 더불어민주당은 '흥국생명 사태는 시장 신뢰를 잃은 제2의 김진태 사태'라는 논평을 냈다.

민주당은 8일 "흥국생명 콜옵션 미행사는 231조에 달하는 외국인의 국내 채권 투자를 틀어막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어 결과적으로는 연쇄부도 사태를 촉발할 수 있었던 참사가 될 수 있었다"며 "흥국생명이 입장을 바꿨지만 국내 금융지주사들의 CDS프리미엄이 지난해 말보다 3배 이상 급등하는 등 부도 위험은 급등했다"고 주장했다.

야당은 "애초 논란의 책임은 흥국생명뿐만 아니라 흥국생명이 콜옵션 미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묵인해왔던 금융당국에 있다"며 "나무로 만든 종이를 다시 나무로 되돌릴 수 없다. 한번 꺾인 신뢰는 쉽게 돌아올 수 없는 법이며 신뢰를 잃어버린 대가로 따르는 고통은 결국 우리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야당은 특히 정부가 책임을 지기는 커녕 흥국의 콜 옵션 미행사를 자신들의 공이라며 치켜세우는 꼴은 '목불인견'(눈 뜨고 볼 수 없는 작태)이라는 비난까지 퍼부었다.

그러면서 콜 옵션 미행사를 누가 용인했는지 진상을 밝히라고 재촉했다. 야당은 김진태발 경제위기, 그리고 금융당국발 흥국 '사태' 등의 표현을 사용하면서 여당과 정부의 실책을 부각시키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 흥국 콜 행사 관련 '사건'...채권시장의 다양한 견해

최근 채권시장에선 레고랜드 사태 이후 흥국생명의 콜옵션 미행사 공시로 걱정이 상당했던 게 사실이다.

5년전에 비해 급등한 환율, 4%대 발행 채권을 8%에도 차환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높아졌던 금리 등을 감안할 때 콜 미행사를 이해할 수는 있으나 한국물 채권에 미칠 파급효과를 보지 못한 결정이었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지금은 한국만이 아니라 글로벌 채권 발행시장이 모두 어렵다. 투자자들은 신용 리스크 등을 감안해 상당히 높은 리스크 프리미엄을 요구한다. 글로벌 투자 환경이 이전보다 훨씬 위험해진 상황에서 금리를 더 달라는 주문은 당연했다.

자산운용사 한 관계자의 논평은 이랬다.

"레고랜드 파장 때문에 흥국생명 콜 미행사 논란이 더욱 컸습니다. 금융당국 입장에서도 만에 하나 한국물 전체에 미칠 수 있는 파장 때문에 창구지도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채권시장에선 흥국생명의 이 사건에 대해 사회 곳곳에서 이처럼 크게 호들갑을 떨 일이었는지 의문이라는 평가도 적지 않았다. 국내외 크레딧 채권에 장기간 투자해 온 한 투자자의 논평은 이랬다.

"흥국이 대단한 1금융권 회사도 아니었고 다른 나라들에서도 종종 코코본드에 대해 콜 미행사를 했습니다. 관행적인 약속은 못 지킬 수도 있는 것이고, 이를 전혀 감안하지 않고 접근했다면 투자자도 잘못이 있다고 봐야죠. 그리고 사실 이 일이 전체 시장을 크게 뒤흔들 만한 사건도 아니었습니다."

흥국의 콜 미행사에 따른 시장 불확실성을 제거할 필요성, 그리고 흥국의 당초 콜 행사 연기 결정 모두 설득력이 있었으며 시장 반응은 시장 반응대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란 평가도 있었다. 한 외국계 채권투자자는 이렇게 논평했다.

"알다시피 지금은 국내외 모두 크레딧물 발행시장이 정상이 아니죠. 최근 한국물 프리미엄이 올라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고요. 흥국 건으로 다른 한국물이 영향을 받을 수 있었지만, 흥국의 이번 사건에 대해 마치 한국물 전반의 위기 도화선처럼 생각할 일도 아니었습니다."

아울러 흥국의 당초 판단이 상당히 합리적이었다는 평가도 있었다. 흥국이 시장에 민폐를 끼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비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지만, 채권을 전혀 모르면서 분위기나 호도하고 싶어 아무 말이나 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역비판(逆批判)도 있었다.

아울러 레고랜드와 흥국 건은 전혀 다른 사건이지만, 이를 비슷한 사건으로 치부하면서 접근하는 시각을 바로 잡으려는 모습들도 보였다. 채권업계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선 레고랜드와 흥국은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레고랜드 사태야 보증 선 사람이 맘대로 하라고 하면서 몽니를 부린 사건으로 볼 수 있지만, 흥국 옵션 행사 건은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발행자 옵션이 내재돼 있는 하이브리드 본드에 투자하는 사람이 관행적으로 옵션 행사를 감안하고 투자한다고 하지만, 그 관행을 지키지 않아도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관행적으로 콜 옵션을 행사해 왔을 뿐 옵션은 내재돼 있어서 발행자에게 판단 권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치 이번에 억지로 상환을 시켰다고 해서 시장이 좋아지기를 기대한다고 하는 것 역시 이상합니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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